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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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자고 있는 도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었다. 네아가 밖에서 일어나 보셔야 할 것 같다고 외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아가 자고 있는 저를 깨울 리가 없었으니까.
재빨리 일어나 문을 열었더니 네아가 숨을 몰아쉬다 외쳤다.
“하운 그 바보 같은 자식이!”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네아는 허공을 향해 하운에게 들릴 리 없는 욕설을 미친 듯이 내뱉더니 ‘마음 같아서는 거기서 머리 박고 혼자 죽으라고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아가씨까지 관련이 되어 버린 것 같다.’라고 말하며 서둘러 리엘라의 옷을 갈아입혔다.
“리엘라, 어디 가?”
방을 나와 마차를 타려는데 정원에서 하르메아가 비에 젖은 모습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그 모습에 리엘라는 더욱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리엘라가 아는 하운은 왕실의 명령을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두는 사람이었다. 왕실은 하운에게 하르메아의 곁에서 그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런데 하르메아를 여기에 두고 혼자 나갔다니? 도대체 하운에게 왕의 명령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나도 데려가. 심심해.”
리엘라는 저를 붙잡고 칭얼거리는 하르메아를 달래며 네아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건가요?”
“꽃 축제 행사장이요.”
“네? 거긴 왜…?”
하운이 이 밤에 그곳에 간 이유도 알 수 없었으며,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네아,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저도 짧게 전해 들어서 정확히는 몰라요. 다만 하운이 그곳의 조형물을 건드렸고, 그게 복잡한 문제가 된 거 같아요.”
“조형물에?”
들으면 들을수록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하르메아를 데려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엘라가 자신을 떼어 두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하르메아는 리엘라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하운에게 가는 거지? 그럼 나도 갈 거야! 하운이 내 거 가져갔어! 내 보석!”
“네? 무슨 보석이요?”
“정원의 식물들을 살려 준 보석. 그거 하운이 가져가 버렸어.”
그 말에 리엘라와 네아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하르메아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진짜 가지라고 한 거 아닌데…. 그냥 힘없어져서 놔둔 건데…. 그럼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해서….”
적당히 핑계를 대고 리엘라를 따라가려 했던 하르메아는 리엘라와 네아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가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리엘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르메아의 보석. 자신이 준 꽃잎. 그리고 꽃 축제의 조형물과 관련이 되었다고….
그러다 제가 하운에게 푸념하듯 날씨가 이래서 조형물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공개될 수 없어 아쉽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설마….’
하운이 하르메아의 보석을 자신이 만든 조형물에 사용한 것일까?
하지만 리엘라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 꽃잎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고, 또 중요한 것인지는 하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그 보석을 사용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리엘라는 잽싸게 마차에 올라타면서 소리쳤다.
“네아! 빨리 가요!”
“네, 아가씨!”
리엘라가 올라타자 네아는 한 번에 마부의 옆자리로 뛰어올라 자신이 나서서 채찍을 잡았다. 혼자 남겨진 하르메아가 소리쳤다.
“나는!”
“하르메아는 여기 있으세요! 절대로 다른 데 가지 말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굳은 얼굴로 리엘라가 소리치자 하르메아는 그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다. 하운이 소리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리엘라가 말하니까 왜 이렇게 무섭지?
리엘라는 무슨 소란인가 싶어 자다 깬 멜다 부인에게 하르메아 좀 잘 부탁한다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주라며 당부한 다음 미친 듯이 달려 행사장으로 갔다.
그리고 지금, 멜라니아가 자신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사주라니? 게다가 부정행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무서운 말들이 멜라니아의 입에서 쏟아지자 리엘라는 당황하며 움츠러들었다. 그런 리엘라의 행동이 찔리는 것이 있어 물러선 것이라 생각한 멜라니아는 더욱 기세 좋게 목소리를 높였다.
“저걸 보고도 모르는 척할 수 있어? 하운 대공이 네 조형물에만 보석의 힘을 썼다고!”
멜라니아의 말에 리엘라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제가 만든 하르메아를 보았다.
“…….”
그리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수많은 조형물들 사이에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고정되어 있는 모든 꽃들이 제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하고, 활짝 피어 있었으며 작은 이파리 하나까지 온 힘을 다해 힘차게 뻗어 자라고 있는 조형물. 마치 들판에 있는 식물들을 방금 가져다 심은 것처럼 생기 넘치는 모습에 리엘라는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홀로 빛나는 모습에 손뼉을 치고 싶을 정도였다. 이것이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리엘라는 제가 만들었던 하르메아 조형물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는 순간 더 이상 아무런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운이 꽃잎을 사용해 하르메아의 보석의 힘을 되찾아 이 조형물에 썼다는 사실을 한 번에 알 수 있었으니까.
리엘라가 시선을 고정한 채 그저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자 멜라니아는 근처에 서 있던 축제 관리국 직원의 손에 들려 있던 규정집을 빼앗듯이 가져와서 한 페이지를 리엘라 앞에 들이대었다.
“여기 보이지? 17조 3항. 주최 측이 지정한 것 외에 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종류를 불문하고 사용을 금한다.”
“…….”
리엘라도 알고 있는 조항이었다. 처음 꽃 축제가 열렸을 때는 없었지만 축제의 규모가 커지고, 유명세를 얻게 되면서 자신의 것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리하게 식물을 키우는 비료나 약품을 사용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생겨난 조항이라는 것을 책에서 봤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여기에 보석의 힘은 허가되지 않아. 그러니까 결론은 아주 훌륭한 부정행위라는 거지.”
“…….”
멜라니아의 말을 듣던 리엘라는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하운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돌아본 리엘라의 시선과 마주치자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리엘라는 말없이 그를 보다 옆에 서 있던 개최국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곤란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리엘라는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으며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나요?”
“어, 음. 이런 일이 저희들도 처음이라… 일단 작품은 저희들이 가져가서 정말로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조사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조사는 무슨 조사! 저렇게 증거가 확실하고 내가 현장에서 똑똑히 봤는데!”
조사라는 말에 멜라니아가 규정집을 흔들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럼 제가 작업한 부분을 따로 빼 내야 하나요?”
그 말에 직원은 더더욱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이것 전체가 한 작품이니 전부 다 수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직원의 말에 리엘라는 입술을 씹었다. 이걸 다 가져간다고? 하운이 되살린 부분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그사이 직원 몇 명이 정원 관리부가 만든 조형물의 주변을 살피며 이것을 어떻게 옮겨야 하나 이야기하는 것이 들리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클로에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까지 포함이 되다니?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저기, 멜라니아 양. 잠시만 저와 이야기 좀….”
리엘라는 멜라니아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탁!
하지만 리엘라의 손이 닿기도 전에 멜라니아는 짜증스럽다는 듯 리엘라의 손을 쳐 내고는 경멸을 담아 노려보았다.
“너 진짜 싫다. 클로에는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그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마치 더러운 것이 닿았다는 듯 제 손을 옷에 쓱쓱 닦은 멜라니아는 팔짱을 낀 채 리엘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쯤 했으면 발뺌하는 것 좀 그만두지 그래? 경매장에서 말도 안 되는 돈으로 꽃을 사 갔을 때부터 마음에 걸렸는데, 그 이후로도 돈으로 다 해결하려고 했다면서? 그래도 어차피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고, 돈 많은 사람이 펑펑 쓰겠다는데 뭐라 할 이유도 없어서 그러려니 했어. 그런데 꽃 축제에까지 네 돈을 흔들면서 들어오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한 번 경고를 받았으면 눈치라도 볼 것이지 기어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선 또 규정을 어겨? 이럴 줄 알고 내가 계속 감시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모르는 척했을 거 아냐! 도대체 어디까지 더럽게 굴 셈이야?”
“멜라니아!”
소식을 듣고 온 것일까. 헉헉거리며 달려온 클로에가 멜라니아에게 소리쳤다.
“넌 빠져, 돈의 노예야! 클로에, 너한테도 실망이야! 모리스 경도! 다들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이게 진짜, 누가 뭐의 노예라고? 야, 멜라니아! 너 내가 생각한 것 막 내뱉는 버릇 고치라고 했지!”
“내가 틀린 말 했냐! 왜? 바른 소리 하니까 찔려?”
멜라니아가 클로에의 손도 쳐 내자 클로에 역시 지지 않고 멜라니아에게 소리쳤다. 둘 사이에도 험악한 공기가 흘렀다. 자칫하면 당장 서로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라이벌이라고는 하지만 비슷한 나이인 데다 같은 시기에 일을 시작한 탓에 업계에서 언제나 마주치던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꽤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는 것을 리엘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이야.
멜라니아는 클로에의 이야기는 더 듣지 않겠다는 듯 한쪽 귀를 막고는 다시 리엘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리엘라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야, 너. 사람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도대체 너 때문에 축제 시작하기 전부터 생기는 잡음이 몇 개야? 호슨 공작님께서 후원하실 때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어. 덕분에 꽃 축제의 명성도 올라갔고. 그런데 당장 너로 바뀌자마자 첫해부터 이게 무슨 난리야? 네가 꽃 축제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 거라고!”
호슨 공작의 이름이 나오자 리엘라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멜라니아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따지고 보면 어떻게든 꽃 축제에 참가하고 싶다는 제 욕심 때문이었으니까.
자격을 박탈당했을 때, 그냥 단념했으면 좋았을 것을. 정원 관리부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을 때 거절했다면 좋았을 것을.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호슨 공작님의 이름이 이런 일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클로에는 오랜 친구와 서로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고. 그리고 하운은….
리엘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제대로 저를 바라보지 못하는 하운을 보았다. 지금 그에게 평소의 당당함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의 부끄러움과 죄스러움, 미안함이 하운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잖아도 호슨 공작의 보석을 쓴 탓에 지쳐 있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식은땀이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 역시 처음 보는 하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리엘라는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하운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든 이 일을 수습해야 했다. 자신이 멋대로 한 일이었다. 리엘라가 모든 것을 부탁했다는 오해만큼은 풀어야 했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던 멜라니아에게 다시 한번 설명하기 위해 하운이 한 걸음 다가가려는 순간, 리엘라가 멜라니아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멜라니아 로헴. 당신이 말한 대로입니다. 전부 제가 부탁드린 일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