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64
두 사람의 대답에 트로츠키는 손가락을 튕겼다.
“소련은 당장이라도 중원을 정복할 수 있네. 바다 건너 일본도 마찬가지일세. 수십 수백만의 피가 흐를지 몰라도, 정복한 뒤에 강제로 근대화를 진행할 수 있네. 기술적으로는.”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소련 국내외의 수많은 반대를 뚫고서, 지금 조선조차 점진적인 공산화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억의 인구를 정복한다니.
그리하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느슨한 부족 간 조약 체계를 형성한 뒤 각종 문물을 공급해 자연스럽게 기존의 사회 질서를 흩어 놓고 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귀순을 바라는 부족은 유입시키고, 나머지는 적당한 교역 파트너로 삼거나 그 땅을 매입한다.
훨씬 ‘효율적인 방식’들이 있다. 그러나 스탈린이 해내 보인 방식대로라면 30년 안에 끝날 일을 100년도 넘는 기간을 잡고 질질 끌고 있다.
약간의 피를 보기 싫다는 이유로.
그런 상태에서 세계 정복?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세계를 근대화하고, 더 나아가 공산화하려면….
“우리가 세계 질서를 나서서 형성해야 하네. 이렇게.”
트로츠키가 아까의 연필로 만든 삼각대를 보여 준다.
“전 세계를 세 개의 세력권으로 분할한 뒤 나머지 두 세력과 적당히 교류하며 문명 발전을 촉진시킬 걸세.
그중 하나가 몽골일세. 그들이 해낸 놀라운 성과를 보게나. 중앙아시아부터 동유럽까지 기묘한 방식으로 상업 자본주의를 퍼뜨렸지. 자네들 공로일세.”
에드워즈와 권람이 조언해 준 대로, 에센은 유목민들이 정주민들의 생산물을 전 세계의 무역로에 연결하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유목민들은 상업 자본을 구축해 가고, 몽골 치하의 각 정주민들 사이에서는 원시적인 수공업 공장들이 발전해 간다. 놀라운 성과다.
“어떤가? 가능할 계획인가? 자네들의 보고서 내용과 잘 맞나? 30분 내로 설명해 주게. 아까도 들었겠지만 내가 곧 연설회에 참가할 예정이라서.”
에드워즈와 권람은 잠시 멍해진다.
트로츠키가 말하는 계획은 단순한 대외 전략이 아니다.
세계 지배, 그 정도로 묘사하는 게 차라리 알맞겠다.
향후 수백 년 동안 세계를 어떻게 분할하고 요리할지에 대한 이야기.
그 장대함에 에드워즈가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이번에는 권람이 나선다.
“제가 보기에는, 가능합니다.”
“아주 좋아!”
“헌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
“세 축 중 하나가 소련이고, 하나가 몽골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아, 그거 말인가? 우선 잠시만 실례하겠네. 오래 말했더니 목이 칼칼….”
그 말대로 트로츠키는 몇 차례 기침을 뱉는다. 숨을 불안정하게 뱉고 빨아들이며 겨우 안정을 찾더니, 말한다.
“앞으로 정해질 걸세.”
“앞으로 정해진다면?”
“‘작전’이 진행 중이라 말일세.”
트로츠키는 그들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때 아까 뛰어왔던 비서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번엔 뭔가?”
“오스만에서, 개시입니다!”
“…안타깝게도 연설회는 취소되겠군. 그래, 에드워즈 동지? 권람 동지?”
트로츠키가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양손을 비빈다.
“이제 같이 결과를 한번 보세나.”
* * *
축포가 하늘로 높이 쏘아지자 오스만의 병사들은 해방감에 소리 지른다. 나팔 소리와 온갖 희귀한 짐승 우는 소리가 가득하니 이곳이 바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이스파한이다.
거대한 전투를 치른 병사들을 위무하는 연회라 하지만, 어느 누가 제정신으로 국가의 존망을 건 전쟁의 와중에 연회를 열겠는가? 몇 주면 닿을 거리에 여전히 적의 대군이 자리하는데 말이다.
연회가 열리는 장소는 이스파한, 끝까지 중립을 지키다 결국 승자의 편으로 굴러떨어지리라 짐작되었던 바로 그 도시.
전쟁의 승패가 정해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병사들이 며칠 흥청거리게 할 만큼 커다란 여유가 생긴 것이고.
사실상 승전 연회다.
악단을 앞세워 당당히 입성한 파디샤의 군세는 도시 곳곳에서 온갖 패악질과 금화를 뿌려 댔다. 전자는 10만 단위 대군을 끌고 입성했으니 당연한 결과였고, 후자는 그를 위한 민심 수습용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행진으로 생색을 낸 뒤, 곧 주된 행사가 열리니.
곳곳에서 불꽃이 터지고 가난한 집 소년들을 위한 할례 수술이 무료로 치러진다.
서커스가 펼쳐지며 거지들에게 빵과 스튜가 나눠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흥에 취한 시민들의 적선으로 얼마간 거지들의 뱃속이 두둑해질 예정이었다.
허나 연회, 아니 축제의 핵심은 저 대로에 있었다.
카펫으로 안락하고 화려하게 치장된 마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꽃과 천을 던져 위대한 황제를 맞이한다.
이제 세계를 다스리게 될 황제이자, 모든 무슬림이 공경해야 마땅할 칼리프.
메흐메트 2세가 시민들을 향하여 손짓한다. 그들은 피복민으로서 자신들을 지배하게 될 새로운 군주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 뒤로도 마차의 행렬은 이어진다. 로마인, 튀르크인, 이집트인 그리고 다른 여러 족속들로 이뤄진 장교와 재상과 문관들의 대열이다. 그들 역시 각자에게 맞는 수준의 환영을 받는다.
그러한 마차들이 정해진 연회장에 닿자 모두들 하차하여 연회장의 안으로 들어간다. 이 도시의 유력자들이 정복자들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어쩐지 동방에서 부쩍 수입해 가는 양이 늘어 무슬림들 사이에서도 덩달아 소비량이 급증한 음료, 카흐베(Kahve, 커피)가 각자의 상 위에 오른다.
몇몇 이들은 이런 교역 중심지에 살면서도 유행에 둔감한지 그 검은 물에 혀를 대 보고는 인상을 쓴다. 그런 촌뜨기들에게서는 신경을 끈 채 메흐메트 2세는 풍부한 향을 맡았다.
그리고 한 모금 입에 넣고 굴리는데, 그 쓴맛에 정신이 명료해진다.
아, 예언자께서 옳으셨다. 술처럼 사람의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 액체는 마땅히 금해져야 하리라.
지금 이 영광의 순간에 영혼이 각성되는 이 아름다운 음료가 함께하니 얼마나 세상이 또렷하게 보이는….
파디샤가 이변을 느끼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이 뻐근하다.
아니, 얼굴이.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꺼풀이 떨린다.
기묘한 파디샤의 움직임에 모두들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지만 이제 파디샤는 말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멎어 가다가,
이제 곧 심장까지.
파랗게 질린 황제가 사력을 다해 자신의 차남 쪽으로 고개를 돌린 뒤 눈을 부라린다. 모두가 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볼 수 있도록 뚜렷하게.
그리고 쓰러진다.
“그, 근위병!!! 근위병!!!”
“암살이다!!!”
경악.
좌중의 무리에서 비명 소리가 쏟아진다.
‘빌어먹을 노친네. 가면서까지 나한테 수작질을.’
황자 젬은 그리 생각하며 아버지 쪽으로 뛰쳐나가려다 문득 자신의 커피잔을 살펴본다.
분명 죽기 전에 다른 누구도 아닌, 곧바로 나를 돌아보았다. 왤까?
그저 자신을 암살한 범인을 가리키려는 의지?
커피잔에 은수저를 넣고 휘저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변색한다.
“…빌어먹을.”
이렇게 정다운 부자 사이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 * *
“성하, 교황 성하!”
겨우 자신의 알현 차례가 돌아오자마자 추기경 로드리고는 교황 바오로 2세의 반지에 급히 입을 맞추며 고개를 숙인다.
그답지 않은 다급한 태도, 핏발이 선 눈과 이마에 가득한 식은땀.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정보원. 교황도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밀라노와 피렌체, 시에나를 거점지로 활동하는 상인. 도시들의 면면만 보아도 알겠지만 강경한 사보나롤리스타다.
그가 동행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
교황은 구태여 입조차 열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두 사람의 귀에 들어오던 소식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저 교활한 로드리고의 긴장된 태도까지 합하면, 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폐하, 바다 건너에서 제가 벗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그만. 페드로, 자네의 그 미지에 싸인 ‘바다 건너의 벗들’에 대해서는 궁금하지도 않네. 중요하지도 않고.”
페드로라는 이름의 정보원이 수상쩍은 미소를 지으며 뭐라 주워섬기는 말을 교황이 잘라 낸다. 한낱 쥐새끼의 사변을 듣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이내 모든 계산이 끝난다.
“우리의 황제 폐하께서 어찌 생각하시든 간에….”
교황은 손목을 잠시 돌리며, 그 팔찌 위에 박힌 독수리 무늬를 흘깃 바라본다.
“…이제는 미뤄 둘 수 없겠군.”
로드리고는 일어선 교황의 얼굴에서 거대한 야망을 보았다. 한낱 필멸자의 몸에 다 담기지 못할 탐욕과 오만으로 번들거리는 두 눈.
그 눈이 서쪽을 주시한다.
“서신을, 좀 많이 보내야 하겠네.”
한 통은 프랑스로, 한 통은 시칠리아로, 한 통은 아라곤과 카스티야, 그리고 한 통은 헝가리….
온 유럽의 왕공들에게 전달된 교황의 서신에는 성스러운 쌍십자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 봉인을 풀고 둘둘 말린 서신을 풀어 내용을 확인해 보면 그 첫 줄의 내용이란 이러했다.
―“Deus Vult.”
신께서 원하신다.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에게 성지를 빼앗김에 몹시도 애달파하시니.
너희, 주의 도구들아. 너희는 부름에 응하라.
신께서 원하신다.
이교도 사탄이, 저 사악한 칼리프이자 술탄이 죽었다.
예루살렘이 다시금 기독교도의 성스러운 영토로서 일어나고, 그 땅에는 오직 거룩한 찬송가만이 울려 퍼지게 될진저.
신께서 그를 원하시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이 글줄을 읽은 왕공들이 먼지 쌓인 갑옷과 창칼을 꺼내어 닦으니.
그들의 방패에는 하나같이 십자가가 새겨져 있더라.
예루살렘 왕국이 함락된 뒤 거의 200년만에 십자군이 재개된다.
* * *
“…이제 알겠나?”
간략한 설명을 마친 트로츠키가 삼각대에서 연필 하나를 빼어 내어 높이 들고는 말한다.
“유럽.”
저 연필 하나가 상징하는 수천만 명, 브리튼과 이베리아와 프랑스와 이탈리아… 모든 나라들.
대륙 하나를 손가락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던 트로츠키는 날카롭게 깎여 나간 연필의 심을 부러뜨리고는 그 조각들을 잘 움직여 안정적으로 세워 낸다.
“세 번째 다리는 유럽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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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막 (3)
“몽골의 계략이오.”
황자 젬이 연회 때 자신의 몫이었던 커피잔을 앞으로 내밀며 말한다.
어리둥절해하는 장군들 앞에서 그는 잔에 은수저를 던져 넣는다.
당연히, 색이 변한다. 그를 지켜보는 장수들의 안색도 마찬가지였고.
“적들은 주도면밀하였소. 이 자리에서 폐하를 독살하고, 더 나아가 그 지휘권을 인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나까지 같은 자리에서 처리하려 하였소. 만일 폐하께서 그렇게 빠르게 몸에 마비가 오지 않으셨다면 내가 어찌 이 독을 피할 수 있었겠소?”
그렇게 구구절절 해설한 뒤 젬이 손뼉을 치자 포박된 두 사람의 시종이 끌려 나온다.
분명 평소 파디샤의 곁을 지키던 이들이 얼굴이 온통 붓고 몸에 화상을 입은 채 나오니 모두들 긴장한다.
“이들이 나의 잔에 독을 탄 범인들이오. 아마 부황 폐하 역시….”
젬이 주머니에서 둘둘 말린 종이를 던지자 모두가 그 내용을 살핀다. 카간의 죽음에 경악한 몽골군이 어떻게든 최후의 발악을 위해 저들을 매수했다는 내용의 장구한 이야기.
뭐라 말을 꺼내려던 ‘범인’들을 병사들이 재갈을 물리고 끌고 간다. 그 발버둥에 흙바닥에 길게 자국이 남고 먼지가 튀었다. 젬은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저들은 반역자로서 죽을 것이오. 주님께서 반역자에게 응당한 벌을 내리시길. 아버지께서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영원토록 낙원에서 지복을 누리시기를.”
그렇게 모든 상황이 정리된 듯싶었다.
사실 파디샤의 암살은 몽골의 계략이었으며 젬 술탄은 그 죽음의 고비에서 겨우 살아나 사태를 진정시켰다는 이야기, 그것이 표면상 진실이 되는 듯했다.
허나 젬은 여전히 불안하다.
“젠장, 어째서 눈치채지 못한 건가?”
“생각보다 파디샤의 친위 정보 부대가 치밀했습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는 사이 황자 전하의 목숨을 위협했다니 예상외입니다. 사과드립니다.”
“사과하고 말고 될 게… 후…. 됐네, 지금 중요한 건 그 뒤의 허술한 사후 처리일세. 생각한 것보다 증거 인멸이 치밀하지 못하지 않았나?”
젬은 천막을 조금 걷어 두 사람에게 저 멀리 목매달린 두 구의 시체를 가리켜 보인다.
아까 뭇 장수의 앞에서 범인으로 내보였던 하인들의 몸이다. 이미 영혼은 두 몸을 떠난 지 오래다.
“저들은 진작 죽여 놨어야 하는데 한참이나 살려 놓고, 심지어 범인으로 내세우기까지 하다니 제정신인가? 다른 하인 아무나를 데려다 썼어야지!”
“저흰 황자님을 암살하려 한 이들을 활용하는 게 최선이라 여겼을 뿐입니다. 황자 전하의 암살 미수범과 파디샤의 암살범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더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저것들은 아버지가, 형님이 신임하던 이들이야! 저들을 몰아가서 죽였으니 이제 누가 의심을 받겠나!!!”
‘네놈이지.’
두 스파이는 그리 생각한다.
허나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친위 부대들을 아직 충분히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도 길길이 날뛰던 젬은 이내 두 사람이 자리에서 내뺐음을 알고 더욱 분개한다. 그래도, 머지않아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거래 관계는 이미 반역이라는 죄의 깊이만큼 깊어졌으니까.
헌데 그리 생각한 지 며칠이 지나도 그 의문스러운 남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군영 전체를 뒤져 보아도, 몸이 단 그가 심지어 암살 사건에 연관된 인물일지 모른다고 15만 군세 전체에 수배를 하여도 찾지 못했다.
마치 처음부터 두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젬이 사라진 수족들을 좇는 동안에도 역시나 걱정대로 곳곳에서 의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만일 정말로 몽골이 암살을 기도했더라면, 어째서 파디샤께서 승하하신 이후에도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가? 혹시….”
“말을 조심하게.”
그렇게 침묵 속에서, 속삭임 속에서, 은근한 시선의 교환 속에서 그 의심들은 자라나고.
“만일, 둘째 황자가 파디샤를 시해했다면. 우린 어찌해야 하나?”
계산들이 오간다.
그 수백의 계산들이 서로의 존재를 변수 삼아 끊임없이 굴러가고, 은근히 파벌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각자가 앞으로 급변할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구명줄을 잡아 보려 한다.
하나의 군대가 둘로, 넷으로, 여덟로, 그리고 무수히 쪼개진다.
그들은 연회를 급히 중단한 뒤 이스파한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