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5
울먹이는 얼굴을 손수건으로 훑어내는 바빌로프를 보며 트로츠키는 마음 속 삼각형이 맹렬히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저 심약한 양반이 낯선 곳에서 고생하지만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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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상륙해 야외 캠프를 짓고 근처 지형을 수색한 뒤, 시간적 여유가 생긴 이들은 잠시 현지인들의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낙후되었을 수가···.”
블레어가 탄식을 섞어 읊조리자 옆에 서 있던 올리버 로와 노먼 베순도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정박한 섬은 첫 인상과 다르지 않았다. 뭍에서 가깝고 소나무가 조금씩 자라난 그리 크지 않은 섬. 이곳에도 많지 않지만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해봐야 민가가 10채 정도. 그것도 흙벽을 대강 세우고 초가지붕을 올린, 그들 입장에서는 허접한 것들밖에 없다.
그리고 이 바다 짠내 나는 곳에서 살아왔을 이들은 증기선을 처음 보는 듯 대경실색하는 꼴들이었다.
현지 민심 관리 차원에서 의사 몇 명이 섬사람들 진료를 봐주러 나오자, 겁을 집어먹은 몇몇은 악마나 요괴라도 본 듯 숲속으로 도망치거나 배를 타고 가까운 뭍으로 흩어져버렸다. 그나마 식량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경계를 푼 주민들만이 좀 남았을 뿐.
“연일 근대화의 성과를 자랑하더니, 결국 일본제국이 자랑하던 ‘모범적 식민지배’의 현실이란 이런 것이었군요···. 마치, 500년 전쯤 중세로 돌아온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좀 나을 줄 알았습니다. 아니, 식민모국과 같은 인종, 비슷한 문화의 사람들이 사는 곳에 이리도 잔혹하단 말입니까!”
노먼 베순이 안타깝다는 듯 말하자 올리버 로도 젊은이다운 화를 참지 못하고 덧붙였다. 흑인으로서, 같은 유색인종이 세운 제국에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던 그였다.
영국인인 블레어는 영국이 ‘같은 인종, 비슷한 문화’의 아일랜드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했기에 말을 아꼈다.
“너무 급하게 드시지 마십시오. 목이 막힐 수 있습니다···.”
“ᄀᆞᄆᆞᆯ에 나ㅣ 며츠를 굴머 이거시라도 머거야겟소!”
“···이거 참, 말이 안 통하니 어찌할 수도 없군요.”
베순은 다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섬사람들을 내다보았다. 간식삼아 들고 나온 초콜릿을 조금 나눠 주었더니 이들은 누가 뺏어먹을세라 허겁지겁 먹어치우고만 있었다.
섬을 둘러보면 드문드문 밭뙈기들은 제대로 자라는 것 없이 시들한 것이 아마 기근이 심한 것 같았다. 기약 없는 굶주림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달콤한 고열량 식품이 얼마나 반가웠을지···.
이 가난하고 척박해 보이는 지역에서 무언가 얻어갈 수는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오히려 가진 것을 나눠 주어도 모자랄 것만 같았다.
“역시, 바빌로프 동지가 뭍으로 가서 일본 정부와 연락이 닿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군요···.”
블레어가 육지로 향해가는 보트 한 척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냉정한 말이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이야기였으니.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다들 눈앞의 광경에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어차피 그들은 떠나야 할 사람이다. 오히려 오래 머물러 이들에게 두려움과 부담을 더하느니 빨리 사라져주는 게 나았다.
“그래요. 바빌로프 선생과 일행들이 어떻게든 총독부 당국과 원만히 일을 진행해 줘야겠지요···.”
대의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던 그들은 이제 닥쳐온 현실에 그저 암울한 심정이었다.
이미 스페인에 닿는 일은 까마득하다. 언제 아시아를 빙 돌고 수에즈 운하를 지나 스페인에 닿겠는가? 그저 무사귀환만을 바랄 뿐···.
저 멀리 물결을 밀치며 16인승 구명보트 한 척이 고요한 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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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맙소사···.”
참담한 분위기는 구명보트 쪽도 마찬가지였다.
바빌로프는 분명 몇 해 전 조선으로 향하기 전 보았던 여러 서적들, 관광책자들, 일본측에서 제공한 자료들을 기억했다.
거기서 원산은 조선 제일은 아니더라도, 제이, 제삼의 항구쯤은 되는 번창한 도시였다. 사진 자료 속 원산, 통계수치 속 원산은 수많은 선박들이 내지와 조선을 연결하기 위해 분주히 오가고, 수많은 공장과 상점이 항만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며 팽창하는 활기찬 곳이었다.
그런데 이 광경은 대체 뭐란 말인가?
작고 초라한 어촌 마을.
낮게 엎드린 초가집들이 퍽 아늑하고 정답게, 다르게 보면 초라하고 궁벽하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공장도, 상가도, 항구도, 심지어 제대로 된 고깃배도 몇 척 없다.
뗏목과 작은 목조 나룻배 정도가 드문드문 해안에 묶여 흔들리고 있는 게 전부. 그 배들 중 많은 수가 지금 그들이 탄 구명보트보다도 작았다.
바빌로프가 경험한 조선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열차로 연결된 얇은 선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근대화’되고 ‘문명화’된 곳, 도시들이 자라나고 산업이랄 만한 것들이 존재하는 곳들이었다. 그 얇은 선 바깥의, 끝없이 펼쳐져 있는 농촌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심각하다. 근대화된 문명이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일본 정부에서 이 땅 전체를 그냥 방치한 것에 가깝다. 마치 수백 년 동안 시간이 조금도 흐르지 않은 것만 같다.
“어떻게···어떻게 이런 짓을···.”
그와 동행한 몇몇 젊은 공산주의자들도 의분을 참지 못한 채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이렇게나 사악했다니! 이렇게나 기만적이고 거짓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니!
그들은 최소한의 양심도, 위선도 없이 식민지인들을 수탈해오기만 했던 것인가!
그들이 식민지로부터 얻은 막대한 부의 부스러기조차도 나눠 주기 아까워했던 것인가! 하다 못해 수탈하기라도 편하게 철도나 항만을 지을 마음조차 없었던가!
“하루라도 빨리 이 땅에 해방이 다가오길 빌 수밖에···.”
바빌로프는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닦으며 그렇게 말하자 많은 공산주의자들도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 ‘500년 전쯤 중세로 돌아온 것’만 같은 땅, ‘수백 년 동안 시간이 조금도 흐르지 않은 것’만 같은 땅은,
실제로 1452년 6월 1일이었다.
“아니, 뭐라고? 왜적?”
“저···정말입니다. 피부가 불긋불긋한데 눈은 푸릇푸릇하거나 거무죽죽한 족속들이 와서 말을 거는데. 아무리 들어도 왜놈들 말이라서 부리나케 뛰어왔습죠!”
“맞습니다! 저희도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도 귀신 같이 산발을 하는 것들이 오길래 다같이 도망쳐 왔습니다요.”
진명현(鎭溟縣), 다른 이름으로는 원산현(圓山縣). 이곳은 지금 난리가 났다.
이 근방에 떠있는 섬 중 하나인 신도(薪島)에서 갑자기 십수명이 미친듯이 노를 저어 오더니만, 왜구가 출몰했다고 동네방네 소리를 지르고 다녀 진명현의 대부분이 겁에 질린 나머지 갖은 소란을 피워댔다.
그리고 진명현을 관리하는 호장인 김밀은 이 골 아픈 사건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저 무지렁이들이 고래고래 떠드는 내용을 듣자면 분명 나타난 것은 색목인인데, 동쪽 바다에서 와서는 왜어(倭語)를 쓴다. ···왜인들 말을 쓰는 색목인들? 말이 되긴 하는가?
그리하여 도망쳐온 어민들을 모조리 모아 헛소리 말라고 호통 치고 적당히 곤장이나 쳐서 돌려보내려 했더니, 이번에는.
“지···진짜로 온다! 얼굴이 불그죽죽한 왜적이다!”
“다들 도망쳐!”
맙소사, 정말로 저 멀리서 색목인들이 쪽배를 타고 온다.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는 의기양양한 표정들. 그리고 벌써부터 짐 싸들고 사방팔방으로 도망칠 궁리나 하는 현 사람들. 지금 통제 못 하면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는 어디 야산에서 몇 달은 덜덜 떨며 숨어있을 작정일 것 같다.
이 혼란을 수습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벼···병장기를 챙겨와라! 창고에 있던 칼이든 창이든 활이든 다들 챙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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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수상하군요.” 젊은 공산주의자 한 명이 멀리 해안을 내다보다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보십시오.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몰려 있는 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이대로 뭍까지 가도 될지 모르겠군요.”
“그럼, 한번 방향을 돌려가며 천천히 가봅···어?”
저 멀리 하늘에 작은 점이 보인다. 새라기에는 너무 빠르고, 벌레라기엔 너무 멀고.
점은 가까이 다가올수록 커지고, 빨라지더니···.
-휙! 퐁당!
휘파람처럼 경쾌한 소리, 그리고 무언가 귀엽게 물에 쏙 빠지는 소리.
이런 소리에 누가 겁을 먹겠는가?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지척까지 날아온 화살을 보기 전까지는.
“Fanculo(씨발)! 이···이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저기···저기 있는 인간이 수장인 것처럼 보입니다! 쏴버릴까요?”
“당신 미쳤어!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는 거야! 타국 공무원을 쏘면 당신 빼도 박도 못 해!”
퐁당!
“으아아악! 이건 미쳤어! 제 바로 앞에 떨어졌어요!”
“어···어서, 배를 돌려요! 노 저읍시다! 노 저어요! 노 저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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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역시 저런 나룻배 수준이면 이 정도 대처로도 어떻게든 되는군.”
역시 사람도 대여섯 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대강 겁만 주어 쫓아내는 것이 정답이었다. 괜히 집안에 있던 노비들이나 현민(縣民)들까지 불러 난리를 피울 필요도 없었을 듯싶었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배로 멀리서 여기까지 왔을까? 아마 왜국에서부터 풍랑에 휩쓸렸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가엾은 저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안 그래도 향리로서 지위가 흔들리는데 불안요소를 남길 수는 없다. 얼마 전부터 중앙에서 수령을 파견한다느니, 속현의 지위를 폐한다느니 자신의 모가지가 간당간당해지는 소리만 들려오는데.
작은 빌미라도 줬다간 자신이 끝장날 수도 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암, 절대 안 된다.
“자, 이쯤 해뒀으면 왜적들도 겁을 먹어 돌아갈 것이네. 이제 활들은 내려놓고···”
-휙······퍽!
“어?”
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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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Scheiße(젠장)! 사람이 맞았다! 화살에 맞았어!”
“괜찮네! 겁먹지 말게! 팔 쪽에 맞았으니 배로 돌아가면 살 수 있어!”
“으아아아, 어머니···아버지···. 아흑흑흑흑···.”
“어서! 어서 노를 젓게! 사람이 다쳤어!”
“네···넵! 알겠습니다!”
보트는 급하게 기우뚱하더니, 뱃머리를 돌려 왔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랍니까! 분명 관료로 보이는 사람이 무리를 모아 외국인을 위협하다니!”
“이건 정식으로 항의할 일입니다! 반드시 상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일단···돌아가서 어떻게 해봅시다.”
바빌로프는 자신의 선에서 일이 끝나기에는 선을 아득히 넘어버렸음을 알았다. 이제 그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활에 맞은 불행한 병사가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기만을 바랄 수밖에.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갈매기 우는 소리가 그렇게 불길할 수 없었다.
“와아아아! 해치웠다!”
“호장님, 해치웠습죠!”
“허허허허···”
약간 심란해진 마음으로 김밀은 무리를 해산시킨 뒤, 그 자신도 집으로 돌아갔다. 어민들의 들뜬 얼굴로 보아하니 자신이 한 며칠 동안은 영웅담처럼 오늘일을 서로 떠벌리고 다닐 것 같다. 아마 화살로 색목인을 직접 맞춘 놈은 정말 영웅 취급을 받을 분위기였다.
이 궁벽한 촌에 그래도 하나 있는 기와집이 그의 것이다. 공민왕 때 왜적이 이 근방을 불태워버린 뒤 고조부께서 다시 일으킨 이 소중한 집. 비록 제대로 된 거목을 못 구해 기둥들이 구불구불했지만, 곳곳에 단청이 칠해져 나름 울긋불긋하고 위엄 있는 게 내보이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나···나리! 일은 어찌 되셨습니까?”
“네가 신경 쓸 것 없이 다 해결되었다.”
행랑채에서 뛰어나온 걱정만 앞서는 몸종들을 물리고, 그는 사랑방 한 켠에 들어가 조용히 자리에 누웠다. 재수없는 일에 걸려 몸만 피곤해졌다.
사람을 쏘아 죽여서 죄받을 것 같기는 하다만, 저 뒷산 절간에 시주 좀 하고 정 뭣하면 무당이라도 불러 굿 몇 번 하면 업보도 싹 씻어지리라.
“여기, 지필묵이나 가져오너라.”
이제 남은 건 이 난리를 수령에게 보고하는 일이 전부다.
뭐 별 일이야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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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라는 곳 (3)
한편, 그 순간.
베순, 로, 블레어가 원산 근해에서 벽지의 빈궁함을 한탄하던 순간.
어느 불행한 자원병이 구명보트를 타고 원산항으로 넘어가다 눈 먼 화살에 맞던 순간.
조선의 왕 이향 또한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여봐라, 어찌하여 청심환을 바치지 않는 것이냐, 어흑흑흑!”
문밖에서 들려오는 곡소리. 아직 죽지도 않은 왕을 위해 수양대군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런 그의 연극적인 울음소리는 주상이 누운 방에까지 흘러와 어린 세자의 속을 뒤흔들고 있었다.
슬픔으로? 상실감으로?
두려움으로.
세자는 아바마마가 죽어가는 순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 작은 몸뚱아리에 무거운 면류관을 쓰고 뒤뚱뒤뚱 문무백관의 절을 받으러 행차할 생각에.
지금 이 순간 방안에 믿을 만한 대신 하나 없다는 생각에.
삼촌의 울부짖음 속에 숨은 야망에 대한 생각에.
임금에게 성인이 되길 요구하는 이 나라는 열두 살 소년에게 성숙을 강요하고 있었다.
세자가 물론 수양의 세력 확대나 김종서의 견제 같은 복잡한 정치구도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불편한 공기로,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달라진 분위기로 본능처럼 자신의 불안한 위치를 자각할 뿐.
“아바마마, 제가 아직 여기 있습니다···부디 떠나지 말아주십시오.”
세자의 말에 주위의 내관들이 통곡하였으나 이젠 그런 것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갸륵한 효심 같은 것이 아니라, 의존하고 의지할 유일한 존재에게 기대는 것인데.
저들은 어찌 저리 시끄럽게만 구는 것인가···. 어찌 저리 나의 마음을 흔들기만 하는 것인가···.
이제 조금씩 세자는 왕이라는 자리를 자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는 이 칼끝 같은 자리. 이 자리를, 아버지는 무책임하게 떠넘기고 가려 한다.
“흐···흐어어어···” 주상이 잠시 신음성을 내자 그가 되살아나는 줄만 알고 근처의 사람들이 주상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주상은 잠시 실눈을 떠 흰자위를 파르르 떨다가,
싸늘하게 식었다.
“전하! 청심환을 가져왔···.”
수양대군의 지시에 청심환을 가져오던 어의 전순의는 주상, 아니 주상이었던 것을 보고 다리 힘이 풀린 듯 턱 주저앉았다. 주상의 시신은 비단옷으로 감싼 지푸라기처럼 초라하고 흉하다.
일제히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자도 울었고, 전순의도 울었고, 나인과, 내관과, 소식을 전해들은 모든 선비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렇게 조선국왕 이향이 죽고. 조선국왕 이홍위가 태어난다.
이제 시대의 풍파가 어린 왕을 뒤덮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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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제발 살려줘!”
“어서, 상처부위 소독하고 마취약 가져와!”
“혈액팩 여기 가져왔습니다!”
비명소리, 뜀박질소리, 몰아쉬는 숨소리, 살과 체액이 움찔대는 소리.
그 모든 소리를 들으며, 트로츠키와 일행들은 멀찍이서 수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참담함, 또는 충격으로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트로츠키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베순 선생,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일단 위독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비교적 빠르게 조치를 취해서 환자는 안전합니다. 팔도 회복기간을 거치면 다시 쓸 수 있게 될 겁니다.”
“겨우 한 시름 놨군···. 수고해줘서 고맙소.”
노먼 베순의 말이 끝나자 안도의 한숨들이 터져 나왔다. 만일 저 병사가 죽었더라면, 아니 불구라도 됐더라면 자원병들의 사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이미 행선지로부터 불가사의하게 멀리 떨어져 모두가 혼란스러운 차에, 이런 사고가 일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앙적이었다.
그런 만큼 트로츠키의 감사는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간절한 심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아무튼 이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병사의 회복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자 오히려 예상과 정반대의 조류가 자원병들 사이에 흐르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이야? 일본 관리가 민중을 이끌고 화살을 쏘게 시켰다고?”
“당연하지! 내 눈으로 똑똑이 봤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염색도 안 되고 얼룩덜룩 때가 묻은 옷이었는데, 한 사람만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복장이었어! 그게 무슨 뜻이겠어!”
“이 잔인한 일본놈들! 꼴에 겁먹어서 죄 없는 조선인들을 방패로 내세우고는 우리에게 창칼을 들이밀었다고!”
“항의해야 해! 저 잔인한 일본 관리놈을 어떻게든 해치워야 한다고!”
“맞아! 제국주의자를 물리치자!”
“옳소! 옳소!”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식탁을 쾅쾅 두드리면서 분노를 폭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