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63
이 상태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는, 어쩌면 유일할지도 모르는 가능성.
“폐하께서… 돌아가신 것 아닙니까?”
“닥치시오.”
이반 류리코비치가 사령관들만 모여 있는 자리에서 조심스레 말하자, 아락투무르의 말이 거칠어진다.
“루스인들의 공작이여, 그대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면 받기로 했던 우크라이나 일부의 자치권 역시 명목상 내 관할임을 기억하시오. 나는 여전히 폴란드의 왕이니.”
전쟁이 끝났으나 ‘파란왕’의 작위는 회수되지 않았다.
유럽 영토의 모든 통치권은 카간의 신료들에게로 위임되고 그 관리는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담당했지만, 여전히 아락투무르는 폴란드 왕이었다. 연금처럼 따박따박 수익이 나오는 게 다일지라도 말이다.
작위를 기반으로 격노를 꾹꾹 눌러 담아 그를 압박하자 이반 역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다.
아락투무르 역시 안다. 이반의 말은 이미 모두의 머릿속에 있던 의심을 그저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호루크다슨의 생사에 대해서 입 한번 뻥긋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지니고 있다.
카간의 죽음은,
곧 제국의 붕괴다.
에센 시절부터 그 위대한 정복자를 따라 세계를 장악했던 이 자리의 노장들은 모두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다.
만일 호루크다슨이, 카간이 죽었다면 카라코룸에서는 더 이상 에센조차도 정리할 수 없을 제위 분쟁이 펼쳐질 것이다. 어쩌면 내전까지도 가능하다.
각지의 족장들과 정주민 자치구들이 각 황자를 지지하며 한 움큼씩 제 세력들을 제국으로부터 잘라 가고, 세력 분쟁에서 밀려난 황자들이 그렇게 일어난 지역들에 편승하여 독립을 선언하기라도 한다면….
지난 20여 년의 위업은 고작 단꿈으로 끝나 버리리라.
“버, 벌써… 만호들의 병력은 반쯤 통제를 벗어나고 있소. 얼마 전에는 2만 정도가 독단적으로 대열을 벗어나 티무르 제국의 땅으로 향했소.”
다른 입들에서 나온 보고 역시 참혹하기 그지없다.
독립적인 군령권을 지닌 부족장들은 이미 카간의 죽음을 반쯤 확신한 듯했다.
“이 상태로, 간다면… 아락투무르 당신의 의지에 모든 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자리의 지휘관들도 마찬가지다.
“그게 무슨 뜻이오, 카탄투무르?”
“다, 당장 카라코룸으로 달려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케 몽골 울루스에서 가장 많은 군대를 데리고 있습니다. 여기 모인 15만 외에도 모으면 20만의 정규군이 우리 손에 있습니다.”
“우리 손이라니. 이는 폐하의 군대요.”
“폐하가 살아 계십니까!”
카탄투무르가 탁자를 쾅, 하고 내리치며 외치니 이제 이곳에는 침묵뿐이다. 그리고 카탄투무르 역시 이를 앙다물다가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이 대군의 총사령관입니다. 당신이 차기 황위의 결정자가 될….”
카탄투무르가 그 말의 무게에 못 이겨 끝을 얼버무리자 푸르게 식어 있던 모두의 얼굴이 이제는 잿빛이 되기 직전까지 간다. 그만큼 어둡고 무거운 침묵이 켜켜이 쌓여 가는데.
“황명이오.”
전장에 어울리지 않게 비단을 두른, 젊은 환관이 그들 앞에 나선다.
‘황명’.
그 한 낱말에 모두가 급히 돌아본다.
“폐하께서는 강녕하십니까? 확인이라도….”
“군대를 움직이지 말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리 아락투무르의 말에 답하기는커녕 제 말만 던진 채 환관은 입을 닫는다. 그에게 쏟아지는 온갖 질문과 아우성에도 눈 하나 깜짝 않더니 다시 카간의 천막으로 돌아간다.
이제 군막 안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황명이라니?
“여, 여기서 가만있으라니? 혹시 카간 폐하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이 벌써 다른 황자들에게 포섭되기라도 한 건?”
“황명이 날조되었다는 이야기요?”
“하, 하지만 그렇잖소! 어찌 숨길 이유가….”
그 내부의 소란은 바깥을 지키는 초병들에게도 얼추 들린다. 그들 역시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회의 내용을 가지고 저들끼리 몰래몰래 이야기꽃을 틔운다. 그를 지적해야 할 상급자들도 초유의 사태에 가만히 그 밀담에 끼어든다.
그런 실정이니, 귀 밝은 어느 병사가 그 밀담을 주워듣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주위에는 자신이 까막눈이라 이야기하고 다닌 그 병사가 일필휘지로 쪽지를 휘갈겨 침낭 밑에 숨겨 두기도 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속한 대로 침낭 밑을 뒤진 누군가가 야음을 틈타 그 쪽지를 오스만의 군영으로 전달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정말로 카간이 죽은 건가?”
“그렇다면 이미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들은 내부의 정세를 살피느라 감히 병사들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합니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와해되든 후퇴하든 할 테니 승전입니다.”
메흐메트의 눈과 귀로, 몽골 군영 내의 상황이 속속 전달된다.
* * *
전장에서는 간첩과 이중간첩이 넘쳐 나는 법이다.
아무리 방비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정보가 새 나가는 것은 피타고라스의 저 명쾌한 직각 삼각형 정리처럼 불멸의 진리이니. 이곳에서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 몽골 측에 전달될 것이다.
허나, 몽골의 혼란이 혼란이다 보니 새어 나오는 정보의 양이 달랐다.
지금 메흐메트와 휘하 장수들의 눈앞에는 몽골 군영 전체를 직격한 거대한 혼란이 하나하나 정리되어 있다.
대규모 반란부터, 와해와 군벌화의 이야기까지 많은 가능성이 언급되었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뿐.
“저들은, 이제 전투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메흐메트 2세의 신임을 받는 재상 카라마니 메흐메트 파샤가 감히 말했다.
그 지적이 옳았다.
만일 정말 카간이 죽었다면 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오스만과의 전투가 아니라 바삐 돌아갈 국내의 정세다. 애초부터 카간의 권위를 위해 시작한 전쟁, 카간이 없다면 전쟁의 이유도 없다.
“위대한 칼리프께서 우리를 승리로 이끄신다! 만세!!!”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벌써부터 흥분한 장졸들이 이리저리 떠들지만, 파디샤는 손짓한다.
“우리는 아직 몽골군 내부의 상황을 모른다. 또한 어차피 30만이라는 숫자가 지척에 버티고 있는 한 우리 역시 회군할 수 없다. 이곳에 당분간 군사를 주둔시키고 계속 상황을 살핀다. 저들이 반격해 오거나… 알아서 무너질 때까지.”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했지만 손짓하는 메흐메트 2세의 왼손은 떨리고 있다.
그 역시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만일 사실이라면, 정말로 카간이 죽었다면… 그의 제국은 앞으로 날아오를 일만이 남았다.
세계를 정복한 저들을 무너뜨린 오스만을, 누가 막아설 수 있겠는가?
몽골군은 매일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오스만의 군세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메흐메트는 구태여 아군보다 두 배는 많은 군세를 추적하거나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주시할 뿐이다.
대신 메흐메트 2세는 연회를 준비했다. 모두가 승기에 취하여 흥청거렸다. 그들을 다독이고, 앞으로의 계획을 짜내느라 메흐메트 2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아무도 우리의 죽음은 신경 쓰지 않는군.”
“우리가 폐하께 바친 충성은… 어찌 되는가?”
“벗들이 적에게 죽지 못했다는 그 사실이 너무도 부끄럽고 원망스럽습니다. 저격으로 카간을 죽였다 한다면 결국 우리의 희생은 크게 중요치 않았던 게 아닙니까?”
자신의 친위 부대들에게 미처 신경 써 주지 못할 만큼.
카프쿨루 시파히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그날의 사태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서로들 분열한 채다. 마찬가지로 파디샤의 근위대인 예니체리들 역시 흔들린다.
“전하, 작금의 사태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오스만의 둘째 황제 젬의 눈앞에서 대추야자 술을 따라 주는 어느 사내가 말하는 ‘작금의 사태’란 이런 이반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안타까운 일일세. 가장 숭고한 오스만국의 창과 화살과 방패들이 낙담한 꼴이라니. 이는 제국의 기둥이 흔들리는 사태지.”
“기둥이 흔들림이라 함은.”
젬은 그저 의례적으로 이야기했을 뿐이나, 사내는 그 한마디도 놓치지 않는다.
“곧, 새로운 집을 짓고자 하는 이에게는 기회이지요.
새로운 기둥을 세우고 새로운 지붕을 올릴 기회.”
젬은 그 말에 조심스럽게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나, 사내는 여전히 웃지 않는다. 뚫어져라 황자를 주시할 뿐이다.
그 시선의 무게를 눈치챈 황자는 술맛이 갑자기 쓰게 느껴져 대추야자 술을 바닥에 쏟아부었다.
“이거… 머리를 혼탁하게 만드는 액체를 들이부을 때가 아니었구만그래.”
“안타깝게도 모두가 뇌에 술을 들이붓고 있습니다. 가장 영리한 참모들과 가장 용맹한 장군들의 뇌수와 혈관으로 알코올의 어리석음이 스밉니다.”
“알… 코올? 그게 뭔가?”
“아, 고귀하신 전하께서는 알지 않아도 되는 말입니다. 그저 저희같이 누군가의 그림자와 수족으로 살 것들이나 알면 족하는 지식입니다.”
아첨하는 사내의 말과 함께, 누군가가 천막을 걷어 내고 들어온다. 황자가 경계하자 사내는 미소로 그를 안심시킨다.
하인으로 보이는 여자다.
“카릿트, 작전을 수행할 때다. 파디샤의 친위 부대들에 심어 놓은 첩자들이 여론을 흔들고 있다.”
“안 그래도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후말.”
서로를 진(جن, 흔히 ‘지니’로 알려진 아랍 전설 속의 존재.)의 이름으로 부르는 저 기묘한 모습도, 사내보다 한참이나 신분이 낮아 보이는 여자와 그에게 공대하는 사내의 알 수 없는 관계도 이제 젬에게는 익숙해졌다.
그 속뜻을 알지는 못해 언제나 불안하지만… 어두운 영역의 일들을 공모하는 사람끼리 모든 것을 터놓기를 요구할 수는 없으니.
카릿트과 아후말이라는 남녀가 나란히 젬의 앞에 무릎 꿇는다. 아후말이 고개를 들어 말한다.
“전하께서 보시기에, 형님인 바예지드께서는 아나톨리아에 남고 전하만 이렇게 원정에 참여한 이유가 뭐라 보십니까?”
겉으로는 무예에 능한 둘째를 더 믿어서 데려왔다는 명분이 있지만은, 이 자리에서 요구되는 대답은….
“혹시라도 아버지가 죽었을 때 형님이 빠르게 수도를 차지하고 차기 파디샤가 되라는 것이겠지. 내가 이상 행동을 보이면 아버지와 형님의 측근들이 내 목을 자르겠고.”
“맞습니다. 허나 형님께서 제위에 오르시면 전하의 안위는 어찌 될까요?”
“날 바보로 보는 게냐? 어리석은 질문은 그만두어라.”
“저희는 그저 전하의 결심을 도우려 할 뿐입니다.”
젬은 안다. 자신의 삼촌들은 아버지가 모조리 그 목을 쳐 버렸음을.
형님이 제위에 올랐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결단하셔야 합니다.”
“…작전은?”
“곧 모두의 경계가 흐려지는 날이 옵니다. 카릿트이 방금 이야기했듯 모두가 술에 흥청거리며 취하게 되는 순간.”
그가 이야기하는 그날, 그 순간이 언젠지 젬은 빠르게 눈치챈다.
아후말이라 불리우는 여자는 젬에게 작은 약병을 보이고는, 흔든다.
“색도, 냄새도 없는 독약입니다. 아주 귀하게 얻은 만큼, 가장 고결한 이에게 쓰여야 하겠지요.”
여자는 웃는다.
그러나 젬은 웃지 못한다.
대체, 저들의 정체는 무엇이기에. 어째서 나를 돕는 것인지.
그 의문을 언젠가는 풀고야 말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결단의 날이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길.”
머지않아 마침내 그들이 말한 ‘그 순간’이 온다.
지난 전투의 승자에게 점령된 이스파한의 시가지에서.
연회의 날이다.
종막 (2)
“아아, 아아아아….”
분명 리처드 밥 에드워즈라는 인간은 잉글랜드인이다. 리버풀 출신의 노동 계급, 노조 지도자.
그런데 수십 년 만에 조선 땅을 밟으니 쌀밥과 된장에 대한 그리움으로 미칠 듯이 눈물이 차오르는 연유란 무어란 말인가?
‘아마 저 섬 코쟁이들 음식이 더럽게 맛없어서 아닌가?’
가끔 고향 음식이라면서 에드워즈가 손수 튀겨다 주던 피시앤칩스를 먹어 본 권람은 그리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 역시 환골탈태한 고국의 모습을 감상하는 데 바빴기 때문에.
아스팔트는 석유 채굴을 하지 않으니 구하지 못더라도, 대신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가 사통팔달로 뚫려 있으니 이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물론 한양과 그 인근에만 한정된 이야기이기는 하다만, 이제 슬슬 자동차 산업에 대한 준비에 시동이 걸렸다는 의미이니 그 감회가 새롭다.
옆에서 에드워즈가 자동차란 게 어떤 건지, 그 운전대를 잡고 인간과 말보다 빠르게 질주하는 기분이 어떤지를 세세하게 설명해 주니 그 역시 10년 후 조선의 모습이 궁금해 미치려고 하였다.
“거기 둘.”
“옙, 트로츠키 동지.”
“환영회는 어제 제물포에서 연 걸로 충분하겠지? 이제 업무로 돌아갈 시간이네.”
어차피 휴가라면 지난 수 주 동안 귀국하는 선박 안에서 미친 듯이 즐긴 두 사람이었다.
지금 트로츠키에게 본국에 있는 두 사람의 쓸모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차라리 둘을 계속 러시아에 박아 놓는 게 낫다는 판단이 트로츠키의 머릿속에 선다면?
그 뒤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그들은 알았다.
지구상 그 어떤 군인보다 군기가 잡힌 표정과 자세로, 두 사람은 트로츠키의 부름에 응한다.
그렇게 들어서게 된 트로츠키의 사무실 내부는 적당히 어질러져 있고 또 적당히 깔끔한 무난한 공간이었다.
탁자 위로는 온갖 핀과 실이 얽혀 있는 세계 지도나 소련 전도의 모습이 눈에 띄었고, 둘 자리가 없어 응접용 탁자 위에까지 침범한 온갖 업무 자료들이 그다음으로 시야를 사로잡는다.
“미안하군. 요새 이래저래 일들이 많아서 말일세. 내가….”
“트로츠키 동지? 연설회까지 1시간 30분입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아네! 아직 내 개인 시간이야!!!”
갑작스레 들어온 비서를 내쫓은 모습을 보면, ‘이래저래 일들이 많아’ 보이는 수준이 아니다.
에드워즈는 어제 파티의 흥분과 광란 속에서 보지 못했던 트로츠키의 짙은 눈그늘과 주름을 본다.
…노구를 갉아먹어 가면서 뭔가에 열중하는 듯한데.
“크흠.”
트로츠키의 헛기침에 에드워즈의 잡념이 달아난다. 두 사람의 주의를 집중시킨 뒤 트로츠키가 가볍게 의자에 주저앉아 말한다.
“내가 자네들에게 묻고 싶은 건 이걸세.
삼국지연의 읽어 봤나?”
“…예?”
“저는 심심해서 읽어 봤습니다. 루스에서는 지루할 때가 많아서 말입니다.”
권람이 뭔 소리냐는 듯 의아해할 때 에드워즈는 먼저 답을 내놓는다. 권람 역시 상황 설명을 듣길 포기하고 따라서 고갤 끄덕인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자네들 보고서를 보고 내가 떠올린 게 있다네. 지금부터 듣고 그 타당성을 평가해 주게.”
그는 책상 위 어깨 높이까지 쌓인 서류 더미에서 능숙하게 한 파일철을 뽑아 들더니 그들에게 펼쳐 보인다. 아주 익숙한 제목이다.
소위 ‘에드워즈―아욱토리타스 보고서’. 자신들이 쓴 것이니.
“천하삼분지계. 천하를 안정시키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 개의 세력으로 천하를 나누라는 말.”
트로츠키는 자신의 말을 강조하는 듯, 어디선가 연필 세 개를 꺼낸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들어 두 사람에게 보인다.
“이게 소련일세. 그리고 나머지 둘.”
세 연필을 서로 기대게 하여 삼각대처럼 세워 놓는다. 수전증이 와서 떨리는 손으로도 빠르게 해내는 게, 많이 연습해 본 솜씨 같았다.
“소련과, 그에 특별히 우호하지도, 확실하게 적대하지도 않고 공존하는 세 개의 세력.”
트로츠키는 그 삼각대를 뿌듯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련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겠나?”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무용해서 그렇지.”
“또한 원산 내의 여론이 요동치지 않겠습니까? 수양의 세력을 평정함에 있어서도, 에센의 침략군을 물림에 있어서도 무력을 지양하던 이들입니다. 다시는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아니하니….”
“좋은 대답들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