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06
“가져오게.”
“예, 폐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는 빈의 궁정으로 건네져 온 편지들을 차례차례 읽어 넘겨 간다.
프랑스의 루이 11세는 어느 정도 설득에 성공한 성싶다. 교황령으로부터 전해져 온 소식은 결코 긍정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지 않다. 프랑스의 지원이 약속되었더라면 이리 시급히 시도하지 않았을 군사력 증강 등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루이 11세로부터 제안을 승낙한다는 답신이 진작에 오기야 했는데… 오직 어리석은 자만이 정치가의 정직성을 믿는다.
황제는 어리석지 아니하니 루이 11세의 답변을 이중삼중으로 검증하는 수밖에.
그는 머릿속으로 유럽의 정세를 요약해 본다.
교황령의 새로운 집권 세력은 프랑스에 구원을 요청했고, 프랑스는 고개를 돌렸다.
더하여 로마에서는 이탈리아 각국에 황제의 탄압이 사라지리라는 은근한 신호를 보냈으나, 누구도 거기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제국을 밀어내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각국을 잡으려던 계획은, 제국만 밀어내려고 애쓰다가 프랑스도 이탈리아의 국가들도 떠나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즉, 로마는 완전히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왜 자신이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자멸의 길을 걷느냐는 말이다.
로마의 반제국적인 움직임에 슬슬 대응하기도 전에 밀라노의 귀족들이 아우성치며 황제에게 접근해 오고, 피렌체에서는 다른 야망이 있는 듯 도시 국가들을 모아다 교황령의 집권자들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한다.
‘혹시 기만책인가?‘
그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함정은 이중으로 팔 때보다는 삼중으로, 삼중보다야 사중으로 팔 때 더욱 엄밀하고 정교해진다.
저들이 무능함과 무력함을 가장하여 자신을 안심시킨 상태로 뭔가 배후에선 다른 꿍꿍이를 숨가고 있을 지도 모르는 게 아닌가?
…라는 의심까지 해 보았으나 모든 첩보가, 모든 정황이 한 가지 진실만을 가리키고 있다.
정말로 로마가 무능한 게 맞다.
이탈리아 일대에 유례없을 정도로 강한 반(反)프랑스적 기조가 불어닥치고, 교황은 지금 죽기 직전 상태로 앓고 있으며, 정작 프랑스는 (황제와의 거래 끝에) 개입할 생각을 버렸다.
교황도, 프랑스도 없다. 당장 저항의 움직임을 보일 듯한 뚜렷한 내부의 움직임도 없다.
로마라는 진미가 껍질도 뼈도 모두 발라져 있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천치 소리를 들으리라.
황제는 펼쳐 놓은 거미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어느 곳에 먹이가 잡힐는지, 그 진동을 느끼기 위하여.
* * *
“이거… 피렌체 시민의 반이 스파이인 거 아닙니까?”
“20세기산 피렌체 토박이로서 대사 동지의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맞는 것 같습니다.”
로밀리의 주위로 모여든 다른 조직원들이 웅성거리며 그의 손에 들린 메모를 구경한다. 한낱 종이 쪼가리가 무슨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대단하겠냐 싶지만.
기나긴 조직원 명단.
그 개개인마다의 접선 방식, 사용하는 암구호, 소통에 쓰이는 암호문의 구성 방식.
각 요원들의 정치적 성향, 기거하는 위치, 특화된 영역, 직종, 가족 관계 등등까지.
“소련이 유럽과 조우한 지는 몇 해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런 자료들이 죄다 정리돼 있다고?”
이런 정교한 조직을 세워 놓고도 로밀리의 귀에는 소문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거기에 더해 피렌체 각 가문들 간의 관계도, 그리고 그 가문들 각각의 내부적 알력 관계, 권력적 위계 등등이 모두 도표와 함께 요약되어 있으니….
어떻게 해낸 건지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작전명 ‘파치’에 관해 확인했는지 여부에 대해 질문 요청.”
“확인했고, 곧 그 실행이 얼마나 효용성 있는지에 대해서 확인 절차를 밟을 것이라 전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대사 동지!”
이제 통신은 제노바의 음침한 비밀 기지 대신, 피렌체의 정식 외교 공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어차피 도청할 사람도, 도청해서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피렌체에는 몇 없었기에 이전보다는 그나마 개방된 환경이었다. 곳곳에 대리석 석상들이 전선과 함께 어지러이 얽혀 있으니 뭔가 기묘한 과학 소설의 한 광경 같았다.
“동지,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응접실에 다과와 손님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두십시오.”
로밀리는 잠시 통신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실무진들과 이런저런 입씨름을 벌이다 통신실을 나섰다.
곳곳에 내걸린 깃발은 적기 대신 조선국 어기(御旗)와 스페인 제2 공화국 국기였다.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의 연관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 도시 곳곳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행동하는 소련 정보총국 휘하 점조직과 사회혁명당 지하 조직들과의 관계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아무튼, 나팔 부는 알몸의 천사들이 가득한 벽화와 천장화 사이로 복도를 걸어, 로밀리는 한 방에 다다른다.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문을 열자 옷깃을 꼭 쥐던 손을 놓고 심호흡을 한다.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 피렌체 스페인 공화국 대사 윈스턴 로밀리입니다.”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대단한 직함이 없어 소개가 짧을 수밖에 없군요. 이런 저를 어떻게 불러주셨는지….”
젊은 사내, 약간 깡마른 얼굴과 목, 완고한 입술과 턱, 화살촉 같은 매부리코와 둥근 이마.
“도미니코회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입니다.”
* * *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았다.
본래 역사에서 정치인 사보나롤라는 중년의 수도원장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은 뒤에, 보다 완숙해진 사보나롤라는 프랑스 국왕이 피렌체를 침공할 때에 맞춰 정권을 잡아 낸다.
교황에게서 이단 혐의를 받고, 메디치가의 모략이 더해지면서 몰락할 때의 나이가 마흔여섯, 지금 그의 나이는 스물… 다섯?
로밀리와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으니, 요사이 공화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두 젊은이라고 통칭해도 무방하리라.
“시뇨리아 궁전(Palazzo della Signoria)과 메디치 궁전을 오가며 많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주 고명한 학자라고 들었던 만큼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피렌체는 교양의 도시지요. 위대한 학자들이 마치 천국의 의인(義人)처럼 많습니다.
한낱 수사를 찾으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만일 제 보잘것없는 학식이 각하로 하여금 저를 부르게 만들었다면 다른 뛰어난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학식이 뛰어나다 한들 앞날을 아는 이들은 없지요.”
“사람은 앞날을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이 피렌체의 위기를 앞서 보는 예언자라고 항간에는 소문이 자자합니다만?”
“저는 예언자가 아닙니다.”
가볍게 탁, 소리와 함께 사보나롤라는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뭐지? 여기서 갑자기 이런 중대한 정치적 고백을….
“예언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저는 그저 그분이 시키신 바대로 읊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면 저는 답할 뿐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Non mea, Sed tua)!”
…할 리가 없지.
아직 피렌체의 지도자이자 예언자가 되기까지는 한참이나 남은 나이인데도 벌써 빈틈을 보이는 구석이 없다.
하지만, ‘파치 작전’의 실행 여부를 확정짓기 위해서라도 이 사내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로렌초는 이자를 자신의 체스 말쯤으로 여기고, 그 반대파들 역시 사보나롤라를 로렌초의 졸병 정도로 무시한다.
그러나 결코 거기에 머무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가, 그리고 눈앞에서 보이는 사보나롤라의 태도가 증명한다.
‘작전’의 시행 전후로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정세가 크게 흔들릴 때, 이 사보나롤라라는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 남자가 거느린 추종자 무리는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가?
본래 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데뷔한 ‘피렌체의 예언자’는, 어떤 인간인가?
다행히도 로밀리에게는 다른 이 시대의 인물들과 다르게 특별한 무기가 있다.
“수사님.”
“왜 그러십니까, 각하?”
그는 역사를 안다.
사보나롤라라는 인물이 걸을 수 있었던 한 가지 가능성을 안다.
지금 로렌초의 휘하에 들어간 그를 더러 모두들 가짜 공화주의자라고, 무늬만 검약한 교활하기 짝이 없는 출세 중독자라고 모욕하지만….
“저희 공화국에 대해서 ‘아주 간단히’ 소개를 해 드리고자 합니다.”
단순한 출세 중독자는 교황령의 코앞에서 교황에 반기를 드는 미친 짓을 하지 못한다.
메디치를 쫓아내고서 피렌체에 신정 공화국을 세운다는 정신 나간 발상을 하지 않는다.
“아마 즐거우실 겁니다.”
그를 추동한 것이 무엇이든, 공화주의자라면 여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으리라.
* * *
사보나롤라의 얼굴이 굳어 간다.
작업장들, 무수히 많은 백성들.
그들이 주님께 죄받은 바대로 지상에서 근로하여 먹고사는 공간에서, 그들은 투표를 한다.
투표를 하고, 정치를 하며, 자기들의 작업장을 어떻게 굴릴지 열렬한 토론을 거친다.
그리고 자신들끼리 대표를 뽑아 거대한 의회로 올려 보내니 다시 그곳에서 나라의 법을 만들고, 정부를 꾸리며, 정부의 예산안을 짜낸다.
“베네치아의 것과… 유사하군요….”
“아닙니다. 베네치아는 귀족 가문들에게 특권을 부여합니다. 평민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대변할 로마의 민회나 호민관 같은 막강한 제도가 부재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훌륭한 정치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봅시다. 로마는 강력한 집정관을 뽑음으로써 왕정의 단호함을, 원로원을 설치하여 귀족정의 노련함을, 민회를 통하여 평민정의 민주성과 보편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공화국에는 단호함이나 노련함이 없습니다. 군중들의 파도치는 듯한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불안한 나라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래서 인민을 이끄는 당이 있습니다! 당은 인민을 가르치고 조직하며 집권을 위해 노력합니다. 당은 우리 정치에 노련함을 줍니다.”
“그건….”
‘당(Partito)’… ‘당파’… 라. 저 ‘당’이란 무엇인가? 오직 평민들만이 지배하는 공화 정부라니?
본래 지상에 왕은 주님 한 분뿐이어야 했다.
그러나 의심 많고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달라 청하니 주님께서는 사울(Saul)을 주셨다. 사울 다음에는 다윗, 다윗 다음에는 솔로몬을.
모두 타락했다. 인간인 왕은 그랬다.
오로지 주님만이 이 지상의 권좌에 오르실 권리가 있다. 또한 권력을 독차지하는 인간은 언제든 타락한다.
“…그렇기에 주님을 섬기는 인민들 모두가 자유와 주권을 누려야만 하오. 서로 견제하여 타락을 막을 수 있게.
허나, 모두가 현명할 수는 없소! 로마에 원로원이 있었고, 지금도 숱한 공화국들이 그러는 이유가 무엇이겠소? 그러한 자유와 주권이 평등하게만 주어진다면 공화국이 존속할 수 있겠소?”
허나, 저들이 이야기하는 바대로 전위당(Partito d’avanguardia)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다면?
그를 지지하는 평민 모두를 대변함과 동시에 평민을 가르치고 이끄는 조직이란 게 있다면?
“…하지만 그건, 가능하겠구려. 그대의 공화국은 망상이 아니고 저 동방에 실존하니.”
사보나롤라의 눈빛에 불꽃이 깃든다.
사교적인 미소와 차가운 계산 아래로 깊숙이 감춰져 있던 야수 같은 열정이 부글거린다.
그 열정은 가장 현명한 이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고, 명장이 이길 수 없는 군세에 싸움을 걸게 하며, 능숙한 선장으로 하여금 집채만 한 파도에 덤벼들도록 만든다.
그런 감정이 로밀리에게도 읽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라도 비칠 수밖에 없다.
‘파치 작전’이 시행된다면, 사보나롤라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이제는 명백하다.
사보나롤라가 떠나간 자리, 그가 남긴 과일을 바라보며 로밀리는 생각한다.
“일 마니피코가… 확실히 사람을 잘못 봤군.”
저런 사람을, 길들일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인 인간으로 보다니.
“로밀리 동지, 회동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국으로 통신을 넣으십시오.
작전은, 속행합니다.”
* * *
“지금 로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아나? 우리 은행에 비리가 있다며 모함하고 있어!” “신뢰할 수 없는 금고에 무슨 소용이 있나? 우리는 은행가일세. 은행가는 신뢰를 잃으면 끝장이란 말일세.”
“로렌초, 꼭 이리 갈등을 끌어야 하겠나? 굳이 이렇게까지? 추기경단에서 잘못하면 우리를 파문할지도 모르네.”
“할 테면 하라지요. 교황의 암살자를 누가 고용했는지 모두가 알지 않습니까?”
“입을 조심하게!”
“모르겠습니까? 다 가문을 위한 일입니다!
피렌체 시민들의 프랑스에 대한 적개심이 저리도 커지는데, 바보같이 가만히 앉아서 지지를 잃어버릴 생각들이십니까?”
갑작스러운 로렌초의 일갈에 모두들 입을 다문다.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도리질하거나, 헛기침을 키거나, 눈을 부라리는 이들.
모두가 메디치의 일원이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얻는 게 뭔가?”
“지금 교황의 주교좌를 둘러싼 추기경들은 어차피 모두의 의심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적들에게는 정통성이 떨어지고, 우리에게는 명분이 있습니다! 이 힘겨루기에서 이긴다면 얼마나 거대한 몫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로마를 장악할 수 있단 말입니다!”
‘로마를 장악한다.’
교황이 미심쩍은 암습을 받았다. 나폴리나 베네치아, 밀라노 등과 연합하여 작금의 교황령을 압박한다면 평소 거슬리던 추기경이든 로마 귀족들이든 날려 버릴 수 있다.
명분이 분명하기에 제국과 프랑스 역시 개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아니, 황제는 이미 자신과 동맹이던 교황을 죽이려 한 세력들을 손수 치우려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절한 시기에 선수를 친다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로렌초, 그래도 나는 반대한다. 위험부담이 크고 승리의 과실은 너무도 불확실하구나.”
이야기를 던진 쪽을 보니, 성직복을 걸친 카를로 데 메디치의 얼굴이 보인다.
“숙부님, 용기를 가지십시오. 승리가 눈앞입니다.”
“아니면 파멸이겠지. 가문의 영광을 쌓는 데는 한 세기가 걸려도 모자라지만,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이란다. 보거라! 우리 중에 왕이나 공작이 있더냐? 우리는 어느 귀족보다도 많은 황금을 쥐고 있지만, 아직도 귀족의 이름을 얻지는 못했다.
이조차도 수 세대를 걸쳐 얻어 낸 것인데 너는 너무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네 제안을 따랐다가는 가문이 무너질까 두렵구나!”
“카를로, 그만해도 좋을 것 같네.”
“…형수님.”
카를로의 말을 제지한 것은 로렌초의 어머니, 루크레치아.
귀족가의 여식으로서 메디치가 쥔 피렌체 내에서의 패권에 지대한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아는 만큼, 카를로는 루크레치아의 발언권을 존중하여 입을 다문다.
“로렌초.”
“어머니.”
“여기, 메디치 궁전(Palazzo Medici)을 지은 것이 네 할아버지 대다. 피티 가문과 파치 가문의 궁전은 그 외관의 장식이 화려하지. 그런데 이곳은 그 규모는 거대한 데도 치장은 초라하구나. 왠지 아느냐?”
루크레치아는 몸을 일으킨다.
“우리가 눈치를 봐야 해서 그랬다. 우리가 이 도시의 완전한 지배자가 아니라서, 고작 건축 과정에 도시의 공금을 사용했다는 사소한 이유로 우릴 헐뜯을까 봐.
이러니 파치 같은 족속들이 우리를 비웃고 멸시한다. 아직도 역사가 짧은 졸부 가문이라며 손가락질한다.
아들아, 네가 이 가문의 문장에서 그런 비굴함의 역사를 씻겨 줄 수 있느냐?”
“물론입니다.”
“…그렇다는군. 카를로, 난 내 아들의 의견에 동의하겠네. 거수해 보도록 하지.”
먼저 찬성하는 이들이 손을 들었고, 반대하는 이들이 들었다.
아니, 반대하는 ‘이’가 손을 들었다. 오직 카를로 홀로.
그렇게 교황령을 향한 정치적 전쟁이 결의되었다.
십자가와 금화의 전쟁이다.
* * *
/ 작가의 말
‘당(Party)’이란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적 유력자들의 모임, 또는 명망가 집단, 정파나 파당에서 유래하였습니다. 174년 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저술했을 때만 하더라도 여기서 나오는 정당이란 비밀 결사나 단체에 가까운 의미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제도 정치에 진출하여 정권을 창출하려 애쓰는 정당의 이미지는 의회주의의 발전과 함께 지극히 최근에야 형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