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5
5
“그렇습니다. 거의 생이 다했다 생각한 보석이었는데 단 한 송이 꽃으로 브릭스 거리 전체에 힘을 쓸 정도로 회복했습니다. 정말이지 놀라워요.”
점점 들뜬 표정을 지은 네아가 애가 탄다는 듯 입술을 핥았다. 발을 동동거릴 것 같은 네아의 태도에 호슨 공작이 혀를 찼다.
“네아, 넌 다 좋은데 욕심이 많아.”
“탐욕은 보석술사의 미덕입니다.”
네아의 대답에 호슨 공작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위에 있는 편지지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상태 그대로였다. 그것을 눈치챈 네아가 물었다.
“오래 걸리시는군요.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까?”
“하운 대공에게 보낼 거란다.”
하운 대공이라는 말에 네아는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호슨 공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네아는 하운 대공작을 싫어했다.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운 대공작의 이름만 나와도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네아는 제가 싫어하는 모든 것에 하운의 이름을 넣어 욕했다. 이런 하운 같은 자식, 이런 하운보다도 못한 자식 등등….
‘어쩔 수 없지.’
공작은 하운이라는 이름에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네아를 보고 혀를 찼다. 저런 네아의 반응이 이해되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네아는 하운 대공에게 무참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다음에 잡혀 왔으니까.
호슨 공작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네아는 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 수감된 채로 목숨이 끝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죽었을 것이었다.
한참이나 씨근덕거리며 이를 갈던 네아는 호슨 공작에게 물었다.
“그 새끼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네아, 예쁜 말을 쓰도록 해.”
“…그놈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예쁜 말.”
“…그분에게는 무슨 일이신데요?”
네아는 당장이라도 울고 싶다는 얼굴로 물었다.
호슨 공작은 하운 대공을 떠올렸다. 이제 스물여섯이 된 왕의 동생. 북부 전선에서 가장 큰 활약을 보이고 있는 보석술사. 이번 세기의 최강의 보석술사라 불리는 인물.
호슨이 과거의 영광이라면 하운은 현재의 영광이었다.
이십여 년 전 깨어난 레드 드래곤 플레노트가 북부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부 하운의 덕분이었다. 하운이 북부 전선으로 간 후, 플레노트가 기어 나오는 낌새가 보이기만 하면 사정없이 공격을 퍼부었으니까.
말이 좋아 공격이지 거의 두들겨 팬 수준이었다. 두들겨 팼다는 것은 단순히 상징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갖고 있는 보석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는 징벌(懲罰)의 오닉스였다.
워낙에 까다롭고 흉포한 보석이라 왕실 보석의 방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징벌의 오닉스를 하운 대공이 처음으로 사용했던 날, 산 하나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보이지 않는 거인이 주먹을 휘두른 것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공포에 짓눌렸고 플레노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플레노트의 레어(lair, 드래곤이 자신이 모은 보석이나 먹이를 보관하며 지내는 곳. 정신 지배 하는 몬스터들도 살기에 규모가 크다)가 지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면 이미 박살이 났을 것이다. 하운 대공은 징벌의 오닉스 하나를 들고 플레노트의 레어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그날 사람들은 처음으로 드래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블랙 드래곤만큼이나 피를 좋아하는 레드 드래곤이었음에도 레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플레노트에게 붙은 별명은 모욕적이었다.
북부의 빨간 두더지.
플레노트가 제 별명을 들었으면 몸의 모든 구멍에서 불을 뿜어내며 뛰쳐나올 별명이었다. 그래 봤자 하운에게 얻어맞고 다시 제 레어로 도망치겠지만.
호슨 공작은 북부 전선에서 여전히 플레노트를 상대하고 있을 하운을 떠올리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조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단다.”
“장난이요?”
뜻밖의 말에 네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제 주인인 호슨 공작이 꾸미는 장난이라니.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하운의 얼굴이 한 번 정도는 일그러질 것이 분명하리라. 벌써부터 신이 난 것 같은 네아를 보며 호슨이 말했다.
“네아, 내가 죽으면….”
“주인님은 안 죽으세요!”
“죽어.”
“안 죽는다니까요!”
“내 나이가 여든둘이야. 나 곧 죽어.”
“아니요! 안 죽어요! 주인님은 괴물 같은 분이니까 다른 인간들보다 더 오래 사실 거예요!”
듣기 싫다는 듯 귀를 막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네아의 모습에 호슨 공작은 혀를 찼다.
“어쨌거나 내가 죽으면 내 모든 것은 하운 대공에게 주기로 했던 것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그걸 조건으로 하운 새끼… 아니, 하운 대공작님이 북부에서 구르고 있으니까요.”
북부에서만 구르나. 가끔은 서부에서도, 가끔은 남부에서도 구르는 하운 대공이었다. 북부 전선의 주 병력인 그가 여기저기를 구르고 있는 이유에는 호슨 공작 때문이다.
은퇴했다 하더라도 호슨 공작은 지위를 갖고 있었고 나라가 원하면 자신의 힘을 바쳐야 했다. 그게 호슨 공작이 짊어지고 있는 신분에 따른 의무였으니까. 문제라면 호슨 공작은 그것이 아주 귀찮았다는 것이다.
역전의 노장, 구국의 영웅, 시대의 보석술사.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호슨 공작은 투덜거렸다.
“늙은이 좀 쉬자! 은퇴 좀 하자고!”
하지만 자신이 가지 않으면 곤란할 법한 일들이 많았다. 특히나 플레노트의 일은 더더욱.
그럼에도 호슨 공작은 벌써 5년째 수도에 머물면서 전선에 나가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하운 대공이었다.
물론 하운 대공이 그냥 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저 대신 싸워 주신다면 내가 죽고 난 후 내 보석의 방을 대공께 드리도록 하지요. 혹시 지금 원하는 보석이 있다면 빌려 드리리다. 당신이라면 내 보석들을 다루는 데 문제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하운 대공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하운 대공은 호슨 공작에게 주기적으로 편지를 보냈다. 대부분 북부 전선에서 쌓은 제 공적에 대한 편지였다. 자랑을 하기 위해 보낸 편지가 아니었다. 내가 당신 대신 이만큼 싸우고 있으니, 보석의 방을 넘기기로 한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의 편지였다.
“쯧,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것이거늘.”
예전 일을 떠올리던 호슨 공작은 혀를 차며 펜을 잡았다.
“네아, 플레노트가 다시 잠들려면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두 달 정도면 다시 수면기에 들어갈 겁니다. 사실 계속 하운에게 얻어맞고 있는 게 부끄러워서 이미 잠들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 말은 두 달 후면 하운 대공이 북부 전선을 벗어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말이었다. 펜을 잡은 호슨 공작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죽음은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져 있는 목적지다.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 왔기에 호슨 공작은 느긋하게 제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었다. 평생에 걸쳐 모은 수많은 보석들과 자신의 재산은 이미 미래의 소유주가 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호슨 공작은 고개를 돌렸다. 방 안에 있는 꽃병에 반짝이는 꽃이 한 송이 꽂혀 있었다. 리엘라가 보낸 꽃 중에 섞여 있던 빛나는 꽃. 이것을 길러 낼 수 있는 사람이라니.
“엄청난 숙제를 받은 기분인걸.”
조용히 죽음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할 일이 생겨날 줄이야. 곤란하다 중얼거리면서도 호슨 공작의 표정은 밝았다.
“그럼 잽싸게 해치워 볼까.”
그녀의 손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
북부 전선.
카르디아 국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부 전선이라 불리지만 보통은 대(對) 플레노트 전선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카르디아의 군사와 보석술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병영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도 전쟁 중인 곳이라고는 하나 병사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보석술사들이 그러는데 플레노트가 아무래도 수면기에 들어간 것 같다는군.”
“그럴 줄 알았어. 내가 플레노트라고 해도 계속 하운 대공님께 얻어맞으며 사느니 차라리 수면기에 들어가는 게 낫지.”
“그러게 말이야. 어쨌거나 덕분에 마물들도 잠잠해졌으니 이제 당분간 북부 전선도 조용해지겠지?”
“그래야지.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우리 남편과 애들이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
그런 병사들의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하운은 제 천막 안에서 손에 들린 편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몇 번이고 편지를 훑었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드물게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운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편지를 보았다.
“…이거 호슨 공작의 편지가 맞나?”
플레노트의 레어를 보고 돌아온 하운은 자신에게 도착해 있는 편지를 보았다. 호슨 공작의 문장이 박혀 있는 편지였다. 평소처럼 오늘도 날씨가 좋다 나쁘다 하는 상투적인 인사말과 함께 안부를 묻는 편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도착한 편지에는 오직 한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여자 친구 있습니까?
처음에는 잘못 온 편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편지에 붙어 있는 봉인에는 틀림없는 호슨 공작의 문장이 박혀 있었다. 필체 역시 익숙한 것이었고. 그러니 이것은 분명 호슨 공작이 그에게 보낸 편지가 분명한데 내용이 왜 이런단 말인가?
혹시 연로한 호슨 공작의 정신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고민하던 하운은 다시 편지를 바라보았다. 여자 친구가 있냐고? 하운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없긴 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