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42
‘정면 대결이 어렵다면 뒷수작들이 더해져야 한다.’
적들의 내부에 침투하거나, 전열을 교란하거나, 기습과 암살을 진행할 특수한 인력들을 키워 내야 한다.
그들을 정예하게 키워 내어 악마의 총에 대응할 방안 역시 마련하고 교육시킨다.
지금의 아쿼버스보다 나은, 저 강력한 화력에 대응할 총기들을 마련하고, 그 사용법을 널리 훈련시킨다.
그 모든 수단을 쓰면 승리가 확실한가?
‘아니.’
정복자는 요행에 기대지 않는다.
이기지 못할 상대에게 감히 싸움을 걸지 않는다.
‘일단은, 관망한다.’
바다는 요동한다 (1)
―“절재(김종서의 호) 대감께 삼가 서한을 올립니다.
저는 여전히 디에고 가르시아섬에 머물고 있습니다. 때때로 병사들의 조련을 위하여 관사 밖을 나설 뿐, 보통은 더운 섬의 날씨 때문에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부끄러운 마음이 큽니다.
….
이곳은 상시 여름이라 ‘사시사철’이라는 말도 쓰기가 어렵습니다.
늙은 몸은 더위에 쉽게 퍼져 버리니 병졸들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하니 낭패가 크고, 이미 자질구레한 업무들은 모두 이전의 ‘사령관’들이 모두 처리하여 이 한 몸이 한가합니다.
공조관 영감 역시 저와 비슷한 듯하나 젊고 호기심이 많아 이리저리 견문을 쌓으러 둘러 다니는 일이 잦습니다.
저는 영감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습니다. 아무리 동맹이라 하여도 야인들이 옛 금나라를 본받아 나라를 세웠다 하니 저로서는 경계하는 마음이 큽니다.
….
마지막으로, 이곳의 장교들은 대부분 원산에서 파견한 이들인데 군졸들의 기강을 아주 해이하게 방치합니다. 제가 몸소 병졸들을 조련하려 하니 부리나케 달려와서….”
서울로 부칠 서한을 쓰던 이징옥은 붓을 내려놓고서, 잠시 부채로 이마의 땀을 식힌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덥고 짭짤한 바람이니 그에게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태까지 쓴 서한의 내용을 바라보다 보니 한숨만 나온다.
그야말로 한심한 노릇이로고.
병졸들은 그 총칼을 번뜩이나 적이 코앞까지 오더라도 사용할 일이 없으니 훈련마다 헛되이 화약을 낭비할 뿐이고.
일신의 수련보다도 그 병장기의 손질과 관리에만 치중하니 몸과 마음이 점차 허술해 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 이 어찌 탄식하지 않으랴? 이 강병들을 데리고서 싸움 한번 나가지도 못하니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 이 번쩍번쩍한 병기들과 선박은 녹슬고 그 군병의 질 또한 나날이 떨어져 갈 것이다.
그럼에도 이징옥은 무어라 말을 더할 수 없었다.
말을 꺼내고 그를 관철시키는 데는 필요한 위치라는 것이 있다.
단순히 직책상의 위계에 관한 바가 아니라, 조직을 움직이는 명분과 연줄까지 말이다.
허나 이징옥의 처지를 보아 하면 옛적의 반역자요, 작금에 원산인 장교들에게 보이기에는 한낱 정치 군인이라….
―“저 사람, 조선의 정치범 아닌가? 사면 정국으로 가겠다는 건가?”
―“애초에 그쪽에서도 해군 제독이 아니라 만주족 부락들 정벌하던 인사니까, 그냥 지휘관 중에서 중량감 있는 인물 하나 꽂은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제대로 된 군사 교육 한번 받아 본 적도 없는데, 이게 말이 되는 조치라고들 보나? 우리 보고 생판 중세인을 데리고서 함대를 지휘하고 개틀링건 발사 훈련을 주관하라고?”
―“너무 그러지들 말라고. 조선인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군사 지휘관이니까 여기까지 보낸 거 아니겠나?”
―“알렉산드로스를 20세기 참호전에 보내면 참도 대단히 활약하겠군. 아예 제갈량을 데려다 병참 장교로 써먹자고 하지?”
―“자, 자, 어차피 부절제사의 임용도 형식적인 것이니 다들 걱정하지 말고….”
북방의 호랑이도, 이 낯선 곳에서는 그저 물에 빠진 고양이라.
저들의 말이 그저 치기 어린 불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소련군 장교단의 말마따나 이 함대를 지휘하고 병기들을 활용할 방안에 대하여서는 그들보다 훨씬 못 미치는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실무 지식은 기병을 다루고, 저들의 눈에는 원시적일 화기들을 활용해 야인들을 놀래키며, 북변의 여러 고을을 지키면서 야인 부락을 들쑤셔 놓는 데에 있었다.
이 강철로 된 성채들 사이에서 그는 그저 무력한 노인네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징옥의 가슴속에는 답답함이 더께로 쌓여 갔다.
“이것이 말이나 되는 처사인지 모르겠소.”
헌데 결국 한풀이를 할 상대는 기묘하게도 한 사람뿐이었으니,
“어… 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렇소, 공조관 영감. 아니, 부수상 저하라 불러야 하겠소?”
“저는 이제 만주국 부수상이 아니니 그저 공조관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영감 같은 거창한 말도 필요 없이 그냥 ‘동지’라고만 하십시오.”
“아니, 어찌 한 나라의 재상 격 되던 분께 그리 예사로운 호칭을 쓰겠소? 내 부디 영감이라고 부르게 해 주시오.”
이아구.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징옥이 주는 술잔을 그저 받아만 마시고 있었다. 사실 술을 건네는 이징옥 역시도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 디에고 가르시아섬에서, 터놓고 이야기 나눌 처지의 사람이 같은 낙하산 신세의 이아구뿐인 것을.
그를 알기에 이아구 역시 잠자코 이징옥이 따라다 주는 술을 받아 마셨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C자 모양으로 생긴 디에고 가르시아의 왼쪽 끝에 있는 공동 주택 단지, 그 한쪽에 현지 사령관을 위하여 마련된 널찍한 개인 주택이었다.
이징옥이 부임한 뒤로 조선식 정자를 옆에 지어다 직접 현판을 써 붙이기도 하였는데, 마침 흰 갈매기들이 오가니 옛 두보의 시가 떠올라 압구(狎鷗)라는 글씨를 휘갈겼다.
헌데 그 뒤에 정자 정(亭) 자를 덧붙이니 뭔가 기분이 나쁘고 불길하여 태워 버렸다. 그리하여 지금은 그저 이름이 없어 무명정(無名亭)이라며 되는 대로 부르고 있는 곳이었다.
본래 이곳에서 이징옥은 홀로 바닷바람 맞으며 차 마시기를 즐겼으나, 시름이 깊으니 풀어낼 곳이 필요하여 오늘은 찻잔 대신 술잔을 놓고, 그 주안상 맞은편에는 이아구를 부른 것이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오. 어찌 먼저 적병들이 포를 쏘아 대고 칼을 휘둘러 대는데 가만히만 있는다는 말이오?”
그러자 이아구 역시 술이 들어가고 긴장이 풀렸는지 조금씩 입이 움직인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점만큼은 저도 끝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영감께옵서도 그리 생각하셨구려.”
“공격을 받고도 그리 무시를 할 뿐 아무 대응도 하지 않으니 훨씬 열등한 무장을 갖춘 해적들이 날뛰지 않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오!”
쾅, 하고 이징옥이 솥두껑 같은 손으로 반상을 두드리니 이아구가 놀라서 움찔한다. 그러나 이징옥은 약간 코가 찡하도록 취하여 식은땀을 흘리는 이아구의 긴장한 기색을 알지 못한다.
“영감께서 말씀 잘하셨소이다. 무릇 야인들은 무력을 숭상하고 저보다 약한 이들은 업신여기기를 꺼리지 않으니 위엄을 갖추지 않으면 순식간에 당할 수밖에 없소. 저들을 정벌하여 마땅히….
아니, 표정이 왜 그렇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상하다. 분명 말 자체는 공감되는데 식은땀이 나오고 기분이 나쁜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이아구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이빨이 딱딱 떨려 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저런, 몸을 떠는 것을 보니 고뿔이라도 걸린 듯하오? 이 따뜻한 곳에서, 참으로 안타깝소….
아무튼 간에 더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저들의 병장기가 아무리 빛나더라도 야인 무리를 상대하려면 역시 잘 조련된….”
이아구는 술에 살짝 취해 어지러운 상태에서 이징옥의 속사포 같은 한탄을 듣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하였고, 이징옥은 이아구의 이야기 듣는 태도에 크게 흡족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그렇게 시작된 정기적인 회합.
이징옥은 이아구에게 점차 더더욱 내밀한 이야기들과 ‘군 기강 잡기’에 대한 고도화된 전망들을 풀어놓았다.
이아구는 이아구대로 흥미가 떨어지는 이야기라도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이야기인 양 잠자코 듣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징옥은 다시 이징옥대로 이아구가 자신의 큰 뜻을 알아주는 장한 젊은이라 여겨 더더욱 신임하였고, 이아구가 평소에 떠들던 민족이니 뭐니 하던 바를 조금 들춰 보면서 공부하게 되었다.
“크흠, 그래도 그대의 춘부장이 애족하고 애민하는 희대의 호걸이었소. 내 비록 조선의 장수로서 그와 다투기도 하고 화친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그 또한 뜻을 펼치려던 이가 아니겠소?”
그 결과 이징옥의 이런 립 서비스가 이어지자, 이아구 역시 흥분한다.
“아아, 이징옥 동지는 호걸을 알아보는 호걸이십니다! 비록 적수였어도 아버지를 알아봐 주시니 진정 시대의 무장이 아니십니까!”
“…호걸이라니. 과찬이 심하….”
“아닙니다! 아아, 선친께서는 적수로부터도 인정받는 분이셨군요. 역시 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만주족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다시금 금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웅비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께서 뜻을 펴기 전에 에센에게 돌아가셨으니 참으로 안타깝지 않습니까?”
…만일 에센의 침공이 없었고 정말 금나라가 부활했더라면, 명과 조선이 사력을 다해서라도 이만주를 꼼꼼히 절단 내었으리라는 사실을 굳이 이징옥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아구의 초롱초롱하게 감동으로 빛나는 눈 앞에서 굳이 그런 사소한 사실 관계를 밝힐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거 아시오? 본래 수양대군 일파가 그리 승승장구하니 우리로서는 한성을 되찾으려 그대의 춘부장의 힘을 빌릴까 생각도 하였소. 허나 에센이 남진한다 하여 관두었지.”
“아아, 과연!”
대신 내전기에 정말 최후의 최후까지 논의‘만’ 이루어졌던 ‘북변 야인들과의 공식적인 동맹‘ 같은 계획을 언급하며 이아구의 흥을 띄워 주었다.
이렇게 자라난 눈치 역시 전번에 “너희 아버지 조선군 잘 죽이더라.”라고 마구 내뱉던 지난날의 이징옥과 비교하면 괄목상대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렇게 두 사람의 기기묘묘한 우애가 점차 자라나고 보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이 오가기 시작한다.
사실, 북방에서 야인 때려잡던 이징옥의 무용담(일에만 충실했던 그에게 이것 말고 할 얘기라고는 무과 준비하던 시절 이야기뿐이었다.)이 나오거나 하면 이아구의 얼굴이 이상하게 새파래지고는 하였으나, 그런 예외를 빼면 둘의 대담은 대체로 화기애애하였다.
그리하여….
―“절재 대감께 다시 서신 올리옵니다. 벌써 디에고 가르시아에 부임한 지 꽤 되었으니 이 후덥지근한 날씨 또한 이제 몸이 적응하여 습한 기운은 마치 속적삼과 속바지처럼 익숙하고 편합니다.
공조관 영감은 더운 천기 또한 밉지 않다고 하덥니다. 이리 햇살을 쪼이는 덕에 저리 맛 좋고 달콤한 과실이 나는 것 아니겠냐며 영감께서 우스갯소리로 말씀하니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한양에서는 요사이 잉어 키우기가 시류라던데….”
처음에는 김종서에게 붓으로 쓴 이징옥의 편지가 왔다가,
“절재 대감께 한양행 배편에 부쳐 올립니다. 조선의 날씨는 어떠한지요? 이곳은 때때로 소낙비가 내리칠 때를 빼고는 항상 날씨가 똑같으니 더 이야기할 바가 없습니다.
각설, 제가 공조관 동지를 야인 출신이라 내심 얕잡아 보았더니만 다시 돌아보니 제가 옥석을 가리지 못하였습니다.
공조관 동지는 나이 어림에도 그 품은 뜻이 깊고 제 형님과의 우애가 대단하며 애민하는 마음이 크니 참으로 장부입니다. 선비가 이 남국의 외딴 섬에서 사귀어 볼 만한 이였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삐뚤빼뚤하게 잉크로 써서 오며,
“절재 대감, 희소식입니다. 이번에 이아구 동지는 저의 병사 조련 방식에 대한 의견에 크게 감탄하며….”
이제는 능숙하게 멋들어진 곡선을 넣어 가며 필기한 서한이 전해져 온다.
그러나 변한 것은 편지지의 재질과 이징옥의 필기도구뿐이 아니다.
…이아구에 대한 호칭이 처음에는 ‘공조관 영감’이다가, 점차 ‘공조관 동지’가 되고, 지금 와서는 ‘이아구 동지’가 되었다.
야인 부락이 보이면 눈에 불을 켜고 쳐부수라 명하던 그 한 마리 호랑이가 야인 청년더러 ‘동지’라고 부른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김종서의 뒷목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모조리 차게 식어 있는 것들이다.
…대체 저 남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하! 저는 딱 한 잔만 더 마시겠습니다! 장부가 술 한 모금 제대로 입에 털어 내지 못하면서 어찌 적졸을 털어 내고 나라를 지키며 천하를 평안히 하겠습니까?”
“이아구 동지, 조심하시오. 아무튼 계속 말을 이어 가자면 내 북변에 있을 때 일이라오. 야인 부락이 사정권 내로 진입해 들어오고….”
김종서의 질문에 굳이 대답하자면 이리 말할 수 있겠다.
취중 집단 독백.
* * *
허나 아무리 부임지에 익숙해졌다 한들, 이징옥이 자신의 장식과도 같은 처지에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지음(知音)이 생겼다 한들, 이징옥의 가슴 한편에 계속 자라나던 답답함이 가신 것도 아니었다.
그 흉중에 쌓여 가는 한스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배를 타고 근해를 돌아들기만 하면 호시탐탐 싸움을 시도하는 해적들이 있고, 조선을 자신들의 경쟁 상인이라 여겨 시비를 걸어오는 회회인(回回人)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함선을 저 조악한 적 함포에 짜그러뜨리기만 하는 아군들.
헌데, 장교라는 이들이 한다는 소리가 이렇다.
―“인명에는 피해가 없으니 괜찮습니다. 또한 적들의 무장 수준 역시 형편없습니다. 저희가 화력을 쏟아 봤자 과잉 화력이고 쓸데없는 유혈이 있을 뿐입니다.”
―“맞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수준으로 충돌을 유지하면서 소란을 최소화하는 게 안전할 것입니다.”
인명 피해가 없어 괜찮다니, 그리 안일한 대처가 장차 큰 재앙을 낳게 될지 어찌 안다는 말인가?
또한 지금의 수준으로 충돌을 유지한다? 그가 부임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이미 조선과 원산의 선박에 따라붙는 해적선들의 수는 점차 늘기만 할 뿐 줄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위엄을 잃고 한낱 허수아비 군대라며 적들의 조롱을 받기 때문이 아닌가?
장수들이 도적을 토멸하는 데 저리 소극적이니 이징옥의 입장에서는 또한 가슴을 칠 일이었던 것이다.
뭐라 말이라도 얹어 보려 열심히 증기선의 구조, 함포와 기관총의 전시 활용법을 공부하고는 있으나 역시 그를 평생 동안 익혀 온 장교들에 비하면 일천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작전들에 대한 지휘권을 제대로 확보할 수 없다면,
“모두들 저기 저탄소까지 3번 왕복해서 뛰어오게. 제한 시간은 약… 1시진일세.”
“…각하? 1시진이면 2시간 아닙니까? 저탄소까지 거리가 8킬로미터인데 3번 왕복이면 마라톤 수준이 아닙니….”
“왕복한 뒤에는 저곳의 해협을 헤엄쳐서 건너는 훈련을 하겠다. 저쪽은 거리가 3킬로미터밖에 안 되더군.”
“마, 맙소사….”
병사들의 해이해진 기강을 조금이나마 고쳐 놓는다.
“그대들은 무얼 하는가! 내가 함길도에서 부임할 적에는 그대들처럼 봉급을 받는 것도 아닌 역을 지러 온 촌부들이 더 눈빛이 빛났고 몸이 날랬다! 적도를 토멸하겠다는 생각과 충군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헌데 그대들은 손발이 얼어드는 북변도 아니고 따뜻한 남국에서, 봉급을 받고 훌륭한 숙소와 식사를 받으며 이리 허술하니 이래도 되겠는가!”
“안 됩니다아아악!”
“그럼 한 바퀴 더 달리라!”
“으와아아아아악!”
곧 병졸들은 이징옥의 “나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요새 군대는 밥도 주고 돈도 주니 그냥 좋은 직장이네.” 소리를 들으며 피눈물 나게 굴러다녔다.
곧 그들의 자세에 각이 잡히기 시작했고, ‘부절제사 각하’를 뵈어도 데면데면하던 옛날과는 달리 지독하게 증오하는 이들과 지독한 스톡홀름 신드롬에 걸려 떠받드는 이들이 많아진다.
그렇게 이징옥이 병졸들을 조련하며 심적인 공허함을 채워 가던 일상을 보내고 나니….
“수, 수군 부절제사 각하! 지금 귀항한 파리 코뮌 호에…!”
곧 그에게도 희소식으로 다가올 만한 소식이 생긴다.
바다는 요동한다 (2)
바다는 넘실거리고, 배는 떠다니고, 사람들은 분주하고….
―“발사!”
―“쾅! 쾅콰쾅!”
포성은 시끄럽고.
남국의 바다는 그렇게 평화롭고 단조로웠다.
여전히 해적들은 과자 주위에 몰려드는 갈매기들처럼 철기선만 보면 주위로 모여들었다. 저 커다란 선박! 저 삼엄한 경비!
그 안에 얼마나 막대한 부가 잠들어 있을지, 그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형상이었다. 해적들에게 소련의 철기선은 곧 꿈이 되었고, 환상이 되었다.
심지어 강력한 포를 가지고도 위협 사격밖에 하지 않는 기묘하게 순한 인간들이다. 만일 한 번이라도 털어먹는 데 성공한다면 그 과실은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저 배를 나포하기라도 한다면 그 강대한 무력 역시 손으로 들어오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의미로 그들은 꾸준히 소련의 선박 주위로 모여 이리저리 시위를 하다 다시 흩어졌다. 한 번의 일확천금을 바라며 그들은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다 한번, 기회가 다가오는 듯하였다.
어느 용감한 선원들이 몰래 그 물 샐 틈 없는 선박의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떻게였을까? 달라붙은 따개비들을 밟고서? 내부에 동조자가 있었나? 꼭대기에 밧줄 달린 갈고리를 걸어서?
그는 상관이 없었다.
“치, 침입자다!”
“막아! 제압해!”
“바, 발포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발포까지는… 끄아아악!”
“젠장! 지금 선장께서 당하셨다!”
“가릴 게 뭐 있어? 발포해! 전부 발포해!”
적 살상 16명, 아군 중상자 2명.
그 중상자 2명이 모두 원산에서 파견한 장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