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59
어찌 되었건 그렇게 평화로운 10여 년을 보낸 뒤,
이제 동창성이었다.
“이, 이게 뭡니까?”
피골이 상접해서 자신의 다리에 달라붙은 어린아이의 모습은 불쌍함보다도 두려움을 먼저 일으켰다.
먹지 못해 체구가 작고 햇빛을 보지 못해 얼굴이 하얗게 뜨니, 마치 어릴 적 이야기에서 듣던 귀신이나 아귀 같아 탁, 하고 밀치니 아이가 힘없이 쓰러진다.
아이가 비명을 지르니 자신이 그제야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유경은 주머니에 뭉쳐 놨던 주먹밥 하나를 꺼내 급히 건넨다. 아이는 허겁지겁 밥을 먹더니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고, 고변해야… 어서 고변해야 합니다….”
“지금 들리는 소식으로는 다른 곳에도 이런 공장이 발견되었다는데?”
“이런 곳이 몇 곳이나 있다는 말입니까?”
유경은 눈을 껌뻑거리며 눈앞의 참혹한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강남과 화북의 상황이 많이들 다르겠지만, 그가 있던 남경 일대에서는 기근이나 가뭄에 대한 이야기 따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어떻게 이리도 많은 이들이 굶어 죽는단 말인가?
이윽고 내려온 쌀죽을 병사들에게 퍼 주도록 명하고 그를 지켜보니 공장에 메여 있던 노동자들은 유경과 그 휘하 병사들을 무슨 미륵보살이라도 되는 듯 눈물을 흘리며 우러러보는 게 아닌가?
그 광경에 가슴이 짠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뿌듯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아버지께서 저 간악한 성주에게 돌아가신 원수를 내 갚았듯, 이런 억울한 이들의 원수를 저 사악한 역적 주첨선을 잡아 풀어 주는 게 아니겠는가? 그것이 황군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리 마음을 먹고 동창성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행군을 가며 보는데… 그 결심은 순식간에 무뎌진다.
“저, 저 공장도 부숩니까? 지금 저 농민들이 낫 들고서 버티지 않습니까?”
“황명일세. 저 공장을 굴리는 상인이 근방에서 산적 떼를 고용해서 보급로를 끊지 않았나?”
결국 유경은 덜덜 떨면서 버티는 농군들에게 위협사격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재수 없던 한 놈이 허벅다리에 화살을 맞은 것 외에는 큰 손실이 없었으나, 공장의 기자재를 부수는 동안 이어지던 원망 가득한 시선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씩 이어지니 유경도, 지휘부도 어떤 규칙성을 깨달은 듯싶었다.
소도시나 향촌에 설치된 공장들은 대부분이 애당초 땅만 파먹고 사는 게 시원찮은 농군들이 겨우내 노동력을 보태거나 아이들을 보내 푼돈을 벌어 오는 공장이다. 그러니 가외 수입의 창구인 공장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악을 쓸 수밖에.
반대로 도시에서는 일꾼을 구하려면 제일 쉬운 것이 땅을 잃고 무작정 올라온 무산자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데려다 마구잡이로 강도 높은 노동을 시켰다가는 모조리 도망치고 말 테니, 가둬 놓거나 하는 특단의 조치들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런 만큼 병사들이든 누구든 촌 동네보다는 공성전에 참가하기를 더 희망하게 되었다. 해방자로서의 뿌듯함이냐, 약탈자로서의 죄악감이냐를 고르라 하는데,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자를 지향하지 않겠는가?
“저기 창주(滄州)다! 도시가 나온다!”
“우와아아아아!!!”
그러니 북경을 가기 전 큰 고비 중 하나였던 호타하(滹沱河)를 넘어 드디어 유서 깊은 도시 창주가 나오자 병사들이 환호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영락제 때 증설한 대운하가 통과하는 창주는 당연히 물산이 풍부하고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비록 지금에 이르러 강남과 강북의 교통이 애매하게 끊긴 참이지만 여전히 북조의 수도 북경의 위성 도시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음은 당연했다.
그런 창주로 가면 제대로 된 지붕 아래서 쉬면서, 또 그 어두침침한 공장 안에서 아이들을 구출해 내는 의로운 일을 한다는 뿌듯함 역시 느낄 수 있으리라.
“돌을 굴려라!”
“끄아아아악!!! 피해! 피하라고!”
물론, 그 전에 죽을 수도 있겠지만.
북경 근처의 도시라는 말은 곧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라는 뜻이고.
거대한 도시라 함은 그만큼 거대한 성벽과 많은 병력으로 지켜지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방포! 방포하라!”
“해자를 넘어라! 흙을 던져 넣어!”
동창성에서처럼 단기간에 화약이 다 떨어지는 일도 없이 창주성의 대포들은 말 그대로 쪼개지기 직전까지 아낌없이 포탄을 퍼부었다.
물론 40만의 인마에 그깟 포탄들이 무슨 상관이겠나 싶을 수도 있다. 실제로 후방에서 지금 전황을 주시하고 있을 황제 폐하와 장수들에게는 그리 느껴지리라.
허나 지금 유경이 눈앞에서 보는 대포들은,
쾅, 쾅,
세상을 찢어 놓을 것 같았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사람이 포탄을 맞아 어깨 위로는 통째로 뭉개졌다. 뒷걸음질 치다 자신이 밟은 게 방금 죽은 사람의 튀어나온 눈알이란 걸 깨닫고 소스라친다.
그러나, 유경은 일개 병졸이 아니다.
“다들! 겁먹지 마라! 대포에 죽는 놈은 1백 명에 하나밖에 안 된다! 정신 똑바로 못 차리고 사다리 넘다가 멈출 때 뒤질 확률이 몇 배로 늘어나니까!!! 정신들 차리란 말이다!!!”
고작 운이 좋아 딴 벼슬이라 할지라도 지금 그는 기백 명을 이끄는 장수다.
정말 어색하게 의연함을 가장하고, 누가 들어도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음에도 병사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돌격한다. 정말로 성벽에 걸린 사다리를 오르는 졸들의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서, 성벽에 올랐다!”
“나도 올랐다!”
“엄호하라! 저 양옆으로 쏴라!”
유경 본인이 궁시를 당기며 주위에 외치자 일제히 수십 발의 화살이 성가퀴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가 재수 없는 북조의 병사들을 죽인다. 개중 하나는 하필 떨어져도 성벽 앞으로 떨어져 사다리를 오르던 아군과 대가리를 부딪쳐 꼴사납게 죽는다.
그 모습에 절로 얼굴을 찡그리던 유경은 이제 곧 성벽 위에 친군영(親軍營)의 깃발 올라감을 보았다.
그 역시 올라갈 차례였다.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가 사다리를 오르자 성벽 위에서는 여전히 혈투의 와중이다. 그러나 점점 성벽을 넘어오는 아군들에 조금씩 저들이 뒤로 밀려남은 분명했다.
그 모습에 사기가 고취된 병사들이 적들에게 용감히 뛰어든다. 그 역시 화살을 날려 아군을 엄호했다. 딱 한 번 실수로 아군의 뒤통수에 오사(誤射)한 적이 있었지만, 다행히 누구도 보지 못했다.
이내 저 멀리서 성벽이 열리니, 아군의 승리였다. ‘진짜 황제’를 섬기는 남조의 군세가 창주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발악 끝에 하나둘씩 무기를 놓으며 역적의 군대가 투항해 온다. 아군들은 함성을 내지르니 전투가 끝난다.
유경이 위풍당당하게 도시 내부를 활보하니 휘하 병사들이 뒤따른다. 깃발을 보고 백성들이 두려움에 길가에서 피해 가지만 괜찮다. 곧 유경이 할 행동에 저들의 시선이 달라질 테니.
역시나 다른 도시들처럼 장시가 열리는 한길 뒤편으로 있는 큼지막한 건물.
그곳을 호위하던 병력들은 내뺀 지 오래니, 이 문만 열면 된다.
돌쩌귀가 요란하게 울고, 실내의 먼지 쌓인 바람이 끼쳐 와 잠시 눈을 감았다 떠 보니….
“망할 역적 놈들의 졸개들이다!”
“황제 폐하 만만세!”
“홍치황제 폐하 만만세!!!”
낫과 망치와 쇠사슬을 빙빙 돌리며 달려오는 노동자들.
뭔가 이상하다.
낫이 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자, 유경은 저도 모르게 칼을 뽑아 그 낫을 든 손목을 벤다.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 * *
“폐하, 북경에 가까이 갈수록 도시의 공장들 역시 저항이 점차 심해지고 있사옵니다.”
“…마침내.”
창주 같은 경우에는 도시의 점령 이후에도 시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역적 첨선을 지지하는 가두 행진, 곳곳에서의 습격과 방화, 암살 시도 등등….
내놓고 주첨선과 주기옥의 초상화를 들고 다니는 미친 작자들도 널렸으니, 주견심으로서는 기껏 점령한 창주에 입성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북경을 밟기 직전인데 어디서 날아온 기왓장에 어처구니없이 죽는다면 부황을 어찌 뵙겠는가?
“들어 보니 역적 첨선은 수도 근역의 노동자들에게는 먹을거리와 노자를 따로 주었다 합니다. 그러니 구태여 가둬 가면서 일을 시키지 않아도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공장들을 공격하더라도 민심을 얻기가 어려웠군.”
손쉬운 인심 사기도 이제는 끝이다. 성군 행세도 여기서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
“허면 공장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지….”
“계속하라. 어차피 그 주인들은 주첨선의 충성스러운 자금줄들이 아니더냐?”
대신 남조에서 끌어온 막대한 군량을 풀어 주면서 민심을 달래기는 하였다. 대운하의 허리들을 장악하고서 통행세 받던 고약한 놈들을 목매달면서 북상했더니 물류 흐름이 아주 원활해져 이 지점만큼은 민초의 지지를 받고 있다.
조선에서 몰래몰래 배워 온 지식들로 엄격히 조련한 군대는 그나마 약탈이 덜했다. 수탈과 학살이 적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봉급은 받으면서 일하는 이들이니 그나마 나은 수준이다.
그들의 덕택이 아니었더라면 반년을 조금 넘겨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들을 키워 낸 부황 폐하의 공로가 아니었더라면….
아버지.
보고를 넘겨들으며 주견심은 지도에서 자신의 군세가 북상해 온 길들을 살핀다.
동창을 넘어 덕주, 하간, 창주, 웅현을 지났다.
주첨선과 아주 가까워졌다. 문득 그 사실을 깨달으니 주견심의 코를 익숙한 고향의 냄새가 간지럽힌다.
그는 바람에 펄럭이는 군막 너머로 슬며시 멀리 어슴푸레한 성곽을 올려다본다.
북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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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세 분구필합 (4)
절망은 감정이다. 추상적 단어일 뿐이다.
그렇게들 북경을 지키는 병사들은 생각했었다. 싸움에 나서는 졸들은 결코 절망해서는 아니 된다. 그는 추상이고, 더 나아가서는 마음속의 허상이다. 그렇기에 얼마든지 떨쳐 낼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
허나 이제 그들은 그토록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상식’이 달콤한 거짓임을 깨닫는다.
성벽 너머에 있는 인파는, 물질화된 절망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저 40만이라는 숫자가 그들의 머릿속에 두려움을 박아 넣고 있었다. 물론 오면서 병력의 손실이 아예 없었을 리는 만무하니 잘해 봐야 38만에서 35만 정도겠지만.
허나 그들은 만 단위 수로 모여든 인간이란 무한을 떠올리게 할 만큼 빼곡히 넓은 표면을 채운다는 사실에 경악하여 그런 세부 사항 따위 머리에서 잊어버렸다.
잠시 시찰을 나오던 홍치황제 주첨선 또한 그랬고.
“…대군이군. 아니, 대군이란 말이 저 광경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만 같으네.”
“폐하, 저희의 성벽이 드높고 병사들 또한 전의가 충천하니 필시 승리를 거두고 역군(逆軍)을 몰아낼 수 있을 터입니다.”
“‘전의가 충천한다’라….”
잠시 주첨선은 저 멀리 겁에 질린 채 성가퀴 뒤에 숨은 병사들을 살핀다. 화살이든 포환이든 사정거리가 가까워 오려면 한참이나 멀었는데 톡 건드리면 오줌이라도 지릴 듯 벌벌 떨고들 있다.
“저게 자네가 이야기한 병사들을 말하는 거라면 이기기 어려워 보이는데.”
환관 장민(張敏)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는 게 분명한 표정으로 주첨선이 바라보는 방향을 흘겨본다.
물론 짧은 순간일 뿐이었고, 다시 황제에 대한 공순한 표정이 돌아오지만 주첨선은 저 병사들이 아주 커다란 곤욕을 치르리라는 걸 눈치챈다.
“저 병사들을 죽이거나 매질하지 말게. 대적(大敵) 앞에서 두려워함은 사람의 자연한 정감이 아닌가? 어찌 그로서 벌을 주고 말고 할 수 있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라는 대답에도 주첨선은 안다.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결국 자신이 다른 곳을 보는 사이, ‘감히 군율을 문란케 하고 성심(聖心)에 우를 안긴 죄’로 채찍질을 당하여 등에 상처를 남긴 채 혼절하거나, 죽을 것이다.
“여전히 몽골로부터의 답신은 없는가?”
“예, 폐하. 하오나 각지에서 조직된 의병들이 지금 상경하여 적병들을 쳐부수러 오고 있사오니 그때까지 수성한다면 장쾌한 승리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다시 돌아봤을 때 대학사 상로(商輅)는 눈을 빛내니, 정말로 자신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하다.
그 역시 절망에 먹힌 것이다.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절대 오지 않을 희망을 붙들고서 거기에 자신의 시야를 가둔 것이다.
그러나 상로의 열광에 저도 모르게 주첨선 역시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 어쩌면. 저들의 보급선이 뒤에서 무너지고 그사이 저 말대로 의병들이 저 대군의 뒤를 칠지도 모른다. 북경 인근의 자본가들은 모두 주첨선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하다. 이미 생산 조직으로 모인 공장의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의병으로 전환하기도 쉬울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적들이 교란된 틈을 타 성벽 안의 정예군들을 내보내 앞뒤로 포위하여….
그래, 어쩌면.
어쩌면.
…전부 부질없는 짓이다.
황제는 잠시 그 사실을 잊었다.
* * *
“폐하, 북경입니다!”
“아직 승리는 오지 않았다. 경거망동 말라.”
의연하게 말하는 주견심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왕직(汪直)은 그 눈의 충혈됨을 엿보았다 다시 시선을 돌린다.
감히 용안을 엿봄에 대하여, 폐하는 긴장하여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듯하였다.
허나 평생의 숙원이 눈앞에 닥쳐왔는데 어찌하랴?
그토록 바라 왔던 북경이 바로 저기에 있는데.
이를 위하여 성상과 남경의 천조(天朝)는 온갖 굴욕을 감내하였다.
조선국에는 조공 무역을 중단하였다. 또한 저들의 칭제를 허하였다. 물론 황제가 아닌 대군주니 뭐니 하는 기이한 말을 붙인 것 같다만은.
그뿐인가? 몽골의 에센에게는 북조가 취하는 아우 나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그 두 배는 되는 세폐를 바치겠노라고 약조했다. 그 외에도 치외 법권이니 뭐니 몽골 측에서 요구해 오는 기묘한 단서들을 줄줄이 덧붙였고.
허나 이제 그런 굴욕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뒤집혔던 것이 다시 바로 서며, 어긋나 있던 천리가 되돌아올 것이다. 이는 곧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니 ‘천순(天順)’이요, 복벽하신 선황께서 연호로도 삼으셨던 바가 아닌가?
“첨선은 아직 저기에 남아 있다 하였나?”
“예. 에센이 그를 돕지 아니하는데 북경을 벗어나 또 어디로 도망하겠습니까?”
요동은 만주국의 땅이며, 그 외의 다른 모든 세상은 몽골의 것이 되었다. 이제 명나라의 북쪽과 서쪽에는 몽골밖에 존재하지 않으니.
몽골이 그를 버렸다면 이제 주첨선은 끝이다.
“대포들을 장전하라.”
“예, 폐하. 헌데 통첩은….”
“없다. 굳이 통첩할 것이 무어가 있겠느냐?”
주견심은 북경의 성곽으로 점차 가까워 가는 40만의 군세를 본다. 포위망이 샐 틈 없이 닫혀 간다.
“짐이 아니면 역적이 죽을 뿐이다. 이 싸움에서 나올 수 있는 답은 그 둘뿐이다.”
포성.
드디어 양측의 군세가 사정거리로 접근하였다.
바위와 쇳덩이의 대화가 시작된다.
* * *
―콰드드드드득.
유경의 곁에 있던 병사 중 몇몇은 발치에서 몇 네다섯 척 앞까지 굴러온 포환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북벌을 진행하면서 새로 징집된 이들이다. 머릿수를 채우느라 자신의 휘하로 급히 배속된 처치 곤란의 인력들이었다.
“가만히들 대기하라! 여기까지 닿는 대포는 거의 없다! 어차피 네놈들은 궁병들 아니냐! 앞으로 안 내보내니까 가만히들 있어!!!”
그래도 지난 수개월 동안의 전투로 나름 늠름해진 숙련병들이 그 어리버리함을 채워 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 그들의 앞에서는 2천 년 동안 변함없이 공성전에서 활약한 사다리탑과 공성탑이 전진하며 북경의 성곽을 위협했다.
물론 그렇게 거대한 구조물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적의 포환에 무너지기에 십상이었지만 하나라도 제대로 닿아 버텨 준다면 아군에게 길을 터 줄 수 있었다.
“무, 무너진다!”
“살려 줘어어억!!!”
…아니면 거대한 관짝이 되거나.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유경의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이!”
뒤쪽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직속상관인 정위(正尉, 오늘날의 대위)께서 그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한다.
“이보게, 이제 진군하게.”
“어, 어디로 말입니까? 지금 말입니까?”
“그럼 눈앞의 성곽 말고 다른 길이 있겠나? 일단 병력들을 나누어 공성탑에 태우고 자네도 타게.”
유경이 앞으로 고개를 돌려 보자, 여전히 불타는 공성탑 안에서 팔다리가 하나씩은 분질러지고 화상까지 입은 듯한 병사들이 엉금엉금 기어 나오고 있다.
―쾅.
“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