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50
◈ 250화 각자의 선택 (3)
여동생인 셀리의 행방불명에 아르테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이 됐다.
부모님을 모두 여읜 아르테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말 잘 듣는 착한 동생인 셀리뿐이었다.
그랬던 셀리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인장에게 물어봐도 셀리를 본 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선생님. 어쩌면, 어쩌면 좋죠? 셀리마저 사라진다면 저는……!”
“진정해라, 아르테.”
루드거는 자신의 옷깃을 쥐고 눈물을 글썽이는 아르테를 진정시켰다.
배움에 열정적이고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아르테였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였던 걸까.
하나뿐인 가족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아르테는 완전히 패닉에 빠져 있었다.
평소에 보여 주던 총명함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빛을 발하지 못했다.
“아직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 않느냐.”
“그, 그건…….”
“침착하게 생각해라. 셀리는 강한 아이니까 분명 괜찮을 거다.”
“그렇지만 요즘 주변에서 아이들이 사라진다고…….”
“행방불명 사건 때문이구나. 걱정 마라. 내가 직접 확인해 볼 테니.”
“선생님이요?”
“그래. 금방 알 수 있을 거다.”
아르테를 진정시킨 루드거는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편지를 하나 작성해 가장 빠른우편으로 붙였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연쇄 행방불명 사건이라.’
심지어 델리카 왕국의 야드(경찰)들은 이상할 정도로 이번 사건에 대해 미적지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피해자가 고작 하층민밖에 되지 않으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루드거는 셀리를 떠올렸다.
용감하고 외향적인 아르테와 다르게 소심하고 얌전한 아이를.
자신을 처음 보았을 때 겁을 먹었으면서도 이후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던 그 모습을.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늦게 일어나는 오빠와 달리, 일찍 일어나서 가게의 청소를 돕고 루드거에게 아침 식사로 따뜻한 스프를 내주며 웃던 것이 귀엽던 아이였다.
대단한 학자가 될 거라는 거창한 꿈이 없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소박함과 따스함을 지닌, 근래에 보기 드문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그 아이를 모종의 이유로 납치한 거라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 * *
편지를 보내고 다음 날.
루드거는 델리케 왕국의 기차역의 벤치에 앉아 한 사람을 기다렸다.
“형님.”
그때 루드거의 옆에 신사복을 입고 중절모를 쓴 한스가 다가와 앉았다.
‘저 사람은?’
케이시는 한스의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걸 깨달았다.
축젯날 처음 루드거에게 말을 걸었을 때도 그렇고, 로얄 스트리트에서도 한 번이지만 스쳐 지나가면서 본 얼굴이었다.
“한스.”
“갑자기 부르셔서 일단 급하게 달려오긴 했는데, 무슨 일이 있던 거요?”
“최근 델리카 왕국 내부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재미있는 일?”
“너도 뭔가 들은 것이 있나?”
그 말에 한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스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가 루드거에게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는 이야기하기 그러니 조용한 곳으로 갑시다.”
“그러지.”
루드거는 한스를 데리고 오르도 대학의 개인 집무실로 향했다.
한스는 교수에게만 주어지는 집무실 내부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대단하시구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는 거요?”
“준다고 하니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지. 참고로 이곳에서는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라 불리니, 호칭을 착각하지 말도록.”
“그러도록 하죠. 그보다 방금 했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겠소.”
한스는 커흠 하고 목을 다듬더니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조용히 말했다.
“최근 델리카 왕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소.”
“심상치 않다면 정확히 어떤 부류지.”
“평소보다 더 많은 대량의 철을 사들이고 있으며, 공장 가동률이 눈에 띌 정도로 올라갔다고 하더구려. 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소.”
“……전쟁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다만, 적어도 국가 단위 차원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것은 틀림없을 거요.”
“다른 이야기는 없나?”
“최근 델리카 왕국 전역에서 행방불명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소. 처음에는 대부분 외지인이었는데, 요즘은 마냥 그렇지 않다고 하더구려.”
행방불명.
그 말에 루드거가 눈을 빛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봐.”
“설명이고 자시고 나도 아직 모르오. 일단 접한 정보는 이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면 여기서 제대로 정보를 확인해 봐야겠군.”
“……형님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괜한 헛소문을 들은 것은 아닌 모양이구려.”
두 사람은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본능적으로, 이번 일이 전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한스. 얼마나 걸리지?”
“흠.”
한스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였다.
“3일은 필요할 거요.”
* * *
한스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돌아다닐 때, 루드거는 제임스 모리아티로서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처럼 논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속으로 동시에 다른 생각을 품었다.
‘한스가 말하길, 이번 사건은 수상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했다.’
사람이 사라졌는데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그랬다.
처음에는 그저 빈민가 사람이나 노동자, 고아가 사라졌으니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여기저기 뜯어 보니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알고서 기피하는 느낌이 강해.’
국가 단위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도 그렇고.
최소한 이번 일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관여되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누구냐는 건데.’
고위 귀족, 군 장성, 상원 의원 등등.
루드거의 머릿속에 델리카 왕국의 주된 사람들의 인적 사항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내가 찾아오는 것도 모르고.”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루드거는 논문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어 활짝 열린 집무실 문을 향했다.
“이전부터 말했지만, 자네는 어딘가에 들어올 때는 노크부터 하는 버릇을 들이는 게 좋을 걸세.”
“거참 미안하네요. 노크하자니 문이 너무 커서.”
“그걸 우렁차게 열고 들어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로군.”
“그 우렁찬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논문에 집중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죠? 아니, 논문보다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거려나?”
케이시 셀모어는 루드거의 맞은편에 의자를 드르륵 끌고 와 자연스럽게 앉았다.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표정은 오늘은 또 무슨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수다를 떨러 왔는가.”
“수다라니. 남 듣기엔 제가 마치 고명하신 교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제대로 보았군. 아주 안목이 탁월해.”
“탐정의 기본 소양이죠.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이쪽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시선에 루드거는 흔들리지 않고 간단히 대꾸했다.
“최근에 주변에서 흉흉한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혹시라도 학생들이 거기에 휘말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돼서 그랬다네.”
“흉흉한 일이라. 가령…… 행방불명 같은 거요?”
“…….”
일순 케이시를 향한 루드거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제가 정곡을 찔렀나 보네요.”
“……그래. 요즘 사람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하더군. 무서운 이야기야.”
“맞아요. 하지만 야드들은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수색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죠. 애초에 할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자네는 꽤 잘 아는 것 같은데.”
“쫓고 있거든요.”
“쫓고 있다?”
케이시는 루드거의 책상 위에 놓인 펜을 하나 쥐고서 그것을 빙그르르 돌렸다.
“저는 탐정이니까요. 수상한 사건이 벌어지면 그걸 해결하려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러다 괜히 일만 크게 들쑤시는 경우도 있지 않나.”
“처음에는 그랬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죠. 해결한 사건이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뭐만 하면 다들 치켜세워 주느라 바쁘거든요.”
루드거는 케이시가 해결한 사건이 항상 국가 단위 신문의 1면에 실렸다는 걸 떠올렸다.
천재 명탐정에 대한 추리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 충분했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그녀를 추종하는 자들이 오르도 대학 내부에서도 더러 보이고는 했다.
“수사에 차도는 있었나?”
“그건 기밀이에요. 아, 혹시 궁금하세요? 흐음~. 부탁한다고 말하면 말 못 해 드릴 것도 없는데~.”
“딱히 궁금하진 않네. 자네라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루드거가 한발 물러서자 케이시는 재미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현재의 케이시는 입을 헤 벌렸다.
‘과거의 나는 원래 저렇게 싸가지가 없었나?’
조수인 베티가 이 말을 들었다면 지금도 싸가지가 없다고 말했겠지만, 적어도 케이시는 진심이었다.
뭔가 3년 전의 자신은 지금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철이 들지 않아서 그런가 저렇게 자랑하는 표정을 보면 이마에 딱밤이라도 한 대 먹여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케이시 셀모어 탐정님 계십니까?”
그때 열린 문을 통해 새로운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남청색 제복을 입고 있는 델리카 왕국의 경찰이었는데, 케이시와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그녀는 곧바로 그를 알아보았다.
“이런. 아무래도 일하러 가야 할 거 같네요. 먼저 가 볼게요.”
“그러게나.”
루드거는 케이시를 보내면서도 그녀를 찾아온 경관의 모습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 * *
루드거가 편지를 쓰고 한스가 델리카 왕국에 도착하고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루드거는 운전수가 모는 차를 타고서 숙소 근처까지 왔다.
“여기서 내리겠네. 자네도 이만 들어가서 쉬도록 하게나.”
“예. 푹 쉬십시오, 교수님.”
운전수를 그렇게 보낸 루드거는 아르테가 기다리는 숙소로 향했다.
지난 3일간 아르테는 최대한 자중하려는 것 같았지만, 사라진 여동생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이 확연히 티가 날 정도였다.
그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졌기에, 오늘은 아르테에게 최대한 희소식이라도 전해 줄 생각이었다.
‘한스라면 금방 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평소에 머물던 숙소에 도착한 루드거는 주인장에게 의외의 소식을 듣게 됐다.
“아르테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 그것이…… 분명 오늘 저녁 서빙을 할 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루드거는 가슴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살폈다.
저녁 시간대면 6시에서 7시 사이.
지금은 저녁 9시.
최소한으로 잡아도 아르테가 사라지고서 2시간이 지났다는 말이었다.
“경찰에게는 전했나?”
“그건 아직 입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지금이라도 그 아이들을 찾으러…….”
“됐네. 별일 아닐 터이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하게나.”
“그, 교수님은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루드거는 한 손에 지팡이를 챙기고서 옷 위로 인버네스 코트를 걸쳤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오면서 벗었던 모자를 다시 쥐고 그것을 머리 위에 썼다.
“날이 좋아서 말이지. 밤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네.”
어딘가 사뭇 무겁기까지 한 루드거의 목소리에 주인장은 뭐라 말하지 못했다.
숙소를 나서며 적당히 대로변으로 나오자 때마침 루드거를 기다리고 있던 한스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루드거는 한스를 돌아보지 않았다.
또한 천천히 걷는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고, 한스는 자연스럽게 루드거의 옆에 붙어서 함께 걸었다.
한적한 거리에 가스등의 불빛이 가득했다.
그마저도 조금씩 피어오르는 밤안개 때문에 먹먹하게 퍼져 나갔다.
“약속했던 3일이 지났다. 알아낸 것은 있나?”
“최근 벌어지고 있던 행방불명 사태. 이거 뒤져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게 있었소.”
“뭘 알아냈지.”
“우선 이번 벌어진 사건. 단순히 일반적인 범죄가 아니오.”
일반적인 범죄가 아니다.
루드거는 한스와 첫날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왕국 내에서 모종의 움직임을 보인다고 했던가.”
“그렇소.”
“그리고 이번 행방불명 사건은, 그런 왕국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는 걸 테고.”
“그 또한 그렇소.”
그 순간 두 사람을 스치고 증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갔다.
흐릿한 밤의 안개보다 더 짙은 새하얀 증기를 뿜으며 사라지는 자동차의 내부에는.
분명 복장을 바꿨지만, 루드거가 알던 얼굴이 끼어 있었다.
“한스.”
“예, 형님.”
“이번 행방불명 사태에, 경찰이 엮여 있나?”
“……그건 어떻게 알았소?”
루드거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어느덧 시야 너머로 사라진 증기차가 있던 방향을 바라보며 답했다.
“봤거든. 방금.”
조금 전 차에 탑승해 있던 사람은, 오늘 낮에 케이시를 찾기 위해 루드거의 집무실에 방문했던 그 경찰이었다.
분명 별로 수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유독 그 남자의 얼굴이, 낮에 집무실에서 보였을 때부터 자꾸 눈에 밟혔다.
이론과 추론의 단계가 아닌, 그저 순수한 육감의 영역.
아이러니하게도 그 육감은 이 순간 제대로 들어맞았다.
“놈들은 납치된 사람들을 어디로 끌고 간 거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탄광 지대요.”
“그래?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리겠군. 탈것이 필요하겠어.”
“탈것 말이오?”
한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탈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스는 직후, 루드거가 계속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어깨에 힘을 뺐다.
“……에휴. 내 팔자가 이렇지 뭐.”
한스는 미리 준비해 둔 짐승의 이빨을 꺼내 자신의 손목에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