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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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테는 심기가 불편했다.
첫 번째 이유로는 카르디아 왕궁의 정원을 이 잡듯 뒤졌으나 더 이상의 빛나는 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잘 시들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급하게 모국인 테티아에 연락을 해 잠들어 있는 제 소유의 보석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자신의 보석 중에 깨어나려면 몇십 년을 기다려야 하기에 싸게 소유권을 넘겨받은 보석들만 해도 여러 개다. 그것들을 생각하자 샤를로테는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그중에 하나만이라도 빛나는 꽃 덕분에 힘을 회복했다면. 아니, 적어도 가넷 위에 꽃을 떨어트리지만 않았어도….
한참이나 상자 안에 있는 가넷을 노려보며 샤를로테는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가넷이 이리된 것은 짜증 나지만 하운 대공에게 효과는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기분이 나쁜 두 번째 이유는 하운 때문이었다.
하운이 갑자기 공작저로 돌아간 날, 저녁에 두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지금까지 가넷의 영향을 받을 때마다 하운은 공작저로 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돌아왔다. 그러니 그날도 그럴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하운은 돌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드디어 트집 잡을 거리를 찾았다고 생각한 테티아의 대신들은 회담의 내용보다 하운의 태도를 들먹이며 비꼬았고, 결국 그날, 카르디아는 처음으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테티아에 좋은 일이긴 했지만 샤를로테 역시 평생 누군가 그녀를 소홀히 취급한 적이 없는 공주였다.
아무리 가넷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샤를로테는 보석을 넣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밖으로 나가자 마침 이쪽으로 오고 있던 시녀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더냐.”
“네, 하운 대공이 돌아온 다음에 왕비에게 불려 가 크게 질책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 말에 샤를로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실수로 회담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몰렸으니 국왕이나 왕비는 짜증이 날 만도 했다. 잘된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하운을 자극해 주는 것이 좋으니까. 아마 하운은 왕비의 질책에 더욱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하운 대공은 모든 일을 잠시 접어 둔 채 회담에 전념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왕궁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당한 듯합니다. 나라의 중대한 일을 제치고 호슨 공작의 보석에 매달리는 것이 왕비의 신경을 건드렸겠지요.”
“그렇군.”
샤를로테는 잠시 생각하더니 명령했다.
“나갈 채비를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어디로 모시라 일러둘까요.”
“그건 내가 직접 말하겠다.”
시녀를 지나쳐 걸으며 샤를로테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좋은 기회군. 오늘 공작저를 가 봐야겠어.’
사실 그동안 몇 번이나 공작저에 가려고 기회를 보았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하운 대공에게 막혀 무산되고 말았다.
‘도대체 뭘 숨겨 둔 걸까.’
샤를로테는 첫 번째 방 안에서 나왔다는 보석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당연히 그 보석들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 분명 발표하지 못한 보석들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곧 열릴 것 같다는 두 번째 문도 제 눈으로 한번 보고 싶었고.
‘그 리엘라 테니어도 만나 봐야 하고 말이야.’
그 여자 또한 궁금했다. 일단 첫 번째 방에서 나온 보석들 중에 갖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을 자신에게 판매하라 말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좀 더 알아볼 생각이었고.
오늘처럼 자신의 일정이 비어 있고, 하운이 움직이지 못한다면 리엘라 테니어를 찾아가기에 딱 맞는 날이었다.
***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
리엘라는 중얼거리며 제 앞에 있는 종이를 보았다. 하운에게 그 조건에 대해서 들은 다음 계속 생각했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 그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고?
“누가 있지?”
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작저의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다정했으니까. 매일 접하는 사람 중에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더 생각을 하고 나서 떠오른 이름은 마틴이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는 하운이 말하기 전까지 잊고 있던 이름이었다. 싫은 쪽에 가깝긴 하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감정을 가질만한 사람조차도 되지 못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있을까. 리나에게 장난으로 ‘너 싫어!’라고 말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자꾸 장난으로 무서운 편지를 보내는 둘째 언니? 그것도 역시 아닐 것이고. 오히려 둘째 언니가 제 싫어하는 사람에 해당하면 더 큰 문제이다. 어딜 가서 언니를 잡아 온단 말인가.
결국 리엘라는 종이를 꺼내 놓고 끙끙거리며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적어 보았다. 그러기를 세 시간째.
“1년 전에 예약 많이 걸어 두고 연락 끊긴 손님… 같은 건 찾을 수도 없잖아?”
여전히 텅 빈 종이를 보며 리엘라는 제가 새삼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이상한 사람들이나 짜증 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들과의 관계가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않았다. 물론 브릭스 거리의 모든 사람들과 웃고만 지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기 싫고 꺼려지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리엘라는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지….”
문을 열려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누굴 싫어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당장 그런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싫어하는 사람이 있긴 했다. 이제는 아니지만.
‘예전이라면 바로 대공님을 문 앞으로 데려갔을 거야.’
첫인상은 최악에,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리엘라는 한숨을 쉬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한번 자각한 감정을 무시할 만큼 뻔뻔하지는 못했다. 분명 자신은 하운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왜?’
리엘라는 멍한 얼굴로 종이 위에 낙서처럼 끄적였다. 처음에는 닿는 것도 싫고, 하는 짓도 너무 무서워서 그냥 도망가고 싶었는데. 그러다 카밀라가 보석의 방을 열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날 하운은 제 손이 다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지켜 주었다. 물론 그 다친 손을 보이면서 저택에서 머물겠다 했을 때는 ‘노렸나?’ 싶었지만.
그 후로도 하운은 계속 옆에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일찍 마차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꽃 시장에서는 바라만 보던 엘피안 꽃을 덥석 안겨 주었다.
그 후에도 가게에서 함께 있으면서 같은 공간과 시간을 나누어 썼다. 이제 그것은 리엘라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제 일상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친한 리나조차도 처음 몇 개월간은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지 않았던가. 리엘라는 하운이 얼마나 빨리 자신에게 스며들었는지를 깨달았다.
종이 위에 몇 번 하운의 이름을 적던 리엘라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대공님도… 나 좋아하시… 나?”
시트를 뒤집어썼던 날이 떠올랐다. 다시 말해 달라고 했던 하운의 얼굴도. 가슴 안쪽에 깃털이 살랑살랑 떨어지는 것 같은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이런 이상한 기분을 느껴 본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빨리 돌아오시면 좋겠다….”
샤를로테 공주가 있음에도 매일같이 공작저에 들렀던 하운이었다. 오늘도 분명 오겠지. 책상에서 몸을 일으킨 리엘라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다. 요즘 네아가 재미를 붙인 탓에 머리 여기저기에 묶어 준 리본이 어쩐지 비뚤어져 보였다.
‘다시 묶어 달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리엘라는 제 옷을 보았다. 오늘은 다시 좀 조용해 졌으니 연습이나 할까 싶어서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여기저기 풀물이 들어 있고, 심지어 가시에 걸렸던 곳엔 그대로 작은 구멍까지 나 있는 옷이었다.
‘갈아입어야지.’
얼마 전 네아가 새로 주문했다며 가져왔던 옷들이 생각났다. 화려하고 예쁜 것은 좋았지만 이걸 언제 입나 싶었던 옷들인데 어쩐지 지금 입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리엘라가 막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밖에서 그녀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손님이 오셨어요!”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하녀의 모습에 리엘라는 오늘 오기로 한 사람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누가 왔어요? 오늘 약속 잡힌 사람 없는데?”
“샤를로테 공주님께서 오셨어요!”
하녀의 말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그 말을 들은 리엘라는 잠시 제 귀를 의심했다. 샤를로테 공주가 왔다고?
“자, 잠깐. 공주님께서 직접, 여기에요?”
“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지금은 네아가 접대 중이지만 어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대공님은요? 대공님도 같이 오셨어요?”
“아니요. 샤를로테 공주님만 오셨어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어떻게 된 거지?’
하운은 샤를로테 공주를 주의할 것을 당부하며 어차피 자신이 그녀가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할 터이니 크게 신경은 쓰지 말라고 했었다.
‘와 버렸는데요!’
하운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 묻고 싶었지만 그는 이곳에 없다.
“빨리 가셔야 해요!”
하녀의 손에 이끌려 아래로 내려가면서 리엘라는 크게 숨을 쉬었다.
‘진정하자, 진정.’
샤를로테 공주는 분명 호슨 공작의 보석에 대해 이야기를 하러 왔을 것이다. 그것 말고 이곳에 올 다른 이유는 없으니까. 화분은 제 방 안에 있다. 샤를로테 공주가 그곳에 들어갈 일은 없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일 층으로 내려오자 마침 응접실에서 나오는 네아의 모습이 보였다.
“네아! 어떻게 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아는 옆에 있던 하녀를 살짝 물리고는 속삭였다.
“특별히 뭔가 알아차리고 온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공작님의 보석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요. 아가씨 방에 있는 꽃은 제가 남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 둘게요.”
“부탁해요. 그리고 빨리 돌아와야 해요.”
“네. 물론이죠. 그런데….”
리엘라를 보던 네아가 울상이 되었다.
“왜 이럴 때 하필 작업복을 입고 계신 거죠…. 예쁜 옷들 가득 사 뒀는데….”
제가 다 원통하다는 듯이 입술을 무는 네아의 모습에 리엘라는 울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가서 갈아입고 올까요?”
리엘라가 제 옷을 보며 중얼거릴 때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제복을 입은 기사가 나왔다. 카르디아 왕국의 기사들과 다른 옷인 것을 보니 샤를로테 공주의 호위 기사임이 분명했다. 그는 네아와 함께 서 있는 리엘라에게 말했다.
“리엘라 테니어 양입니까?”
“네? 네!”
“서둘러 주십시오. 오래 기다리고 계십니다.”
왜 여기서 꾸물거리고 있느냐는 듯한 차가운 시선에 리엘라는 옷을 갈아입으려던 생각을 접어야 했다. 기사의 눈빛은 지금 당장 들어오라 명령하고 있었으니까.
리엘라는 네아에게 부탁한다는 눈빛을 던지고는 긴장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을 위한 화려한 소파에 마치 제집처럼 편하게 있던 샤를로테가 앉은 채로 리엘라에게 말했다.
“그대가 리엘라 테니어군. 드디어 만나게 되었어.”
반갑지 않은 손님의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