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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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한 송이만 꺾어 오라는 어머니의 말에 리엘라는 조심스럽게 그 꽃을 꺾었다.
며칠이 지나고 언니들의 꽃이 다 시들고 떨어졌을 때, 리엘라가 꺾어 온 꽃은 마치 막 꺾어 온 꽃처럼 환하게 잎을 펼치고 있었다.
리엘라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엘라가 꺾어 온 꽃이 오래가는 것을 보고 그저 ‘우리 딸이 꽃을 보는 눈이 있나 보네’라고 생각했을 뿐 대단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된 데다, 어느 날 리엘라가 엉엉 울며 한 말을 듣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꽃이 빛난다고 했더니 다들 안 보이는 건지 친구가 저를 거짓말쟁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참 동안 리엘라의 설명을 듣던 어머니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리엘라, 그런 게 보인다는 것은 비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어머니는 다시 긴 시간 리엘라에게 왜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설명했다.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애매한 일이었다.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배척 받을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힘든 것이라면 상처받을 일만 가득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리엘라는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누구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했다. 그 이후로 리엘라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공원에서 보았던 온갖 색깔로 빛나는 꽃의 봉오리가 알고 보니 백 년에 한 번 핀다는 꽃이라는 게 알려졌을 때도 리엘라는 입을 다물었다.
예전 일을 떠올리던 리엘라는 고개를 흔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가게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 백합이 든 양동이를 들어 올렸다.
‘낯선 사람들 중에서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게다가 이 꽃들은 운 좋게 찾아낸 것이 아닌 리엘라가 길러 낸 꽃들이었다.
얼마 전, 리엘라는 자신에게 또 다른 신기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수도에서 유명한 꽃집을 들렀던 리엘라는 가게 뒤에 가득 쌓여 있는 화분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말라비틀어진 식물들이 있는 화분들이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물어봤더니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아서 죽은 화분들을 버린 것이라 말했다.
그런가 보다 하며 돌아서려고 할 때, 시들었지만 아직 멀쩡한 이파리가 붙어 있는 화분이 보였다.
‘잘하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리엘라는 가게 직원에게 물어 버려진 화분을 얻어 왔다. 집으로 돌아와 창문에 그 화분을 올린 다음 정성껏 살폈다. 잘 돌보면 곧 싱싱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조금 살아나나 싶으면 다시 시들어 버리는 데다가 자라지도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그대로인 화분을 보면서 리엘라는 불타올랐다. 내가 기필코 이 화분을 살리고야 말리라!
그 후로 리엘라는 화분에 매달렸다. 온갖 식물 영양제를 구해 왔으며, 쉬는 날에는 중앙 도서관에 가서 식물의 병과 관련된 모든 책을 훑었다. 백합을 잘 기르기로 유명한 사람들에게 가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분의 백합은 그런 네 노력은 난 잘 모르겠다는 듯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 그거 그만 내다 버리지 그래? 무슨 병든 화분을 1년 넘게 돌보냐?”
집에 놀러 왔던 리나가 여전히 그대로인 화분을 보며 혀를 찼지만 리엘라는 포기할 수 없었다. 1년이 지났건만 화분은 처음 가져온 상태 그대로였다. 다른 화분들 사이에서 혼자 시들시들해져 있는 화분을 본 리엘라는 그 앞에 앉아 풀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 아무래도 내 능력이 모자란가 봐.”
죽지 않고 살아남았길래 건강하게 키워 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 노력이 잘못된 방향이었던 건가 속상해하며 리엘라는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일층으로 내려온 리엘라의 눈이 커졌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여전히 시들시들한 백합이었는데. 어제의 모습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백합은 싱싱해진 채 이파리에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나지 않아 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리엘라는 꽃이 핀 순간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반짝거린다!”
들판에서 어쩌다 한 번 발견했던 꽃처럼 화분의 백합이 반짝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송이뿐만이 아니었다. 피어난 백합 전부가 반짝거렸다.
오늘 가져온 이 백합이 그 백합이었다. 이튼 저택에 조문을 하기 위해 낯선 사람들이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왔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집에나 가자.”
리엘라는 백합을 정리하며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제 이튼 저택으로 향하는 길은 낮과 달리 인적이 줄어든 상태였다. 아마도 대부분의 조문객들이 돌아갔으리라. 옆 가게의 주인들도 리엘라처럼 슬슬 문을 닫고 돌아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길 끝에서 마차 한 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늦게 도착한 손님인가?’
리엘라는 멀리서 달려오는 마차를 보았다.
“와….”
저절로 놀란 소리가 나왔다. 여덟 필의 말이 끄는 마차였다. 브릭스 거리에서는 보는 마차는 두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대부분이었다. 언젠가 한 번,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갔을 때 사람들은 모두 길에 나와 그 마차를 구경했었다. 그런데 여덟 필이라니.
리엘라는 고개를 숙였다. 왕족에 버금가는 대귀족이 분명했다.
‘마차가 지나가면 구경해야지.’
리엘라는 마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여덟 필이라지만 서두르지 않는 속도로 마차가 그녀의 앞을 지나갔다. 아니,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멈추세요!”
갑자기 마차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두 명의 마부는 놀라운 솜씨로 순식간에 마차를 멈추게 했다.
‘무슨 일이지?’
거리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어느새 다가온 옆 신발 가게의 주인이 놀란 눈으로 마차를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보석술사의 문장이다!”
“뭐?”
“틀림없어! 게다가 쓰러진 드래곤과 세 개의 보석이 그려진 문장! 호슨 공작님이시다!”
호슨 공작. 그 말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우르르 마차 곁으로 몰려들었다. 리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 역시 호슨 공작이라는 말에 입을 떡 벌린 채 마차를 바라보았다.
호슨 공작. 이 나라에서 그 사람을 모르는 자는 없다.
최강의 보석술사. 카르디아의 전설. 드래곤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낸 영웅. 아이들은 언제나 그 이름을 동경했고 어른들은 그 이름을 존경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사이 마차의 문이 열렸다. 마차 안에서 하녀복을 입은 여자가 나오더니 안에서 나오는 사람의 손을 잡고 내리는 것을 도왔다.
세월이 묻은 백발을 가진 여자가 하녀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굽지 않은 꼿꼿한 허리와 날카로운 눈빛이 사람들을 압도했다. 설명해 주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지금 내리는 사람이 호슨 공작이라는 것을. 힘 있는 걸음으로 마차에서 내린 호슨 공작은 지팡이를 짚고 몸을 돌렸다.
한때 전장에서 그 누구보다 강한 보석술사로 드래곤들을 토벌하던 영웅의 모습에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국왕마저도 그녀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그런 호슨 공작이 왜 갑자기 마차를 멈추고 내린 건지 모두가 의아해할 때 공작이 말했다.
“그 꽃은 얼마인가?”
그 말에 리엘라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호슨 공작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네?”
호슨 공작의 질문에 리엘라는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호슨 공작이 나에게 말을 걸었어?
리엘라는 호슨 공작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물론 친분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라는 건 사람들이 아는 만큼이라는 뜻이며, 그 정보는 대부분 신문으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리엘라는 근처 신문 배달국으로부터 날짜가 지나 판매할 수 없는 신문을 싸게 사 오곤 했다. 대단한 포장이 필요 없는 꽃들을 그 신문으로 감싸면서 신문에 실린 호슨 공작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보았다.
호슨 공작의 이야기는 1면에 나오는 기사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인 보석술사의 이야기는 ‘최근의 화제’보다는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 코너에 좀 더 자주 실리기 마련이니까.
벨라리아 아인델 호슨.
그것이 호슨 공작의 이름이었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평민이었지만 무서울 정도의 실력을 가진 보석술사로 탐욕스러운 드래곤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공으로 공작의 지위를 얻어 낸 사람.
그녀 외에도 보석술사로서 능력을 드러내 작위를 받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공작에 오른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어쨌거나 리엘라에게 호슨 공작이란 유명인의 초상화처럼 알고 있지만 까마득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니!
리엘라는 당황하며 호슨 공작을 보았다. 보석술사라고 해서 잔뜩 보석을 두르고 다닐 줄 알았는데. 호슨 공작이 몸에 지니고 있는 보석이라고는 팔에 차고 있는 연분홍빛 진주 팔찌가 전부였다.
“자네가 들고 있는 그 통의 백합 말일세. 얼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