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07
그렇기에 사보나롤라가 로밀리에게 ‘당(Partito)’에 대하여 처음 들었을 때는 아마 당파나 정파의 형태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는 대중을 지도하고, 계몽하고, 또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는 근대적 의미의 정당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원산식 민주주의 체제를 경험하고 20세기 초의 부모 밑에서 자라난 로밀리의 ‘당’에 대한 개념 역시 우리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전국민의 대부분이 문맹인 데다 의회정치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러시아 제국에서 펼친 레닌의 ‘전위당(Vangaurd Party)’ 개념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사보나롤라가 혼란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데에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여우의 성품으로 (6)
피렌체의 골목골목에서, 어느새부턴가 낯선 깃발이 눈에 들어온다.
알음알음 불온한 느낌을 내며 돌아다니던 적기(赤旗)도 아니고, 어느 귀족 가문의 문장도 아니었다.
십자가에 피렌체의 상징인 붉은 붓꽃, 그리고 사자 마르조코(Marzocco)가 합쳐진 깃발.
그 휘날림 아래서 연설하는 이들이 드문드문 늘어났고, 그 깃대를 중심으로 뭉친 회중의 가두 행진이나 강연회가 잦아진다.
젊은 대학생이나 정열적인 성직자들 역시 차츰차츰 따라붙더니, 곧 꽤나 커다란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피렌체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제 배웠다 하는 이들 중 그 무리에 한 다리쯤 걸쳐 있지 않은 이가 드물었다.
사실 이들이 외치는 바는 언제나 피렌체에서 들려오던 것과 같았다.
결국에 말하는 내용을 들어 보면 공화주의와 로마의 신성한 전통에 관한 예찬이거나, 피렌체의 자유와 영광에 대한 애국주의적 선동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외침의 내용이 아닌 형식이었다.
이제껏 누구도 이러한 형태의 결사체를 본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이게 다 스페인 대사 각하께서 조언해 주신 바라 이건가?”
그것이 바로 로렌초가 사보나롤라를 다시금 호출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합니다. 피렌체 시민들에게 자신들이 지닌 자유와 주권에 대하여 설파하고, 자유로운 공화국의 수호자로서 타락해 가는 교회에 저항의 깃발을 높이 올리신 일 마니피코 각하의 노고에 대해 널리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설파하고’를 기준으로 앞의 내용이 사보나롤라가 바라던 바이고 그 뒤의 내용은 후원자를 위한 보상이자 투자 유치 수단에 가까우리라.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로렌초는 여전히 내면의 당혹감을 제치고 어떤 기묘한 호기심이 불쑥 튀어나옴을 느꼈다.
사보나롤라가 여전히 공화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지향을 이렇게 로렌초 자신과 엮어 버리다니.
공화정의 위대함, 피렌체 시민의 신성한 자유, 공화주의의 지고한 가치와 참주정의 타락….
로렌초는 그깟 것들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물론 아무리 그가 도시의 지배자라 할지라도 명목상 피렌체 공화국의 일개 시민에 불과하니.
자신을 ‘체사레(Cesare, 카이사르)’라 부르는 이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주제들을 숙지해 놓기는 해야 했다.
그러나 로렌초가, 그리고 메디치 가문이 진정 피렌체의 ‘자유로운 공화국’을 수호하려 하는가 묻는다면.
그럴 리가 있겠는가?
될 수만 있다면 밀라노 공작이 된 비스콘티(Visconti) 가문처럼 차라리 이 땅의 영주가 되고 말리라.
그런데 자신이 후원하는 사보나롤라가 길거리에서 메디치 가문과 자신을 공화정의 수호자로 예찬하고 있다니.
“많은 공화주의자 청년들이 친(親)메디치 기조로 돌아섰습니다. 일 마니피코의 공화국을 향한 충성과 헌신을 널리 알린 덕분입니다.”
그리하여 공화주의자들이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피렌체의 상징들을 조합한 기묘한 깃발과 메디치 가문의 문장을 그려 넣은 깃발을 나란히 휘날리고 다닌다니.
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사보나롤라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 정도로.
“…다시 한번만 더 설명해 주게나.”
사보나롤라가 응접실을 빠져나간 것은 수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였다.
* * *
위대한 공화국의 위대한 시민은, 마땅히 자신의 조국에 헌신하며 동료 시민들을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그러니만큼, 이 도시의 ‘가장 위대한 시민’이 되기 위하여 로렌초와 메디치 가문이 바친 것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모두가 열광하는 옛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들을 그러모아 도서관을 차리고 학교를 짓는다든가.
훌륭한 시민은 마땅히 덕성과 교양을 두루 갖춰야 했기에, 이러한 문화적 산물을 그러모으는 일은 식자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제격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달려들어 오는 유학생과 여행객을 불러 모아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도 더없이 좋았고.
그 결과 로렌초의 서재에 에피쿠로스(Έπίκουρος)와 세네카(Seneca)가, 키케로(Cicero)와 플라톤(Πλάτων)이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서재에서 오는 교양이 없었더라면 사보나롤라 같은 학구파들을 휘어잡을 수는 있었겠는가?
이 장서들은 부와 권력의 과시이자, 그 자체로 부와 권력을 위한 무기였고, 또한 공화국을 위한 메디치 가문의 헌신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오늘은, 그 많은 기능들 중 ‘무기’로서의 기능으로 쓰일 터였다.
한 권을 펼친다. 키케로의 ‘의무에 대하여(De Officiis)’다.
또 한 권을 펼친다. 이번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Πολιτικά)’이었다.
숱한 왕국과 공화국들이 흥성하고 몰락하는 바를 지켜보았던 지난 수천 년 동안 이뤄 낸 인류 지식의 축적물들이다.
그곳 어디에도 ‘전위당’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키케로가 꿈꾼 공화국에도, 플라톤이 바라던 철인 왕국에도 존재하지 않는 조직을 서른도 넘기지 않은 젊은 수사가 피렌체에 세웠다.
그것이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 공화 정체를 위한 도구라 주장하면서.
또한, 아마 후원자를 위한 아첨이겠지만, 메디치 가문의 패권을 위한 주춧돌이라 역설하면서.
어찌 고대를 흠숭하는 이 시대의 피렌체인으로서 놀라움과 설렘을 티끌만치라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또 한편으로는 공화국을 집어삼키려는 야심가로서, 어떻게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제나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라는 비난을 받아 온 로렌초에게, 사보나롤라는 페리클레스가 되라고 제안했다.
공화국의 영웅이 되라고.
로렌초는 책들을 덮는다. 시종들이 그가 여기저기 널어놓은 책들을 정리하게 두고 서재의 문을 활짝 열며 나선다.
그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와 마주친 고용인들은 고개를 숙여 존경을 표한다. 새삼스레 이 사소한 순간순간에서 권력이 주는 전능감을 오랜만에 만끽한다.
야망을 느낀다.
역사가 짧아 졸부라 비웃음받는 이 가문을 위하여, 공화국을 향한 궁극적인 승리를 위하여.
유서 깊은 가문들은 여전히 오랜 구식 공화정에 빠져 자신들끼리 공직을 나눠 먹는 데 만족한다.
기껏 도시의 지배자가 된다고 해봐야 밀라노 공화국이 결국 공작가의 지배로 귀결된 것을 반복하여 피렌체의 군주가 되고파 할 뿐이다.
상상력이 부족한 치들아, 보아라. 완전히 새롭게 구성되는 권력을.
나의 공화국을.
메디치 궁의 창문 밖으로 거리를 내다본다. 그곳에는 흔들리는 ‘공화당’의 깃발이,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와 로렌초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젊은 학생들의 무리가 보인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곧 그 무리는 로렌초의 존재를 식별한다. 그들이 로렌초에게 애정을 담아 소리 지르니 로렌초는 그들에게 미소와 손짓으로 화답한다.
저들이 로렌초 데 메디치의 ‘전위대(Avanguardia)’가 되리라.
그 자신은, 마침내 새로운 공화국의 주인이 되고.
* * *
얼마 지나지 않아 공화주의자들의 조직 확장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공화당 만세(Viva il Partito Repubblicano)!”
“군주에게는 죽음을! 공민에게는 자유를! 공화국에는 영광을!”
“일 마니피코에게 무궁한 영광 있으리!”
위대한 로렌초의 후원 아래 당사가 건설되고, 당기가 메디치 궁에 내걸리며, 당헌이 배포되고, 당수가 선출된다. 스페인의 대사관이 사보나롤라에게 은밀히 전달한 조언이 빠른 조직 편성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우리의 군주가 되는 영광은 오직 한 분! 주님만이 누리실 것입니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만세(Viva Girolamo Savonarola)!”
당연히 공화당의 초대 서기장은 창립자인 사보나롤라.
그는 이탈리아 공화당의 영예로운 창당 대회에서 첫 번째로 연설을 할 영광을 얻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주님께서 이 땅에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신성한 공화국의 기반에는 주님의 은총이 자리합니다!”
단상에 오른 사보나롤라는 소리 높여 외친다. 음향 장비가 없는 시대인 만큼 곳곳에서 목청 좋은 사내들이 사보나롤라의 연설을 따라 외치며 인간 확성기 노릇을 하였다.
피렌체 대성당의 앞이라는 상징성 있는 회합 장소에 모인 수백수천의 공화당원들은, 제각기 횃불과 깃발을 들고서 이런저런 구호들을 외쳤다.
“작금에 이르러 로마의 삿된 무리를 일소하시던 교황 성하께서 의문의 흉수에 맞아 쓰러지셨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 배후가 밝혀지지 않았단 말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지금의 추기경단이 교황 암살 미수 사건의 전말을 캐내는 의무에 성실히 응하지 않는다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옳소! 그 작자들이 암살 배후가 분명하오!”
“빌어먹을 찬탈자들!”
사보나롤라는 오직, ‘의무에 성실히 응하지 않는다’,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같은 모호한 이야기만을 던진다.
실제로 전달하고픈 바는 지지자들이 알아서 쏟아 내도록 내버려둠으로써 정치적 책임 회피의 뒷구멍을 마련해 놓는다.
“그러나 지금 오직 한 사람만이, 로렌초 일 마니피코만이 로마에 정당한 요구를 하셨습니다! 프랑스와 작금의 추기경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교황 암살 배후에 관한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가, 하는 데 대한 진실을 모두에게 공표하라는 요구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대답을 들은 바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능하고 굼뜬 지금의 추기경단은 어리석음과 태만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이 위기에 빠진 교회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신성한 의무는 바로 이 피렌체가 짊어지고 있습니다!
위대하고 자유로운 피렌체여! 오직 주님만을 그 군주로 허락하는 신성하고 고결한 공화국이여!”
“피렌체 만세(Viva Firenze)!”
“메디치 만세! 로렌초 만만세!”
“교황 바오로 2세 만세! 암살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피렌체야말로 새로운 예루살렘이 되리라!”
“갑시다! 시뇨리아 궁과 메디치 궁에 우리의 함성을 전달합시다! 우리 도시가 잊고 있는 신성한 의무를 일깨우러! 그리고 위대한 메디치가에 힘을 보태러!”
“와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시작된 가두 행진은, 피렌체의 정부 청사인 남쪽의 시뇨리아 궁에 다다라 함성을 쏘아 낸 뒤,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메디치 궁으로 향한다.
메디치 궁을 둘러싼 수많은 시위대가 로렌초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구호를 외치니, 로렌초는 말없이 발코니로 나와 시위대의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그 메디치 궁의 또 다른 거주자들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저게 그 학생들을 데려다 만든 ‘전위당(Partito d’avanguardia)’이란 건가?”
“그 망할 정신병자 수도사와 로렌초 그놈이 부리는 건달 무리지.”
“자네 말이 맞네. 학생들이 술에 취한 채로 도박에 빠지는 대신, 그 비슷한 새 취미를 찾았구먼그래.”
“심지어 공화주의라니? 그 비판 대상에 우리 메디치가 빠져 있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메디치의 일족들은 열광적인 무리를 내다보고는, 저마다 한마디씩을 보태며 수군거렸다.
“공화주의자들은 통제할 수 없는 칼날일세! 언제 손잡이를 쥔 주인을 벨지 모른단 말이네.”
“게다가 로마를 너무 심각하게 자극하고 있지 않은가? 뭐? ‘새로운 예루살렘(Nuova Ierusalem)’? 미친 건가!”
심지어 지난 회의에서 로렌초를 지지했던 어머니 루크레치아까지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폭주하는 미친 말을 제어할 솜씨 좋은 마부가 없다면… 끝장일세.”
지금 당장은, 로마 공화국의 유산을 검으로, 아테네 제국의 이상을 방패로 삼은 저 젊은이들이 메디치 가문의 권력을 보위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로렌초 이후에 ‘공화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
메디치의 일족들이 보기에 저 조직은 로렌초 개인을 위한 친위대였다. 메디치 가문의 영속과 영광을 위하여 봉사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만일 로렌초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로렌초가 당에 대한 지도력을 잃거나 사보나롤라라는 젊은이에게 휘둘리기라도 한다면 공화당은 도리어 메디치 가문의 지배에 가장 위협적인 적대 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아직도 세상이 솔론(Σόλων)의 아테네가 살아 있던 2,000년 전에 멈춘 줄 아는 것들이 아닌가? 저 이상주의라는 열병에 걸린 젊은이들의 고삐를 놓친다면 로렌초는 제가 지핀 불에 타 버리는 어리석은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일세!”
물론 그렇게 준엄하게들 로렌초의 성급함과 사보나롤라라는 수사의 교활함을 꾸짖고 분석했으나, 메디치의 일원들에게는 또 다른 불안감 역시 엄습해 왔다.
‘만일… 로렌초가 우리를 버린다면?’
‘로렌초에게 메디치가 쓸모없어진다면?’
‘우리는 공화당에 맞서 로렌초를 향한 충성 경쟁에 나서기라도 해야 하는가?’
물론 그런 고민들쯤이야, 침묵으로써 고상하게 숨기는 법을 아는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나누고, 또한 저 아래서 여전히 열광에 차 뛰어오르는 젊은이들의 대오를 향하여 싸늘한 의심의 빛을 보냈다.
저들이 피렌체를 어떻게 흔들어 놓을까?
먼 훗날, 피렌체는 우리의 것일까? 아니면 저들의 것일까?
답하기 두려운 질문들은, 그렇게 메디치 궁의 대기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먹구름이 유난히 답답한 하늘이었다.
파치 음모 (1)
속삭임들이 퍼져 나갔다가, 다시 모인다.
마치 낟알을 쪼아 먹기 위해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는 참새들처럼 무엇이든 얻을 바가 있을 듯하면 모여서 서로 종알거리다 흩어지는 사람들이다.
저마다 한 움쿰씩의 비밀과 모략을 가슴속에 감춘 사람들.
그들은 성스러운 도시 로마에서, 불경스러울 정도로 음산한 표정을 하고서 모여든다. 오래된 귀족 가문의 자식들과 추기경들. 바오로 2세의 치세에서 탄압과 압제를 견디던 이들이다.
대외적으로 이들을 향한 교황의 탄압은 부정한 쾌락과 부패에 빠진 로마의 옛 지배자들에 대한 바오로 2세의 대규모 숙청으로 비쳤다. 교황이 중태에 빠지기 전까지 이들은 명분과 명예를 모두 잃고 교황에게 자비를 구걸해야 할 참이었다.
물론 승리감에 취한 교황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고 구석에 몰린 생쥐들은 결국 그 이빨을 날카롭게 갈아 자신을 쫓던 고양이의 목을 물어뜯었다.
이들이 바로 로마의 브루투스요, 교황을 죽인 공범자들이다.
상호 간에 적대와 의심을 놓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을 함께 지은 사이들끼리만 지을 수 있을 표정을 짓고서 서로에게 말한다.
목소리를 죽이고. 혹여나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눈과 귀를 피해 조용히 응달 아래 집결한다.
“요사이 피렌체에서 로렌초의 명성이 점점 드높아진다는군.”
이것이 요사이 이 음모가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주된 요소였다.
“단순히 조금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 그치는 게 아니잖나? 그 친위 조직들이 로렌초를 무슨 구국의 영웅처럼 떠받든다는군!”
“그 어릿광대 같은 ‘피렌체의 예언자’는 또 무슨 말을 하는 줄 아는가? 우리 보고 세상의 더러운 때이고, 로렌초를 깨끗한 성수라고 하더군.”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하네. 저들은 사실상 선전 포고를 하고 있어!”
교황령의 실세들이 고작 20줄의 청년이 움직인다 하여 벌벌 떨어야 한다는 상황은, 단지 공포감뿐 아니라 굴욕감과 분노를 낳았다.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뒤에야 성토 대신 제대로 된 판단과 논의들이 오가기 시작한다.
“제기랄, 정말 ‘그 수’를 쓸 수밖에 없는 건가?”
“어차피 파치 가문에는 미리 이야기해 두지 않았던가? 언제든 실행시킬 수 있도록 준비해 놓으라고 언질도 주었고 말일세.”
“하지만 실패한다면 어쩔 것이오? 지금 로렌초가 본격적으로 우릴 적대하고 있지 못하는 것도 피렌체 내부가 정리되지 않아서 아니오?”
“그렇소. 그 계획이 실패했다간 로렌초와 메디치가 피렌체의 완전한 주인이 될 거요!”
“모두들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오히려 이 무모한 계획의 성공 가능성은 몹시 낮소. 다들 불안감에 대책 없는 낙관주의로 빠져버린 것이오?”
한편에는 우려 섞인 목소리들.
“하지만 그렇다면 두고 보고 있으란 말이오? 당장 지금 그 피렌체의 내부가 정리되고 있잖소?”
“이 말이 옳네. 손가락만 빨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피렌체와 메디치를 확실히 부숴 버릴 방책이 낫지.”
“착각을 하고 있는 건 도리어 그대들 아니오? 다들 기억하시오. 우리의 공모자는 파치 가문뿐만이 아니란 걸. 이미 밀라노에서도 스포르차 공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소. 밀라노와 피렌체, 둘 중 하나만 제대로 꺾어 버리더라도 우리에게는 큰 승리요!”
그 반대편에는 강행을 외치는 목소리들.
로마를 지배하는 권력의 어두운 뒷무대에서, 음모가들은 서성이고 소리치며 언쟁한다.
누군가는 절규하고, 누군가는 망설이며, 누군가는 분노로써 그 마음속 두려움을 숨긴다.
그러나 모두의 생각은 결국 단일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렌체의 완전한 이반을 막아야 한다.
“메디치가 내부의 분열을 획책하거나, 로렌초에 대한 반감을 이용하는 건 어떻소?”
“소용없소. 저들 중 로렌초의 독단적 행보에 불만을 품는 이는 여럿 있는 것 같으나, 그 때문에 가문 전체의 패배를 초래할 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소.”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루크레치아 토르나부오니가 살아 있잖소? 그 작자가 바보들의 이반 행위를 두고 보지는 않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하나씩 조건을 따져 보던 다른 대안들은 사라져 가고.
결국 단 하나의 정답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