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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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장사 잘되네.”
리엘라는 새롭게 단장한 리나네 가게 앞에서 놀라고 있었다. 원래도 브릭스 거리의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였으며,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닫는 가게였던 탓에 언제나 붐볐던 곳이다. 그런데 오래된 내부를 수리하고 새로 문을 여니 그야말로 가게는 빈 테이블 하나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리엘라는 가게 앞에 꾸며진 정원을 보았다. 공작저에서 리나가 자신에게 팔라며 조르고 졸라 가져갔던 나무들이 잘 자리 잡은 것이 보였다. 그 외에도 화단의 꽃들도 전부 활짝 피어서 잘 관리되고 있었고. 공작저의 정원사들이 직접 와서 도와준 것도 있었고, 리나 역시 제대로 가꿀 생각이 가득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리엘라는 네아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가득했건만 가게 안은 조용했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신문을 들고 있었으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역시 목소리를 낮춘 채 조용히 소곤거렸다. 테이블 옆을 지나가면서 리엘라는 그들이 하는 말의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네이판타가 다시….”
“…북부는 괴멸 상태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침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르디아의, 아니 대륙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다시 부활하기까지 길게는 몇백 년이 걸릴 거라 예상했던 드래곤이 부활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부활하자마자 몇 개인지도 모를 마을을 불태우고 박살 냈다. 아직까지 정확한 집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사망자가 최소 몇천 명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아마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리엘라는 입을 다문 채, 가게 안쪽에서 서빙을 하고 있던 리나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리나는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빈자리가 없어서….”
“나야.”
“어?”
그녀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뭐야, 왜 얼굴이….”
리나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분명 앞에 또래의 여자가 서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도무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지나가다 얼핏 스쳐 간 사람처럼 말이다. 리나가 굳어 비명을 지르기 직전 리엘라가 급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쉿. 나야, 리엘라. 네아가 힘을 썼어.”
그 말에 리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말했다.
“놀랐네. 이리 와.”
리나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걸린 줄을 잠시 치우고 리엘라와 네아를 2층으로 데려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긴 복도에 가운데에 두고 큰 방이 몇 개 늘어서 있었다. 딱 보기에도 큰 파티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중 첫 번째 방으로 리엘라와 네아가 들어가자 리나는 재빨리 문을 닫았다. 그러자 네아가 곧바로 환시의 사파이어의 힘을 거두었다.
“오, 이제 제대로 보인다.”
리나는 신기하다는 듯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어서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잠깐만 기다려. 식사 가져올게. 내가 알아서 가져와도 되지?”
“응. 너무 많이 가져올 필요는 없어.”
“안 돼. 부모님이 너 오면 아예 가게 문을 닫고 모시겠다고 했다고. 깨작대다 간다고 하면 울면서 올라오실 거다.”
낄낄 웃으며 내려간 리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양손에 큰 접시를 들고 왔다. 네아가 재빨리 접시를 넘겨받아 테이블 위에 올렸고, 그것을 본 리엘라는 반가운 얼굴이 되었다.
“너네 집 명물 오랜만이다.”
튀기듯 구워 낸 계란과 베이컨, 신선한 채소가 종류별로 가득 들어 있는 샐러드, 속이 꽉 찬 샌드위치와 한쪽에 칼집을 내어 구운 소세지, 작은 그릇에 담긴 그라탱과 치즈가 듬뿍 들어간 양파 수프 등등….
올 때마다 시켜 먹는 메뉴였다. 사실상 가게의 어지간한 음식을 큰 접시 하나에 조금씩 올린 것이었으니까. 하운을 이곳에 처음 데려왔을 때도 주문했던 음식이었다. 리엘라가 잘 먹겠다고 말하고 포크를 집기 전에 리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2층 비워 놨어?”
“딱 보기에도 여기 파티용이잖아. 북부의 소식이 들려오고 나서 예약 전부 다 취소됐어. 사람이 많긴 하지만 굳이 여기까지 열어서 받을 생각도 없었고….”
한숨을 쉬며 대답하던 리나는 리엘라에게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넌 북부 소식 뭐 들은 거 없어? 하운 대공님은 뭐라고 하셔? 네아 씨도 혹시 북부로 가시나요? 소문을 들으니 모든 보석술사들을 소집한다고 하던데.”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지 리나는 빠르게 질문을 쏟아 내었다. 리엘라는 힘없이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 한 입 우물거린 다음 대답했다.
“나도 아직은 잘 몰라. 하운 님은 왕궁에 가신 지 3일째인데 아직 연락도 없고… 들어 보니 대신들이랑 전부 본궁 안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네아는….”
리엘라는 네아를 돌아보았다. 네아는 멍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다 리엘라가 바라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놀란 얼굴로 말했다.
“네? 무슨 말씀 하고 계셨죠?”
“네아 씨도 북부로 가요? 보석술사들은 다 가야 한다고 들어서요.”
리나가 다시 말하자 네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못, 아니 안 가요. 저는 좀 특수한 케이스로 등록이 되어 있는 터라 왕실의 소집에 응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다행이네요. 지금 북부 엄청 위험하대요.”
“…….”
“…….”
리나의 말에 대화가 잠시 멈췄다. 리나는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다. 네아는 가지 않지만, 그곳에 꼭 가야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리나는 리엘라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꽃집은 잘 다녀왔어?”
“으응, 네아가 사람들의 눈을 속여 준 덕분에 청소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더라. 공작저에서 왔냐고 물어보길래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청소하고 왔지.”
리엘라는 모르는 척 발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오늘 브릭스 거리에 온 것은 오랫동안 비워 둔 가게를 청소하기 위함이었다. 오랜 시간 장사했던 곳이라 정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이제 그곳에서 더 장사를 하긴 힘들 것 같아 계약을 해지해야 겠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남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안을 청소한 다음 겸사겸사 리나에게 들른 것이다.
“그런데 가게 정원 잘 만들어졌다. 어디 문제 있는 부분은 없어?”
“아직까지는 특별히 없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내가 해야지, 뭐. 처음에는 실내에 들인 화분들이 좀 시들시들했는데, 물 주는 횟수랑 비료를 좀 다르게 주니까 괜찮아지더라고. 나무마다 줘야 하는 게 달라서 아직 헷갈리긴 한데 전부 기록해서 정리해 두는 중이니까 괜찮아지겠지, 뭐.”
“응응, 그렇게 일지를 적어 두는 게 좋아.”
어느새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정원 가꾸기로 넘어갔다.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여기 있었냐.”
“언니!”
“아일리 언니 왔어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아일리였다. 북부 국경지대의 정보가 필요하다면서 왕궁으로 호출된 그녀 역시 하운처럼 왕궁에 들어가더니 연락이 끊겼다. 그런 아일리가 나왔다는 건….
“언니, 하운 님도 나왔어?”
“넌 지금 일하고 온 언니에게 남자 친구 안부를 묻고 싶냐?”
“으아아, 아파!”
아일리는 리엘라의 볼을 잡고 흔들었다. 은근히 손이 매운 터라 리엘라는 눈물이 핑 돌았다.
“언니,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 아직.”
“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일리는 잽싸게 일어나는 리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친동생보다 네가 훨씬 낫다. 팬케이크는 여섯 장에 시럽은 두 배 뿌려 줘!”
“걱정 마세요!”
리나가 내려가자마자 아일리는 곧바로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한 다음 리엘라와 네아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은 대외비야. 어차피 이틀 후에는 다 알려지겠지만 그동안은 그냥 머릿속에만 담아 두고 입 밖으로 내지 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이야기하던 아일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자 리엘라는 입 안이 바싹 말라 왔다.
“북부 전선은 현재 연락이 두절된 곳이 많아 아직 확실하게 집계된 건 아니지만, 현재까지 최소 15개 마을과 만이천 명 이상이 희생되었어. 이건 우리 카르디아 측의 피해 상황이고, 국경이 닿아 있는 테티아 역시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피해가 있다고 해. 최전방의 보석술사들이 네이판타를 막으려고 했지만, 그곳에 남아 있던 자들은 전투에 능한 자들이 아니어서… 아마 전멸했을 것으로 보더라. 오늘 자정을 기해서 전국의 보석술사들에게 소집령을 내릴 것이고, 3일 후에 선발대가 출발할 거야. 그 선발대를 이끄는 건… 당연히 하운 대공이고.”
“…….”
아일리의 말에 리엘라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플레노트가 잠들기 전까지 북부 전선에서 계속 머물던 하운이다. 그곳의 지형을 잘 알고 있을뿐더러 드래곤을 상대하기에 하운 이상의 적임자는 없었다.
잠시 침묵하던 리엘라가 질문했다.
“그런데 왜 네이판타야?”
“응?”
“북부 전선에 잠들었던 건 플레노트잖아. 왜 네이판타가 거기서 깨어났대? 드래곤들은 같은 곳에서 사는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일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휴, 여기까지 말했는데 더 숨겨 봤자 뭘 하겠냐. 그게 아직 확실하진 않은데… 네이판타가 플레노트를 잡아먹었다고 보더라.”
“뭐?”
순간 리엘라는 소름이 돋았다. 동족을 잡아먹다니?
“그리고 이번 여름의 셀비아스 소멸도… 네이판타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드래곤이… 다른 드래곤을 먹어?”
“그러게. 나도 몰랐던 사실이야.”
아일리의 대답에 리엘라는 하르메아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하르메아도 항상 하루 내내 뭔가를 먹고 있었다. 그나마 사람은 잡아먹지 않았지만 틈만 나면 하운의 손을 입에 넣고 쯥쯥 빨아 대다가 그녀에게 혼나지 않았던가.
‘하르메아는 괜찮을까?’
메아닌 산맥에 금방 다녀온다고 했는데 그 금방이라는 게 인간의 시간으로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하르메아도 네아판타가 잡아먹은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네이판타는 지금 플레노트의 레어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추측한대.”
리엘라는 아일리의 말을 들을수록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불안하다. 단지 하운이 전쟁터로 가게 되어서, 하르메아가 걱정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마차를 오래 탄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네이판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이름을 들을 일이 더는 없으리라 생각했던 드래곤.
손안에 식은땀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던 리엘라는 문득 의아했다. 평소라면 네아가 이를 어쩌냐며 말을 꺼냈을 텐데.
리엘라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오늘 하루 내내 조용한 네아가 리엘라의 뒤에 서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네아가 말했다.
“왜 그러세요?”
그렇게 말하는 네아의 얼굴에는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
같은 시각, 공작저는 갑자기 도착한 마차에 당황하는 중이었다. 마차에는 왕실의 문장이 박혀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호슨 공작이 살아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에 왕실의 문장이 박힌 마차가 드나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도착한 마차가 수십 대라면 아무리 어지간한 일에 단련이 된 집사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집사는 말에서 내리는 하운에게 다가갔다.
“대공님,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이 마차는 다 무엇이고….”
하운은 품에서 국왕의 서명이 담긴 문서를 꺼내 당황하는 집사에게 보였다.
“국왕 전하의 명령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카르디아 내의 모든 힘을 가진 보석은 국외로의 반출을 금지한다. 또한 그중에서 호슨 공작이 소유했고 현재 리엘라 테니어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모든 보석들은 북부 전선의 안정화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순간까지 왕실이 대여하는 바이다.”
빠르게 말한 하운의 눈이 저택을 훑었다.
“네아는 어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