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71
◈ 271화 검은 사자 (2)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
루드거가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서 베로니카가 양해를 구하듯 말했다.
“저는 잠시 저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예, 모쪼록.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저도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뵙죠.”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하며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눈치를 보던 교사 중 한 명이 루드거에게 다가와 물었다.
“루드거 선생님. 혹시 왜 기사단이 이곳에 온 건지 이유를 아십니까? 혹시 총장님께서 따로 뭔가 말씀하신 것인지…….”
“저도 총장님께 이런 일이 있으리라 들은 바는 없습니다. 다만 조금 전 베로니카 부단장님의 말을 들어 보면, 황실에서 명령이 내려왔다고 하더군요.”
“황실에서 말입니까? 대체 왜……?”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단순히 빈말이 아니라 진심.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베로니카 부단장은 황실에서 직접 기사단을 호출했다고 했어.’
명목상 학생들을 위한 경호라고 하지만, 그런 속 편한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이곳에 모인 멘토들이 누구인가.
각 개인 지닌 전력만 놓고 본다면, 전쟁조차 가능한 수준이었다.
학생들 또한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일반적인 또래 아이들로 여기면 곤란하다.
그런 자들을 호위한다는 말은 어폐가 있었다.
‘물론 겸한다고 했으나 그래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 아무리 유타 왕국이 안정화되었다지만 콜드스틸 기사단이 국경을 비우는 것도 그래.’
루드거의 시선이 검은 제복을 갖춰 입은 기사단을 향했다.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까지 나섰다면 더더욱.’
저들이 움직인 것 또한 황실에서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리라.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치고는 매우 과한 전력이다.
루드거는 이 기묘한 상황에서 모종의 흐름을 보았다.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사막 위에 펼쳐진 신기루처럼 흐릿하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분명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뭔가 있군. 수도에서 무언가 벌어지려고 하는 건가.’
이쪽이 확인한 바로는 검은 여명회가 움직인다는 보고는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라는 말인데.
‘이 시국에 움직일 만한 녀석들이라 하면 해방군 정도인가. 물론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니, 일단 지켜봐야 하겠어.’
괜히 뭔가 알아보겠다고 들쑤시고 다녔다간 오히려 이쪽이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일단 기사단의 직무는 수상해 보이는 것을 확인하는 것.
명분상일지라도 그것에 트집을 잡을 수는 없으니 지켜보는 수밖에.
물론 그렇다고 이쪽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루드거는 곧바로 신호를 보냈다.
휘익.
마력을 이용해 내는 이 휘파람 소리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초고주파의 음역대를 냈다.
평범한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소리지만, 하프 엘프인 세디나는 달랐다.
풍성한 갈색 단발 안에 감추어진 그녀의 귀가 쫑긋거렸다.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을 수상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세디나가 루드거를 돌아봤다.
‘세디나. 소식을 보내라.’
‘예.’
루드거가 적당히 눈짓을 주자, 눈치 빠른 세디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잠시 후.
종이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벌레 하나가 광장 밖으로 날아갔다.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오랜만입니다. 테리나 단장님.”
“베로니카 부단장인가.”
광장 안에 들어선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을 맞이해 준 것은 콜드스틸 기사단이었다.
흑과 백.
완전히 상반되는 색상의 두 집단은 마주 본 채로 서로를 말없이 응시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도 팽팽한 긴장감이 주변 공간을 잠식해 나갔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주 떠드는 것이 있었다.
하나는 구 마탑과 신 마탑, 학파 연합회 중에 누가 더 낫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국의 3대 기사단 중 어디가 가장 강하냐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항상 갈렸다.
누군가는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들은 적에게 무자비하고 잔혹하기에,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반대로 콜드스틸 기사단을 지지하는 사람은 다른 말을 꺼냈다.
콜드스틸 기사단이 주로 머무는 곳은 험악하다고 소문이 난 북부 아레트 산맥.
1년에 눈이 오지 않는 날이 더 적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 속.
그곳을 제집처럼 누비는 콜드스틸 기사단이야말로 어떤 기사들보다도 단련된 강자들이라 했다.
당연히 나머지 하나인 스텔라 사이렌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기사단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다.
바로 지금처럼.
칼을 뽑지는 않았지만, 기세만으로 서로 강렬하게 노려보는 두 기사단.
완전히 상반되는 제복의 색상 때문인지 그 대립이 더욱 부각되어 보였다.
그런 집단의 우두머리인 베로니카와 테리나는 서로를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휘두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분위기가 그렇게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피식.
베로니카와 테리나.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테리나 단장님.”
“그러는 베로니카 부단장은 요새 잘 지내고 있나?”
“그럴 리가요. 저희야 최근 너무 바빠서 겨우 지금 시간을 낸 참입니다.”
“아아. 내전 때문에 북부 지역에 약탈자가 들끓었다 했었지. 해방군 놈들의 열차 테러 사건도 있었고.”
“지금은 많이 줄었죠. 그보다 소문 들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 쪽이 더 바쁜 거 같습니다.”
그 말에 테리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마라. 요즘 이상한 일들이 너무 잔뜩 일어나, 안 그래도 우리 애들이 많이 피곤해하고 있다.”
“거대 마피아 조직이 하루아침에 증발했다고 했죠?”
“그건 양반이지. 도시 한복판에 거대 괴수가 나타났으니까.”
“제보당의 괴수 말이로군요. 저도 신문으로 읽어서 알고 있습니다.”
“사건이 하나 끝나면 또 새로운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더군.”
“피차 고생이로군요.”
베로니카는 쓴웃음으로 답하면서 손을 들어 보였다.
그 행동에 뒤에서 도열하고 있던 콜드스틸 기사단들이 기세를 거두며 고개를 픽 돌렸다.
그것은 나이트 크롤러 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상급자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광경에 테리나는 이제는 반쯤 포기했다는 듯 힘 빠진 미소를 지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유치한 기 싸움이나 하고 있으려는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 아닙니까? 여기에 스텔라 사이렌 단장까지 껴 있었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워집니다.”
“아아. 그건 나도 동감한다. 그나마 녀석들이 바빠서 자리에 없기에 망정이지.”
두 집단이 모이는 데도 이 정도인데, 나머지 하나가 여기에 추가된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정말 골이 아파 올 정도다.
특히 스텔라 사이렌의 단장은 워낙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이런 상황에서 불을 끄기는커녕 기름을 끼얹고도 남을 남자였다.
“그보다 베로니카 부단장. 그쪽 단장은 잘 지내나?”
“저희 단장님이야 항상 똑같습니다.”
“그 녀석, 만사에 귀찮아하는 거 같으면서도 자기 일에는 충실하니까. 여기에 오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인가?”
“예.”
“그렇군. 아무리 북부가 안정되었다 하더라도 기사단의 가장 큰 전력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보기 안 좋을 테니까.”
“사실 단장님은 수도까지 가기 귀찮아서 그런 거지만요. 아시잖습니까. 워낙 게으른 성격인 거.”
“녀석도 여전한가 보군.”
베로니카와 테리나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서로 담소를 나누었다.
테리나는 모든 여기사의 우상이었고, 베로니카 또한 실력으로 기사단의 부단장까지 오른 사람이었기에 두 사람은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기사단 전체가 경쟁하는 사이였기에 이런 둘의 관계는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베로니카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보다 테리나 단장님까지 이곳에 오신 것을 보면, 수도에서 뭔가 벌어진다는 겁니까?”
드디어 본론인가.
테리나는 그 말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었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들은 바는 없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 아닙니까?”
“정확히는 1황녀님의 명령이지.”
“그런데 단장님이 모르신다고요?”
“황녀님께서는 일단 수도를 순찰하라고만 하셨다.”
1황녀라는 말에 베로니카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황녀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겠군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황녀님께서 허투루 명령을 내리시는 분도 아니니까.”
그 말에 베로니카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언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거군요.”
“그러지 않길 빌어야지.”
“그 나이트크롤러 기사단도 모르는 일이라는 겁니까? 정보전에서는 저희 중에서 최강이?”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렇다 봐야겠지.”
“그런데 황녀님은 알고 계시고요.”
“그분이야 우리 말고도 다루는 수족이 많으니까. 특히 황녀님을 위해 따로 움직이는 자들도 있고.”
“아, 그림자의 칼날 말입니까.”
“정확히는 비수지만, 칼날도 틀린 말은 아니군. 다만 우리라고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요즘 해방군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거든.”
“북부에서 안 보인다 싶더니 수도 근방으로 모였나 보군요. 저희가 나선 것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함이고요.”
테리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솔직히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대놓고 돌아다니면, 적들은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숨을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벌어질 일을 뒤로 미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싹 다 쳐 내고 싶은 심정이다.”
“뭐가 어찌 됐든, 사건이 안 터지는 것만큼 나은 일이 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아무튼, 안부 인사도 나눴겠다, 저희는 이만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세오른 측에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베로니카의 말에 테리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모처럼의 현장 학습인데, 그걸 망치게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도 교사들에게는 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일은 황실에서 내려온 임무다. 세오른과는 관련이 없어.”
물론, 하고 테리나가 말을 이었다.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모인 것을 보고 무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겠지. 경각심 정도라도 품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세오른의 교사들 또한 실력자들만 모였으니까.”
“그렇군요.”
그렇게 콜드스틸 기사단이 떠나가고, 광장에 남겨진 테리나는 세오른 아카데미 학생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세오른 아카데미인가.’
얼마 전에 수사 차원으로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총장인 엘리사가 직접 나서서 그녀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아무리 테리나라 하더라도 세오른의 총장을 상대로 배포를 부릴 수는 없었기에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테리나의 시선에 한 사람의 모습이 잡혔다.
‘저 남자는.’
한눈에 봐도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이었다.
적당히 뒤로 묶은 긴 흑발.
어딘가 퇴폐미가 느껴지면서도 날카로움은 잃지 않는 푸른 눈동자와 날카롭게 솟은 콧날, 과묵하게 다물어진 입까지.
그야말로 조각 같은 미남이었다.
그 모습에 종지부를 찍는 것은 그가 걸치고 있는 의복이었다.
검은색 기조에 은색의 장식이 달린 프록코트는 주름 한 점 없었으며 그의 고풍스러움을 더욱 배가시켜 주었다.
조각가가 고심 끝에 깎아 낸 미형이란 이런 것일까.
다른 세오른 교사들도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특유의 분위기와 고풍스러운 귀공자 같은 외모 때문에 유독 눈에 띄었다.
“루드거 첼리시로군요.”
그때 테리나의 부관인 로이드가 곁에 다가오며 말했다.
“저 사람인가?”
“예. 최근에는 아케인 체임버에서 마력 방출량을 늘리는 연구 결과를 모두에게 공개했죠. 그 때문인지 세오른에서 기획처장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뛰어난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군. 세오른의 총장은 실력이 있는 사람을 아끼니까.”
테리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드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분명 그를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묘한 기시감이 조금 전부터 테리나의 몸에 습한 공기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뭐지?’
만나 본 적이 있던가?
루드거의 얼굴을 아무리 잔잔히 뜯어 봐도 기억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이쪽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루드거가 테리나가 있는 곳을 돌아봤다.
“…….”
“…….”
아주 찰나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테리나가 기감을 극도로 끌어올린 것은 순전히 감에 의존한 판단이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려지고, 동시에 시야가 확 맑아지며 멀리 떨어져 있는 루드거의 모습이 확대돼서 보였다.
만일 루드거가 이쪽을 보는 순간, 혹시라도 수상한 반응을 보인다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
그러나 놀랍게도 루드거는 테리나를 한번 스윽 보더니, 이윽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테리나는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리게 펼쳐진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이상 반응도 잡아내지 못했다.
‘뭐지? 단지 내 착각이었던 건가?’
미세한 동공의 변화조차 잡아낼 심산으로 지켜봤는데,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정말 말 그대로 남 보듯 쓱 훑듯이 시선을 돌려 버린 것이다.
“단장님?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괜한 걱정인가 싶기도 했다.
루드거는 세오른에서 젊은 나이에 기획처장의 자리까지 오른 남자다.
배경이 불분명하고 수상한 사람이, 그런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세오른에는 그녀가 있다.
총장 엘리사 윌로우.
사람을 보는 뛰어난 안목과 사람을 매료시키는 마안까지 지닌 그녀가, 수상한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나도 요즘 너무 예민해진 것 같군.’
테리나는 곧바로 루드거에게서 관심을 끄고 나이트 크롤러 단원들을 돌아봤다.
그들에겐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 * *
‘깜짝 놀랐네.’
테리나 라이언하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 낸 루드거는 긴장감에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했다.
순간 시선이 마주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대체, 왜 나를 본 거지?’
루드거는 테리나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를 알지 못했다.
본인이 기사들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얻었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해서였다.
다행이도 테리나는 별생각 없이 시선을 돌림으로써 이쪽을 향한 의심을 접었다.
루드거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발목이 잡힐 수는 없지. 지금 바로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
이다음으로 루드거가 가야 할 곳은 수도에 존재하는 오직 한 곳.
바로 황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