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49
◈ 449화 반역의 뿌리 (1)
“어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덴티스 가문의 엘프들에게 구속당한 알렉스가 비에라노를 향해 물었다.
설마 배신인가 싶었지만, 비에라노의 손목에도 똑같은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
엘프의 숲에서만 자라나는 특별한 나무의 뿌리를 엮어서 만든 구속구였다.
환호를 받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대접은 있을 줄 알았는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비에라노 또한 당황스러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자신의 조카인 비엘라가 이런 짓을 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죄인처럼 끌려가는 지금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제가 없는 사이에 무언가 큰일이 일어났다는 거겠죠. 그게 대체 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요.”
“아마 저희가 향하는 곳에 도착한다면 알게 될 거 같습니다.”
루드거가 답했다.
압송당하는 와중에도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걷고 있으니, 구속을 당한 게 맞는지 의아함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걸 지적하는 엘프는 아무도 없었다.
루드거의 당당함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에 다들 압도됐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루드거 선생님. 괜히 저 때문에…….”
비에라노는 루드거에게 사과했다.
애초에 루드거 일행이 이렇게 죄인처럼 압송당하는 것은 그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쉐이드워든의 추적자들과 싸울 수 있는 일행의 실력을 생각하면, 이렇게 허무하게 구속당하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럼에도 순순히 끌려가 주는 것은, 상대가 비에라노가 이끄는 가문인 덴티스의 엘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장에 죽이려고 하지 않는 걸 보면,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만.”
“그러겠죠. 비엘라가 저런 아이는 아니었는데…….”
“그보다 조금 전 백부라 들었는데, 혹시 형제가 있었습니까?”
“예. 제게 동생이 있었습니다. 비엘라는 제 조카고요. 가주로서 자리를 비우는 저를 대신해서 가문의 일을 대신 맡아 주고 있죠.”
비엘라는 당차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다른 젊은 엘프들이 보이는 객기를 부리지 않았다.
비에라노는 언젠가는 차기 가주의 자리를 비엘라에게 넘겨줄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반역? 아니면 다른 무언가?
항상 백부님 백부님 노래를 부르며 따라다니던 비엘라가 갑자기 보일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당장에는 단서가 너무 적어서 뭐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비에라노는 루드거의 말대로,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에라노의 생각은, 덴티스 가문의 저택에 도착하고 난 뒤에 무너지고 말았다.
덴티스 가문의 본가라 할 수 있는 저택은 나무를 파서 만들어 낸 곳이었다.
나무를 파냈다 해서 그 규모가 작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나무의 굵기가 수백 미터 단위.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닌, 수백 그루의 나무가 마치 새끼줄처럼 꼬이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거대한 식목 군집체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높이 15m에 굵기 400m가 넘는 거대한 자연의 산물이었다.
덴티스 가문은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미친. 겁나게 큰 변종 브로콜리를 보는 것 같구려.”
그 자연의 신비함의 위용에 놀라거나 감탄할 틈새도 없이 한스의 싸구려 감상이 분위기에 초를 쳤다.
이전까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던 덴티스 가문의 엘프들도, 이 순간은 한스를 찌릿하고 노려보았다.
루드거 일행을 인도한 엘프들은 이내 한 접견실에 그들을 들이밀었다.
비에라노는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엘프들을 발견하고는 표정을 굳혔다.
“당신들이 대체 왜…….”
비에라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3명의 엘프가 앉아 있었다.
각기 자신의 가문을 상징하는 고유의 문양이 새겨진 의복을 입고 있는, 50대 이상의 외모를 지닌 엘프들이었다.
그 문양이 의미하는 것은 각자 라딕스, 크라운, 플로힘.
온건파를 상징하는 삼귀족 가문이었다.
“비엘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비에라노는 대체 왜 덴티스 가문에 저들이 있는 건지 비엘라에게 답을 요구했다.
하지만 비엘라는 비에라노의 시선을 무시했다.
“말씀대로 데려왔습니다.”
“허허. 그래. 잘했네.”
비엘라를 자연스럽게 하대하는 늙은 엘프의 모습에 비에라노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늙은 장로를 향한 비에라노의 눈빛은 평소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경악할 정도로 싸늘했다.
조카가 자신을 압송한 것보다도, 감히 다른 가문의 장로가 차기 가주가 될 비엘라를 하대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었다.
그러나 비에라노의 적의 어린 물음에 삼귀족 가문의 장로들은 가소롭다는 코웃음을 지었다.
“비에라노 덴티스. 아직도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군. 자네가 왜 이 영토 안에서 이렇게 구속당한 채 끌려왔는지 정녕 모르는가?”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만.”
“오해? 당신과 함께 온 인간들을 보고도 오해라 할 수 있나?”
“이들은 제 손님입니다.”
“손님이라. 인간을 우리의 숲에 몰래 들여놓고도? 하긴, 굳이 지금 그런 걸 따질 필요는 없겠지. 반역 혐의가 있는 자에게 애초에 그게 무슨 의미일까.”
“반역이라고요?”
갑자기 왜 그런 말이 나오는 걸까.
비에라노는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애써 밀어내려고 했다.
그런 비에라노를 비웃으며 삼귀족의 장로가 말했다.
“비에라노 덴티스. 그대는 플란테 가문의 마지막 혈육의 존재를 알면서도 숨기고, 끝내 지키려는 행동을 취했지.”
“……!”
“우리 엘프 사회에서 플란테라는 이름이 지니는 무게가 얼마나 끔찍한지 모르지는 않을 터. 아니면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겠나?”
비에라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저들이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거지?
설마, 리프레 가문이 미리 정보를 흘렸나? 하지만 어떻게?
“플란테 가문의 마지막 혈육을 자기 뜻대로 조종해서 덴티스 가문의 부흥이라도 꿈꾼 것인가?”
“모함하지 마십시오!”
“그게 모함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지. 요지는, 그대가 플란테 가문의 생존자를 알면서도 그 사실을 감췄다는 거야.”
삼귀족 장로의 말은 사실이다.
실제로 비에라노는 플란테 가문의 생존자인 세디나의 정체를 알고도 묵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비에라노가 반역을 꿈꾼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었다.
‘당했군.’
루드거는 저 늙은 엘프가 무얼 하려는지 깨달았다.
‘교묘하게 일부의 진실만으로 상대를 몰아가고 있어.’
비에라노가 세디나를 이용하려 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 말을 과연 다른 엘프들이 믿어 줄까?
만약 그런 꿍꿍이가 없다면, 왜 죄인이라 할 수 있는 플란테의 혈육을 보호해 준 걸까.
이미 그 사실 하나만으로 비에라노의 입지가 흔들리기엔 충분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야. 덴티스 가문이 역적으로 몰려서 일곱 뿌리 중 하나가 사라질 뻔했지만, 영민한 어린 가주가 올바른 판단을 내렸으니까.”
그 말에 비엘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의 백부인 비에라노를 응시할 뿐.
“비엘라. 저는…….”
비에라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비엘라가 차갑게 말했다.
“죄인들을 감옥에 집어넣어라.”
덴티스 가문의 엘프들은 그 명령을 따랐다.
결국, 비에라노를 비롯한 루드거 일행은 그대로 덴티스 가문의 뿌리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됐다.
습기가 가득하고 풀벌레가 기어 다니는 지하 감옥은 을씨년스러웠다.
“이거 참. 하필이면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최악의 상황이 터지고 말았네.”
감옥에 갇혔음에도 알렉스는 태평하게 웃었다.
이 부정적인 상황을 애써 무마하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비에라노는 더욱 죄송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저희 가문에 도착하게 된다면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온건파의 손에 넘어간 뒤였다니.”
“온건파의 정보력이 생각보다 뛰어났던 겁니까.”
“그게 의아합니다. 온건파는 숲 바깥의 상황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빠르게 소식을 접했다니.”
비에라노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이미 일은 벌어지고 말았는데.”
“그보다, 너무 무방비한 거 아니야?”
알렉스는 경계를 서는 엘프가 하나도 없다는 것에 의아해했다.
“고작 이런 가벼운 구속으로 우리를 어쩌려고?”
“가벼운 구속이 아닙니다. 이 감옥은 어떠한 정령사나 마법사가 날뛰어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니까요.”
그들을 가두고 있는 억센 뿌리는 평범한 나무가 아니었다.
강력한 생명력이 흐르는 뿌리는 그 자체만으로 금속을 뛰어넘는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오러나 마력을 뿜어내도 뿌리를 끊어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뿌리 감옥을 한번 손으로 스윽 훑어본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칫. 진짜네.”
“물리적으로 뚫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해킹을 하면 어떨까요?”
벨라루나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가문에는 벨라루나 양처럼 실시간으로 정보를 읽는 감시자들이 있습니다. 벨라루나 양이 뿌리를 통해 접속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대거의 병력이 몰려들 겁니다.”
“저들은 오히려 그걸 바라고 있을 거다.”
루드거가 비에라노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렇게 가두기만 했다는 것은, 아직 반역을 확정 짓지 않고 혐의만 있다고 말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놓고 감옥을 건드리는 순간, 그때는 혐의가 아니라 반역이라고 확정을 짓겠지.”
“상대가 그토록 원하는 즉결 처형의 명분을 제대로 쥐여 주는 셈이구려.”
한스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쩌면 좋소? 계획이 시작부터 다 틀어진 거 같은데.”
“조금 돌아갈 뿐이다.”
“돌아가자니, 시간이 많이 촉박하지 않소?”
한스도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숲에서 그나마 이쪽에 호의적이리라 생각했던 곳에서 이런 대접을 받다니.
“언제까지고 이 브로콜리 뿌리에 갇혀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나간다고 해도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기. 아무리 그래도 브로콜리 뿌리는 조금…….”
그래도 가주인지라 비에라노가 한스를 조심스럽게 타박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말은 틀린 것이 전혀 없었다.
사실상 믿고 몸을 의탁할 곳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외딴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도 지금처럼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던 그때, 지하 감옥의 어둠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온다.
상대는 자신이 다가온다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는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비엘라.”
비에라노는 자신의 조카인 비엘라를 보며 복잡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비엘라는 그런 비에라노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백부님. 당신은 반역 혐의가 있습니다. 가주인 당신이 그런 혐의를 받았다면, 덴티스 가문의 생명은 거기서 끝이에요. 저는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어요.”
“……미안합니다.”
“저는 당신을 넘기는 대가로 온건파의 지원을 받아 덴티스 가문은 반역과 전혀 연관이 없다는 약조를 받았습니다. 백부님. 당신 하나만 희생하면 되는 일이에요.”
“하나는 아니지 않나.”
루드거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비엘라는 루드거를 가볍게 무시했다.
“연회가 열릴 거예요. 새로운 가주를 축하하는 의미를 넘어서, 이제 온건파에 새로운 우군이 들어섰다는 것에 기뻐하는 연회죠. 아마 자정 정도가 된다면, 다들 취해서 정신이 없을 거예요. 당연히 삼귀족 가문의 장로들도 한곳에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겠죠. 승리를 자축하면서.”
“……비엘라?”
“내일 아침 해가 뜬다면 백부는 왕성에 끌려갈 거예요. 혐의고 뭐고, 그렇게 되는 순간 반역자라는 것이 확정되는 거죠. 그러니 마지막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하세요.”
비엘라는 그 말을 남기곤 이내 지하 감옥을 떠나 버렸다.
무거운 침묵이 장내에 맴돌았다.
“어, 어떡하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벨라루나였다.
비엘라의 말은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내일 아침이면 사형장에 끌려간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머지 넷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의도치 않은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비에라노 선생님.”
“예. 루드거 선생님.”
“조카분이 참으로 영민하군요.”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피식 웃으며 말하는 비에라노의 표정에는 비엘라를 향한 자랑스러운 감정이 가득했다.
“어, 어어?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오직 벨라루나만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알려 주러 온 거잖소.”
“뭐, 뭐를 알려 줬다는 거예요?”
“자정.”
한스는 조금 전 비엘라가 한 말을 떠올렸다.
“자정에는 취해서 정신이 없을 거고, 한곳에 모여서 떠들 거라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힌트를 줬는데 모르는 게 더 힘들지.”
“아! 그렇다는 건 설마…….”
“아무래도 덴티스 가문은 삼귀족과 완전히 갈라설 모양이오.”
한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비에라노를 응시했다.
“정말 미안한 일이죠.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 가문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제 조카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어른인 제가 해야 했을 일을 떠넘기고 말았네요.”
“비에라노 선생님. 준비는 됐습니까?”
루드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이제부터 진짜 반역자가 되는 겁니다.”
“해야겠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자, 잠깐만요! 하지만 이 감옥에서 어떻게 빠져나가려고요?”
벨라루나는 일단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다.
힘으로 감옥을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뿌리 네트워크에 접속하자니 상대방이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한 방법이 없지 않은가?
“안 그래도 저쪽은 이쪽이 크게 날뛰길 바라는 모양이더군.”
딱히 탈출할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것은, 비엘라는 오히려 이쪽이 삼귀족의 시선을 끌어 주길 바란다는 의미였다.
“우리가 시선을 잡아끄는 동안, 비엘라는 본인이 직접 가문의 엘프들을 이끌고 삼귀족을 칠 거다. 자신이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하겠다는 소리겠지.”
“그, 그런…….”
“가문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비에라노에게 물었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계실 겁니까?”
“아니요. 조카에게 전부 떠넘길 수는 없죠. 이 일은, 어른인 제가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러면 나가시죠.”
그 목소리는 비에라노의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루드거는 자신이 갇힌 뿌리 감옥을 빠져나와 있었다.
힘으로 뚫고 나간 흔적도 없고, 심지어 그 전조도 없었다.
마치 대낮에 허깨비라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에라노는 놀라지 않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놀라기엔, 지금까지 루드거는 너무 많은 걸 보여 주었다.
“예. 갑시다. 반역자가 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