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73
“예? 팔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그러더니 그를 이끌고 포로수용소에 가서, 몸값을 내고 풀려난 귀족들에게 수레째로 성상들을 넘긴다.
“도르파트 주교구의 페테리스 수도원장께서 이리 전해 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게 주님은 필요없다. 나는 인류를 섬긴다.’”
“우… 웃기지 마라! 배교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분이 어릴 적 내게 세례하신….”
“여기 수도원장이 서명한 편지입니다. 성상들을 들고 폴란드 국경 너머로 가십시오. 인근 교회에 기부하든 해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십시오.”
“이, 이교도들이 수도원장님을 미혹시키다니….”
그리 겁에 질린 귀족들이 터덜터덜 돌아가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락투무르는 다시 연회장으로 안내받았다.
아마 이 동네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락투무르는 평생을 가도 이해 못 하리라.
며칠 뒤, 카간께서 소환하실 날이 오니 천막촌은 해체되고 아락투무르 역시 떠날 채비를 마친다. 앞으로 한 4, 5년에 한 번씩은 이렇게 카라코룸으로 향해야 한다.
여정을 떠나기 전, 해롤드와 롤랑이 큰 소리로 울며 시시포스… 아니, 김시습의 손을 부여잡고 우니 모두가 눈물 흘리며 그들을 환송했다.
곧 말과 마차의 성대한 무리가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초원과 사막을 지난다.
그리고 도착하게 되는 곳.
사실, 세상의 모든 길을 걷다 보면 이곳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아락투무르가 무릎 꿇자, 그가 데려온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온갖 학식 있는 자들이 따라서 무릎 꿇는다.
그 행렬의 끝에는, 한 사람이 높이 솟은 옥좌에 앉아 손짓하니.
카라코룸의 화려한 궁정에서 카간은 신하를 맞이하더라.
* * *
/ 작가의 말
수도원장은 가공의 인물입니다. 당시 유럽의 수도원 중에는 지금까지 알려져 온 것보다 잊힌 것이 더 많기에 수도원의 정확한 위치나 이름은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200화 달성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성원 덕에 첫 작품으로 여기까지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초원을 뒤덮는 숲 (6)
“원의 패망은 결국 교초(交鈔, 원나라 시절에 발행한 지폐)를 분별없이 흩뿌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교초를 그리 마구잡이로 발행한 바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결국 뭇 귀족이 사치에 물들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시끌시끌 활발한 분위기.
열띤 토론과 바삐 넘어가는 책장들.
학문한다는 이들을 모아 놓았더니 자기들끼리 나라의 흥망에 관한 바를 논의하니 에센으로서는 거두어들이는 바가 적잖이 있었다.
저들의 격쟁 속에서 논의는 첨예해지고,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원사를 위한 초고의 분량은 풍성해졌다.
“왜 이리 알아듣지를 못하시오! 공맹(孔孟)을 읽은 것은 그대나 나나 매한가지일 것을!”
“그대야말로 어찌 이리 꽉 막히셨소?”
하지만, 어느 순간 턱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
결국 논쟁이란 둘 중 하나가 사라지거나, 어떤 최종심급에 의해 승패가 갈리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법.
그리고 원사의 편찬 과정 중에는 몽골 제국의 멸망 원인이 무엇이니, 누구의 잘잘못을 어떻게 가릴 것인지 등등 쟁점은 얼마든지 많았다.
“그대들 뜻대로 하게나. 내 눈에는 둘의 말 모두 그럴듯해 보이는군.”
“…네? 하오나, 폐하….”
“둘 다 진행해 보게.”
허나 그 ‘최종심급’이 되어 줘야 할 에센으로서는 판가름을 내 줄 생각이 없다면?
살벌한 정치판에서는 한낱 비렁뱅이 기백 명이라도 사람을 모으는 일이란 모두의 견제를 받는다.
물론 에센이 카간으로서 그런 견제를 찍어 누를 수는 있다. 거대한 전쟁을 끝내고 반역향들을 흡수하는 와중에 정치적 자원을 낭비하기에 부담이 클 뿐.
헌데, 지금 이렇게 인재들을? 공공연히 휘하로 끌어모을 수 있다면?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바보다.
이렇게 끌어모은 인재를 저 조선에 있다는 학술원마냥 종종 국정 자문에도 쏠쏠히 써먹을 수도 있으니 에센으로서는 손해 볼 바가 없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소소한 장난의 결과가 어디로 튈지는 누구도 몰랐으니.
* * *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였다.
에센의 꼼수가 지속되던 나날,
“결국에 몽골인 귀족들의 사치는 어디서 온 것이겠습니까? 퇴폐하고 부정한 밀교의 가르침에서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환각을 보기 위하여 향을 피우고 음행(淫行)을 일으키면서 이를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라 강변하였으니 그 죄가 참으로 크옵니다.”
여느 때처럼 논쟁이 이어지던 그때, 약삭빠른 어느 유생이 그리 운을 띄웠다.
“듣고 보니 그렇사옵니다. 요승들이 여러 카간들을 그리 미혹한 바가 적히지 않는다면 어찌 본서가 정사로서 남을 수 있겠습니까?”
상대편에서도 그가 띄운 공을 슬쩍 받아친다.
“그대들의 말이 참 옳소! 회교도이신 카간께서도 밀교의 해악에 대해서는 인정하실 것이외다!”
우연찮게도 이 자리에는 무슬림도 있고, 유생도 있고, 심지어 기독교도도 있었으나 딱 한 종류의 신앙인은 없었으니,
바로 티베트 불교.
본디 머리가 셋 이상 모이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자리에 없는 사람을 욕하는 게 상책인 법.
갈등의 소지가 가장 적은 방향으로의 비판과 서술이 이뤄지는, 일종의 문제 회피가 진행된다.
그렇다. 슬슬 지지부진해지던 편찬 과정에 학자들 모두가 지쳐 가던 것이다.
그 와중에 표적으로 찍힌 게 바로 영향력을 잃어 가던 티베트 불교였고.
제국이 몰락하고 남은 정신적 빈자리를 몽골의 전통 신앙과 이슬람, 경교가 다시 메웠으니 몽골인들로서도 티베트 불교를 옹호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원사의 초고는 그렇게 티베트 불교에 대한 장대한 개탄과 비난으로 가득한 채 완성되어 가다가….
“너무 편향적인 듯하다. 승려들을 불러 다시금 수찬케 하겠다.”
손쉽게 에센의 명에 가로막히니.
이내 황명에 따라 불려온 승려들은 원사의 초안을 보고 대경하여 카간의 앞에 무릎 꿇는다.
“저 내용이 너무도 참람하여 이루 말을 더할 수가 없습니다! 폐하, 옛 카간들께서 불법을 존숭하시고 승려들을 높이 들어 쓰신 바에는 모두 이유가 있사옵니다!”
“폐하, 몽골인들은 본디 한 족속이 아닌지라 충심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였는데, 이를 불법으로 모아 낸 것이 바로 세조 폐하이십니다!”
승려들의 이야기 역시 사리에 맞았다.
애초에 논쟁에 지친 학자들이 “요승들 때문에 원조(元朝)가 망했다. 땅땅!” 하고 얼렁뚱땅 답을 내리려 하였으니 논리가 부실했고 반박될 수 있는 바도 많았다.
허나 저들은 정론을 이야기한다.
제국은 몽골인들을, 어떻게 통합시켰는가?
현대의 사학자들은 안다. 이 시절 몽골은 그저 몽골어족(Mongolic Languages)에 속한 말을 쓰는 다종다양한 유목민들이라는 것을.
비슷한 말을 쓴다 하여 동질감을 가지고 빠르게 뭉칠 수는 없다. 그들을 묶으려면 공통의 상호 작용이 일어날 공간이, 공통의 이해관계가, 공통의 관심사가 먼저 있어야 한다.
거기에 바로 티베트 불교가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고.
다른 종교들과 달리 몽골의 민간 신앙들과 빠르게 습합하여 몽골인들에게 빠르게 파고 들어간 티베트 불교다.
이제 제국이 망하여 산산이 그 위세가 흩어졌으나 여전히 옛날의 공은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에센은 무슬림이니 딱 그 정도 생각만 들 뿐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그대들의 말이 옳다. 지금의 초고에는 열전(列傳) 중 고승전(高僧傳)이 없으니 그를 더하도록 하라.”
아무튼 역사적으로 공로가 있는 만큼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아! 알라는 위대하시다! 무함마드는 그분의 예언자이시다!”
“여러분, 기도합시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아제아제 바라아제 모지사바하….”
그 결과는 전혀 예상 못 한 것이었지만.
머지않아, 가톨릭 사제들이 피우는 향내가 궁전을 채우고, 아침의 아잔(أَذَان, 무슬림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 소리가 카라코룸을 울린다.
불경을 외는 강독회가 공개적으로 열리며, 사그라들어 가던 경교의 무리가 천 년 묵은 신학 논쟁을 재개한다.
시끌벅적한 경건함들이 카라코룸을 뒤흔든다.
* * *
누군가는 여전히 경교를 숭앙하며 십자가에 기도를 올렸다.
소수의 사람들은 제국 시절부터 지켜온 굳은 불심(佛心)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더 많은 수는 메카를 향하여 절하고 라마단(رمضان, 이슬람의 금식 기간)을 지켰다.
이렇듯 작금에 서쪽의 오이라트와 동쪽의 몽골은 다종다양한 신앙으로 갈라져 있었다.
제국의 몰락 이후 정신적 구심점을 잃은 몽골의 상황은 그랬다.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테무르가 폐하께 인사 올리옵나이다.”
그런 만큼, 그의 앞에 마주선 테무르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으니.
조정의 소문난 기독교도로서 신앙의 열성에 가득 찬 듯했다. 최근에는 경교도에서 가톨릭교도로 개종했다 하던데….
“폐하께 드리고픈 말씀이 있사옵니다.”
신하로서 예를 갖추어 무릎 꿇은 뒤, 그는 말을 잇는다.
“폐하께옵서 원사를 편찬하시매, 고승전을 넣는다 들었사옵니다.”
“그는 어디서 들었느냐?”
“아, 그 오이라트의 바얀테무르에게서….”
“알겠다. 계속 이야기하라.”
계속 이야기하라고는 하였지만 이미 그가 논할 바가 빤하니 더 들을 필요도 없다.
“혹여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사 몬테코르비노의 요한을 고승전에 넣어 주실 수 있을까 하여….”
몬테코르비노의 요한(Ioannes Montecovini), 이탈리아어로는 조반디 다 몬테코르비노(Giovanni da Montecorvino)는 최초의 북경 대주교로서 위구르어로 신약 성경을 번역하고, 3만 명에 가까운 이들을 개종시킨 중국 천주교 선교의 시조다.
그런 이를 ‘고승’으로서 열전에 등재한다는 것은 곧 가톨릭을 몽골 제국의 역사 내로 포함시킨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그를 ‘기념할 만한 위인’으로 격상시켜 추후 예케 몽골 울루스 내에서 천주교의 지위를 상승시킬 수도 있을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과 같이 어떤 종파도 패권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가톨릭이 이 동방에 파고드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저 유럽 전선에서 고통받는 신앙의 형제들에게 아주 조금의 자비라도 내려지지 않을까?
허면 테무르 그 자신은 아마 교황청의 영웅이 되어 시성되리라.
그런 열정과 야망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에센은 꿰뚫어 보았다.
“좋다. 그대의 말은 짐이 고려해 보겠다. 이만 물러가거라.”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폐하를 축복하시기를!”
테무르 다음에 찾아온 것은 무슬림 고관들이었다. 모두들 고양감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불과 십수 년 만에 이렇게나 거대한 세계 제국이 건설되었다.
그리고 그 창건자이자 현재의 카간인 에센은 곧 무슬림이다!
그들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의 카간 폐하께 칼리프의 제관을 씌워 드리고, 영원토록 축복받을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할 준비가!
“폐하, 저희 미욱한 신하들의 귀에도 고승전이 집필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혹시….”
“그대들도 고승전의 집필에 참여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그곳에 기록될 인물을 추천코자 하는가?”
“송구하오나 둘 다 아닙니다. 혹시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과 별개의 서책에 무슬림들이 기록될 수 있을까 하여….”
“흠?”
신료들은 앞서 찾아온 테무르와 같이 넙죽 몸을 엎드린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 불교를 숭앙하는 이들은 교리가 잘못되었을 뿐, 하느님을 숭앙하는 성서의 백성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저희와는 궤가 다른 이들이니 같은 책에 적히기는 어려울 듯하여….”
“흠….”
“그러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카간이시여, 부디 저희 신앙의 형제들을 위한 새로운 서책을 감히 부탁드리겠사옵니다.”
“짐은 그 또한 고려해 보겠다. 돌아가거라.”
“감사합니다, 폐하. 폐하의 치세에 평화만이….”
“잠깐, 한 가지를 잊었군. 그대들에게 고승전의 집필을 알린 이는 누구인가?”
“아, 예허르의 투멘입니다!”
“잘 알겠다. 이제 정말 돌아가거라.”
가톨릭과 이슬람뿐 아니라, 경교에서도, 티베트 불교에서도, 그 외에 이름도 못 들어 본 다종다양한 신앙인들이 찾아와 원사 집필에 한 줄이라도 얹어 주실 수 없으실까 여쭌다.
한동안 그렇게 카간을 알현하고자 하는 이들의 줄이 성대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신앙을 새로운 제국의 체제 내로 편입시키려 노력했다. 새로 편찬되는 원사에 어떻게든 자신들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보려 애썼다.
“폐하! 폐하의 얼굴이 들어간 이콘을 진상하겠사옵니다!”
“폐하의 이름을 넣은 기도문입니다!”
그 와중에 이런저런 무리수도 나왔다.
모두 이 위대한 정복 군주를 개종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의 발로였다.
처음에는 그냥 중책들부터, 점점 가장 높은 고관들까지.
분명, 원사의 수찬 과정은 공정을 기하기 위해 비밀이 엄수되어야 했을 텐데.
짐의 제국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시금석이어야 할 텐데.
“자네가 예허르의 투멘인가? 무슬림이라던?”
“예, 폐하!”
“그대가 알리 이븐 냐디에게 원사 고승전의 집필 소식을 알렸는가?”
“그, 그렇사옵니다만….”
“…끌고 가게.”
“예… 예?”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투멘의 양팔을 병사들이 붙잡자 그제야 그는 상황을 눈치챘는지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허나 문사(文士)가 평생 단련한 병졸들의 팔심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그는 이내 탈진한 채,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눈으로 에센을 올려다볼 뿐이다.
웬만한 고관급부터는 그냥 움직이지 않는다. 이 정치 동물들은 이익을 확신하지 않는 한 그 무거운 몸뚱아리를 움직이지 않는다.
허면, 원사에 저이가 존경하는 고승의 이름을 올리고, 제 신앙을 드높이면 무엇을 얻는단 말인가?
바로, 조직적 이익이다.
고관의 귀로 곧바로 고승전의 소식이 흘러 들어가지는 않았으리라.
분명 이맘들의, 사제들의, 승려들의 입과 입을 타고서 고관들의 귀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어떤 조직 또는 사회의 승인과 합의를 거치고 난 뒤에야 총대를 메고 카간의 앞에 당도했을 터.
“원사의 집필 과정을 유출한 가톨릭교도 바얀테무르는 나오라!”
“황명을 어긴다면 당장 목을 베겠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어서 포박하라!”
“옙!”
“아, 아니 이게 무슨…!”
그 뿌리부터 뽑아야 한다.
에센은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그 기나긴 정복전의 와중에 등 뒤에서 독사 무리가 자라남을 알아보지 못했음에 한탄한다.
전조(前朝)의 역사를 수찬함은 곧 새로 천하를 얻은 자의 특권이고, 카간인 ‘나’의 특권이다.
그런데 무슨 법사(法師)들 따위가 내게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짐을 협박하는 건가?
심지어 내부에서 이런저런 사정을 유출하는 학자들이 있다고?
감히?
수많은 암살 위협을 겪은 정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