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19
그러나 논쟁이 정리되었다 하여 이 열악한 상황 역시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총기가 있든 없든, 각지의 총탄 자체가 줄어들고 있소.”
“망할. 어디 밭에서 탄피와 탄약을 수확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물론 구리와 무연 화약은 밭에서 자라나지 않는다. 그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으니.
하다못해, 다가오는 적들에게 위협 사격만 가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총알이 소모된다. 한 사람을 죽이는 데 수백 수천 발의 탄을 저 공중에 흩뿌려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뼈아팠다.
심지어 훈련 부족으로 미숙한 병사들이 총알을 마구 쏴 재낀 곳들은, 무수한 빈 탄피만이 남은 채 기관총 포대와 거점 도시들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기관총이 있든 없든 도시를 잃어 가고 있었다.
마치 손끝 발끝부터 피해자를 절단하는 미치광이 쾌락 살인마를 마주친 것 같은 불안감.
무력함.
“…심지어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소.”
에드워즈의 물음에 권람 또한 별수가 없다는 듯 허공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쉰다.
그렇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별수 없는 문제란….
* * *
몽골군 아닌가?
점차 루스의 동쪽 깊숙이까지, 마치 개미 떼처럼 땅을 파먹어 들어가던 카지미에시는 뭔가 이질적인 상황에 맞부딪히게 된다.
분명 눈앞에 있는 것은 몽골군이다. 저들도 말을 탄 기병대이며, 태양 아래 칼날을 번뜩이는 채 적들을 향해 돌격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적은 카지미에시의 군세가 아니었다.
저들은 루스인들의 마을을 침공하고 있다.
학살하고 있으며, 약탈하고 있으며,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전하, 무슨 일입니까? 저기 타타르의 병사들이 있으니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멈춰라.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저들이 대체 왜 루스인들을 약탈한다는 말이냐?”
“그것이 타타르 야만족들의 습성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의 군대가 이교도 타타르들로부터 루스를 구원하러 온 것 아니겠습니까?”
멍청하긴, 이번에 뒤따라온 기사 놈이 안타깝게도 선전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멍청이였다. 쓸 만한 이반 셰먀킨은 지금 하필 옆 마을을 털어먹고 있으니 몇 시간 뒤에야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때까지는 이 바보를 견뎌 줘야 한다.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마주친 타타르의 군세는 루스인들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군기도, 무장 상태도 저것보다는 낫지 않았느냐?”
“그건….”
“게다가 저들이 우리를 보고도 공격하지 않는 이유를 한번 설명할 수 있겠느냐?“
“….”
됐다. 바보의 헛소리는 틀어막았으니 이제야 실무를 처리할 차례다.
“사절을 보내야 하겠다. 저들에게 백기를 들고 나아가 우리의 신분을 밝히라. 그리고 저들 또한 신분을 밝혀 주기를 바란다고 전하라.”
그렇게 기사 하나가 타타르인들을 향해 나아가고, 다시 머지않아 타타르인 하나가 그쪽에서 교환물처럼 달려온다.
“문양을 보아하니 위대한 폴란드의 국왕이자 리투아니아의 대공이신 카지미에시 전하 아니십니까?”
“그대들의 신분과 소속은 깃발이 없어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다. 우리는 루스 총관부와 성스러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니 나는 그대들의 피아를 식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전하,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사절은 다소 음흉하게, 기분 좋은 흉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모략가처럼 웃어 보였다.
“우리 주치인 울루스 또한 총관부를 적대합니다. 전하의 적의 적이니, 곧 전하의 벗이 아니겠습니까?”
…이후로 시간이 지나 사절에게 사정을 듣고 돌려보내니, 생각한 것보다도 더 흥미로운 사정이었다.
‘저들은 루스 총관부에 루스의 지배권을 빼앗겨 불만을 품었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저놈들이 감히 우리가 파견한 다루가치를 몰살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침공하지 않았더라면 가만히 있었겠지만 말일세. 그리고 지금도 조금씩 교역로에 약탈이나 저지르는 게 전부고.”
―“….”
그런 대화였다.
“…이반 드미트리예비치 셰먀킨,”
“예, 전하.”
“만일 승리한다면 자네가 일등 공신일세!”
그리 선언하듯 외치며 카지미에시는 몸을 일으켰다.
아, 참으로 절호의 기회다! 내륙 교역로를 틀어쥔 주치인 울루스와 적대하니 루스로 이어지는 몽골 제국 후방에서의 보급이 원활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적들이 기관총을 쏴 갈긴다고 하는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다.
점차 과감히 전투를 벌이더라도 저들이 총기를 운용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저들도 보급이 떨어지고 있다. 아무리 ‘악마의 총’이니, ‘타타르산 과부 제조기’니 하더라도 탄알도 없이 무한하게 쏴 갈길 수 있는 물건은 아닐 터.
적확한 상황 판단.
“승리가 머지 않았다. 붉은 항구 인근으로의 포위망을 좁혀라.”
탁월한 지휘.
이번 승전으로 인하여, 앞으로 유럽 세계의 위대한 수호자로서 자리매김할 카지미에시의 명령에 군대가 움직인다.
성들을 하나씩 함락시키고, 요새를 정복하며, 벌판을 점령하면서.
총관부의 숨통을 조여 간다.
카지미에시는 떠올린다. 제국, 스웨덴, 한자 동맹, 리보니아… 이번 전쟁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소모되기를 기다리는 적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 그들의 기대를 모두 꺾어 주리라.
카지미에시라는 이름이 군신 마르스와 나란히 불리게 되리라.
그렇게 총관부는 포위되어 간다.
* * *
“…선사님, 꼼짝없이 포위되었습니다.”
진보 나가노부는 절망을 억지로 누르며 렌뇨에게 말을 건다.
처음에 만났을 때의 앳된 청년은 이제 엄연한 가문의 가독이 되었고, 떠돌던 처지도 청산하여 원수로부터 가문의 성채를 되찾았다.
…물론 그 모든 세월과 업적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섣불렀던가?”
“아닙니다. 저 진보 나가노부, 일본 최초의 사회주의 공화국의 군사 지휘관이 된 이로서 작금의 상황을 낙관하려 합니다! 이 절망 속에서도 사회주의자라면 역사의 필연적 진보를 믿어야만 하는 법입니다!”
마사노부의 결연한 대답에 렌뇨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뱉는다.
그래, 거의 10년에 걸친 세월이 치기 어린 젊은이를 전투적인 공산주의자로 바꿔 놓기는 하였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는다. 렌뇨의 자식들은 전 일본에 퍼져 있고, 마쓰다이라 또한 봉기를 이어갈 것이며, 마극종의 세력은 유지되리라.
그 미래에 렌뇨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을 뿐.
연호가 오닌(應仁)으로 바뀐, 소련의 달력으로 치자면 서기 1467년.
‘예언’에 따라 차기 쇼군을 누구로 할 것인가의 여부를 두고 교토에서 전란이 일어났다.
또한 이 전란의 핵심 축인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야마나 소젠의 갈등과 얽힌 하타케야마의 후대 문제 또한 불거져 왔다.
그러나 하타케야마의 가신이던 진보 마사노부는 개입을 거부하였다. 쇼군직을 둘러싼 전쟁이든, 이곳 하타케야마의 후계 전쟁이든.
조선, 원산과의 무역으로 이미 충분히 세를 쌓았다 생각했기에 해낸 판단이었다. 또한 이렇게 혼란이 시작된 틈을 타 세력을 공식화하는 편이 나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진보씨의 영지에서 일본 첫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된다. 과도기적으로 진보 마사노부와 렌뇨가 비상 지도자가 되었으나, 추후 민주적인 선출로 정당화될 예정이었다.
“마극종의 영지가 된다고? 말도 안 돼!”
“진보씨는 이제 불적(佛敵)이다! 죽여도 좋다!”
적어도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계획이 있었다.
렌뇨가 진보씨의 성채인 호조즈성의 난간에 서니, 멀리서부터 이어지는 불길과 연기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저 멀리, 항구를 틀어막은 군선들의 무리도.
“…지원이 올 때까지 버텨야만 하오.”
사회주의의 수도인 한양이, 원산이 그들을 구해 주리라는 오직 단 하나의 믿음.
사방이 불타오르고 적병들의 기세가 올라 있는 지금,
그 믿음 하나만이 렌뇨를 겨우 이 세상에 붙들어 놓고 있었다.
정당하고 방어적인
진보씨가 다스리는 이 엣추국(越中國)은, 해상 무역으로 급성장한 영지였다.
이전의 모든 경제적 기반이 하찮아 보일 정도로, 지난 10여 년의 세월이 이곳의 지형도를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원산과 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거대한 경제적 교류, 그리고 은근한 지원.
공사 양 영역으로부터 제공되는 무역의 특혜.
그 두 가지가 조선으로부터 다소 먼 엣추 지역에 위치한 이 영지의 약점을 누그러뜨렸다.
이 근방의 식료품과 사치품 수요의 상당 부분을 이 진보씨의 영지가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그 덕에 친소련적 상인회들은 급성장했고, 백성들 또한 저 바다 건너에서 들어온 부유함과 공산주의에 조금씩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심과 돈줄을 둘 다 움켜쥐고 있으니 괜찮으리라고, 다소 안일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던 듯싶다.
―“엣추는 무익한 전쟁에 관여하지 않는다! 중립구 선언 천천세!”
―“마극종 천세! 마르크스 천천세! 소련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그렇게 상인회와 농민 소비에트를 소집하여 마침내 성립시킨 중립구 선언.
각지에 서서히 건설되어 가던 소비에트들은 일제히 진보 나가노부의 친위 세력이 되었고, 상인회 또한 상인 소비에트로 재편되며 새롭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이 급격한 변화를 꾀하면서 두 사람이 저지른 커다란 오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두 사람의 지리적 위치였다.
진보 나가노부는 한동안 친위 세력의 조직을 위해 한동안 호조즈성 근방만을 돌아다닐 뿐이었고, 적들을 피해 은거하고 있던 렌뇨 역시 성안에 숨어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즉, 성 아래의 열광과 지지세에 취하여, 지방의 세력들에 관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 때문이었다.
“하타케야마 가문의 분쟁에 불개입을 선언해? 진보 가문은 하타케야마 가문의 가신이 아니던가?”
“지금 악승(惡僧) 렌뇨가 진보씨의 가독을 붙들고 겁박한 것이 틀림없다! 가독을 구출하라!”
“불적 렌뇨를 물리쳐야만 한다!”
이런 대규모 반란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말이다.
천태종이, 법화종이, 그리고 정토진종의 잔존 세력들이 다시금 오랜 침묵을 깨고 일어난 마극종을 상대하려 신성 동맹을 맺었다.
구세계의 오랜 쇠사슬이 다시 엣추의 새로운 사회주의 정권을 옥죄러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진보 가문의 휘하 소영주들을 포섭했고, 진보 가문의 방계들 역시 직계가 하타케야마 가문에 대해 감행한 ‘반란’에 격분하여 들고 일어났다.
궁정 안팎에서 일어나는 유혈 사태에 피가 말라붙을 일이 없었으나, 겨우 호조즈성 내부에서 칼을 뽑아 들었던 반역자들을 처단하고 보니 이미 호조즈성과 그 아래 시내 바깥으로는 포위되어 있었다.
성 근처의 호조즈가타(放生津潟) 항구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항구 곳곳이 반란군에게 점거당한 채였고, 그 너머의 상선들 또한 적들에 의해 나포되고 징집되었다.
―“막는 놈들은 닥치는 대로 죽여도 좋다! 베어 버려!”
―“천하무산자합일! 반동들을 막아라!”
―“제발, 마르크스시여… 끄헉!”
―“중생들을 현혹하는 거짓된 계율의 설법자들이다. 저들은 살육해도 부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
―“우와아아아!”
급한 대로 농민과 상인들이 창칼을 들었으나 살인을 위해 수련한 사무라이들을 이길 수는 없었고, 각지에서의 패배가 점차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패배 또한 길지 않으리라.
곧 어떻게든 끝날 성싶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말이다.
렌뇨가 보기에 이미 진보 나가노부는 할복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일본 공산주의의 순교자로 남는 것이 다른 방식의 삶과 죽음보다야 나으리라.
저들은 렌뇨에 의해 진보씨의 가독이 ‘납치’되었다느니, ‘세뇌’되었다느니 하는 주장을 봉기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나가노부가 저들의 손에 붙잡힌다면 꼭두각시로 전락하거나 가짜니 대역이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해당할 터이다.
호조즈성의 성문, 이미 그곳까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번져 오고 있다. 적도들이 시내를 돌파한 모양이다.
…버틸 수 있을까?
렌뇨는 눈을 감으며 조심스레 스스로에게 답했다.
아니.
* * *
항상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승리할 때마다 후퇴했다.
군사 분야에서 문외한이던 에드워즈는 항상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전투에서는 다 이기면서 전쟁에서 질 수가 있나? 그게 말이나 되는가?
이제 알았다. 직접 경험으로 다가오는 지식은 골수에 사무쳤고, 심장에 원한으로 남았다.
이제 총탄이 없다. 거의 다 떨어져 간다.
어느 요새의 앞에 적들이 소수라도 당도하면, 군사적으로 훈련받지 못한 채 총을 쥔 엔지니어들과 건설 노동자들은 혼란에 빠진다.
―“저, 적들이다!”
―“발사! 모… 모조리 발사해 버려!”
―두. 두. 두. 두. 두. 두.
그러면 적들은 격퇴된다. 당연하다. 탐색전과 탄약 소모 유도를 위해 의도적으로 다가온 별동대나 버림패용 노예 부대였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요새는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원의 부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심심할 때 중국학자들에게 빌려다 읽었던 ‘세 왕국의 이야기(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장면이 떠오른다.
어느 책사가 적군을 농락해 10만 개의 화살을 빼내 오던 그 장면.
거기서 바보같이 당하는 악당 역할을 에드워즈가 맡은 셈이다. 이가 갈릴 수밖에.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요새와 도시들이 카지미에시의 손에 떨어진다. 더 많은 식량과 전략자원을 잃어 간다.
포위망이 좁혀 온다.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나, 에드워즈는 총관 관저의 발코니로 나와 멀리 발트해를 내다본다.
뻘밭인 네바강 삼각주 너머 그곳에 보인다. 해상 포위를 위해 발트해에 대기하고 있는 리투아니아가 수배한 무장 상선들.
적들이 다가온다.
리투아니아인들, 폴란드인들, 독일인들, 이탈리아 용병들, 그리고 망할 주치인 울루스의 배반자들까지.
“…바토르스키 동지? 이제 곧 전면전이라 하였습니까?”
“그렇소. 적들이 우리의 병참 상황을 파악했는지, 적극적으로 싸움을 걸어오고 있소. 이제 상대해 내지 못하면 우리는 레닌그라드 앞에서 적들을 보게 될 것이오.”
“…좋습니다.”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최후의 전투가 다가오는데 말이다.
거기서 이길지는… 잘 모르겠고.
* * *
―쾅! 쾅!
“불화살을 쏴! 저놈들이 해자에 설치한 교각을 불태워 버려!”
“놈들이 밀고 들어옵니다!”
“젠장, 막아라! 여기가 뚫리면 호쿠리쿠 지방의 혁명은 끝장이다!”
지금 성문을 수호하는 십장은 아마 병사들의 절박함을 불러일으키려 던져 본 말일 테다.
그러나 아마, 실제로도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