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20
원래 근방에 골고루 퍼져 있던 마극종의 세력과 조직적 역량을 모두 이곳 엣추에 쏟아부었다. 이 많은 조직과 자산은 무엇을 대가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존사님, 여기에 계시면 위험합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어디로 말인가?”
“여긴 첫 번째 성문일 뿐입니다. 적들이 두 번째, 세 번째 성문까지 뚫으려면 오래 걸릴 터이니 조선과 원산의 지원이 도달할 때까지 존사님께서 무사하시려면 그곳으로 피해야지 않겠습니까?”
“알겠네.”
어느 충실한 조직원이 말하니, 렌뇨는 한숨을 쉬며 급히 자리를 피한다. 그를 위하여 성문이 열렸다 닫히니, 잠시 후에 문 너머에서 환호성과 비명이 뒤섞여 들린다.
첫번째 성문이 돌파된 것이다.
“존사님께서 사기 고취를 위해 일선에 계시는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뒤로 피해 계십시오. 저희가 여긴 막아 보겠습니다.”
‘이제는 최후방에까지 도피하라고 하는가? 자네들 자신조차도 적들의 공격을 돈좌시킬 수 있으리라 믿지 못하는 게 아닌가?’
물론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방해가 될까 싶어 또다시 빠르게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도달한 망루에는 이미 진보 나가노부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하게 되었소.”
“아닙니다. 선사님 덕에 제가 이리 눈을 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많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역사의 동(動)과 반동(反動), 그리고 혁명과 반혁명까지 말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여전히 굳건합니다.”
그리 말하면서도 나가노부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인다.
바닷물을 끌어들인 해자의 바로 너머에서, 상륙을 호시탐탐 노리는 적선들이 내다보였기 때문이리라.
렌뇨 역시 그의 시선을 따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너머의 원산, 그리고 조선….
지난 10여 년의 격랑과도 같았던 여정이여! 공산주의가 아니었더라면 이리 불타오르지도 못했으리라!
비록 공산주의자로서 그 자신의 생애가 짧더라도… 위대한 여정이었음이 후대에 기억되기를….
―“들리는가!”
…음?
수평선 너머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연기,
굴뚝.
그리고,
선체.
그 선체 전체가 무슨 울림통이라도 되는 양, 다시금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
―“들리는가! 우리가 권유할 것은 오직 항복뿐이다! WRS(Wonsan Republic Ship) 레닌 호는 항복한 이들에게는 공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설마.
항구를 봉쇄하고 호조즈성을 둘러싸던 배들이 작은 나무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의 철기선이 가만히 정지한다.
마치 바다를 움켜쥐고 선 거인과도 같이, 그 배 전체가 서툰 일본어로 외치고 있었다.
―“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의 지도자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다!
사회주의 해방구 엣추를 공격하는 자들은 곧 우리 강역에 대한 공격자들로 인식하고 격퇴하겠다!”
* * *
“…바토르스키 동지, 아카토프 동지, 그리고 아직 이 자리에 없지만 고르바초프 동지.
모두들 힘써 주어서 고맙습니다. 당신들이 시간을 벌어 주고 적들을 격퇴한 덕분에 더 많은 인민들이 후방으로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에드워즈는 그렇게 말하며, 트로츠키가 전해 주었던 나무 상자들을 연다. 정말이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던 것처럼 딱 맞게 3개를 준비해 놓았다.
에드워즈는 잠시 상자 안에서 반짝이는 은빛 월계관과 붉은빛 적기의 모습을 본다.
은과 에나멜로 만든 승리의 상징. 마치 성찬식 예배를 보는 사제처럼 루스 총관은 조심스레 그를 들어 올려 두 사람의 가슴에 매단다.
“여러분은, 이제 공식적으로 소련 적기 훈장의 수훈자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영웅입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감사합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아주 작은, 몇 그램 되지 않을 금속 조각인데도 마치 거대한 방패를 어깨에 붙인 듯한 무게감을 모두가 받는다.
“…이제 나가서 싸워 주셔야 합니다.”
“…이기겠소.”
아카토프가 말한다. 자신감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오직 광대뼈처럼 두드러진 의지만이 그 말 속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곧 두 사람은 말에 오르고 호위를 대동하며 전장을 살펴보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지형과, 기후와, 병력의 상태를 가늠하며 전략을 설계하리라.
마지막으로 전투에 임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기관총과 탄약을 소모해 가면서 적들을 섬멸하리라.
그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다.
…그다음은? 글쎄다. 적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고, 많지 않던 몽골 주둔군도 소진되어 가고, 그들을 지원해 줘야 할 주치인 울루스는 대놓고 적대 행위를 이어 가고….
“전망이 낙관적이지는 않군요.”
“군자는 알 수 없는 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소.”
권람이 한숨을 쉬며 그의 옆에 선다.
“…젠장, 뭐 이리 옛날 사람들 주제에 똑똑하답니까? 궤도마차에 기관총 실어서 쏴 재끼려고 해도 선로를 망가뜨려 놓으니 별수가 없잖습니까?
애초에 선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쏘지도 못하겠지만은… 그 전략도 말아먹고….”
“나도 그 ‘옛날 사람’이라오. 말을 조심하시오.”
“아, 미안합니다. 너무 친근해서. 그쪽은 뭔가 얍삽한데 신숙주 동지만큼 치밀하지 못하니 약간 우리네 식구들 보는 것 같단 말입니다.”
“….”
“농담입니다.”
“아닌 거 다 아오.”
잠시 피식거리며 웃다 보니 우울감이 조금 씻겨 나간다. 그래, 이번 전투에서 진다 하더라도 레닌그라드에서 버티고 있으면 그만이다. 이 콘크리트 성벽을 뭐, 무슨 수로 뚫겠는가?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면 루스는 다시 황폐화되고 그들이 이룩한 모든 근대화 사업, 생활 수준 개선 사업은 모두 무(無)로 돌아가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겠지만.
“…젠장, 전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생각만 적어지면 정말 행복할 텐데.”
“….”
“저기? 듣고 있습니까? 제 고민 상담이라도 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만….”
“생각… 없애는 방법 하나 내가 이야기해 주리다.”
그리 말하며 권람이 갑자기 저 멀리를 손으로 가리킨다.
에드워즈의 시선 역시 그를 따라 레닌그라드의 바깥을 향한다.
창백한 태양, 공허한 대지, 쓸쓸한 바람.
그 사이의 행렬.
…시발, 이제야 온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더니 답답한 인간들.
수많은 마차와 기병의 행렬이 그들 앞에 펼쳐진다.
유럽인들은 이제 망했다.
* * *
“엣추의 사회주의 혁명 천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 천세!”
우렁찬 천세 소리를 들으며, 말을 탄 트로츠키가 또각또각 호조즈성으로 진입해 들어왔다.
10년 동안 꽤나 아름답게 꾸며져 있던 성이건만, 단 며칠의 병화로 인해 사방이 난장판이 되었으니 꾀죄죄한 꼴이다.
“…엣추의 지도자와 마극종의 종주를 만나 뵙겠소. 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 및 원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인민위원평의회 의장 트로츠키요.”
역시나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것은 아닌지, 옆에서 통역이 그가 총알같이 내뱉는 조선어를 바삐 옮겨다 주고 있었다.
“그대들의 수난은 이제 끝났소. 반역자들은 목매달아질 것이고, 엣추의 변경은 무수한 기관총 포대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안전해질 것이오.”
“…감사합니다, 트로츠키 도노.”
“‘동지’라 부르십시오, 나가노부 동지.”
“아… 네, 영광입니다!”
트로츠키는 잠시 엣추의 전경을 둘러본다. 황폐화되었고, 곳곳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른다. 마치 10여년 전, 처음으로 한양에 발을 내딛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든 지금이든 어마무시한 전략 병기들을 동반하고 있기는 하다. 조선에서는 조선 국왕 이홍위였고, 일본에서는 증기선과 기관총들이라니….
“오닌의 난에 개입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오. 이곳의 재건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요, 항만뿐 아니라 근대적 방직 공장 또한 이곳에 건설하려 하니 부지 확보가 필요하겠구려.”
“아, 네! 알겠습니다!”
“하하, 이곳의 국가 원수는 그대요. 나는 그저 손님일 뿐이고. 그보다… 뭣보다도 중요한 절차를 아직까지 밟지 않아 미안할 뿐이오.”
트로츠키의 말에 나가노부는 의아해하고 렌뇨는 속으로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해 낸다.
트로츠키는 말에서 내려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곁으로 다가선다.
“이곳은 이제 사회주의 해방구임을 정식으로 선언하오.”
“환영하오. 소련의 동지 여러분.”
* * *
“내가 어제 잠에 들었을 때, 꿈에서 가브리엘께서 나타나 말씀하셨다!”
카지미에시! 불이 붙은 듯 휘날리는 말갈기 뒤에 올라타 우렁차게 외치는 온 유럽의 영웅이여!
그의 말발굽 아래 야만인들은 두려움에 떨었으며 위대한 이름 앞에 이교도들은 무릎 꿇었다.
악명 높던 ‘악마의 총’ 역시 그의 현묘한 지휘 아래 차례차례 무력화되었으니 병사들에게 왕은 이미 한 사람의 수호성인과도 같았다.
“말씀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트리움프(Tryumf, 승리)!”
그 말에 병사들은 환호하였고, 카지미에시는 알맞은 때에 칼을 뽑아 들었다. 마치 천사가 든 불칼처럼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신께서 승리를 바라신다!”
“우와아아아아!”
“돌격!”
그리고 하찮은 무장의 보병들이 먼저 앞서 나간다. 예상대로 적군은 기관총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인지 기병으로 응수한다. 당연히 경보병들은 단숨에 대열이 무너지고 도살당한다.
“2열! 돌격!”
그리고 다시 나아가는 것은 장창병들과 석궁병들. 잘 조직된 대열로 앞서 나아가니 지친 기병대에 꽤나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적 기병대가 마침내 후퇴하고….
―두. 두. 두. 두. 두. 두.
예의 악마총이 공기를 찢어발긴다.
수많은 용감한 전사들의 입에서 마지막 숨결이 빠져나간다.
그러나 카지미에시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그는 계산할 뿐이다.
“셋… 둘… 하나….”
기관총 소리가 멎는다.
총포들과 유럽 연합군 사이에는 시체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됐다.
전투는 끝났다.
“전군 돌격! 적들을 도살하라!”
“우와아아아아!!!”
적들이 납으로 된 탄환을 쏘니, 우리는 인간으로 된 기병을 쏘아 보내겠다!
영혼이 없는 금속덩어리에 맞서, 주님이 빚은 영과 육이 나아가리라!
어느 하찮은 음유시인이 그리 노래하는 것을 카지미에시는 들었었다. 운율도 음률도 엉망이라 동전도 쥐여 주지 않고 쫓아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아름다운 구절이다.
저기! 저, 맹렬하게 튀어오르는 우리네 기병들을 보아라! 적 기병들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겁을 먹어 나서지 못하고, 총탄을 소모하여 무력해진 보병들만이 두려움에 떨며 적의 대열을 지킨다!
이제, 적들을 찢어발길….
“전하! 보병들 사이에서 카간의 깃발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뭐지? 왜 이 순간에 이반 셰먀킨의 바보 같은 보고가 나의 기분을 망치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주치인 울루스에서 그들을 쉽게 통과시켜 줬을 리가…”
―두. 두. 두. 두. 두.
…어라?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린다.
카지미에시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전황을 살핀다.
다시, 기관총과 유럽 연합군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체들 말고는.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아마 가브리엘이 바란 것이 (타타르의) 승리인 듯했다.
“전하, 후퇴해야 합니다!”
이제 이반 셰먀킨의 목소리가 악을 쓰는 듯하다. 번뜩,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카지미에시가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춘 채 지시를 내린다.
“지금 당장, 기사단과 독일인들, 용병들을 출격시켜라!”
물론 카지미에시가 말하는 기사단은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다.
“폴란드인들과 리투아니아인들은 어떻게 합니까?”
“…몇몇 영주들에게 여기저기 분리해 놓은 기사단 병력을 규합하라고 명령을 내리겠다.”
이반 셰먀킨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이자, 그는 카지미에시의 속내를 짐작한 듯 발빠르게 움직인다.
몇몇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영주들을 희생양으로 앞세워 유럽인들의 눈을 가린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인들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여타 경쟁자들에게만 출혈을 강요한다.
교묘히, 아주 교묘히….
군막을 급히 접은 뒤 물러서며, 카지미에시는 끊임없이 병사들을 분산 배치하였다.
리투아니아인들은 미묘하게 주요 길목에서 벗어나게, 유럽인들은 몽골인들이 쳐들어올 진입로의 한가운데에.
‘…너희만 죽어라.’
카지미에시는 말 위에서 수백, 수천 마디 말로 작전을 전달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려 댔다.
‘난 살아야겠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난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니까!’
정말, 이런 때까지도 쓸모 있는 명분이다.
* * *
/ 작가의 말
이번 화 소제목은 레닌이 ‘사회주의와 전쟁’에서 “내일 모로코가 프랑스에, 인도가 영국에, 페르시아나 중국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다면, 그런 전쟁은 누가 먼저 공격했느냐와 무관하게 ‘정당하고 방어적인’ 전쟁일 것이다.”라고 쓴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루스에선 말이 사람을 죽인다! (1)
루스에 도착한 에센에게는 할 일이 많았다.
오랫동안 방치한 정원을 마주하면, 집주인은 우선 마구잡이로 자라난 잡초들을 베어 내야 한다. 그것과 비슷하다.
마구잡이로 뻗대는 놈들의 모가지를 베어 내는 거니까? 아마 비슷할 것이다.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저는 바이에른의 상인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저를 포로로 삼는다면 분명 많은 몸값이 들어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