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84
이렇게 멀리 떨어진 땅으로 오게 된 이유에는, 주군이자 오랜 벗인 엔리케에게서 잠시 정치적 짐을 덜어 주고자 몸을 피한 것도 있었다.
그는 이 항구와 정착지의 건설을 진두지휘하며, 정착지의 통치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반면 갓 서른 줄에 접어든 그의 옆에 선 것은 상대적으로 나이 든, 수도사 특유의 달걀 모양 헤어스타일의 40대 중반의 남성.
그의 이름은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Tomás de Torquemada),
청렴하고 청빈한 생활로 명성이 드높았으며 고명한 추기경의 조카로서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되어 감격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 정착지의 가장 주요한 사업인 선교에 집중하며, 원주민들의 문화와 생활 환경에 대해 근대의 인류학자 못지않은 조사를 수행하는 열성적인 인물이었다.
그 두 사람은 이미 이곳에 진출해 있던 포르투갈인 선교사들의 조언을 통하여 인근의 선주민들과 교섭하여 대강의 항만을 건설할 땅을 구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근방의 포르투갈 식민지로부터 자재를 수입해 오니 수백 수천 명이 머무를 정착지를 건설하는 일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몇 차례의 소소한 물리적 충돌 역시 인근 도시의 지배자들에게 선물을 바치고 교역을 트고 나니 금세 가라앉았다.
낯선 땅에서 선주민들에게 공격받을지, 열병에라도 걸릴지 신음하던 처음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일들이 착착 진행되었다.
그들은 돼지를, 소를, 말과 강철 검과 유리잔과 갑옷을 지배자들에게 선물했고 그에 따라 금세 토착민들과 교분을 틀 수 있었다.
“사제님, 저희 마을은 다 함께 개종하고자 합니다. 부디 세례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저희 역시 부탁드립니다! 제발, 선교사 한 분만 보내 주십시오!”
“저희가 흑요석으로 십자가를 깎아 바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적들에 맞서 싸울 힘과 용기를 주실까요?”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사태가 급진전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허나 그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아즈텍, 즉 메시카 인들의의 성장기이자 그들이 제국으로 태동하는 시기였다.
도시 국가들 사이의 결집과 전쟁이 점차 거대화되고, 이들의 사생결단 위에서 이 좁은 세계의 새로운 질서가 결정될 시점.
즉 전쟁과 전란 속에서 더 많은 전사들을 먹이고 더 많은 병장기를 마련하기 위해 약소 국가들과 농민들은 착취로 내몰릴 때였다.
그런 와중에 쉬이 귀한 육류를 비롯한 식량을 내어 주는 낯선 이들이 등장하니 모든 세력이 이 유럽인들을 호의 어린 호기심 속에서 주시하고 있었다.
“벌써 오늘만 하더라도 마을 세 곳이 스스로 개종을 택하였습니다. 그들 각각에게 세례를 주는 데만 해도 사제들과 주교들의 손이 떨어질 듯하였습니다.”
“역시 지원이 더 필요하겠지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엔리케 전하께 더 많은 지원을 부탁드리기에는 이미 그분께 입은 은혜가 너무도 커서 걱정입니다. 지금쯤 사특한 정적들에게 둘러싸여 부담이 크실 터인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교황청과 각지의 사제들로부터 도움을 구해 보겠습니다.”
데 라 쿠에바의 염려에 일단 토르케마다는 그리 답했다.
실제로 그는 알고 지내던 주교와 귀족들에게 하루 수십 장, 심하면 수백 장의 편지를 써내면서 기독교도로서의 양심과 지원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선교 사업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또한 얼마나 위대한 일들이 매일매일 펼쳐지고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며 주님의 이름이 드높여지는지 등에 대한 일들을 기록했다.
허나,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서신을 써 붙이기는 하였으나 실상 토르케마다로서도 그리 많은 지원이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우선 이곳을 보라. 아무것도 없다. 거래와 교역이 이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실상 기부에 가깝도록 헐값을 받아 교역품들을 팔아넘겼으며, 그렇게 대가로 지불된 물건들 역시 토착 공예품들이 대다수. 크게 쓸모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이렇듯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장사가 이어지는데, 과연 지원이 들어와 봤자 얼마나 많이 들어올지….
어느덧 첫 서신을 보낸 지 3개월이 지나고 후속 보급과 지원이 넘어올 차례가 되니, 두 사람이 함께 저 모래사장 너머의 바다에서 무엇이 건너오나 지켜보는 일이 또 하나의 습관이 되기도 했다.
“제발….”
그리고 토르케마다가 이렇게 심란하고 초조해하는 이유 역시 있었다.
예상보다 한참을 상회하는 성과는 곧 그만큼 예산 지출을 늘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가 아프리카에서의 관심을 접고 이 일대의 제도로 눈을 돌렸듯, 비용만 쓸데없이 지출된 지금의 여행에 대해 엔리케의 관심이 끊긴다면 곤란했다.
그렇다면 당장 들어오는 수천 명을, 앞으로 교회에 귀의할 수만 명을 지원할 자산과 자원은 어디서 동원되겠느냐는 말이다.
“아직도 저 근방의 ‘아폰시아’에서 들어오는 기부금으로 대부분 버티고 있으니 너무 자금 사정이 쪼들립니다.”
“벌써 국왕 전하께서 내오신 식량과 금화는 다 떨어진 겁니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개종하러 온 이들이 굶주려 있으면 먹이고, 병에 걸렸으면 병상에 눕혀 치료해 주어야 하는데 그 수가 벌써 수천입니다!
공작 각하, 정말 국왕 전하께 도움을 청할 순 없겠습니까?”
“그건….”
“저기 배다!”
“배가 한 척 옵니다!”
“정말이냐? 우리가 한번 가 보겠다!”
그런 만큼 카스티야의 귀족들이 보낸 첫 후속 함선을 보고 그들은 크게 기뻐할 수밖에 없었고.
“드디어 제대로 된 성당을 지을 수 있겠군요! 천막 하나 차려 놓고 미사를 드리는 꼴이란….”
“성체를 서늘한 곳에 보관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한숨 덜겠습니다.”
“공작 각하! 공작 각하!”
“무슨 일이더냐?”
“지금, 배가 수십 척은 더 밀려오고 있습니다!”
마치 하루에 몇 개의 동전을 벌며 기뻐하던 농부가 금화 더미를 주운 뒤로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듯,
병사가 전해온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 벌떡 일어나 들고 있던 장부를 내팽개친 채 항만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
교황청의 두 열쇠 문장, 랭커스터 가문의 장미 문장, 포르투갈 아비스 가문의 십자가, 발루아 왕조의 백합 문장, 올덴부르크 가문의 줄무늬, 베네치아의 사자 깃발… 그렇게 어지럽게 엉킨 셀 수 없이 많은 돛.
잉글랜드에서 헝가리까지, 시칠리아에서 노르웨이까지.
“마, 맙소사.”
말 그대로 전 유럽이, 수십의 함대가 되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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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대륙에서 (2)
사정은 복잡했다.
전임 교황, 비오 2세는 강건한 교황이었다.
빈궁한 집안에서 태어나 신실하고 청렴한 성직자였던 그는, 학식 드높은 신학자로서 이단에 단호하였고 세속 권력을 부정하였다.
젊었을 적엔 그 자신 역시 공의회주의자였음에도, 전향한 뒤로는 교황권을 위하여 공의회의 권리를 축소하고 오스만을 향한 십자군을 펼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의 제위 중반쯤이었던 1460년.
루스가 무너졌다.
세속 권력과의 갈등 속에서 강대한 교황권을 구축하려던 그의 구상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당장 신성 로마의 황제와 폴란드 국왕에게서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루스의 침공에 대비할 수 없었고,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 속에서 유럽 곳곳의 공후들에게 정치적 빚을 져야만 했다.
강대한 교황권, 오스만을 위한 십자군, 그 모든 이상을 위한 준비는 순식간에 ‘실책’이라는 낙인과 함께 폐기되어야만 했으니.
그는 치세 내내 한 번도 꺾임이 없었으나, 몽골의 침공과 기독교 세계의 위기 속에서 근심하며 숨을 거두어야만 했다.
“성하께서 돌아가셨으니, 이제 새로운 베드로의 후계자를 선출해야 합니다.”
“이전의 성하께서는… 조금 ‘까다로우신’ 분이셨죠.”
그리고 그의 죽움과 함께, 숨죽이고 있던 반교황주의자들, 세속 군주들의 후원을 받는 이들, 교황보다 공의회의 권한이 위에 있다 믿는 이들이 다시금 고개를 쳐든다.
추기경들은 이제 강력한 교황, 신념에 차서 이단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세속 군주들과 힘겨루기로 정치적 역량을 소모하는 교황에게 질려 있었다.
무엇보다도, 추기경들을 숙청하고 교황의 절대 권력을 추구하는 피곤한 지도자는 이제 필요 없었다.
최대한 온건하고, 웬만하면 누구와도 갈등 없이 원만한 사람,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저 얼굴마담으로 있어 줄 사람.
적당히 무능한, 그러나 자존심을 세워 세속 권력과 다투지 않을 안전한 인물이 필요했다.
“하하하! 저 말입니까? 제가 교황이요?”
“에하와 같이 성품이 온화한 분이 아니라면 누가 수천만 어린양들의 아버지가 되겠습니까?”
“뭐, 그렇다면야….”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피에트로 바르보,
훗날의 바오로 2세였다.
적당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 부유한 상인 출신으로서 추기경들에게 호화 별장을 지어 주겠다는 따위의 바보 같은 공약을 내세우는 작자.
허수아비로 내세워 신성 로마 제국이나 프랑스 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엔 적임자였다.
…라고 즉위식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두가 생각하였다.
“교황 성하, 엔리케 4세가 선교를 위한 선단을 꾸린다고 합니다.”
“그런가? 참으로 장하도다. 마침 카스티야라면 고명한 사제가 있지 않은가?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라고.”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 비오 2세의 총애를 받았던 후안 데 토르케마다의 조카.
“그를 파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혹시 괜찮을지 엔리케 국왕 전하에게 여쭤봐 주게나.”
그리 허허실실 웃어넘기며, 능구렁이처럼 전 교황의 친위 세력과 연분을 맺어 냈다.
사람들 앞에서 그는 사치와 향락에 빠진 부패 성직자였으나,
그 술에 취해 헤실거리는 미소 너머로는 한 마리 거미가 바티칸의 수많은 음모 속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찾아 움직였다.
그제야 몇몇 추기경들은 자신들이 세워 놓았던 광대가, 도리어 자신들을 놀잇감 삼았음을 깨달았으나 이미 교황의 삼중관은 바오로 2세의 것이었다.
“성하! 숱한 선주민들이 교회의 회중이 되어 주님을 찬양한다고 합니다!”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로다!”
“그렇습니다, 교황 성하. 복음이 널리 퍼지니 주님을 흠숭하는 노랫소리가 이제 저 바다 건너에도 가득합니다!”
지중해의 바다는 오스만이, 동유럽의 대지는 몽골이 장악해 가는 속에서 서쪽의 소식은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안도였다.
옛 신의 우상들은 조심스레 치워지고, 사람이 바쳐지던 제단에 성체가 현시되는 광경이란 그저 서신으로만 전해 듣더라도 유럽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바오로 2세는 이 기회를 생고기를 기다리던 늑대처럼 낚아채었다.
“카스티야와 레온의 국왕 엔리케 4세가 자신의 총신을 보내었던즉 서방의 대륙에 복음을 전파하매 이는 실로 대단한 위업이 아니더냐?”
술과 황금에 쩌든 머저리는 어디 갔냐는 듯, 그는 강렬한 어조로 연설했다.
“공변된 교회는 그들에게 보화를 주어 숭엄한 여로에 보태도록 할지니, 우리가 저들에게 금을 주어 빈궁함을 풍요로 화하게 하며, 식량을 주어 주림을 배부름으로 바뀌게 하며, 책과 선생을 주어 무지를 지성으로 나아가게 함이니라.
스스로 의인이라 이르는 이들이 제 안온한 거처에 머무름은 수치이매.”
발톱을 숨겨 왔던, 교황이 선언한다.
“서방으로 가라!
신앙하는 이들의 세계를 장차 장대케 하라! 믿는 이들의 왕국에서 은금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라!
데우스 불트(Deus vult, 신께서 원하신다)!”
예루살렘 대신 틀락스칼라와 토토나카판을 향하여, 검과 십자가 방패를 든 기사 대신 밀알과 금화와 붕대를 든 수도사들이 싸우는 새로운 십자군.
이 위신과 명에로서 겨루는 전장에 참전하기 위하여, 유럽의 뭇 왕공과 제후와 주교들은 자신의 자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었고, 신실한 자들은 노동과 기도로서 서방을 향한 선교 사업을 지원하였다.
기부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음이 수치가 되니 이내 교황청으로 막대한 헌금이 몰려들었고,
뭇 세속의 권세들이 천상의 권세 아래 무릎 꿇으며 자신의 천한 황금을 고결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해 주십사 애원했다.
새로운 교황은 서방을 향해 수평선을 넘는 거대한 함대를 내다보며 자신의 드높아진 권세를 만족스레 음미하였다.
모든 것은 권력의 문제였다.
* * *
“아니, 금은 왜 실려 온 겁니까?”
“성당을 지을 때 기물에 장식으로 쓰라더군요.”
“이 고급 대리석들은….”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이제야 전초 기지를 세웠을 뿐인데….”
“이제는 아닙니다.”
속세의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걸어왔던 토르케마다의 당혹한 얼굴에, 데 라 쿠에바는 흥분하여 외쳤다.
“이곳에 능히 도시를 건설할 만한 자금이 모였습니다! 대성당을 짓더라도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게 끝이 아니라 앞으로 두세 번은 더 이런 행렬이 이어질 겁니다!”
“맙소사, 주님의 백성들이 이렇듯 의로운 재산을 모아 주니… 이것들이 모두 믿음의 성채를 짓는 데 쓰일 것입니다, 아멘.”
그의 말대로 이 땅에 번듯한 도시가 건설되는 데는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토르케마다는 이 도시를 성 십자가에 봉헌한다는 의미로 ‘베라크루스(Veracruz)’라 명명하였다.
그렇다면 이것이 신대륙의 선주민들에게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저들이 거대한 성관과 신전을 건설하고 도로를 닦으며 곳곳에 급식소를 건설합니다.”
“저들이 유리 그릇과 무기를 바치며 교역을 요구합니다.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개종한다면… 저들이 우리가 침략당할 때 도와줄 수 있지 않겠나?”
이전에는 그래도 마을 단위 수준이던 집단 개종의 규모는, 이제 거대한 도시 국가가 스스로 무릎 꿇을 만큼 거대해졌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무릎 꿇고 세례를 받을 때마다 그들을 뒤따라온 수천의 백성들 역시 성체를 입에 물고 새로운 이름을 받아 갔다.
또한 이전부터 해안을 통해 포르투갈 상인들과 접하던 도시 국가들은 ‘왠지 모르게’ 늘어나는 전염병에 맞서 싸우다, 이들의 의료 지원을 받으며 그 유대감을 굳혀 나간다.
“…흠. 모든 일이 잘 성사되는 듯하나, 여전히 걱정이 큽니다.”
“제가 당신만큼 이 땅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주교 각하. 부디 그 근심이 어디서 오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데 라 쿠에바 공작이 묻자, 선교사들이 세세하게 그린 인근 지역의 지도를 훑던 토르케마다가 걱정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천천히 답했다.
“저들이, 그러니까 이 땅의 선주민들이 보기에 저희가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새로운 도시 국가.
즉, 경쟁자다.
“이곳을 고대 그리스라 생각하십시오. 헌데 이들에게는 교역할 소아시아나 진출할 지중해도 없이 오직 그 그리스의 좁은 산악 지대와 폴리스들이 세계의 전부입니다.
이 자그마한 세계에서 아테네 제국과 스파르타 동맹과 테베가 서로 자웅을 겨루며, 얼마 되지 않는 자원은 집중된 인구를 먹여 살리고 성대한 도시를 부지하기에 부족합니다.”
“우리가 어쩌면 그 몇 안 되는 자원을 빼앗으러 온 새로운 적들로 보일 수 있겠군요.”
데 라 쿠에바의 말에 토르케마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온갖 자원을 나눠 주며 그들의 경계심을 풀었지만, 이제 저희의 동맹이 많아지고 세력이 강대해졌으니 본격적으로 강대국들에서 견제가 들어올지 모릅니다.”
“…‘신대륙의 아테네’와 ‘신대륙의 스파르타’에서 말이죠.”
토르케마다의 지적에 데 라 쿠에바는 다시금 고민에 휩싸인다. 잘만 풀려 가는 줄 알았던 선교 사업에 먹구름이 낄 수 있다니.
토르케마다의 이야기에 그는 결단을 내린다.
“그러면 이 근방에서 가장 강대한 군주가 누구입니까?”
이내, 수많은 우마차가 밀림 사이로 터 놓은 길을 타고 내륙으로 향한다.
말과 사람마다 모두 어깨에 비단과 유리 공예품과 포도주 부대를 짊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고행을 자처한 토르케마다 본인까지.
이내 습지와 숲과 구릉과 계곡을 지나니, 그들은 장엄한 도시를 마주하게 된다.
낯선 술과 음식 냄새, 이국적인 억양으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제 몸에 색색의 망토를 휘감은 건강하고 활기찬 사람들.
본래 귀족들은 지배자로서의 자신감과 고결함을 온몸에 휘두르고 다니기에, 그들은 황금으로 된 장신구를 제하더라도 누가 이 땅의 주인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가마를 타고 나온 폴리스의 왕에게, 그들은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자루가 두 사람의 앞에서 포장이 풀어지며 속에 감춰 뒀던 보물들을 내보인다.
잠시 흘깃 눈을 올려 바라보니, 장신의 잘생긴 왕은 호기심이 동했는지 반짝이는 그릇을 쓰다듬으며 그 감촉을 즐겼다.
“투명한 것이… 마치 공기를 얼린 것 같고, 매끄러움은 물과 같구나. 흑요석과 비슷한 기물인가?”
“전하, 그것은 유리입니다. 모래와 석회를 합하여 사람의 노력을 더해 만든 것입니다. 흑요석과 같이 자연에서 얻어지는 바가 아닙니다.”
“…흥미롭군.”
왕은 가마에서 내린 뒤, 그들의 앞에 섰다.
망토 아래로 드러나 보이는 발달한 가슴과 팔의 근육은 그가 얼마나 전사로서, 야전 사령관으로서 훈련되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분명 자신감과 사려 깊음이 동시에 돋보이는 얼굴에는 다스림을 위해 태어난 자로서의 인격이 드러나는 듯했다.
이 이교도 군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