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559
◈ 559화 깊은 곳에서 울리는 종소리 (1)
녹산나가 울린 종소리는 고작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여파는 자연재해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종소리는 드림랜드 전역을 뒤덮었다.
소리는 매질을 타고 갈수록 그 규모가 줄어들지만, 녹산나의 것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어떠한 매질을 통과하더라도 그녀가 울린 종소리는 항상 일정하게 나아갔다.
드림랜드 심층부터 울리는 소리는 중층을 지나, 표층을 훑고도 멈추지 않았고.
끝내는 꿈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현실 세계까지 영향을 주었다.
“……이건.”
새빨간 피의 막 안에서 소파에 얌전히 누워 있던 그란데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권태감에 찌들었던 그란데르의 표정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꿈모래가 레더벨크 전역을 뒤덮었을 때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나의 도시가 완전히 마비되고, 그 여파가 더욱 커질 수 있는 국제적인 재난 상황조차 그란데르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엔 한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울린 종소리는 달랐다.
“설마 살아 있는 신이 있었다고? 게다가 이 힘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란데르는 잠시 망설임을 보이다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자신이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다시 소파에 몸을 파묻자 비단실 같은 금발이 소파 위로 어지러졌다.
“제자야. 너에게 맡기겠다. 어차피 이걸 막을 수 있는 건, 이제 너밖에 없겠지.”
만약 네가 실패하게 된다면.
그때는…….
그란데르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색색거리는 그녀의 숨소리가, 붉은 피의 막 안에서 작게 울렸다.
같은 시각.
그란데르와 같은 것을 느낀 것은 루멘시스 교단 레더벨크 지부도 마찬가지였다.
“모래가 넘어온다!”
“다들 버텨라! 기도를 올려!”
“아, 안 됩니다! 조금 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너무 강해서 버틸 수가 없습니다!”
바깥에서 성역 결계(Sanctuary)를 유지하던 사제와 성기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에 빠져들었을 뿐.
하지만 저 잠이 앞으로도 계속 깨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죽음과 다를 바 없다고 렘리아 제사장은 생각했다.
“상황이 좋지 않네요.”
사방에서 밀려오는 꿈모래를 보고도 렘리아 제사장의 표정은 여전히 싱글거리는 미소로 가득했다.
신도들이 비명과 함께 쓰러지고, 전염병처럼 번져 나가는 공포가 주변을 잠식했다.
누군가는 루멘시스에게 기도를 올렸고, 누군가는 죽고 싶지 않다고 빌었다.
“렘리아 제사장님.”
이제 몇 남지 않은 사람들은 좁은 범위에서 강한 성역 결계를 펼쳤다.
프레덴 교구장도 그중 하나였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예. 아마 버틴다 해도 1시간 남짓이겠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그보다 조금 전 울린 종소리는 대체…….”
어디선가 들려온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부터 꿈모래가 훨씬 더 강해졌다.
교단에서 파견된 성기사들도 버티지 못하고 속절없이 쓰러졌으며, 교구장인 자신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겨우 제 한 몸 건사하기 벅찼다.
본능적으로, 뭔가 규모 자체가 다른 일이 벌어졌다는 불안을 지울 수 없었다.
“제사장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미래를 보신 겁니까?”
“이런 미래는 저도 본 적은 없답니다. 제거 본 것은 그 너머의 것이죠. 하지만 난처하네요. 지금 일은, 제가 본 미래의 모습을 뒤틀 정도로 강한 운명을 지니고 있거든요.”
“악마가 마침내 이단의 신을 깨우기라도 한 겁니까?”
프레덴의 질문은 거의 핵심을 뚫고 있었다.
그녀는 교구장의 자리를 단순히 인맥만으로 오른 것이 아니었다.
렘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불안을 긍정해 주자 프레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루멘시스여.”
이단의 신이라니.
악마가 섬기는 신이 눈을 떴다는 것은, 루멘시스 교단에 있어서 재앙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 프레덴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리에 앉아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주신 루멘시스에게.
간절히.
그것만이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유일하게 그 자리에서, 렘리아 제사장만이 여유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폭풍우 치는 모래를 응시했다.
* * *
도시 바깥은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레더벨크 도시 근방에서만 스모그처럼 머무르던 꿈모래가, 순풍을 타듯 미친 듯이 확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종소리가 울리고, 이후에 밀어닥치는 모래폭풍에 그 누구도 저항다운 저항을 하지 못했다.
꿈모래가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강건한 육체를 지닌 기사라 하더라도.
뛰어난 정신력과 두뇌를 지닌 마법사라 하더라도.
강력한 신념을 지닌 군인이라 하더라도.
여신의 힘이 깃든 꿈모래 앞에서는 파도 앞의 개미에 지나지 않았다.
“이럴 수가.”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에렌디르는 손끝이 바르르 떨려 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주먹에 힘을 주어 떨림을 억지로 떨쳐냈다.
모래 폭풍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걸스럽게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밀려드는 모래 폭풍은 어느덧 에렌디르가 머무는 막사의 근방까지 도달했다.
“황녀님을 지켜라!”
“황녀님! 피하셔야 합니다!”
호위기사들이 그렇게 외쳤지만, 사실 소용이 없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알았다.
이건 도망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들 물러나라.”
루터스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심지어 그의 손에는 전용 무기, 솔로 넘버링 글라디우스 아츠인 [제트 스트림]마저 쥐어져 있었다.
시작부터 최강의 무기를 든 시점에서, 루터스가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절대로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라.”
루터스는 자신의 뒤에 선 사람들을 향해 엄중히 경고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찢겨 나갈 거다. 지금 내게 거기까지 세밀하게 힘을 조절해 줄 여유는 없다.”
루터스의 입에서 여유가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꿀꺽.
근위 기사들이 침을 삼키며 잔뜩 긴장했다.
루터스가 검을 쥐고서 손을 뒤로 뻗었다.
어느덧 모래 폭풍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를 연상케 하는 폭풍을 향해 루터스가 검을 내질렀다.
파앙!
대기를 가르며 찔러넣은 검 끝에서, 그가 사용하는 검술의 묘리가 발동했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에너지가 대기와 맞물려 또 다른 폭풍을 자아냈다.
거대한 산불을 맞불로 제압하듯, 모래 폭풍에 맞선 것은 검술로 구현한 폭풍이었다.
루터스는 단순히 검술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기용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대치의 오러를 방출했다.
오러의 폭풍이 모래 폭풍과 충돌하며 길항을 이루었다.
“세상에. 맨몸으로 폭풍과 맞선다고?”
그런 루터스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감탄과 경외심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작 루터스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자신이 쏘아 낸 폭풍이 시간이 지날수록 저 모래에게 갉아 먹히고 있었다.
‘고작 한 번으로는 안 된다 이건가.’
루터스는 찔러 넣은 검을 회수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발걸음을 내딛고, 허리를 뒤틀어 검을 휘두른다.
그럴 때마다 폭풍과도 같은 오러가 터져 나오며 모래를 계속해서 밀어냈다.
모래 폭풍은 평범한 자연재해와 달랐다.
그 안에 깃든 힘은 루터스의 오러조차도 손쉽게 찍어 낼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최소한의 힘으로 공격을 흘려내는 루터스의 검술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의 모두가 저 모래에 집어삼켜졌으리라.
하지만.
‘나도 늙긴 늙었군. 계속해서 검술을 펼치고 있지만, 이 상태로는 버티는 것도 한계야.’
모래 폭풍은 계속 강해지지만, 자신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도 검을 휘두를 때마다 폭풍을 상대로 힘겨루기를 계속 이어 나가는 중이었다.
스스로 늙었다고 자조하고 있지만, 전성기의 육체를 지녔다 해서 과연 달라졌을까 싶은 상황이다.
이건 애초에 평범한 자연재해와는 달랐으니까.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내 뒤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1황녀 만큼은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루터스의 표정에 결연함이 깃들었다.
전신의 힘줄이 꿈틀거리며 근육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그 강건한 루터스의 육체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3대 기사단장에 동시에 덤벼도 멀쩡하던 루터스가 전신에 땀을 뻘뻘 흘리며 폭풍과 맞서는 광경에 뒤에서 지켜보는 자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루, 루터스 단장님.”
단지 지금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기사들은 무력함을 느꼈다.
루터스는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1초의 시간도 방심을 해서는 안 된다.
이 폭풍을 막아 내는 지금, 찰나의 실수가 댐을 무너뜨리는 수가 있었다.
콰가가각.
지면에 다리를 박아 넣은 루터스의 몸이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해일이 밀려와도 그걸 버틸 수 있는 루터스가 밀린 것이다.
이 폭풍은 저항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신의 의지가 깃든 힘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루터스의 입가에는 오히려 호선이 그려졌다.
하나로 힘들면, 둘이라면 과연 어떨까.
“늦었잖나. 이 빌어먹을 늙은이. 버티느라 죽는 줄 알았다.”
“허허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난데없이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몰아치는 모래 폭풍 너머로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누, 누구지?”
“저 폭풍 안에서, 멀쩡하다고?”
모두가 저 그림자의 정체에 의문을 품었다.
오직 에렌디르만이, 지금 등장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설마, 자네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국의 찬란한 미래이시여.”
이윽고 모래 폭풍을 뚫고서 한 노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옆집 할아버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인자한 미소를 지닌 노인이었다.
그가 가벼운 손짓을 하자 땀을 뻘뻘 흘리던 루터스가 겨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도와줄 거면 좀 빨리 도와주지 그랬나.”
“이렇게 보여도 발에 땀 나도록 날아온 거라네.”
제국 제일검인 루터스 워도트를 상대로도 친구처럼 대하는 태도.
그 노인을 알아본 일부 마법사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대, 대마법사 클린턴!”
클린턴 로트쉴트.
황실 소속 대마법사이자, 인간의 기준으로 전무후무한 경지인 7위계 [임페라]에 도달한 대마법사.
수도 테러 사건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행동에 나섰다.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클린턴은 끌끌 대면서 지휘자처럼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주변을 장악하며 거대한 마력 결계를 만들었다.
렘리아 제사장과 프레덴 교구장, 그리고 직속 정예 성기사단 소수가 전력을 다해 펼친 신성 결계의 반경은 고작 10m.
하지만 클린턴 개인이 펼친 결계는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반경 1km에 달했다.
어떠한 사전 준비도 없이 손짓으로 만든 결과라는 사실에, 마법사들은 그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 감히 추측하기 힘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를 목도한 기분.
정작 클린턴은 별거 아니라는 듯 지상에 내려앉아 자신의 허리를 톡톡 두드렸다.
“오랜만에 이런 규모의 마법을 사용하니 쉽지 않구먼.”
“늙은이가 주책은. 아무튼, 도와줘서 고맙다.”
한숨 돌린 루터스가 씨익 웃으며 클린턴을 반겨 주었다.
“그래서, 이 일을 해결할 마땅한 방도는 있나?”
“방도라.”
한층 가늘어진 클린턴의 시선이 폭풍의 중심지인 레더벨크로 향했다.
“이 나조차도, 지금의 재앙을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군.”
“뭐? 그러면 어쩌자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저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네.”
그 말에 루터스는 클린턴이 단순히 저 폭풍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 음흉한 영감탱이. 최근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어딜 가서 또 이상한 걸 알아 왔군.”
“허허. 다 늙어서 뒷방으로 밀려난 늙은이가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저 죽기 전에, 조금 신기한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지.”
7위계 마법사가 하는 말치고는 너무나도 겸손했다. 오히려 상대방을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하지만 클린턴은 진심이었다.
“아쉽게도, 다음 경지의 존재는 지금 상황에서 침묵을 고수할 생각인가 보군.”
클린턴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숫제 전설이라 부를 수 있는 경지가 어떤 것인지, 마법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한번 목격이라도 해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호기심일 뿐.
클린턴이 이곳을 찾아온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천천히 굴러가던 운명의 수레바퀴가 박차를 가했네. 이제, 이 세상의 결말이 얼마 남지 않았어.”
* * *
루드거는 감았던 눈을 떴다.
뺨에 닿는 꿈모래의 감촉이 부드러워 안락한 침대에 누워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아주 순간이지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루드거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 그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주변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진 채 기절해 있었다.
‘전부, 당했다고?’
녹산나의 봉인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눈을 뜬 것도 조금 전의 일이다. 당연히 본래의 힘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터.
지금 보여 준 것은 본래 힘의 1할에도 미치지 못한 것일진대.
‘그런데 이 결과라니.’
심지어 이건 이쪽을 노리고 한 공격도 아니었다.
루드거는 느낄 수 있었다. 녹산나가 한 행동은, 사람으로 치면 그저 가볍게 숨을 내쉰 정도라는 것을.
‘이것이, 진정한 신의 힘.’
같은 신이라 하더라도 녹산나의 힘은 차원이 달랐다.
꿈과 죽음 자체를 상징하는 녹산나는, 신으로서의 격 또한 거의 최정상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다른 신들이 죽었을 때도, 그녀만큼은 죽지 않고 봉인 당한 것이 전부일 터였다.
저런 것과 싸우라고?
그거야말로 미친 짓이 아닌가.
루드거의 뇌리에, 지금 상황을 타개할 단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이것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이쪽도, 봉인을 풀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