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62
기병창이다.
안타깝게도 누가 그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그는 몽골군이 아군보다 두 배는 더 많았음을 기억해 낸다.
휘청하는 무스타파를 향해 두서넛의 몽골군이 달려오더니 각자 말의 목을 치고, 무스타파의 가슴을 때리며,
마지막으로 무스타파의 목을 쳤다.
그는 운이 좋게도 즉사했다.
목이 잘린 단면이 지저분한 것 외에는, 나름 깔끔한 죽음이리라.
* * *
“적 지휘관이 죽었다! 좌측을 돌파하라! 짐이 여깄다!!!”
호루크다슨은 눈앞에 얽힌 인간들의 그물을 살핀다.
아무리 전략안이 없다 하더라도 그는 몽골의 황자였고, 이제는 황제다.
어릴 적부터 배워 온 지식들이 그의 귀에다 전장의 흐름을 읽어 주었고 지근거리에서 내려지는 카간의 명령은 기병들의 사기와 전술적 대응을 개선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섰다 하더라도 몇 겹의 호위를 두른 채 아수라장에서 몇 발짝 벗어나 있는 상황이니 여전히 옥체는 안전하다.
이번 승리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만큼, 그리고 개중에서도 중기병 간의 격돌에서 완전한 승기를 잡는 것이 제일 중요한 만큼, 호루크다슨은 피아가 뒤엉켜 싸우는 전장을 꼼꼼히 관리하였다.
“폐하! 적 일부가 도망칩니다!”
“되도록 섬멸하되, 피해가 날 것 같으면 가감 없이 돌아서라!”
호루크다슨의 말에 고삐 풀린 듯 흥분한 기병들이 패주하는 튀르크인들과 로마인(Rum, 오스만 제국 내 발칸반도인을 일컫는 말)들을 척살하기 시작한다. 그 몸짓 하나하나에 전공을 늘리고 카간 앞에서 두각을 드러내고픈 욕심이 담겼다.
…반드시 초장부터 잘근잘근 전력을 다해 밟아 주어야 한다. 마치 어금니에 깨물린 땅콩이 흔적도 없이 으깨지듯이 압도해야 한다.
단지 카간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물론 그 또한 중대한 이유겠지만 다른 걸리는 것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눈앞의 병력을 통제하는 만호(萬戶)들이라든가.
저기 저 중기병들 사이에도 호루크다슨과 에센의 기조에 불만을 품은 만호들의 병력들이 섞여 있으니 저들이 제멋대로 튀지 않게 카간이 지근거리에서 통제해야 한다.
카간이 임명한 사령관의 명은 어길 수 있어도 카간이 직접 내린 명령은 벗어나기 어려울 테니.
“앞서 나가지 마라! 적은 적당히 몰아붙이고, 오스만인들의 화살이 닿는 사정권에 접근하지 마라!”
지금도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데 만일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또 무슨 독단 행동과 추태를 보이겠는가?
그와 별개로 중기병들의 싸움에서 점차 오스만이 사기 면에서도, 병력 면에서도 밀리는 듯 크게 후퇴하기 시작한다. 아군들이 기세 좋게 등을 돌린 몇몇 적들에게 화살과 창을 날리자, 나머지 적병들 역시 버티기에는 역부족인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친다.
곧 있으면 승리다.
수십만 병력의 일부라 할지라도 정예들끼리 치르는 초전이니만큼 결코 그 영향은 작지 않으리라. 아니, 오히려 막대하리라.
양자 모두 본진의 대열이 연이은 포격으로 흐트러져 있다 하더라도 유리한 것은 강 건너 북쪽과 동쪽에서 동시에 십자 포화를 날리는 몽골 쪽이다.
거기에 초전에서 저들을 꺽고 본대가 돌격해 가면 사기와 피해가 큰 오스만군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리라.
그래, 2배다. 2배의 병력으로면 제아무리 명장이라도 해낼 수 없는 게 있다.
저 메흐메트 2세라는 자도 결국 이곳에서 이기지 못하고 스러질 것이다. 그 시신은 새로운 몽골 제국의 주춧돌이 될 테고.
호루크다슨의 가슴이 뛴다.
지금 이 전투가 그를 세계의 황제로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감에.
* * *
다수인 몽골군을 상대로 오스만의 중기병들은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허나 인간의 눈이 두 개일지라도 그 시선이 양쪽으로 갈라져 두 곳을 살필 수 없는 이상에야 뒤통수에서 날아오는 투창을 피하면서 앞에서 달려드는 몽골군과 칼을 겨루기는 어렵다.
셋이 하나를 상대해도, 하나가 둘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 결국 조금씩 지친 오스만군들은 전략을 조금 바꾼다.
“젠장! 빌어먹을 새끼가, 또 피하나?”
“몽골말도 모르겠는데 뭐라 지껄이는지가 다 들리는구만. 네놈이라면 피하겠나!!!”
시간 끌기.
누구랄 것도 없이 그들은 현란한 기마술을 통해 몽골인들의 진로를 꼬아 놓거나, 빠르게 그 포위와 공격으로부터 탈출하는 기예를 선보인다.
순전히 공격을 포기하고 회피와 상대의 교란만을 염두에 둔 전략.
거기에 체력적으로 지쳤는지 몽골군들의 추격 속도가 점차 느려진다. 많은 수가 적은 수를 쫓더라도 포위를 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얽히고설킨 이상 요리조리 쥐새끼처럼 빠르게 나다니는 적병들을 좇기 어렵다.
점차 싸움이 지지부진해지고, 몽골군 역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체력 소모가 심하다 느낄 무렵.
“몽골 놈들이 물러난다!”
“우와아아아아!”
하나둘씩 뒤로 빠지는 적의 기병을 본 오스만인들이 환호한다.
그리고 그 환호성이 끊기기까지는 약 10초.
몽골의 지친 기병들이 비킨 사이로,
쌩쌩한 새 적들이 돌진해 와서 그 충격량으로 오스만 기병대를 말 밖으로 튕겨 버린다.
낙마한 이들은? 당연히 7할이 죽었다.
“역시 축차 투입이 답이었군.”
그 모습을 보며 호루크다슨이 건조하게 평했다.
“계속 밀어붙여라.”
* * *
“아군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지금 적 기병들이 본대 가까이까지 들어온 뒤 철수를 준비합니다!”
“곧 적 본대가 오겠군. …준비는?”
“아직 연락되지는 않았으나 지금 시간을 보아서는 거의 다 끝나 갈 것 같습니다.”
“‘거의 다 끝날 것 같’은 것으로는 아니 된다.”
장교의 말에 메흐메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승리를 위해 수많은 작전을 세웠고, 그중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확실하게, 얼마나 지나야 완전히 끝나겠나?”
“아, 아주 잠시면 됩니다! 아주 잠시만 기다리면….”
“서둘러야 한다. 준비가 되었든 안 되었든, 때가 되면 이쪽에서 빨간 깃발을 든다.”
메흐메트의 날 선 반응에서 알 수 있듯 시간은 촉박했다. 조금만 더 늦어진다면 작전 전체가 어그러질 상황이다.
메흐메트 2세가 기대하는 ‘비장의 수단’을 준비하는 병사들 또한 그를 알기에 멀리서 분주히들 움직였다.
“다들 장전은 끝냈나?”
“1열, 끝냈습니다!”
“2열, 진행 중입니다!”
“빌어먹을 새끼들아! 지금 몽골 놈들이 오잖아! 서두르라고!”
이들이 강가의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모습을 숨기고 대열을 갖추는 데만 꽤나 오래 걸렸다. 총구에 급히들 화약을 다져 넣고 둥근 총탄을 집어넣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첫째는 이들의 실전 투입이 흔치 않아서였고, 둘째는 긴장 때문이다.
이 전투가 이번 전쟁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데 그 승패의 반 이상을 좌우할 초전의 암수로써 메흐메트 2세가 그들을 안배했다는 사실은 신생 병과로서는 흥분되는 일이다. 지휘관으로서 근위 총병대장 아흐메트도 그 심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곧 모두가 죽는다. 분노한 메흐메트 2세에게든, 아니면 그들에게 들이닥치는 몽골군에게든.
“2열!!!”
“주, 준비를 마쳤습니다!”
“3열은?”
“장전 완료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기다려라!”
악마총.
그것은 유럽 세계의 두개골을 깨부순 일대 충격이었다.
고정된 총기 한 대에서 말도 안 되는 속도와 강도의 화력이 쏟아지자 눈 깜짝할 새 병사들이 쓰러져 죽어 간다니.
그 이름부터가 기독교인들이 몽골 침략자들의 가공할 만한 무기에 품었던 증오심을 잘 보여 주지 않는가?
허나 정작 유럽에서는 그 전훈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반영되기 직전에 몽골과의 전쟁이 끝나 버렸다. 또한 그 긴 전쟁 기간 동안 웬만하면 유럽 내에서의 대규모 분쟁이 자제되었던 터라 전술의 발전은 더욱 느렸다.
허나 그 충격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배울 기회를 얻었던 오스만은 달랐다.
오스만 기술자들은 지금 그들이 손에 쥔 화약 무기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개량해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찼다. 마찬가지로 전술가들 역시 어찌해야 이교도들의 가공할 만한 무기만 한 전력을 흉내 낼 수 있을지 고뇌했다.
어떻게 해야 저 악마의 총을 비슷하게라도 흉내 낼 수 있을지, 그리하여 몽골에서 언젠가 그 두려운 침략자들이 다가올 때 대응이라도 해 볼 수 있을지들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과실은 생각보다 달콤했으니.
강력하게 쏘아 내려면? 총열을 최대한 길게 뽑아 보자.
빠르게 쏘아 낼 수 없다면? 최대한 단기간에 많이 쏘아 내자.
3열로 선 총사(銃士)들이 가지런히 앞으로 뻗은 총열이, 나란히들 서서 장전하는 대열이 그 과실이다.
마침내 본대에서 커다란 붉은 깃발이 들어 올려지자 흥분한 병사들이 허겁지겁 심지에 불을 올린다.
그들은 주님과 그의 마지막 예언자, 그들이 이름을 외운 모든 선지자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줄줄 외며 축복을 빌었다. 이사(예수)시여, 술라이만(솔로몬)이시여, 무사(모세)이시여, 제발… 제발….
그리고,
“아, 아군 기병들이 아직 피하지 못했습니다!”
“뭐라고? 본진에선 대체 왜 깃발을 흔든….”
늦었다. 화승총의 심지는 이제 끝까지 타들어 갔으니.
수많은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는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눈먼 쇠구슬이 기병들에게 일점(一点)으로 모이는 충격을 선사한다.
* * *
―타타타! 타타타탕!
오른쪽으로부터 울린 굉음에 무심코 호루크다슨은 고개를 돌린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당황한 말들이 투레질친다.
“총이다!”
돌아보니 과연, 우측 수풀 속에서 번뜩이는 금속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한번.
―타타타타탓!
몸으로 쏟아지는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낙마하거나 운 나쁘게도 갑옷 사이로 총탄들이 파고들어 피를 쏟으며 죽는다.
아니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던 많은 기병의 갑옷이 뚫려 죽는다.
“젠장.”
“후퇴시켜야 합니다!”
“알겠다. 당장 깃발을 흔들어라. 본대로 돌아간….”
갑자기 젊은 카간의 말이 멈추자 근처의 모두가 순간 침묵을 지킨다.
카간께서 말을 못 이을 정도로 아쉬워하시는 건가?
하지만 초전일 뿐이다. 압도적으로 적을 박살 내지 못하고, 조금의 피해를 입더라도 전체적인 병력 우위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 위로하려고 재상과 부관들이 고개를 돌리자, 카간은 말 위에 없었다.
그들은 땅바닥에 쳐박힌 호루크다슨을 보았다.
왼쪽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 * *
“멍청아! 내가 뭐라고 했냐! 이 총으로는 저격 따위 안 된다니까! 다른 놈들이랑 같이 쏴야….”
“저, 저기….”
근위 총병대장 아흐메트는 혼자서 개인 사격을 갈기던 멍청이를 혼쭐내 주러 움직이다 그의 얼빠진 얼굴을, 그의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본다.
그 끝을 따라가니 몽골군의 깃발 중 가장 화려한 것들이 감싼 대열이….
“맞춘 것 같은데요?”
아흐메트는 제 눈에 들어온 광경을 믿지 못했다.
종막 (1)
“폐, 폐하! 지금 아군 기병들이 다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신앙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메흐메트 2세지만, 면피를 위해 이번만큼은 기도를 올린다.
“저들은 신실한 이들을 위해 주님께서 안배하신 곳으로 갈 것이다.
그러니 붉은 깃발을 들어라.”
가장 효과적인 타격 시점, 적들이 이제 슬슬 아군 궁수들의 사거리 등을 재 보면서 전진 속도를 멈추는 그 순간.
감속된 기병들이 뭉쳐 있는 그 아주 잠시의 적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 이익에 비하면 아군 기병 기백 명쯤 희생당하는 건 대수롭지 않다.
당혹한 부관은 파디샤의 단호한 눈을 바라보곤 설득이 불가함을 깨닫는다. 그가 손짓하자 붉은 깃발이 신호를 위해 올라간다.
이내 저 강변의 수풀 속에서 격발음과 함께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탄환들이 불특정 다수의 목표를 향해 눈먼 질주를 시작한다.
티티티티티티티팅.
갑옷에 튕기고, 뚫고, 스치면서 내는 그 소리는 마치 수천 개의 작은 종을 연달아 울리는 듯하다. 그래 봐야 사람들의 함성이나 바람 소리에도 쉬이 묻힐 작은 소리지만.
맑고 청명한 죽음의 소리다.
이내 기병들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쓰러진다. 그나마 몽골 기병들은 조선산 강철들을 몸에 두르고 있어 관통당하지는 않았지만, 쏟아지는 기묘한 충격과 울림에 사람과 말이 멀쩡히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본대의 총병대도 앞으로!”
거기에 전위의 기병들이 양옆으로 갈라지자 호위용 창병을 두른 총병대가 당당히 앞으로 나서선 화력을 더한다. 십자 포화에 몽골의 기병대가 물러나자 모두들 환호성을 부른다.
물론 몽골인들이 물러난 뒤, 소수의 카프쿨루 시파히 생존자들이 돌아왔을 때는 일순 침묵에 잠겼지만.
그들의 눈에는 배신감이나 원망보다도 당혹감이 짙었다.
최선을 다해 적들을 끌어냈는데, 그런 그들을 아군이 뒤에서 쏘아 댔다는 데 대한 당혹감.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할 줄 몰랐다는 듯한 아연함.
이내 카프쿨루 시파히의 지도자와 여러 지휘관들이 파디샤에게 항변하는 듯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었음에도, 메흐메트 2세의 태도는 침착하였다.
“그대들의 노고가 컸다. 그대들의 희생은 필요한 희생이었다. 초전의 승리는 그대들이 만들었다.”
“하오나, 폐하….”
“잠시.”
항의가 터져 나오려는 직전에 메흐메트 2세가 그들의 말을 멈춘다.
파디샤의 시선 끝에는 총병대가 보낸 사절이 있다. 특유의 금빛 단추 달린 제복이 그의 소속을 드러낸다.
“파디샤시여! 파디샤시여!”
쉬지 않고 말달려 온 듯 숨이 거친 그가 무릎을 꿇자 모두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다.
갑작스레 근위 기병대 지휘관들과 파디샤의 대화를 끊고서 다가올 만큼 무례한 건가? 아니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가?
“카간이 저격되었습니다!”
그때, 기병대의 불만은 순식간에 묻혀 버렸다.
떠들썩한 환호성이 오스만 군대 전체를 뒤덮는다.
* * *
아락투무르는 수십만을 족히 넘을 군세를 크게 뒤로 물렸다.
어차피 대도시가 근처에 있고, 강을 낀 채니 보급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곳은 페르시아의 주요 교역 도시 중 하나다. 30만을 먹이는 일 따위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카간의 천막은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들어간 의원과 시종들은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가끔씩 요강이 문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아예 천막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었다.
카간의 원래 측근이었던 문관과 환관들이 가끔씩 오가며 ‘황명’이란 것을 전할 뿐. 쥐새끼 한 마리도 그 거대하고 화려한 천막의 안팎을 노닐 수 없었다.
그러니까.
누구도 카간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상태로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