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42
◈ 242화 비 내리는 날의 랩소디 (1)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레더벨크 도시 바깥에서 멀리 떨어진 숲.
그곳에 도착한 클락워크 기사단은 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봐 막내야. 분명 여기에 숲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 예. 그렇습니다. 분명 이곳에 라모레 숲이라 해서 크지는 않지만, 수풀이 우거진 곳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데 이건 대체 뭐지? 아무것도 없잖아.”
기사단이 바라보는 장소에는 더 이상 숲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수한 흉터와 뒤집힌 대지. 곳곳에 파여 있는 거대한 크레이터까지.
나무는 사라지고 없었고, 그 흔한 바위마저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무슨 전쟁이 벌어지기라도 한 건가?”
이 정도의 광경은 대규모로 폭격을 가하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숲 하나를 날릴 정도라면 필요한 화약의 양은 어마어마할 테고, 그것을 운송하는 데에만 엄청난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비록 도시 바깥이라 하지만, 그 정도의 사람들이 움직였다면 필시 사전에 보고가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기사단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단장님. 누군가 이곳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한 게 아닐까요?”
“실험?”
“예. 마법 같은 걸 말이죠. 그게 아니라면…….”
옆에서 기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낼 때, 다른 동료 여기사가 그런 기사를 타박했다.
“이 멍청아. 여기에 뭐가 있다고 실험을 해? 게다가 실험을 한다면 더 외진 곳에서 은밀하게 해야지, 이렇게 다 때려 부수면 그게 비밀 실험이야?”
“그, 그런가?”
“그래. 오히려 다른 무언가가 있던 거겠지.”
가만히 듣고 있던 기사단장이 신입을 돌아보며 물었다.
“신입. 오늘 들어온 보고가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지?”
“그, 그것이…….”
기사단장이 묻자 어리바리한 막내가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도시 바깥 하늘이 붉게 물들었고, 잠시 뒤 천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소음이 들려왔다 했습니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예. 분명 그렇게 들었습니다.”
“이상하군. 이런 화창한 날씨에 어떻게 하늘이 붉어진다는 거지.”
보고로 들어온 말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실제로 벌어진 참상을 보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맞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추측이 감히 불가능했다.
“그날 사라진, 제보당의 괴수가 다시 나타난 게 아닐까요?”
기사단원 중 누군가 그런 의견을 냈다.
“제보당의 괴수가?”
“예.”
기사단장은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려 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쿤스트 경매장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그 거대한 괴물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입장이 아닌가.
그 말이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정도의 괴물이 나타나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납득은 간다만.’
하지만 지면에 새겨진 상흔은 단순히 거대한 괴물이 날뛴다고 해서 나타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저곳 새겨진 크레이터는 아무리 봐도 폭발의 흔적이었다.
그것은 다른 기사들도 다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그들은 저마다 의견을 꺼냈다.
“나는 아무리 봐도 마법 실험 같은데.”
“크립티드의 등장이 맞지 않나?”
“군에서 몰래 진행한 극비 프로젝트라면?”
이런저런 말이 나올 때 신입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어, 어쩌면.”
자연스럽게 선배 기사들이 신입에게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파괴의 현장이 넓지만 그 형태가 은근 비슷한 거로 보아, 마법사가 벌인 짓이 아닐까요?”
“뭐? 마법사?”
“예. 그것도 아주 강력한 마법사인 거죠. 다만 혼자는 아니고, 둘이서 싸운 것 같은데.”
그 말에 선배 기사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우리 막내가 아주 재밌는 생각을 하고 있네.”
“얘도 참 웃기다니까? 세상에 어떤 마법사가 남들 몰래 이런 곳에서 싸우냐?”
“맞아. 애초에 이 정도의 참상을 만들어 낼 마법사가 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의견을 냈던 신병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붉게 변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클락워크 기사단장은 자신의 턱을 쓸었다.
‘마법사라.’
검의 길만 걷다 보니 마법에 대해서 문외한이라지만.
기사단장급이 된다면 좋든 싫든 마법에 대해서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기사단장의 지식 내에서 이 정도의 참상을 일으키려면 최소 대마법사라 불리는 6위계 이상이어야 했다.
그리고 6위계 마법사는 절대로 흔하지 않았다.
‘최소 6위계 마법사 둘의 싸움인가.’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막내의 의견은 허점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단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군. 전혀 모르겠어.’
일단 수사는 계속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기사단장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조사를 계속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안 그래도 요즘 귀찮은 녀석들이 레더벨크에서 설치는 것 때문에 가뜩이나 신경이 쓰이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단장은 한쪽에서 서성거리는 일말의 무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 녀석들.”
그건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진지하게 토론을 나누던 기사들은 한 무리를 보며 짜증 어린 말을 내뱉었다.
“루멘시스 교단의 팔라딘 놈들이 여기는 왜…….”
새하얀 갑옷과 망토를 두르고 있는 기사들.
요즘 기사들이 제복을 입는 것과 다르게 아직도 구시대의 복장을 고수하는 그들은 최근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 성기사들이었다.
레더벨크 교구 소속 팔라딘.
이곳은 레더벨크 관할 구역이라 클락워크 기사단이 나섰지만, 팔라딘들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멋대로 현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뭐라고 말을 한다고 한들 소용이 없으리라.
신앙이라는 이름의 광기로 무장된 저들은 이쪽이 무슨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까.
“단장님. 어떻게 할까요?”
“됐다. 어차피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녀석들이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그때, 팔라딘 무리 중 하나가 클락워크 기사단을 향해 다가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신도님.”
“……무슨 일이오?”
다가온 사람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 팔라딘이었다.
“어버이의 은총이 함께하길.”
“됐고, 본론부터 말하시오.”
“오늘 벌어진 이 참상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자 왔습니다.”
“의견? 의견이랄 것이 뭐가 있겠소. 그냥 보이는 그대로 누군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지.”
대화도 섞기 싫다는 듯 기사단장의 말투는 매몰찼지만, 팔라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제 말은, 서로 힘을 합쳐서 알아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저희는 누구의 짓인지 짐작이 가니까요.”
“…….”
기사단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팔라딘의 말이 진실인지 가늠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소를 잃지 않는 팔라딘의 표정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정말이오?”
“예. 단장님께서는 이 공간에 가득한 사특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런 게 있단 말이오?”
“예. 주신 루멘시스를 모시는 저희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참상의 곳곳에서 풍겨 오는 냄새. 이렇게나 역겨운 피 냄새를 풍기는 존재는 오직 하나죠.”
“그게 누구지?”
“이제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흡혈귀입니다.”
팔라딘은 그것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 부정한지 얼굴을 찌푸렸다.
“오래전부터 본 교단에서 제거하기 위해 추적해 온 존재이죠.”
* * *
“으음.”
셀리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상반신을 일으킨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으, 여기는?”
분명 그녀는 낮까지만 해도 루드거와 함께 걷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밤이 찾아와 있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순간 셀리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 맞다! 루드거 선생님!”
“부르셨습니까.”
“꺅!”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셀리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뒤늦게 목소리의 주인이 루드거라는 걸 깨달은 셀리나는 손으로 가슴을 쓸었다.
“아으 깜짝이야. 놀랬잖아요.”
“죄송합니다.”
“그보다 여기는 어딘가요? 저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셀리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레더벨크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원의 벤치였다.
“모르셨습니까. 셀리나 선생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제가 여기까지 데려온 겁니다.”
“예에?!”
셀리나는 자신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말에 당황했다.
“제, 제가 정말로 그랬나요?”
“예. 아무래도 많이 피곤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 아닌데에. 오늘 되게 쌩쌩했는데.”
셀리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멍청함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바보 셀리나. 대체 뭐 하는 거야. 모처럼의 기회였는데.’
식사마저도 의도치 않은 불청객 때문에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다.
뮤지컬이라도 같이 볼까 했지만, 시간을 보니 그마저도 안 될 것 같았다.
셀리나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으나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사과였다.
“죄송해요.”
“무엇이 죄송하다는 겁니까.”
“괜히 저 때문에 루드거 선생님의 휴일까지 날려 버렸잖아요.”
시간을 보면 아무래도 루드거는 쓰러진 자신을 계속 돌봐 줬던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축젯날에도 이런 비슷한 일을 겪었었다.
‘나 정말 몸 어디가 안 좋은 건가?’
셀리나는 더욱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셀리나의 품 안에서 어둠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스메랄다?”
어둠의 정령은 밤이 찾아온 것이 기분이 좋은지 셀리나의 어깨에 올라타 그녀를 위로하듯 뺨을 비볐다.
셀리나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위로해 주는 거야? 고마워.”
루드거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셀리나의 옆에 조용히 앉으며 말했다.
“셀리나 선생님은 제게 죄송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배려해 드리지 못한 저의 책임이 더 크니까요.”
셀리나는 루드거에게 미안해했으나 오히려 미안한 것은 루드거였다.
원래라면 즐거운 하루를 만끽했어야 할 셀리나는 갑자기 등장한 그란데르 때문에 반나절을 기절하고 말았다.
사실상 기절을 시킨 것은 루드거였지만, 아마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절시키지 않았다면 더 귀찮은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루드거 선생님은 친절하시네요.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실 필요가 없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는 셀리나로서는 루드거가 자신을 위로해 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오늘 하루가 다 가 버렸어요.”
도시는 빛으로 가득했지만, 그렇기에 셀리나는 뭔가 아쉬움이 들었다.
내일 있을 수업 때문에 이제 다시 세오른으로 돌아가야 했다.
즐거운 휴일은 이걸로 끝이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즐기고 싶었는데.”
루드거는 셀리나의 옆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때마침 보이는군요.”
루드거가 한쪽을 바라보자 셀리나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인적이 없는 공원.
가로등의 불빛만이 은은하게 비치는 그 거리에 일말의 무리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저기, 루드거 선생님. 저 사람들은?”
“셀리나 선생님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뮤지컬 배우들입니다.”
“배우들이요? 그 사람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이 장소는 예전부터 공연을 연습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도시 안쪽은 시끄럽다 보니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공원에서 자그맣게 이벤트를 연다고 합니다.”
“예?”
“운이 좋군요. 때마침 오늘이 그날입니다.”
뮤지컬 팀은 각자 자리를 잡더니 이윽고 합을 맞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와아.”
그 모습을 보자 셀리나는 이 기가 막힌 우연에 의아함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순간의 의심으로 지금 이 순간조차 즐기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루드거와 함께 벤치에 앉아서 둘만의 공연을 구경하는 것.
오히려 이것은 그녀가 바라는 것 그 이상의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투둑. 툭.
그때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도시에서 흘러나오는 빛무리가 먹먹하게 보인 시점에서 혹시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 하필이면 비가…….”
셀리나는 비가 내려서 공연이 중간에 끊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루드거가 움직였다.
그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내리던 빗줄기가 우산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비껴 나갔다.
도시 전체에 내리는 비가 유일하게 이 공간만을 피해 갔다.
쏴아아.
지면에 아롱아롱 새겨지는 물방울의 자국들.
하늘의 질시 속에서도 공연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루드거는 거기에 더해 약간의 서비스를 더했다.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며 공연을 하는 뮤지컬 팀의 주위를 아름답게 비추었다.
그것은 마치 빛을 오려서 만든 종이 인형처럼, 사람들과 어우러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밝고 찬란하게.
“와아.”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도시의 풍경.
그것을 배경 삼아 멋진 공연을 하는 사람들.
허공에서 춤추는 빛의 요정까지.
마치 꿈속을 거니는 것만 같은, 몽환적인 광경에 셀리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의 품 안에 안긴 에스메랄다도 얌전히 공연을 구경했다.
루드거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기뻐해 주니 다행이군.’
자기 때문에 셀리나의 휴일이 날아가게 됐으니, 이렇게라도 보답을 해 주지 않으면 그가 불편했다.
다행히도 셀리나는 이 자그마한 이벤트를 진심으로 즐겨 주었다.
뮤지컬은 채 30분도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비록 짧았을지언정 셀리나에게는 세상 어느 때보다도 값진 30분이었다.
짝짝짝짝.
셀리나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쳐 주자, 뮤지컬 배우들도 셀리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이윽고 공연단이 물러나고 적막이 감도는 현장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됐다.
빛이 사라지고 공원에 남은 것은 먹먹한 가로등의 불빛이 전부였다.
솨아아아.
점차 굵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루드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 보죠.”
“네. 그래야겠어요. 비도 점점 많이 오는 것 같고.”
“다음에는 제대로 된 뮤지컬을 보면 좋겠군요.”
그 말에 셀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미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어요. 오히려 저는 더 만족하는걸요.”
“그러시다면 다행이군요.”
“고마워요. 루드거 선생님.”
셀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루드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미리 챙겨 왔던 우산을 건네주었다.
“쓰십시오.”
“네? 루드거 선생님은요?”
“저는 여분이 하나 더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래도 같이 가시는 게…….”
“저는 아직 볼일이 남아서 잠시 있다가 가겠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묻지 말라는 뉘앙스에 셀리나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아쉬웠지만, 여기서 만족하고 물러나기로 했다.
“그러면 저는 먼저 가 볼게요. 내일 봬요.”
“예. 내일 보죠.”
“오늘 정말로 즐거웠어요.”
셀리나는 루드거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인 뒤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루드거는 셀리나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 마법을 해제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 그는 검은 우산을 펼쳤다.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지켜보는 건 그만하고, 슬슬 나오시지 그러십니까.”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죄송해요. 일부러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루드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새하얀 의복과 흰색 후드를 뒤집어쓴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내리는 빗속에서 우산을 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웃는 얼굴로 루드거를 바라봤다.
“그래서.”
루드거는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루멘시스 교단의 사람이 저에겐 무슨 볼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