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74
안정된 권력 기반을 위해 평생에 걸쳐 투쟁해 온 최고 지도자.
잠시 돌아보니 주위에 사조직이 가득함을 깨달은 권력자.
사실상 한 나라의 건국자.
흠….
우리는 이 비슷한 사람을 역사에서 보았다.
“이 명단에 있는 놈들은 모두 처리하게.”
“예, 폐하!”
왠지 인상적인 콧수염이 자라날 것처럼 에센의 인중이 간지러워진다.
저 멀리 그루지야에 어느 공산주의자가 살아서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흐뭇해했으리라.
역시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만 치우면 문제도 없다.
초원을 뒤덮는 숲 (7)
―톡.
에센이 옥좌의 한쪽 팔걸이를 치니 눈앞에 부복한 뭇 인사들이 숙인 어깨가 떨린다.
―툭.
누구는 가운데 머리를 모두 깎은 수도사고, 누구는 아예 머리를 모두 밀어 버린 탁발승이고, 누구는 머리를 천으로 꽁꽁 둘러 싸맨 이들이고….
―툭.
모두 원사 수찬 과정을 애매하게 꼬아 놓은 주범들이다.
‘원사를 수찬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뒤늦은 작업이랄 수도 있었다.
새로운 제국이 성립된 지는 어언 십수 년이 되어 가고, 에센이 본격적으로 카간의 지위를 굳혀 간 지도 그쯤 되었으니.
허나, 제국의 성립 이후로 기나긴 전쟁 또한 이어졌다.
요동에서 러시아까지, 그리고 리투아니아, 폴란드까지. 게다가 주치인 울루스의 이반을 진압한 게 최근이다.
에센은 오랫동안 카라코룸의 궁정 대신 전장의 군막에 머물러야 했고, 그만큼 제국의 강역 역시 넓어졌다.
그런데, 그 모든 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지금의 카간은 참칭자다!”
―“선대 카간을 살해한 반역자다!”
원래 모시던 보르지긴 씨족의 카간을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보르지긴을 따르던 무수한 신하들이 불만을 품었고, 야심가들은 기회를 엿보았다.
요동 정벌로 조선과 교역을 트기 전만 해도 언제 뒤집힐지 모를 카간위였다.
그리고 조선과 적절한 화약을 맺은 덕에 나름 입지를 다졌다지만, 정통성이 없는 상태에서 반발을 찍어 누르려면 계속 업적을 쌓아 나가야만 했다.
―“칸이시여, 지금의 카간을 밖에서 친다면 저는 제 군세를 동원하지 않고 후방으로 뺄 테니….”
―“술탄께 아룁니다. 에센은 지금 동편으로 군졸을 움직이고 있으니 서쪽이 약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만큼 내외의 세력들은 끊임없이 에센을 도발하고, 내통하고, 세력을 모아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했다.
단 한 번이라도 패배했더라면, 이 불안불안한 업적 쌓기에 흠집이 갔더라면, 곧바로 이리 떼가 그를 물어뜯으러 덤벼들었으리라.
그러나 에센은 그 모든 걸 해치웠다!
모든 전투에서, 모든 전쟁에서 이겼다.
이 숙련된 야전 사령관이자 기병 지휘관은 우월한 조선산 강철의 위력에 힘입어 적들을 짓밟았다.
―“우즈벡과 내통한 반역자 이지르부카는 나오라!”
―“카간께서 네놈에게 사형을 선고하셨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막아! 지금 저들만 막으면 국경을 넘어 티무르에 의탁할 수 있다!”
당연히 그 김에 내부의 반역자들 역시 정리되었고.
그 오랜 투쟁 끝에, 에센은 승리한 것이다.
그러한 쟁투 끝에 성립된 것은 오로지 에센 개인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시키는 체제.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세폐, 조선에서 들어오는 무역 이익을 독점하고 에센의 선호에 따라 그를 휘하에 분배하여 친위 세력을 키운다.
드디어 이 방식으로 반대 세력들은 모조리 일소된 줄 알았다.
더 이상 에센이 모르는 회동과 회합 따위 없으리라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원사의 수찬은 군주가 직접 다룰 국가의 중대사인데, 그대들의 의향이 카간보다 중한가?”
“그, 그렇지 않사옵니다!”
사제를 통해 만나고, 사원을 통하여 결집되는 세력을 생각지 못한 것이 그의 한계였다.
에센 개인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하는 체제는, 지금 당장 에센이 급사한다면 곧바로 무너져 내릴 수도 있기에.
그렇기에 일단 원사 수찬을 위해 사국(史局)을 설치하고 인재를 끌어모아, 후계 문제를 정리하고 제국 자체의 정통성을 키우려고 한 것이었다.
카라코룸의 옛 궁궐들을 개축하고 증축한 지금의 궁궐에서, 몇 안 되게 다양한 자재들을 양껏 섞어 눈에 띄는 전각. 그곳에 모인 학자들.
그것들이 제국이 안정화되는 시발점이 되어야만 했다.
그 시발점에서 발목이 걸려 넘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폐, 폐….”
눈앞의 승려들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다시 에센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닫는다.
옛 몽골 제국은 모든 신앙의 사제들과 사원에 면세의 혜택을 내렸다.
몽골의 전통적인 샤먼들이 그러하듯, 그들이 카간을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을 내려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허나 기도와 축복은 에센이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에센은 복종을 기대했다.
갖가지 신앙으로 쪼개지는 제국? 그런 걸 볼 바에야 차라리 잿더미로 만들고 말겠다.
“하아….”
“폐하, 원사의 집필 과정에 저희가 심려를 끼쳐 드렸으니 이 죄는….”
“물러가라.”
일단은 살려 둔다.
우선 이들을 죽이거나 와해시켜서 얻을 것보다 잃을 게 훨씬 많았다.
이들의 조직을 뿌리 뽑겠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그를 꾀해 봤자 이름만 바뀐 다른 사제들이 돌아와 다시 제례를 올리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리라.
일단 궁궐 안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붙들어만 놓고, 그 사후 처치는 나중으로 미뤘다.
“파란왕을 불러와야 하겠다….”
“예, 폐하.”
환관이 쏜살같이 문과 문 너머로 물러간다. 곧 카라코룸 어딘가 저택에 머물고 있을 아락투무르를 데려올 수 있으리라.
원사의 집필을 너무 오래 끌었다.
전쟁과 안정화에 치중해 제국의 운영을 너무 오래 방치했다.
많은 것을… 매듭지어야 한다.
* * *
“자네들, 일어나게.”
“예, 나리.”
“짐이나 나르게, 황궁으로 가야 한다네.”
카라코룸은 세 겹으로 싸인 도시다.
가장 바깥에는 성곽 너머 도시 외곽을 둘러싼 천막들.
보통 상행이 도착했을 때, 도시 내의 비싼 숙박비를 치를 만큼 부유하지 않은 이들이 머무는 임시 거처이자 창고들이었다.
일반적으론 짐꾼이나 소상인들이 자리 잡아서 카라코룸으로부터 언제든 벗어날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짐꾼들은 수레에 조심스레 책장들을 옮겨 싣기 시작한다. 끈으로 묶이고 두루마리처럼 말린, 다양한 방식으로 장정된 서책들이 말 대가리가 투레질 치는 소리와 함께 성문을 지난다.
그렇게 드러나는 카라코룸의 속살.
일반적으로 우리가 ‘도시’를 상상할 때 드러나는 것들, 화려한 상점, 단것을 파는 노점상, 그 한길의 시끄러움 너머에 선 고관의 저택들이 이곳에 다닥다닥 널려 있었다.
“그대들은 이제 입궐할 준비를 하게나. 내가 그대들의 서책과 짐은 이미 옮기라고 명령해 놓았으니.”
아락투무르의 말에 그의 저택에 모여 있던 식객들, 아락투무르가 에센의 명을 받아 모아 온 각종 학자가 수런거리기 시작한다.
말로만 듣던 ‘세계의 황제’를 만난다는 기대감과 긴장감 속에서.
하지만 아락투무르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갑자기 치러진 정치적 숙청들. 아직 피가 흐르지는 않았으나 카간의 의지와 분노가 워낙에 강력했기에 이미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불러들이다니, 분명 후처리를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그런 고민 속에서도 마차는 달리고 그 속도는 줄지 않으니 머지않아 궁궐의 대문에 마차 행렬이 닿는다.
카라코룸의 심부, 가장 내밀한 세계.
바로 거대한 황궁.
문이 열리고 궁으로 들어서 전각들을 몇 지나치니 역시 카간을 알현하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폐하를 뵈옵니다.”
궁궐 한구석의, 각사가 있고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 곳.
문연각(文淵閣)이라는 명칭으로 보아 장서고인 듯하나, 지금 원사의 집필이 뚝 끊긴 고로 향해 오는 발길이 없다.
넓으나 광대하진 않고, 막혀 있지는 않으나 탁 트여 있지 않은 공간이니.
카간과 몇몇 환관, 아락투무르와 그가 데려온 학자들이 모이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아락투무르가 고개를 들자 에센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러나 감추어지지 않는 조바심으로 그의 인사에 손짓으로 화답했다.
그는 해답을 원하고 있었다.
허나 그걸 자신이 제공할 수 있을지 아락투무르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을 생각하며 신경질적으로 탁, 탁, 용상을 두들기는 칸을 올려다보았다.
카간의 턱수염은 이제 잿빛으로 물이 빠져 가는데, 제국은 아직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젊다.
이제 카간은 죽음을 생각하는데, 그가 이룩한 모든 것이 아직 위태로운 지경이다.
아락투무르는 조심히 첫 마디를 고른다.
“폐하….”
“묻겠다. 내 저들을 잡아들인 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순간 자신이 준비한 인사말이 막히자 당혹한 아락투무르는 사방을 둘러본다.
환관들은 고개를 조아릴 뿐 말이 없다. 온전히 아락투무르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이다.
“그, 사제들을 이르심입니까?”
에센은 고개를 끄덕인다.
“승려들은 모두 궁궐 서편에 ‘모셔져’ 있다. 아직은 죽이거나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았으니, 그 처우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이지.”
아마 넓게는 앞으로 굳어질 카간의 심중에 의하여,
좁게는 아락투무르와 이어질 대담에 의하여 결정될지도 모른다.
아락투무르는 그리 받아들이고 무게감에 못 이겨 머리를 조아렸다.
카간으로서도 이 전대미문의 사태에 어찌할지 궁리만 하고 있는 상태다.
도성의 거의 모든 종파에서 사제들을 잡아들이다니, 그의 선명한 분노와 성급함이 뒤섞인 조치였던 것이다.
그 전까지 신중히 아껴 가던 정치적 역량을 갑작스러운 조치에 소모해 버렸으니….
‘무리하게 밀고 나가서라도 아예 다 죽여 버려야 하나? 아니면 적당히 문제만 봉합한 뒤에 원사 수찬을 이어 가야 하나?’
그렇다면 앞으로의 움직임에 따라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아무도 모른다는 소리. 에센 그 자신조차도 확신이 없으니 그를 부른 것일 터.
등 뒤로 다양한 언어의 통역들이 옥음을 튀르크계 언어로, 라틴어로, 아랍어로 옮기는 소리가 들린다. 소식을 몰랐던 많은 이들이 대경한다.
“다 전달되었다면 그대들 역시 의견을 기탄없이 말해 보라.”
“폐, 폐하, 이렇게 사제들을 탄압한다면 반드시 훗날 잃는 것이 클 수밖에 없사옵니다.”
“옛 로마에서도 결국 기독교가 퍼지는 것을 막지 못하였으니 이는….”
에센의 윤허가 떨어지자 아락투무르가 데려온 학자들도 하나둘씩 입을 떼는데, 에센은 여전히 의뭉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이다.
이제 어떻게 될는지….
“폐하께서는 참된 계몽 군주이십니다!”
“그러합니다. 군주가 성직자가 아닌,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세속성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조선을 보시옵소서!”
제일 불안하던 쪽에서 갑자기 일어나 경례를 올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외침이 몽골어로 번역되자 카간의 눈에 흥미가 드러난다.
“…조선이라? 먼 서방의 그대들이 어찌 조선에 대하여 잘 아는가?”
“조선은 저희에게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습니다! 어찌 모른다 할 수 있겠습니까?”
수도원장 역시 ‘약간’ 열성이 지나치니 주의해 달라고 하던 이들.
붉은 사제들이… 사고를 친 듯싶다.
* * *
가장 과격하게 운동하는 이들, 또 거꾸로 가장 과격하게 나다니는 반동들.
보통 전향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다.
이들도 그렇다.
“저는 옛날에는 어떻게 이를 깨닫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황청 이 반동! 망할 반동들!”
“마르크스 만세! 혁명 만세!”
가장 신실하던 신앙자들이 곧 극렬한 배교자가 되었다.
지구 반대편의 러시아에 사회 과학 서적들이 뭐 얼마나 다종다양했겠는가?
결국 팸플릿 수준으로 조악하게 인쇄되어 흩뿌려진 입문서들이 대다수고, 나머진 레닌그라드의 도서관 서고에 고이 모셔져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들이 이해하는 사회주의라 해 봤자 ‘자본가 나빠! 노동 계급 좋아!’ 수준을 갓 벗어난 수준이다.
허나 이들 또한 유럽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있는 이들이니 수도원장으로서는 이들을 내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헛소리만 인민에게 늘어놓으니! 사악하고 허황된 종교의 허위를 벗겨 내야 합니다!”
“그, 종교란 게 무엇인가?”
“종교란 인민의 아편입니다!”
“그래서 대체 그 종교란 게….”
“종교는 곧 사악한 착취의 기제입니다!”
에센도 처음에는 자뭇 흥미롭게 듣더니, 이내 아락투무르에게 “저것들은 뭔가?”라는 식의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락투무르로서는 진땀을 뺀다.
헤겔이나 포이어바흐에 대한 이해도 없이 종교는 인민을 몽매하게 유지하는 수단이니, 종교는 지배자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니(에센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도구임을 생각했다면 그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리라.), 하는 말을 반복하니 에센으로서도 열의가 식을 수밖에 없다.
대신 다른 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런 주장이 조선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다 하였는가?”
“아, 물론입니다!”
“크흠, 폐하. 에드워즈 러시아 정부 수반이 이야기한 바를 생각해 본다면 그 여부는 의심할 바가 없사옵니다. 에드워즈 수반은 이런 학풍을 더러 ‘러시아가 부강해진 이유’라 하였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