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3
3
“이, 이건….”
리엘라는 더듬거리면서 제 품에 안겨 있는 백합 다발을 보았다.
“뭐 해, 리엘라! 어서 드리지 않고!”
신발 가게의 주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눈치가 빠른 리엘라는 그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리엘라는 호슨 공작의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어찌 공작님께 값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공작님의 은혜로 저희가 이렇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하찮은 것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부디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면 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리엘라는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신발 가게 주인이 엄지손가락을 든 것으로 보아 다행히 큰 실수는 없었나 보다. 살면서 이렇게 신분이 높은 귀족을 만나 본 적이 없었기에 제대로 예법을 지켜 말한 건지 걱정이 되었다.
“하찮은 것이라고?”
성의를 보아 고맙게 받겠다 하며 꽃을 가져갈 줄 알았는데 호슨 공작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리엘라와 그녀가 안고 있는 꽃을 바라보았다. 리엘라는 신발 가게 주인을 보면서 입 모양으로 ‘나 뭐 실수했어요?’라고 물었지만 신발 가게 주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특별히 문제 되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뭔가 실수라도 있었던 것일까?
‘왜 그러시지?’
계속되는 호슨 공작의 침묵에 리엘라는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사실 귀족에게 백합을 그냥 주면 안 된다는 예법이라도 있나? 그때 호슨 공작이 말했다.
“하찮은 백합이 한 송이에 10길더나 하나?”
“그, 그건….”
호슨 공작이 아직 치우지 못했던 석판을 본 모양이었다. 호슨 공작이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분명 이튼 저택의 마님 때문일 것이다. 만약 호슨 공작이 그녀와 친분이 있다면, 낮의 신사처럼 비싼 백합의 가격을 보고 불쾌해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조문객들에게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시겠지.’
리엘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만약 호슨 공작이 불쾌하다고 한마디만 하면, 당장 내일 관리국으로부터 사람이 찾아올 것이다. 리엘라가 어찌할 줄 모르고 떨고 있을 때 호슨 공작이 입을 열었다.
“10길더도 싸군.”
“네?”
“그 꽃을 10길더에 살 수 있다면 누가 버린 것을 줍는 거나 마찬가지야. 난 가치를 볼 줄 아는 사람이고 언제나 정당한 지불을 해 왔네. 네아!”
“네, 공작님.”
공작의 부름에 마차에서 먼저 내렸던 하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공작의 옆으로 다가왔다.
“한 송이에 100길더. 그녀에게 값을 지불하거라.”
“알겠습니다.”
리엘라는 잠시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공작님이 뭐라고 하신 거지? 한 송이에 100길더? 10길더도 말이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런데 그 열 배를 지급하겠다고?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녀는 리엘라의 앞에 다가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전부 몇 송이인가요, 아가씨? 꽃값을 지불하고 싶습니다.”
“네? 어, 어 그게….”
분명 열 송이를 잘라 왔던 것 같다. 리엘라가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네아는 살짝 웃더니 수를 헤아린 다음 마차에 갔다가 봉투 한 장을 들고 나와 리엘라에게 넘겼다.
“여기 꽃값을 받아 주세요. 1000길더. 대륙에 존재하는 어떤 은행, 어느 지점을 가더라도 5분 내로 현금으로 바꿔 줄 것입니다.”
네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리엘라의 손에 들려 있던 백합 다발을 가져갔다. 어느새 리엘라의 손에는 흰 봉투가 들려 있었다.
“확인해 주시겠어요?”
“네? 네!”
네아의 말에 리엘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복잡한 문양들이 그려진 종이 위에 선명하게 적힌 1000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그리고 종이의 오른쪽 밑에 반짝이는 글씨까지. 뭘 어떻게 만들었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뭔지는 알고 있다.
‘살다가 꽃을 팔아 수표를 받아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는데!’
리엘라가 놀라 수표를 바라보는 사이 네아는 손에 든 백합 다발을 호슨 공작에게 가져갔다. 공작은 꽃을 받아 들고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다시 리엘라에게 물었다.
“이 꽃은 어디서 사 온 건가?”
“네? 아, 이건 제가 기른 꽃이에요!”
몰려든 사람들과 함께 수표를 보고 있던 리엘라는 공작의 질문에 재빨리 대답했다.
“자네가 길렀다고?”
“네. 화원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니고 그냥 집의 화분에서 기르는 것뿐이긴 하지만요.”
리엘라의 대답에 호슨 공작은 재미있다는 듯 자신의 턱을 만지며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자네, 항상 여기에서 꽃을 팔고 있나?”
“네. 그렇습니다만….”
“그래, 그렇단 말이지.”
뭔가 더 말하려던 호슨 공작은 몰려든 사람들과 기다리고 있는 마차를 보더니 지팡이로 가볍게 바닥을 한번 내려찍었다.
쿵!
큰 소리는 아니었건만 힘이 있는 울림에 떠들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공작을 보았다.
“좀 더 자네와 이야기하고 싶지만 오늘은 이제 떠나 버린 친구를 추모해야 하기에 시간과 장소가 적절치 않군. 나중에 다시 만나세.”
공작은 그렇게 말하고 곧바로 마차로 돌아갔다. 그녀가 올라가는 것을 도와준 네아가 리엘라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두 사람이 타는 것을 확인한 마차가 움직이더니 이튼 저택 쪽으로 달려가 곧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멀어지는 마차를 멍하니 바라보다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리엘라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나도! 나도 보여 줘!”
“조심해요! 찢어져!”
“세상에…. 꽃값으로 1000길더라니?”
“리엘라, 그 꽃 뭐야? 그냥 백합 아니었어?”
쏟아지는 질문과 사람들의 난리 속에서 리엘라는 멍한 얼굴로 수표를 바라보았다. 1000길더. 직접 기른 꽃으로 처음 받게 된 값이었다.
***
이튼의 저택은 대부분의 조문객들이 돌아간 상태였다. 늦은 밤은 고인의 가족 그리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우들을 위한 시간이다.
“이쪽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집사가 호슨 공작을 안내했다. 저택에서 가장 큰 방이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웃으며 마중을 나왔던 저택의 주인은 이제 검은색 나무 관에서 눈을 감은 채 아주 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블린.”
호슨 공작은 나직한 목소리로 저택의 주인을 불렀다. 자신의 부하였으며 오랜 친우이기도 한 여인은 대답이 없었다.
블랙 드래곤 네이판타와 10년간 전쟁이 이어졌던 동부 전선. 그곳에서 이블린은 호슨과 함께 모두의 앞에 섰던 사람이었다. 네이판타가 만들어 놓은 함정을 발견했던 것도 이블린이었고, 최후의 순간 네이판타의 입 속으로 들어갔던 것도 이블린이었다.
하지만 이블린의 활약은 거기서 끝났다.
네이판타가 쓰러지고 40년이 지났다. 동부 전선이, 아니 이제는 동부 평야라고 불리는 지역 어디에도 네이판타가 만들어 냈던 썩은 땅과 피로 이루어진 강의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전투의 흔적이 사라진 것처럼, 그곳에서 공훈을 쌓았던 이블린의 이름 역시 사라졌다.
그녀의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왕궁 도서관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두꺼운 책이나 동부 평야 잘 자란 밀밭 어디쯤에 묻혀 버려 이제는 찾을 수 없는 공훈비가 전부였다.
이블린은 그것을 서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잊히는 것이 그녀가 바라던 일이었으니까.
“선물을 가져왔네.”
호슨 공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들려 있던 백합 한 송이를 이블린의 위에 올렸다. 그 모습을 보던 집사가 옆에서 성호를 그으며 뒤로 물러섰다. 듣던 귀가 멀어졌기에 호슨 공작은 좀 더 대담히 남들 앞에서 하지 못하는 말을 꺼냈다.
“자네가 이 꽃을 보았으면 참 좋아했을 것을. 이렇게 빛나는 꽃을 본 것도 오랜만이군.”
호슨 공작은 제가 내려놓은 백합을 바라보았다. 모든 꽃잎 하나하나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집사가 옆에 있었다면 무슨 말씀이냐며 의아해했을 것이다. 호슨 공작은 알고 있었다. 이 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싱싱하고 활짝 피어 있는 꽃 정도로만 보인다는 사실을. 하지만 자신에게는 아니었다.
빛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백합.
관의 안쪽과 그 앞에 쌓인 다른 백합들이 모두 시들어도 이 백합은 지금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꽃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꽃들은….
“그들이 좋아하겠군.”
호슨 공작은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을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집사와 네아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보석의 방으로 안내하게.”
“알겠습니다.”
집사는 호슨 공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망설임 없이 앞장섰다.
“네아, 남은 백합들을 가져오렴.”
그 말에 네아는 남은 백합을 들고 호슨 공작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저택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방 앞에 섰다.
“보석의 방에 대해서 무어라 유언을 남겼던가?”
호슨 공작은 오랫동안 출입이 없었던 듯, 먼지가 쌓인 문의 손잡이를 보며 집사에게 물었다. 그 질문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집사가 곧바로 대답했다.
“공작님께 부탁드린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공작님께서 보석들을 확인해 주시면 변호사들이 목록에 올릴 것입니다.”
“알겠네. 네아, 꽃을 이리 다오.”
호슨 공작이 네아에게 손을 뻗자 네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공작님, 정말로 이 꽃들을 전부 다 주려는 건….”
“네아, 들뜬 것은 알겠다만 욕심부리지 말거라. 이건 내가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 온 것이야.”
“…….”
민망한 것일까. 호슨 공작의 말에 네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런 네아를 보고 혀를 찬 호슨 공작은 백합 다발을 건네받고는 혼자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곧 문이 닫히고 호슨 공작은 달빛이 들어오는 어두운 방을 잠시 바라보았다.
보석의 방.
어느 정도 능력과 보석을 가진 보석술사라면 자신들이 사는 저택에 보석들이 쉬는 방을 만들어 놓는다.
보석술사란 보석에서 힘을 빌려 이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보석은 자신들의 기억에 따라 품은 힘들이 달랐다.
같은 루비라도 과거 대륙 최고의 재앙이었다는 대화재를 겪은 루비는 맹렬한 화염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재앙과 상관없이 누군가의 반지로 자장가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 루비는 아이들을 잠재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보석의 힘을 신기하게 여기며 보석술사들을 통해 그 힘을 빌렸다. 문제는 인간들만이 그 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