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56
656화 성녀 캐서린 (2)
캐서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네는 브레투스 성국에 관심이 없었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성녀의 이름까지 알 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리네는 캐서린을 보는 순간,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느낌을 받았다.
친근감이라 해야 하나. 동시에 안쓰러움이라고 해야 하나.
정작 캐서린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를 눈동자로 리네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를 아는 사람인가?’
그 시선에 리네가 슬슬 부담감을 느끼려는 그때, 캐서린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맺혔다.
“어머 너 누구니? 되게 예쁘다 얘.”
“네, 네?”
“이름이 어떻게 돼? 너 여기 학생이야?”
“어, 저는 리네고요. 여기 학생 맞아요. 이제 1학년이지만요.”
“1학년? 좋을 때구나? 그보다 너는 여기서 뭐 하니? 이 화단은 네가 가꾼 거야?”
첫인상은 어딘가 어른스럽고 성스럽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궁금한 것을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모습은 전형적인 쾌활한 사람이었다.
리네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 솔직하게 답했다.
“여기 화단은 제가 키운 건 아니고, 아는 선배가 가꾼 곳이에요. 저는 잠시 속이 안 좋아서 여기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거고요.”
“휴식이라. 이해해. 나도 힘들 때가 있으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앉아 있을 때가 많았거든.”
“아, 캐서린 씨도요?”
“어머 얘는. 캐서린 씨라고 하면 되게 딱딱하잖니. 그냥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언니.”
“어, 아무리 그래도…….”
“자. 따라 해 봐. 언니.”
“어, 언니.”
리네가 쑥스럽게 중얼거리자 캐서린이 꽃이 만개하는 것 같은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
“귀여워라.”
“저, 그런데 캐서린 언, 니는 여기에는 어쩐 일이세요?”
“나? 나는 그냥 세오른에 손님으로 왔다가 심심해서 잠시 산책 중이었어. 그러다 우연히 가꾸어진 길이 보이길래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손님이 있었을 줄은 몰랐네.”
“아. 그러셨구나. 여기는 다른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곳이거든요.”
“응. 확실히 그렇게 느껴지네. 너만의 비밀 아지트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물씬 풍겨. 나도 그랬던 적이 있는데, 그립다.”
“언니도요?”
“나도 어릴 적에 정말 힘들 때가 많았거든. 사실 지금도 힘들지만, 그때는 너무 견디기 힘들 정도였어. 그래서 한 번은 못 참고 도망치다가, 사람들이 오지 않는 곳에 숨어 있던 적이 있거든?”
갑자기 시작된 옛이야기였지만, 리네는 호기심이 들어서 그 말을 경청했다.
“혼자이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그래서 훌쩍거리면서 있는데, 갑자기 누가 온 거야.”
“누, 누가요?”
“처음에는 내가 도망쳐서 나를 잡으러 온 사람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내 또래의 남자아이였어. 알고 보니 내가 숨어 있던 그 자리가, 평소에 그 아이가 자주 애용하던 자리였던 거지. 더 웃긴 건 뭔지 아니?”
“뭔데요?”
“보통 어린 여자아이가 울고 있으면 왜 울고 있는지, 혹은 어디 아픈지 물어보면서 괜찮다고 다독여 줘야 하잖아. 그런데 그 남자애는 나를 보자마자 한 소리가 이거였어. 꺼져.”
그때 들었던 말을 따라 하려는 듯 꺼져라고 말할 때 캐서린은 근엄하고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네에에? 정말로요?”
“정말이라니까? 진짜 어이없지 않니? 세상에 여자아이가 울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꺼지라니! 다시 한번 생각해도 진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
“그래서 언니는 어떻게 했는데요?”
“어떻게 하기는.”
캐서린이 쾌활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바로 냅다 달려들어서 머리를 쥐어뜯었지!”
“…….”
너무 예상 밖의 대답에 리네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뭔가 애틋하게 말한 것 같은 첫 만남인데, 정작 처음부터 한 행동이 쥐어뜯으며 싸운 거라니.
“그런 거 생각하면 참 추억이라면 추억이네.”
“그, 그랬군요.”
“내가 이 이야기를 해 준 것은, 이렇게 우연히 장소를 찾다가 너를 마주한 일이 그때랑 겹쳐서 그런 거야. 미안, 별로 재미는 없었지?”
“아니에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후후. 너 정말로 착하구나? 그래. 그렇게 선한 마음을 가졌으니…….”
캐서린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뒷말을 삼켰다.
“아무튼!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너는 뭐 털어놓을 거 없니?”
“아, 아뇨 저는…….”
“얼굴만 봐도 수심이 가득하다는 표정인 걸? 말해 봐. 내가 너에게 딱 맞는 정답을 알려 줄 수도 있잖아.”
리네는 대답을 망설였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불안감을 모두 말해도 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캐서린에게 전부 털어놓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신기한 일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이렇게나 친근감이 느껴지다니.
“저, 그게…….”
그래. 이렇게 속으로 혼자 끙끙 앓을 바에는, 그래도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해 보자.
직설적으로 말은 하지 않고 약간 돌려서 말하려는 그때였다.
“여기 계셨군요.”
눈가에 티아라를 착용한 백색 의복의 여인이 나타났다.
“찾고 있었습니다. 언니.”
“뭐니. 갑자기 날 찾아오고.”
“언니가 사라지셨으니 당연히 찾아와야죠. 세오른의 총장이 직접 나와서 언니를 맞이하려 하고 있으니까요.”
“귀찮게. 나 말고 너희가 하면 안 돼?”
“……언니.”
“아, 알았어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니야.”
캐서린은 리네를 향해 사과했다.
“미안해. 네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말이야.”
“아,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정말로.”
“그래도 내가 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끝내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자.”
캐서린은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리네에게 건네주었다.
자기도 모르게 종이를 받아 든 리네는, 새하얀 종이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느낌에 신기하다는 듯 캐서린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건 뭐죠?”
“이걸 지니고 나를 찾아오면 돼.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이 종이가 알려 줄 거야. 여기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테니, 사용한다면 오늘 밤중으로 쓰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까지 해 주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
일단 받기는 했지만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니, 리네는 이걸 사용하지 않기로 속으로 다짐했다.
캐서린의 다음 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네가 스쳐 지나가면서 본 풍경. 나는 그걸 알려 줄 수 있단다.”
“……네? 그, 그걸 어떻게?”
“그럼, 이만 가 볼게!”
리네가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캐서린은 손을 흔들며 저 멀리 가 버리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바람 같은 여인이었다.
캐서린을 데리러 온, 눈에 티아라를 쓴 여인은 잠시 리네를 빤히 응시하다가 캐서린을 따라 화원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리네는 손에 쥔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쥐고 있으니 눈의 욱신거림이 사라진 상태였다.
* * *
화원을 빠져나온 캐서린을 몰래 따라온 제사장이 물었다.
“캐서린 언니. 괜찮겠어요? 지금이라도 바로…….”
“됐어. 저 아이는 아직 자신의 힘이 뭔지 모르니까 가만히 놔둬도 돼.”
“하지만 저걸 알면서도 묵과하는 것은 성황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니야. 저 아이는 반드시 브레투스로 가게 될 테니까.”
“그런 미래를 보신 건가요?”
“글쎄.”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캐서린의 행동에도 제사장은 익숙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숨을 참기 힘들었다.
약속 장소에 도달했을 때, 캐서린은 자신을 기다리는 백발의 여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백발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머리카락의 안쪽이 연분홍색이다.
백련과 벚꽃을 섞은 것 같은 아름답고 신비한 여인.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세오른의 총장, 엘리사 윌로우님. 저는 캐서린이라고 한답니다.”
“저야말로 뵙게 되어 영광이랍니다. 캐서린 성녀님.”
이쪽을 향해 능숙하게 응대하는 엘리사의 모습에 캐서린은 역시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6위계를 달성한 데다가 세오른이라는 마법 아카데미의 총장까지 단 여인이다.
이쪽이 성녀인 데다가 사전에 연락도 없이 방문했는데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성녀님께서 사전에 오신다고 언질을 주셨더라면 더 성대하게 환영을 했을 텐데, 좀 아쉽네요.”
“아쉬울 거라고 있겠나요. 저는 오히려 과한 환대는 부담스럽답니다. 이렇게 총장님만 조촐하게 뵈는 것이 훨씬 더 편한걸요.”
“어머, 그런가요. 역시 성녀님은 마음도 넓으셔라. 잠시 걸으면서 이야기 하실까요?”
“저야 상관없답니다.”
캐서린은 엘리사와 함께 걸었다.
그 뒤를 따라 제사장과, 이후 합류한 성기사들이 따라붙으려 했지만, 캐서린이 직접 제지했다.
“다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렴.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까.”
“하, 하지만 성녀님. 저희는 성녀님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내가 괜찮다는데, 왜 그러지? 그리고 이곳은 세오른이야. 무려 총장님도 함께해 주신다는데, 위험할 일이 있을까?”
캐서린이 엘리사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그렇죠? 총장님.”
“이를 말씀을요.”
엘리사는 웃으며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캐서린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성녀라 해서 어디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가 올 줄 알았는데, 말하는 것도 그렇고, 능숙하게 받아치는 것도 그렇고,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적한 숲길을 거닐었다.
“굉장하네요. 부지 내에도 이렇게나 크고 아름다운 숲이 있다니.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세오른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네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성녀님께서 거주하시는 성국과 비교하면 부족할 따름이랍니다.”
“브레투스는 수로가 많아서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성 근처에는 이렇게 울창하고 큰 숲이 없어서 때론 삭막하게도 느껴지거든요. 저는 오히려 여기가 더 마음에 드는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야 감사하고요.”
캐서린이 나무들의 사이로 돌아다니는 하급 정령들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총장님께서는 어떻게 하실지 마음을 정하셨나요?”
생각보다 빠른 타이밍에 날아온 질문이었지만, 엘리사는 당황하지 않았다.
“물론이랍니다. 아무리 저희가 독립권을 지니고 있다해도, 대륙 전체가 위험에 빠졌는데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요. 저를 비롯해서 교사들 또한 성전에 참여할 생각이에요.”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엘리사는 굳이 뒷말을 담지 않았다.
일부의 진실만 드러내는 것. 그것이 협상의 가장 중요한 점이었으니까.
“훌륭하신 선택이에요. 아무렴, 마왕을 상대해야 하는데 총장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저희도 든든하죠.”
캐서린이 뒷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히스클리프라는 사람, 이곳에서 교사일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었나요?”
“…….”
엘리사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여기서 갑자기 루드거에 대해서 물어본다고?
‘뭐지? 설마 떠보는 건가?’
캐서린은 성녀이니, 당연히 히스클리프의 행적에 대해서 전부 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곳에서 교사 일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냐고 묻다니 대체 무슨 생각일까.
‘나를 이단으로 규정하기 위해서 던지는 질문인 건가? 그러자니 질문 자체가 어딘가 이상해.’
엘리사는 처음에 캐서린이 이곳에 왔을 때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했다.
마왕 히스클리프가 머물렀던 곳이 세오른이니, 세오른 자체가 이단으로 규정되어도 할 말이 없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캐서린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감히 세오른은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아니면 안일함?
그럴 거라면 왜 자신과 이렇게 일대일로 독대한 거지?
엘리사는 직감했다.
캐서린 성녀는, 최소한 그녀가 알던 루멘시스 교단의 사람들과는 어딘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이다.
“훌륭한 교사였어요.”
엘리사의 대답에 캐서린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응시했다.
“루드거 첼리시 선생님은 말이죠.”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죠?”
“악마 사태 이후, 루드거 첼리시 선생님이 행방불명되었거든요. 나중에 다시 돌아왔지만, 제국에서 그가 히스클리프라 하면서 잡아가더라고요.”
엘리사는 의도적으로 루드거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즉, 루드거 첼리시와 히스클리프는 별개의 인물이며 세오른은 히스클리프와 연관이 없다고 돌려 말한 것이다.
캐서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쪽을 기만한다고 화를 내거나, 혹은 같잖은 수작질을 부린다고 지적할 수도 있을 텐데도 캐서린은 엘리사의 말에 수긍하고 넘어갔다.
“그 루드거라는 분이, 최대한 빨리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네, 물론이죠. 저희도 지금 백방으로 찾아보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릴 거예요.”
“그렇다면 됐어요. 총장으로서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저를 만나자고 이렇게 시간까지 내줘서 고맙네요.”
캐서린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잘해 보아요. 성전에서 등을 맞댈 동료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물론이죠.”
엘리사는 캐서린의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
캐서린이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브레투스로 가서, 마왕을 쓰러뜨려요.”
* * *
“역시 이곳에는 없는 건가.”
루드거는 성채에서 캐서린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이곳에 남아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아니면 성황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안타까워해야 할까.
뭐가 됐더라도, 두 사람이 충돌하게 되는 미래는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캐서린.”
과거 친구였던 두 사람은 이제 전혀 다른 사람으로 갈라섰다.
성녀와 마왕.
둘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존재였다.
“부디 너는, 브레투스로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