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55
655화 성녀 캐서린 (1)
“유약한 녀석.”
아일린은 이벨론의 진심 어린 말을 듣고도 단호하게 질타했다.
“황족으로서 최소한의 기개와 용기는 보여라. 동생 놈아.”
“제 천성이 이런 걸 어찌합니까. 억지로 하려고 해도 안 된단 말입니다.”
“뭐, 그래도 잘했다. 설마하니 저들도 네가 이런 꼼수를 부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아일린은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이벨론은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
“누님. 어째서인지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요.”
“좋아 보이느냐?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텐데도?”
“네, 뭐. 아니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 제대로 봤다. 나는 지금 기분이 아주 좋다.”
이벨론이 살짝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그 남자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 남자라 하면은…….”
“있다. 날 더러 네가 숨기는 것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 남자가.”
“제가 숨기는 게 있었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남자는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것 같았지만, 네가 이중 첩자라는 것 까지는 모르지 않았느냐. 그거면 됐다.”
아일린은 루드거가 무언가를 틀렸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즐거웠다.
완벽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 생각했다.
탐이 나면서도 또 동시에 질투심과 경쟁심을 부르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 남자 또한 실수를 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자신과 같은 인간.
그 사실이 이렇게나 기쁠 수가 있을까.
“그리고 내가 기분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정도 위기는 충분히 겪어 봤기 때문이다. 아니, 그때의 위기를 생각하면 이건 위기의 축에도 들지 않지.”
“누님…….”
“물론 그때는 그 남자가 있었고, 지금은 없지만.”
아일린이 이벨론을 향해 열망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지금은 네가 있지 않으냐.”
“……하지만 저는 살레신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제가 수상한 행동을 한다면 살레신은 저 또한 인형으로 만들어 버리겠죠.”
“오히려 그게 더 낫다. 네가 계속 살레신과 붙어 다니며 그의 관심을 끌어 준다면 고마울 따름이니까.”
“세뇌의 권능 앞에서 그런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게 왜 그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느냐?”
아일린이 이벨론이 탁자 위에 놓은 경전을 턱으로 가리켰다.
“우리에게도 있지 않으냐.”
비록 살레신이 사용하는 권능에 비해서는 약해 빠진 것이겠지만.
저것은 이 상황을 충분히 타개할 만한 핵심 열쇠였다.
“저들이 지닌 것과 비교하면 조촐합니다.”
“그렇겠지. 저쪽은 대포지만, 이쪽이 지닌 것은 고작 단검 한 자루 정도.”
이벨론은 아일린의 눈빛을 보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전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것이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단검 한 자루 만으로도, 숨통을 끊을 수 있으니까.”
* * *
세오른은 혼란에 빠졌다.
루드거 첼리시가 행방불명되었다가 세오른에 돌아온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런 루드거 첼리시가 제국의 보안국에 의해 체포되어 끌려갔다.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남겨 놓은 채 말이다.
그의 진짜 정체가 히스클리프 반 브레투스였다는 것이다.
히스클리프 반 브레투스가 누구인가.
전대 성황 베네딕트 반 브레투스의 사생아.
그리고 루멘시스 교단을 적대하는 이단의 왕이라 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야? 루드거 선생님이 성황의 아들이었다니?”
“거짓말이지?”
“바보야. 보안국에 체포했는데, 거짓말이겠냐? 우린 지금까지 속았던 거야! 신문에서도 다 떠들고 있잖아! 이단의 왕이라고!”
“세오른에서 일어났던 일들도 다 이 사람 때문 아니야? 악마가 나타났던 것도 그러잖아!”
“야! 루드거 선생님은 그날 우리를 구해 주기 위해 열심히 싸웠잖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혹시 모르지. 일부러 우리를 속이려고 그랬던 척한 걸지도.”
평소 루드거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교사,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패닉에 빠진 학생이 루드거를 힐난했다.
물론, 루드거의 탓만 하는 사람만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 사람 진짜 루드거 첼리시가 맞아?”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님이 한동안 행방불명이었잖아. 그러니까 그사이에, 가짜가 루드거 선생님인 척하고 온 걸 수도 있잖아.”
즉, 진짜 루드거 첼리시는 어딘가에 사로잡혀 있고, 히스클리프가 그인 척 하고 세오른에 숨어들어 왔다가 잡혔다는 주장이었다.
꽤 설득력이 있었다.
루드거가 지금까지 그들 모두를 속였다기엔, 그가 부임하고 나서부터 보여 준 행보가 말이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이단의 왕인 데다가 악마를 부리는 사람이, 학생들에게 그렇게 귀중한 자료를 뿌리며 수업에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까?
앞뒤가 맞지 않았다.
“솔직히 이단이었다면, 수업도 대충 했겠지. 아니면 학생들을 몰래 제물로 삼거나.”
“맞아. 소스코드 뿌린 거 봐봐. 게다가 수업 내용 보면 다른 유용한 것들도 많잖아.”
“그게 다 일부러 환심을 사려 는거였다면?”
“야. 보통 환심을 사려고 그렇게까지 밑천을 다 넘기진 않잖아. 애초에 세오른에서 뭘 하겠다고 그렇게까지 해?”
당연히 이런 소문을 뿌리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세오른의 총장인 엘리사 윌로우였다.
“하아. 정말이지. 사람 하나가 이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엘리사 총장은 아직도 패닉으로 들끓는 세오른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괜찮지 않습니까.”
탁 소리를 내며 마시던 찻잔을 놓은 것은 비에라노 덴티스였다.
그런 비에라노의 곁에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세디나 로쉔이 있었다.
두 사람 말고도 총장실에는 여러 손님이 더 모여 있었다.
“지금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저, 그런데 정말로 소문이 진짜인가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는 것은 셀리나였다.
자신이 이 자리에 온 것부터 해서 루드거 첼리시의 정체까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너무 단번에 벌어졌다.
“흥. 소문이 진짜고 자시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 말에 코웃음 치듯 말한 것은 크리스 베니모어였다.
“중요한 건 총장님께서 왜 우리를 모았냐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조교인 학생은 이 자리에 왜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크리스의 시선을 받은 세디나는 괜히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서 위축되었다.
그런 세디나를 두둔하고 나선 것은 비에라노였다.
“크리스 베니모어 선생님. 말씀을 조심하시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세디나 로쉔 학생이 아닙니다. 그녀는 세디나 플란테. 저희 엘프 왕국의 세계수와 유일하게 교감이 가능한 중요하신 분이니까요.”
비에라노가 세디나의 정체를 밝히자 좌중에 경악이 흘렀다.
“자, 잠깐만요! 그게 무슨 소리죠……?”
셀리나의 곁에 있던 메릴다가 놀라서 되물었다.
루드거의 조교로서 평서 부지런한 모습을 자주 보여 줬던 세디나였지만, 그녀가 이 정도로 대단한 엘프였다는 것은 이 자리의 누구도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엘프 왕국의 사절로서 이 자리에 온 겁니다. 그리고 저 또한, 세오른의 교사가 아닌 엘프 왕국의 장로로 온 것이니 이해해 주시길.”
“총장님. 그게 정말인가요?”
“뭐, 애초에 계약서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죠. 저는 비에라노 장로님께 강요할 권한이 없어요.”
엘리사가 눈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이번에 공문이 내려왔어요.”
“공문이라면…….”
“대륙의 악적. 히스클리프 반 브레투스가 현재 브레투스 성국을 전복시키고, 그 수도의 성채를 차지했다고 하네요. 거기에 성황이 성전을 선포했어요.”
“그런데 왜 저희에게 공문이…… 설마?”
크리스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을 입에 담았다.
“세오른에도 참전을 요구한 겁니까?”
“맞아요.”
“그건 말이 안 돼요!”
메릴다가 격하게 반응했다.
“애초에 세오른에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요! 세오른은 오직 마법사를 교육하기 위한 가르침의 장인데, 성전이라니!”
“메릴다 선생님, 조금만 진정하시죠.”
씩씩거리는 메릴다를 진정시킨 것은 엘리사를 보좌하는 윌포드였다.
분위기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엘리사가 말을 이었다.
“맞아요. 저희 세오른은 제국 내에 있지만, 제국의 뜻에도 따르지 않은 자율성을 지니고 있죠. 이렇게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거기다 대고 참전을 요구해도, 그걸 가볍게 무시해도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게 성전인 것이 문제겠죠.”
“성전…….”
“수도에서 벌어진 사태에 최근 악마의 사건까지. 이슬라 마키나도 지금 거의 반파됐다네요.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죠. 사람들의 두려움이 극에 달해 있어요. 그 순간 선언한 성전이니, 어떠한 명분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한 강제성을 지니고 있죠.”
“그게, 가능합니까? 자기들 일 아닙니까.”
“솔직히 저도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성전을 이렇게 멋대로 선포하다니. 이건 그냥 성국이 알아서 끝낼 일이잖아요?”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세계 각국이, 성전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마치 모두가 동시에 짜고 치기라도 한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 성전에 참전하겠다고 천명했어요. 분명 이런 상황에서 기회를 재면서 눈치를 볼 만한 중소규모 국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죠.”
엘프왕국, 수인부족, 드워프마을을 제외하고 남부 파티마 왕조를 빼면.
대륙 전체의 국가가 하나로 뭉친 것이다.
너무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연달아 벌어지니, 멀쩡하던 상식도 파괴될 것만 같았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아무리 세오른이라 하더라도 이 과한 요구를 대놓고 거절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셀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엘리사 총장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성전을 열어 버린 이상,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로 시간을 끄는 것도 소용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선택을 내려야만 했죠.”
“싸우시겠다는 겁니까?”
“조건을 걸었어요. 학생들은 놔둔다. 대신 나서는 것은 제가 선별한 일부의 사람들뿐이라고.”
“상대가 그걸 허락했습니까?”
크리스 베니모어의 물음에 엘리사가 코웃음을 쳤다.
“허락하지 않으면요?”
엘리사의 황금빛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났다.
“제가 나서 준다고 하는데, 감히 누가 거기에 토를 달까요.”
오만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엘리사의 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저희를 부른 거였군요.”
“이미 다른 교사들과도 이야기는 끝냈어요. 4학년 교사진들은 모두 나설 예정이랍니다. 대신 개별 행동으로 한다는 조건으로요. 성전에는 참전하겠지만, 저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거칠게 두들겼다.
쿵쿵 소리에 엘리사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회의 중이라 방해하지 말라는 말을 해 뒀는데.”
엘리사는 생각했다. 보통은 이럴 때 2가지 경우로 갈린다.
첫째. 사용인이 보통 눈치가 없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둘째.
지금 상황에서도 어서 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사안이 벌어졌다거나.
“들어오세요.”
엘리사는 후자로 보았다.
문이 열리며 땀범벅이 된 사용인 하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초, 총장님. 그, 그게 큰일입니다.”
“뭐가 큰일이라는 말이죠?”
“바, 밖에. 밖에 사람이 왔습니다.”
뒤이은 사용인의 말에, 총장실에 모인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성녀가 왔습니다!”
* * *
리네는 기숙사의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어쩌면 좋지.’
루드거가 교단에게 잡힌 뒤에 며칠이 지났다.
그 이후에 들려오는 소식은 전부 흉흉하기 그지없는 것들.
‘성전…….’
전쟁이라는 단어는 리네에게 매우 크게 다가왔다.
‘왜일까. 전쟁을 겪어 본 적도 없는데, 절대 벌어지면 안 될 정도로 끔찍하다는 것이 실감돼.’
눈동자가 찌릿거리며 아파 왔다.
너무 아파서 순간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고 말았다.
순간이지만, 흐릿하게 어떤 한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뭐였지?’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황폐화된 도시의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달빛 아래에서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무언가까지.
‘뭔가 속이 울렁거려.’
리네는 침대에 누워서 심호흡했다.
수도에서 벌어진 사태부터 해서 드림랜드와 이슬라 마키나까지.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고,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리네는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 겪는 이 불안감은 그것들과 차원이 달랐다.
폭풍전야라는 느낌이 이러할까.
이 고요함 속에서 은근하게 밀려오는 울렁거림은, 앞으로 있을 일이 얼마나 끔찍한지 미리 경고해 주는 것만 같았다.
‘바람을…….’
침대에서 일어난 리네는 기숙사를 나섰다.
리네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프로이덴이 가꾼 화단이 있는 비밀 정원이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화단을 본 리네는 나무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성전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 찾아오기라도 한 걸까.
리네는 그게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우선 이 불안감이 가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사박.
고요함 속에서 풀을 밟는 소리가 리네의 귀를 간질였다.
이 비밀화원에 올 만한 사람은 리네가 알기로 3명 뿐이었다.
에렌디르, 프로이덴, 헨리.
그런데 발소리가 남자 치고는 매우 가벼운 것 같아서, 리네는 에렌디르인가 싶어서 그쪽을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햇살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과 새하얀 피부.
빛이 너무 강해서 얼굴이 흐릿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리네는 눈에 힘을 주었다.
욱신!
조금 통증이 가라앉았던 눈동자에 다시 고통이 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에는 눈살을 찌푸린다거나 눈물을 흘린다거나 하지 않았다.
“어라?”
상대는 에렌디르가 아니었다.
금발이라 순간 헷갈렸는데, 가까이서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좀 더 어른스럽고 성숙하고, 게다가 어딘가 성스러운 기운까지 풍기고 있었다.
리네는 그 기운이 이상하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리네가 여인을 보듯, 여인 또한 리네를 보았다.
리네는 여인의 눈동자가 마치 하늘을 담은 것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리네가 순진하게 묻자 여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캐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