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88
◈ 188화 어두운 길목의 왕 (3)
테리나가 빈민가에서 루드거와 대담을 나누고 있는 같은 시각.
테리나로부터 아티팩트를 건네받은 케이시는 거주하고 있는 셋집으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테리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케이시에게도 할 일이 있었다.
“으엑. 케이시. 제발 방 정리 좀 해요! 아주 돼지우리가 따로 없어!”
이번에 살게 된 집은 케이시와 베티, 단둘만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었으나 그것도 고작 몇 주뿐이었다.
편집증적으로 온갖 것들을 모으는 케이시로 인해 방은 발 디딜 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너저분했다.
정리라도 잘했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아무 데나 물건을 처박아 둔 탓에 숫제 마경을 방불케 했다.
“알았어. 하나다니까?”
“맨날 한다면서 안 하잖아요!”
베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정리에 들어갔다.
물론 이렇게 정리를 해도 일주일만 지나도 다시 원상 복구되지만, 알면서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케이시는 저에게 감사해야 해요. 저처럼 최고의 파트너가 아니었으면 케이시를 데려가 줄 사람은 없으니까요.”
투덜투덜하면서 정리를 시작하는 베티.
케이시는 그런 베티의 말을 싹 무시하고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레더벨크 시의 지도가 있었다.
지도의 위로는 오려낸 신문 기사가 압정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압정을 따라 이어진 것은 무수한 실들.
케이시는 오늘 자 신문에서 실버 선과 관련된 기사를 오려서 지도 한쪽에 고정했다.
그리고 빈민가와 연관된 실을 이은 뒤 손끝으로 한 번 퉁 하고 튕겼다.
바르르 떨리는 실을 보며 케이시를 팔짱을 꼈다.
지도 위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펼쳐진 실타래의 향연.
그 속에서 케이시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것처럼 지도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최근 레더벨크에 사건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터지고 있어.’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레더벨크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여러 일이 벌어졌다.
늑대인간 사건.
완전히 타 버린 폐공장.
쿤스트 경매장 습격 사건.
제보당의 괴수의 부활.
검은 여명회의 등장.
‘그리고 이번 실버 선 실종 사건까지.’
용의자 쪽으로는 빈민가 측이 가장 유력했다.
최근 빈민가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한다.
케이시도 듣기만 해서 직접 확인은 안 했지만, 소문이 괜히 나는 것이 아니다.
‘그쪽은 테리나가 확인을 하러 갔겠지.’
케이시는 테리나를 떠올리며 챙겨 왔던 아티팩트를 조심히 한쪽 책상 위에 올렸다.
아티팩트가 끼리릭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그 안에 있던 마석을 드러냈다.
케이시는 마석을 슬쩍 보다가 그 마석을 두르고 있는 새하얀 종이를 따로 챙겼다.
‘이게 메모리 스토밍과 관련이 있다는 핵심 물품.’
아직 명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게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건 안다.
‘엘프들의 숲에서만 난다는 엘븐트리의 껍질로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하다니.’
신 마탑의 마법사들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누구보다도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에게서 숲의 나무를 가져올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그런 도전 정신이 이런 새로운 물건을 만든 거겠지.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신진 문물을 받아들인 엘프들과 손을 잡고서 거래를 했다고 하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이걸 사용하면 읽을 수 있을 거야.’
새하얀 종이를 한동안 살펴보던 케이시는 그것을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일단 정리를 해 보자.’
케이시는 최우선 목표는 검은 여명회의 추적이다.
실버 선이 사라진 현장에 찾아간 것도 혹시나 검은 여명회와 연관이 있지 않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꽝.
케이시는 흔적은커녕 말 그대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저택을 보는 순간 깨닫고 말았다.
─이건 무슨 수를 써도 단서를 찾을 수 없다.
마법을 능가하는 기적에 가까운 무언가가 벌어졌다.
아무리 케이시라도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과만 놓고 말하면, 검은 여명회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날 심문했던 녀석들로부터 얻은 정보뿐인가.’
세오른의 의 마지막 날 사로잡은 검은 여명회의 회원들.
엘리사와의 거래를 통해 케이시는 그들을 직접 심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 심문의 결과라는 것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는 편이 맞는 말이리라.
‘비밀 결사 놈들은 잡졸이어도 심지가 굳다고 해야 하나, 광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
쉽게 입을 열지도 않거니와 입을 열어도 죄다 거짓 정보뿐.
그중 겨우 알아 낸 것도 정말 별거 아닌 것들일 때가 많았다.
‘게다가 육체적 고문은 내 방식이 아니야.’
그러나 케이시는 그런 놈들에게서 정보를 얻어 냈다.
그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단지 ‘질문’을 하면 됐다.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요소는 단순히 언어에만 국한되지 않지.’
시선, 눈의 떨림, 호흡, 미묘한 반응 등.
그 사소한 행동이 충분한 대답이 되어 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닌 이상 티가 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검은 여명회의 서드 오더들은 그녀가 원하는 여러 반응을 보여 줬었다.
그리고 케이시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케이시는 레더벨크 시의 지도 옆의 빈 벽에다가 새로운 지도를 붙였다.
대도시인 레더벨크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중간 규모 정도는 되는 이웃 도시.
그리고.
‘검은 여명회와 관련이 있는 곳.’
케이시는 문득 괜한 걱정이 들었다.
‘미친개랑 싸우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은데.’
조금 마음이 흔들리려던 케이시는 제임스 모리아티를 떠올렸다.
정갈한 양복을 입고서 등 뒤로 검은 망토를 흩날리던 그 남자의 뒷모습을.
‘그래도 해야겠지.’
제임스 모리아티를 쫓겠다는 일념으로 이곳까지 오지 않았던가.
오히려 검은 여명회가 그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더욱 분발해야 할 터.
조만간 발타눙으로 향하는 차편을 알아봐야겠다.
* * *
테리나는 뒷골목의 오너라는 남자에 대해서 내심 높게 평가했다.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
어쩌면 더 심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빈민가에서 대단한 발전을 이룬 남자다.
단순히 사업과 관련된 감각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
실버 선이 사라진 것도 알고 있고, 그녀가 올 거라는 사실도 미리 알고서 안내인을 보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정보까지 모두 꿰고 있음이 분명할 터.
분명 경계해야 할 사람임은 분명했다.
‘그래서 일부러 겁을 주려고 살기를 뿌린 건데.’
눈앞의 남자는 그 살기를 받고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행동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을 보면 연기가 아님이 확실했다.
당장이라도 입을 열어서 네놈의 정체가 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이쪽이 기싸움에서 패배한 거라고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대화를 나눠본바, 오너라는 남자는 질문의 의도를 알면서도 회피하거나 대충 둘러대겠지.
‘아무리 그래도 믿기지 않는군. 평기사들도 내 살기를 받으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는데.’
오너는 그것을 견뎌 냈다.
‘역시 평범한 놈이 아니야.’
괜히 이 뒷세계에 주인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었다.
뛰어난 수완. 타고난 감각. 이쪽의 살기에 아무렇지 않아 하기까지.
‘어두운 길목의 왕인가.’
그가 불법으로 부를 축적한 악인이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나쁜 짓을 저지른 범죄자라면 차라리 이야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저 검을 뽑아 손 하나만 잘라 줘도 충분하니까.
하지만 엔야에게서 받은 정보에 의하면 이 남자가 벌인 사업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그런 사람을 나이트 크롤러 기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폭력을 행사한다?
아무리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이 다른 기사단에 비해서 추잡한 짓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심증만으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에 대한 명성을 깎아 내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에게도 지키는 선이라는 게 있었다.
‘게다가 인망도 두터워서, 잘못 건드리면 이 근방 사람들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만다.’
여기서 오너를 건드리면 빈민가 사람들 전부가 결사 항쟁을 벌일 것이다.
원래부터 희망 없이 막살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겨우 사람답게 살게 됐는데, 여기서 방해가 들어온다면?
그때는 정말 한쪽이 완전히 사라져야만 했다.
승자에게도 상처밖에 남지 않을 터.
그건 피해야 했다.
“궁금하신 것은 전부 다 끝났습니까?”
“그래. 협조에 감사한다.”
테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일이 없으니 더는 이 자리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배웅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필요 없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서로 시선을 한 번 교환한 뒤 물러서려는 순간이었다.
“리더. 여기 있어?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굳건히 닫혀 있던 응접실의 문이 덜컹 열리며 알렉스가 들어왔다.
그것은 루드거도 예상하지 못한 등장이었다.
“알렉스?”
알렉스를 알아본 엔야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별생각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알렉스는 엔야를 보고 얼어붙었다.
이런.
루드거는 알렉스에게 미리 언질을 주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워낙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말할 틈이 없었다.
“알렉스, 맞지?”
“…….”
“네가,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루드거는 가면 속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지 않게 헤어졌던 과거의 연인이 하필 이런 장소에서 마주하게 됐다.
* * *
알렉스는 자리를 피하듯 벗어나려 했지만, 엔야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건물 바깥에 나와 골목길로 빠지려던 알렉스의 앞길을 엔야가 가로막았다.
“우리 이야기 좀 해.”
“나는 할 이야기 없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너,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잖아.”
자신을 노려보는 엔야의 말에 알렉스는 입을 다물었다.
분명 옛날에 그녀와 헤어지기 전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그건 거짓말이었다.
엔야를 억지로 떼어 내기 위한 거짓말.
“네가 알 거 없잖아.”
알렉스로서는 차갑게 끊어 내듯 말하는 것이 당장의 최선이었다.
“어차피 우리 일은 예전에 끝난 거 아니었어?”
“…….”
엔야가 입술을 깨물었다.
알렉스를 노려보는 눈동자에는 촉촉하게 물기가 젖어 있었다.
그 모습에 알렉스는 가슴이 욱신거리며 아파 왔다.
‘너는…….’
알렉스는 금방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엔야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을 모를 리가 없다.
한때 가장 오랫동안 들여다보던 눈동자였으니까.
‘아직도 나를 잊지 못했구나.’
엔야는 아직도 자신에게 마음이 남아 있었다.
상처 주고 떠나 버린 자신을 아직도 기억해 주고 있었다.
그것이 내심 기쁘면서도 동시에 참을 수 없이 슬펐다.
지금 이 자리에서, 또다시 그녀에게 상처를 입혀야 했으니까.
‘만약 여기서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준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서로 웃으면서 미래를 꿈꾸던 그 시절로.
─아니.
움직이려는 손을 멈췄다.
자신을 노려보는 엔야의 모습에서, 과거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모습이 겹쳐 보였던 탓이다.
알렉스는 속으로 자조하듯 웃었다.
‘나한테 그럴 자격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엔야를 상처 입히고 먼저 떠나간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다.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도.
그리고 용서받지 못할 것도.
전부 자신인 것이다.
“……볼일이 끝났으면 이만 가지그래?”
알렉스는 자신이 이렇게 싸늘한 어조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가 놀랐다.
그 말에 엔야는 몸을 흠칫 떨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구나.”
억누르듯 말하는 엔야의 목소리가 알렉스의 가슴에 날아와 박힌다.
하지만 알렉스는 필사적으로 견디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엔야는 그런 알렉스의 모습을 보다 일견 실망의 빛을 보였다.
어쩌면, 조금이라도 이 남자가 미안하길 바랐던 걸지도 몰랐다.
“그래. 방해해서 미안했어. 잘 있어.”
엔야는 그 말을 남기며 등을 돌렸다.
알렉스는 이 모습이 기억에 있었다.
옛날과 같은 광경.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결국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는 강해졌구나.’
참지 못하고 알렉스가 그녀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것은 결국 닿지 못했다.
엔야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알렉스는 건물 벽에 등을 기대며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하하. 나 진짜 꼴사납네.”
떠나가려던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다니.
이런 어중간한 각오여서야 리더를 볼 낯도 없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엔야에게 달려가 그녀를 잡아 세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날 너에게 상처 준 것은 전부 거짓이었다고.
사실 나는 아직도 널 마음에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녀는 귀족이고 자신은 평민이다.
같은 기사 훈련소의 동기여도 결국에 이어질 수 없다.
이곳은 그런 세상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진흙투성이였던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저벅.
발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가면을 벗은 루드거가 있었다.
나이트 크롤러 단장과의 이야기는 전부 끝낸 것일까.
“뭐야, 리더. 뭣 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미안하게 됐다. 알렉스. 너에게 미리 언질을 줬어야 하는데.”
“사과는 됐어. 확인도 안 하고 멋대로 들어온 건 나니까. 그거 위로하려고 온 거였어? 뒤에 사람들까지 데리고?”
그 말에 몰래 숨어 있던 기척이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며 의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알렉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대체 몇 명이야? 아주 동네방네 소문 다 났겠네.”
“뭐, 모를 수가 없으니까.”
하필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이 방문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알렉스도 그 부분을 납득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푹 떨궜다.
“어휴. 여기까지 왔으면 어떻게 비밀에 부치고 넘어갈 수도 없겠네.”
알렉스는 자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렸다.
세리단이 슬쩍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방금 그 나이트 크롤러 기사가 옛 연인이었던 사람?”
“맞아. 나와 같은 동기이자 전우이며 내 첫사랑이기도 했지.”
“전우라면…… 당신 역시.”
무언가 눈치를 챈 비올레타.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와서 뭘 숨기겠어. 맞아. 나는 한때 기사 지망생이었어. 정확히는 제국의 사관생도였지.”
무언가 눈치를 챈 건지 한스가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 제국에서 사관생도라면 분명…….”
“맞아. 난 제국의 사관학교 노블나이츠의 생도였거든.”
그리고는 씁쓸하게 뒷말을 덧붙였다.
“정확히는 불명예스러운 퇴소자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