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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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치는 강아지들 사이에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리엘라는 저에게 달라붙어 있는 에르첼라의 컬렉션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강아지는 귀엽기라도 하지, 얘네들은 그 위력을 생각하면 귀여운 건지 무서운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익숙해진 데다가 소르디아에서 함께 좀 있었다고 나름대로 정이 들긴 했다.
리엘라는 제 목에 붙어 있는 목걸이를 슬쩍 떼어 낸 다음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잘 있었어요?”
웅웅웅!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말을 걸었더니 대답이라도 하듯 보석들은 진동했다.
‘어째서 수가 더 늘었어?’
물론 에르첼라 컬렉션이 여러 보석들로 이루어진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보석들은 목걸이처럼 굴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죄다 움직이며 찰싹 달라붙는 건지. 리엘라의 궁금함을 짐작한 것처럼 레이안이 말했다.
“원래 에르첼라 컬렉션은 완성에 가까울수록 힘이 강해지지. 아직 못 돌아오고 있는 게 좀 있어서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중요한 보석들은 다 모였으니…. 여하튼 많이 모일수록 힘이 더 강해져.”
“네. 그런데 제가 할 일은 무엇인가요?”
리엘라는 제 손목에 슬금슬금 감기는 팔찌를 보고는 손바닥으로 그만하라는 듯이 툭 쳤다. 그러자 들켰다는 듯 움찔거린 팔찌가 잠시 후에 다시 슬쩍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 봐도 기괴한 장면이긴 했다. 그래도 이젠 익숙해졌는지 처음처럼 놀라진 않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길들이기?”
“길들이기요?”
“에르첼라의 컬렉션이 힘을 되찾은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흥분했는지 말을 듣지 않아서. 지금 이 방에 다른 보석술사들이 왜 없는지 알고 있나?”
그 말에 리엘라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레이안의 말대로 방 안에는 보석들만이 있을 뿐, 보석들을 관리해야 할 보석술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라의 보물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것들이고. 보석술사 수십 명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보석들인데 아무도 없다니?
“…말을 안 들어서 그래.”
“네?”
“말을 안 듣는다고! 일곱 살짜리 애들도 얘네들보다는 차분하고 말도 잘 들을 거야! 아니, 도대체 에르첼라는 어떻게 이런 보석들을 다루면서 살았던 거지? 목걸이가 돌아와서 다른 보석들을 깨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후로 낮이고 밤이고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보석의 방에서 난리를 피우는데, 보석술사들이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할수록 더 말을 안 들어!”
레이안은 그동안 눌러 두었던 화를 폭발시키듯 보석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레이안이 목소리를 높이자 리엘라에게 달라붙어 있던 보석들이 둥실 떠오르더니 슬금슬금 그녀의 뒤로 숨었다.
보석들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쟤 왜 저래?’, ‘몰라.’라고 말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에 레이안은 이마를 짚었다.
“잡으려 하는 보석술사마다 시달리다가 포기했네. 이제 곧 북부 전선으로 보내야 하는데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곤란해. 그러니 자네를 부른 건데…. 보아하니 적임자가 맞군. 왕의 명령이야, 리엘라 테니어. 보석들이 북부로 가기 전까지 말 좀 잘 듣게 길들여 주길 바라네.”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요!”
비명에 가까운 리엘라의 목소리에 레이안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냥 자네가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될 것 같군. 지금 이것도 많이 순해진 거야. 어제 다른 보석술사랑 들어왔을 때는 그 보석술사를 굴리면서 갖고 놀던데? 아, 내가 무사한 건 나에게도 장난을 치려는 걸 내 아내가 사정없이 후려쳤기 때문이야. 이 녀석들 레티시아는 무서워해서.”
“…….”
리엘라는 언제나 서늘한 표정인 왕비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녀라면 보물이고 뭐고 개의치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다른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그래서 자네가 이곳에 오게 된 걸세. 얘네들이 자네 말은 잘 듣잖아?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을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북부로 간다는 건 무슨 말인가요?”
“애초에 에르첼라의 컬렉션은 에르첼라 왕이 드래곤 로드와 대적하기 위해 대륙 각지에서 모은 보석들로 만든 것이야. 이건 장신구가 아니라 대드래곤 무기지. 이틀 전에 왕실은 이것을 북부 전선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어. 아,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도착하기 전까지는 비밀이야. 드래곤 로드 이후로 공식적으로는 컬렉션 전체가 처음 궁 밖으로 나가는 것인지라 일찍 알려지면 사람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크거든.”
“네!”
비밀이라는 말에 리엘라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드래곤 로드 이후로 처음.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리엘라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에르첼라 왕이 드래곤 로드를 쓰러트린 이후로 카르디아에는 수없이 많은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에르첼라 컬렉션이 다 같이 궁을 나선 적은 없었다. 즉, 지금은 드래곤 로드와 맞설 때만큼이나 비상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하여튼 북부 전선의 큰 힘이 될 보석들이니 잘 부탁하겠네. 시간을 정해 두는 게 좋겠지. 매일 한 시부터 여섯 시까지. 에르첼라 컬렉션이 북부로 출발하기 전까지 매일 와서 보석들을 상대해 줘야겠어.”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뭐지?”
“이런 상황이면… 보통 저를 포함해서 보내는 쪽을 선택하시지 않나요?”
리엘라는 레이안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보석의 통제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에르첼라 컬렉션과 같이 보내 버리는 편이 훨씬 편할 터였다. 그런데 왜 귀찮게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아, 물론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와 레티시아는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하운이 눈치를 채고 연락하더라고. 자네를 북부로 보내면 가만 안 두겠다고. 아니, 어딜 감히 동생이 형에게 협박을 해? 하늘의 도리가 땅에 처박혔어.”
그것보다 대공이 왕을 협박한 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었지만 리엘라는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공원에서 봤던 사람들과 조금 전 연회장에서 보았던 상황판이 생각났다. 여기서 간접적으로 보는 전쟁도 가슴을 선득하게 만들었는데 그 한가운데로 직접 가게 된다면.
리엘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레이안이 황급히 말했다.
“아, 걱정 마. 걱정 마. 자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 남아야 해. 안 그러면 하운이 반역을 일으킬 기세니까.”
“…그건 그것 나름대로 걱정인데요.”
“…뭐, 그렇긴 하지.”
카르디아에서 제일 위험하고 강한 남자를 연인으로 둔 리엘라와 동생으로 둔 레이안은 각자 복잡한 마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일단 잘 부탁하네. 밖에 시종들이 있으니 필요한 것이라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게. 그럼 난 이만. 인사는 되었으니 보석들하고 놀아 줘.”
레이안은 허겁지겁 허리를 숙이는 리엘라에게 손을 흔들고는 재빨리 보석의 방을 나왔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시종들이 앞서 걸었고, 그들과 함께 회의실로 이동하면서 레이안은 생각에 잠겼다.
도움 될 것이 없느냐는 말에 굳은 표정이 되던 리엘라의 모습이 생각났다.
호슨 공작의 상속인.
‘평범한 사람은 절대 아니야.’
레이안은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길에서 꽃을 팔던 여자. 우연히 호슨 공작과 연이 닿게 되어, 호슨 공작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공작저를 드나들며 친밀하게 지내던 여자.
레이안도 하운만큼은 아니어도 어릴 적부터 호슨 공작을 보아 왔다. 언제나 마음 가는 대로, 제멋대로 구는 것처럼 보이는 호슨 공작이었지만 대부분은 숨겨진 뜻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호슨 공작이 하운과의 약속조차 무시하며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평범한 여자에게 제 모든 것을 물려줬다?
‘분명 뭔가가 있지.’
이상한 점이라면 많았다. 우선 에르첼라의 보석이 저리도 따르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기록을 보면 아주 가끔 보석들이 유난히 잘 따르는 사람이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 리엘라에게 하는 것처럼 졸졸 쫓아다니는 정도는 아니었다.
리엘라를 따라다니는 것은 보석뿐만이 아니다. 하운 역시 넋을 놓고 졸졸 따라다니지 않았던가. 리엘라 테니어를 에르첼라 컬렉션과 함께 북부로 보내는 것에 대해 넌지시 뜻을 밝혔더니 하운은 평소 잘 쓰지도 않는 통신용 보석을 이용해 레이안에게 독대를 신청했다. 레이안은 그렇게 눈에서 불을 뿜는 하운을 처음 보았다.
“제가 무엇을 위해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에 있었으면 한 대 쳤겠다 싶을 정도로 하운은 펄펄 날뛰었다. 하여튼 하운은 리엘라를 이쪽으로 보내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으르렁거렸고, 왕실은 리엘라를 북부로 보내려던 계획을 깔끔하게 접어야 했다.
‘게다가 그 드래고니안도 잘 따른다고 했었지.’
왕실이 언제나 주시하고 있는 위험인물. 호슨 공작이 살아 있을 때야 맹약의 헬리오도르가 그 드래고니안을 통제했지만, 호슨 공작이 세상을 떠난 지금은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붙들어 두지 못한다. 그런데 그것이 호슨 공작만큼이나 리엘라 테니어를 따르고 있다. 아무리 호슨 공작이 생전에 부탁을 하고 일러두었기 때문이라 생각해도 그것은 너무나 순종적인 태도를 취했다.
‘좀 더 알아봐야 하는데….’
그 순간 창밖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복도를 걷던 레이안은 그 빛에 걸음을 멈췄다.
“전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걷던 시종들 또한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레이안의 시선이 닿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큰 문스톤이 놓여 있는 정원이 있었다. 수도를 지키는 72개의 문스톤 중 하나였지만 평소에 다들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지키는 영역 내에 위험이 있으면 반짝임으로 그 위험을 알리는 보석이기도 했다.
***
우웅! 웅웅!
리엘라는 한숨을 쉬며 귀를 막았다. 제 주변을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진동음을 내는 보석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이걸 매일 하라고….’
에르첼라의 보석이 언제 북부 전선으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 매일 와야 한다니. 잠시 보석을 바라보고 있던 리엘라는 그중에서 제일 신이 난 목걸이가 주변을 빙빙 돌다 다른 보석이 놓여 있는 장식장에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급히 손을 뻗었다.
“가만히 좀 있어요!”
보물이고 뭐고 말 좀 들으라고!
처음에는 나름대로 조심하려 했으나 제멋대로 구는 보석들 때문에 리엘라는 결국 멱살을 잡듯 목걸이를 붙잡고 짤짤 흔들어 댔다. 하지만 보석들은 리엘라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지금 잡기 놀이하는 거지?”라고 하듯 허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레티시아 왕비처럼 확 때릴까? 리엘라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팟!
자기들끼리 허공을 놀이터 삼아 날아다니던 보석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우우우웅!
그리고 들어 본 적 없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마치 적을 만난 것 같았다. 그 순간 리엘라는 레이안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에르첼라 컬렉션은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라는 말.
그리고 같은 시각, 공작저에서 네아는 왕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세로로 길게 찢어진 채 천천히 깜박거렸다. 흰자위 하나 없는 암흑을 담은 검은 눈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