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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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는 하운이 앉아 있던 테이블을 보았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글씨가 빽빽하게 쓰인 종이와 그녀가 보낸 크리스털이 쌓여 있었다.
카밀라가 복원시킨 영상들은 모조리 하운에게 보내졌다. 그러면 그는 희미한 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보면서 호슨 공작이 무슨 보석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아내려 노력했다. 카밀라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종이에는 영상에 보이는 보석술사들의 이름과 그들이 사용한 보석들 그리고 호슨 공작이 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석의 배치들이 빈틈없이 적혀 있었다.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
그 당시 호슨 공작은 혼자가 아니었다. 카르디아의 보석술사들은 물론, 다른 나라의 보석술사와도 교류가 깊었던 호슨 공작이었다. 물론 그중 절반은 ‘누가 더 강한지 싸워 보자!’라는 식으로 이루어진 교류였지만.
이들이 갖고 있던 보석은 자식에게 상속되었거나 경매에 출품되어 새로운 주인을 찾았을 것이다. 이제 와 무슨 수로 이것들을 전부 찾아온단 말인가. 얼핏 보아도 수백은 될 것 같은 목록에 카밀라는 두통을 느꼈다.
“이리 좀 줘 보게나.”
일람은 카밀라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를 가져가더니 책상 위에 있던 펜을 집어 재빠르게 그 목록을 적어 나갔다. 그는 하운이 정리했던 목록을 전부 베낀 다음, 그것을 집어 들었다.
“뭐 하시게요?”
“뭐 하긴. 일단 수도의 원탁회의에 도움을 요청해서 연락이 되는 자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내고 그들의 보석을 보내 달라 요청해야지.”
그 말에 카밀라가 한숨을 쉬었다.
“…순순히 보낼 보석술사가 몇이나 될까요.”
“그러게. 사실 예전에도 보석술사들이 순순히 준 건 아니었네. 호슨 공작님이 당장 보석 안 들고 오면 네이판타를 죽인 다음에는 네 차례라는 말을 곱게 적어 보냈을 뿐이었지.”
“…공작님답네요.”
그동안 왕실이 공개하지 않았던 크리스털의 영상을 보면서 막무가내인 호슨 공작의 면모를 익히 실감했던 카밀라였다. 덕분에 그녀는 그게 정말이냐는 질문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카밀라는 일람의 손에서 팔락거리는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어두워지자 일람이 쓴웃음을 지었다.
“불가능해 보이긴 하네.”
“…….”
“하지만 무엇이든 해 봐야 해. 불가능에 도전해야 기적이라는 것도 생기지 않겠나.”
일람은 종이에 적힌 이름들을 보았다. 이것은 시작일 뿐 이후로도 수백 명의 보석술사를 더 찾아야 할 것이다. 이들만큼의 힘을 갖고 있는 보석술사와 보석들을 똑같이 모으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리엘라는 갈증과 허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다행히 보석으로 만든 빛은 그대로였다.
‘언제 올라와서 잔 거지.’
분명히 기억의 마지막은 지푸라기 위로 겨우 기어가서 쓰러진 것이었는데. 부은 눈을 깜빡이던 리엘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잠들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테이블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접시 위에 빵 한 덩이가 놓여 있는 것도.
먹을 것을 본 리엘라는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며 테이블로 다가갔다. 도대체 어디서 가져왔을까. 썩은 것이 아닐까 싶었던 빵은 구워 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온기까지 남아 있었고, 고소한 냄새도 났다.
리엘라는 미친 듯이 빵을 물어뜯었다. 그러다 목이 막혀 가슴을 두드리며 시선을 돌리니 역시나 잠들기 전에 보지 못했던 유리병에 물이 가득 채워진 것을 보았다. 옆에 있는 컵에 재빨리 물을 따라 마시자 겨우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오랜 갈증에 시달린 탓이었는지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된 후에도 리엘라는 몇 번이고 계속 물을 따라 마셨다.
“후우….”
병 안에 있는 물을 절반도 넘게 마시고 나서야 리엘라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배가 채워지고 갈증이 해소되니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리엘라는 테이블로 돌아가 마저 빵을 뜯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늘었어.’
몸도 마음도 워낙에 힘들었던 탓에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땐 제대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었지만 분명 잠들기 전에는 이보다 더 황량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흙바닥 위이긴 해도 넓은 카펫이 깔려 있었고, 유리병이나 접시, 포크 같은 식기도 놓여 있었다.
벽과 천장이 흙인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집의 모습이었다. 빵을 다 먹은 리엘라는 잠시 쉰 다음 조심스럽게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자신이 있는 곳 옆에 또 다른 공간이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욕조…?”
그곳은 욕실처럼 꾸며져 있는 곳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욕조에는 미지근한 물이 담겨 있었고, 심지어는 옆에 비누도 놓여 있었다. 비록 크기가 맞진 않았지만 새 옷도 함께였다.
그것을 본 리엘라는 제 팔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역시나 그동안 제대로 씻지도 갈아입지도 못하며 더러운 곳에서 있었던 탓에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리엘라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 말고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으….”
기분 좋을 만큼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묻어 있던 더러운 것들을 닦아 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리엘라는 재빨리 비누로 제 몸을 닦아 내다 어깨와 팔에 남아 있는 상처를 발견하고는 손을 멈췄다.
‘네아의 기억을 읽었다고 했지.’
그래서 네이판타는 그녀가 빛나는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네아는…그녀의 피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아직 모른다.
‘다행이다….’
그동안 네아에게는 비밀로 해서 어쩐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제 목숨을 살려 줄 줄이야.
‘알았다고 해도 죽이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죽을 만큼 괴롭기는 했을 것이다. 피의 힘을 알면 네이판타는 분명히 계속해서 피를 뽑아냈을 것이다. 물론 그 방법에 자비로움 따위는 없었을 것은 분명했다. 언젠가 공작저에 있는 책에서 네이판타가 행했던 잔혹한 짓에 대한 기록을 보았다. 유달리 생명을 갖고 실험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드래곤이다. 네이판타는 분명 목숨만 살려 놓고 옴짝달싹 못 하게 한 채, 피만 뽑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네아가 알고 있는 방법은… 내가 애정을 쏟아 기르는 것.’
그러니 이렇게 지내기 편하도록 세간을 갖추었을 것이다. 리엘라는 상처가 다시 벌어져 피가 나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몸을 씻었다. 한쪽에 곱게 접힌 수건으로 재빨리 몸을 닦고 새 옷을 입은 리엘라는 욕실 밖을 나와 좀 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도 훨씬 넓은 곳이었다. 잠들었던 방만큼이나 넓은 방들이 옆으로 계속 이어져 있었고, 썩 어울리진 않지만 제법 많은 가구들이나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분명 이곳을 꾸미려고 했던 흔적들이었다. 리엘라는 보면 볼수록 이 공간에 미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그러다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공작저와 비슷해.’
물론 아름답고 화려한 공작저와 감히 비교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 구조가 비슷했다. 자신의 침실 옆에 있던 욕실과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응접실, 서재.
응접실이라고 추정되는 곳에는 넓은 테이블과 낡은 소파가 놓여 있었으며, 서재처럼 만들려고 한 것 같은 공간에는 낡은 책장과 역시나 오래된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리엘라는 목이 메었다.
네이판타의 지배하에 모든 기억을 잃은 듯했던 네아였다. 하지만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곳을 공작저와 비슷하게 꾸미려 노력했을 것이다.
시큰해지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리엘라는 서둘러 주변을 마저 살폈다. 그러다 공간의 끝에 도달한 순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나무 문이 보였다.
“…….”
리엘라는 잔뜩 긴장을 하며 그 문을 힘주어 밀어 보았다. 끼익. 잠겨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문은 너무도 쉽게 열렸다. 하지만 문이 열린 순간 리엘라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문 너머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너머의 공간은 무척이나 넓고 깊다는 것을.
어둠 속에 있었던 기억 때문일까. 공포가 빠르게 리엘라의 목을 조여 왔다.
“아…….”
그 순간 거세게 문이 닫히면서 리엘라의 몸이 뒤로 당겨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다가온 네아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다른 입구가 있구나.’
이 문 말고 다른 입구도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그곳이 어딘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이 네아가 말했다.
“저곳은 안 돼.”
“…….”
“네가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가면 죽이겠다는 협박보다 버틸 수 없다는 말이 더 무섭게 들려왔다. 아마도 제가 어둠 속에 있을 때 맡아 왔던 피 냄새의 근원이 저쪽이었을까.
네아는 리엘라의 손목을 붙잡고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이곳을 벗어나지 말아라. 그리고….”
네아가 시선을 돌렸다. 리엘라가 먹고 남은 흔적이 있는 테이블 위에 작은 화분이 있었다. 화분 안에는 북쪽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이 심겨 있었다.
“네이판타 님의 전언이다.”
네아는 여전히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주일 내로, 이 꽃에 빛이 깃들지 않으면 이것의 남은 팔을 자르겠다.”
***
하운은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와 함께 오랜만에 느끼는 수면 후의 나른함이 그를 덮쳤다. 무척이나 깊게, 잘 잤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지금 자신의 상황이 생각났다.
잤어?
벌떡. 놀란 그가 몸을 일으킨 순간 아직 잠에서 덜 깬 머리가 흔들렸다. 하운은 손으로 제 이마를 짚으며 잠들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카밀라가 복원한 영상들을 보며 그 당시 참전했던 보석술사들과 그들이 사용한 보석을 정리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져 뒤를 돌아봤을 때 일람이 서 있었고… 잠들었다.
“일라아아아아암!”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운은 침대에서 서둘러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다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제 몰골을 보고 한숨을 쉬며 처소의 욕실로 갔다. 씻으며 거울 속의 제 얼굴을 볼수록 그저 한숨만 나왔다. 그곳에는 피곤에 절어 지치고 절망에 눌린 사람이 있었다.
하운은 그 모습을 지우고 싶다는 듯 거칠게 물을 끼얹으며 마저 몸을 씻고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일분일초도 아까운 판에….’
지하 레어에 있을 리엘라를 생각하면 손이 떨렸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방어 결계를 풀고 그녀를 구해 내야 하는 이때 잠을 재우다니. 물론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하운의 화가 누그러진 것은 아니었다.
군법에 따라 처리해 버릴까 고민하며 하운은 문을 열고 소리쳤다.
“일람! 당장…!”
나오라고 소리치려던 하운은 문 너머에 펼쳐진 광경에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