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92
◈ 92화 축하연 (2)
세오른의 신임 교사들이 온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열리는 연회.
약속 시간에 맞춰 연회장의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나를 향해 시선이 화살처럼 날아온다.
‘사람들이 많군.’
눈빛들이 하나같이 부담스러울 정도의 관심을 가득 담고 있어서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지하며 안으로 향했다.
그보다 보통 연회장이라 하면, 은은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연주를 하지 않나? 왜 가만히 있지?
‘아직 연회를 시작하지 않은 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연회장을 최대한 넓게 보기 위해서 한쪽 벽에 다가가 등을 기댄 채로 섰다.
순간,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은 조금 전의 대화를 이어서 하고, 또 누군가는 눈가를 휘며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그런 행동의 기저에는 숨기기 힘든 가식이 가득 차 있었다.
오히려 그것이 바깥으로 흘러넘쳐 검은 안개처럼 스멀스멀 주위로 퍼지는 착각마저 느껴질 지경.
‘다들 대화 상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지켜보고 있군.’
그중에서 특히 나를.
이렇게 말하면 괜히 도끼병 걸린 자의식 과잉 같겠지만, 이런 시선에 민감한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향해 곁눈질하거나, 혹은 뻔히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지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말이 축하 연회지, 이 연회장 자체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일종의 자리니까.’
세오른의 신임 교사.
나이도 젊고 마법적인 실력도 뛰어나다는 것이 검증되었으니, 조금이라도 인연을 만들어 두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 두고 있으리라.
과연, 나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눈치만 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 셀리나 양.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찰스 하원 의원이라고 합니다.”
“메릴다 선생님 되십니까? 마법약 제조 회사 이사인 월트 밀러라고 합니다. 혹시 관심 있으십니까?”
“어머. 크리스 베니모어 백작님. 소문대로 정말 멋쟁이시네요.”
나는 이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전부 부유하고 귀티가 나는 사람들.
시의원, 귀족, 부유한 사업가 등등.
‘전부 세오른의 후원자들이로군.’
세오른은 그 운영에 있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마법의 연구, 수업 교재, 특수 재료, 온갖 인프라 등등.
마법사 하나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값을 생각하면, 매년 다수의 엘리트 마법사를 육성하는 아카데미가 쓰이는 돈은 천문학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에 신임 교사인 내 초봉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가 아니었던가.
신임 교사의 월급으로만 나가는 돈만 해도 이 정도.
그 외 잡다한 비용까지 감안하면, 자세한 금액은 상상하기도 힘들겠지.
‘세오른 아카데미는 그 돈을 자체적으로 충당하기 힘들다.’
세오른이 국제 은행도 아니고, 돈을 공장처럼 찍어 내서 유통할 수는 없다.
막대한 돈을 들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가 막힐 정도로 돈 냄새를 잘 맡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도 있는 법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
돈은 많지만 다른 것을 더 얻고 싶은 사람.
그 둘의 이해타산이 퍼즐 조각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이루어지는 거래가 꽃피는 자리가 바로 이 연회장이었다.
‘세오른이 제국에 속해 있지만, 순전히 제국의 것이 아닌 이유지.’
세오른의 투자처에는 온갖 국가가 관여해 있다.
엑실리온 제국뿐만이 아닌 델리케, 퀘오덴, 유타, 브레투스, 파티마 왕조 등등.
그리고 국가를 가리지 않는 국경 없는 거대 자본가들까지.
그들이 훗날 이름을 날리게 될지 모르는 인재들을 상대로 얼굴도장을 찍어 두는 건 딱히 이상할 게 없는 일이겠지.
이 자리는 이제는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식상할 정도로 매번 열리는 일종의 연례행사이며.
새로 부임한 선생을 축하한다는 빌미로 인맥을 쌓는 자리다.
욕망이 꿈틀거리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루드거 첼리시 선생님 되십니까?”
나는 살짝 고개를 까닥이며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세오른의 후원자 중 하나인 데커스 백작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왜 움직이지 않나 했더니, 각을 재고 있던 건가.
데커스 백작이 먼저 나서자 눈치만 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처음에 총대를 메고 나서는 게 어렵지, 그 이후는 쉬우니까.
나는 그것이 달갑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이대로 놔두면 온갖 날파리들이 꼬일 텐데.’
내가 이 자리에 찾아온 건 그저 일면식도 없는 인간들과 되지도 않는 격식을 차리며 대화를 나누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연회장에 숨어든 검은 여명회의 퍼스트 오더를 찾을 생각으로 왔다.
그 과정은 자연스러워야 했고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는데, 시작부터 들러붙는 사람들 때문에 꼬이게 생겼다.
이렇게 된 이상 조금 강하게 나서는 수밖에.
“죄송하지만.”
나는 짐짓 무거운 분위기를 잡으며 내게 말을 건 데커스 백작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고 싶은 기분이 아니군요.”
“어, 뭐라고요?”
“잠시 자리를 비켜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라고 말한 겁니다.”
이 자리에 온 것 자체도 내키지 않았다는 노골적인 어투.
그것을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하자 데커스 백작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그, 그래야지. 미안하네. 내가 괜히 시간을 잡아먹었군. 허, 허허!”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다행이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
“커험험.”
“으흠.”
데커스 백작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자,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간을 보던 사람들이 헛기침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명백히 데커스 백작보다 급이 떨어지는 사람들.
데커스 백작이 말도 못 붙였으니, 자기는 말도 못 걸 거라고 바로 단념해 버린 것이다.
‘대충 1차 물갈이는 끝난 거 같고.’
문제가 있다면,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려나.
데커스 백작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자리를 생각하면 이 연회장에 모인 사람 중에서도 나름 중위권 이상은 됐을 터다.
그런 사람이 물러났는데 내게 집요한 시선을 보내는 걸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자연스럽게 그들의 수준이 높다는 걸 증명한다.
‘꽤 귀찮은 인간들이 분명하다는 건데.’
그런 자들이 직접 나서서 내게 말을 거는 것은 달갑지 않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의 눈에 분홍빛 머리와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보였다.
셀리나 선생님.
그녀는 지금 한 젊은 남성의 노골적인 어프로치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흠. 어쩌면.
나는 벽에서 등을 떼고 셀리나 선생님을 향해 걸어갔다.
일부 사람들이 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는 그들을 가볍게 무시했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서 중간에 내게 말을 붙여 보려 했지만, 나는 손을 가볍게 내젓는 것으로 그들의 행동을 전부 차단했다.
“셀리나 씨. 저기 분위기 좋은 데서 따로 한잔 어떠십니까? 제가 좋은 곳을 알고 있거든요.”
“에, 에헤헤. 죄송해요. 제가 그런 낯선 자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에이. 뭘 빼시고 그렇습니까. 보통 사람은 가기 힘든 곳이라니까요?”
“아, 아뇨 그러니까 그게…….”
“그쯤 하시죠.”
내가 나서며 말하자 셀리나 선생님에게 치근대던 사람이 이쪽을 바라봤다.
“뭐야 이건 또.”
그는 자신이 방해받았다고 생각한 건지 얼굴을 짜증으로 일그러뜨렸다.
나는 말없이 그를 응시하며 모습을 살폈다.
‘나이는 20대 후반.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복. 화려한 치장. 제대로 서지 않고 짝다리를 짚은 불량한 자세. 자만심이 가득한 도전적인 눈빛.’
그리고 그 주위를 살폈다.
‘셀리나 선생님을 노리던 녀석들이 전부 물러났다.’
셀리나 선생님은 비록 평민이기는 하지만, 젊은 나이에 세오른의 교사가 될 정도의 실력자다.
게다가 눈에 띄는 미인에 성격도 좋으니, 인맥을 노리는 사람들로서는 꽤 매혹적으로 보였을 거다.
오히려 상대가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기에 더 다가가기 편할 텐데도, 저 젊은 남자 하나가 나서자 나머지가 물러난 이유는 오직 하나겠지.
‘꽤 지위가 높은 도련님이라는 소리로군.’
그것도 어지간한 중소 귀족들조차 찍소리 못할 정도로 좋은 집안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건 나랑 상관이 없지.
“곤란해하시는 여성분께 그러는 건 실례입니다.”
“아, 그래서 그쪽이 누구인데 그러시냐고.”
그때 셀리나 선생님이 나를 돌아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드거 선생님!”
“루드거? 뭐야. 그게 누군데?”
이름을 말했는데도 못 알아먹는다고?
일부러 떠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나도 퍽이나 당황스러웠다.
이번에 세오른에 새로 부임한 교사라고 소개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인파 사이에서 나이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황급히 다가오더니, 눈앞의 남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다.
이쪽 파티의 드레스코드에 맞춘 복장이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지금 귓속말을 건네는 저 남자. 마법사다.
아무래도 그는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고 있을 터.
“뭐. 그래서?”
하지만 이 남자의 반응은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루드거 첼리시? 뭐 이번에 부임한 신임 교사인데, 그게 뭐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 그것이…….”
“어이. 거기 루드거인가 뭔가 하는 너.”
대놓고 이쪽을 삿대질하며 막 대하는 남자.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자, 그가 이윽고 자기를 가리키며 뻔뻔하게 물었다.
“너. 나 누구인지 몰라?”
내가 그걸 알아야 하나?
그런 의도로 멀뚱멀뚱 보고 있자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몰락 귀족 새끼라서 그런가, 머리에 들어 있는 게 없네. 든 게.”
그 말에 이 사태를 지켜보던 귀족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이 남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체념의 기색도 보이고 있었다.
저 반응만 보면, 이런 망나니짓을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닐 터.
“나 이반 루크라고 하는데, 들어는 봤지? 루크 몰라? 루크 사 하면 뒷골목 거지들도 들어 봤을 이름인데.”
어찌 모를까.
루크 사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바다.
테도르 루크가 설립한 루크 사는 제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부유한 대기업이다.
그곳에 돈이 존재한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손을 뻗는다고 알려질 정도로 루크 사는 제국 전역에 광범위하게 그 자본의 영향력을 떨쳐 왔다.
당연히 기업인으로서 루크라는 이름은 절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루크 사는 곧 있을 경매를 주최하는 쿤스트의 소유주다.
이반의 성이 루크인 걸 보면 아무래도 루크 사의 창립자인 테도르 루크의 핏줄일 터.
싸가지 없는 재벌 2세라고 생각하니, 곧바로 눈앞의 인물상이 납득이 갔다.
“내가 그런 곳의 이사야, 이사. 알아? 고작 너 따위 몰락 귀족이 감히 눈을 마주하고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
“알아들었으면 비키지? 모처럼 즐거움을 방해받은 건 이번만 넘어가 줄게.”
이거 상황이 귀찮게 돌아간다.
그저 셀리나 선생님께 적당히 붙은 날파리를 떼어 내면서, 내게 붙은 개미들도 함께 털어 낼 생각으로 끼어든 건데.
하필이면 엮인 대상이 그 루크 사의 이사라니.
그것도 싸가지 없는 재벌 2세.
날파리를 피하려다가 벌집을 건드린 꼴이었다.
하지만.
꼬옥.
내 등 뒤에서, 내 옷소매를 잡고 있는 셀리나 선생님의 가녀린 손이 떨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물러난다면, 저 망나니 같은 인간은 셀리나 선생님을 강제로 끌고 가려 하겠지.
……이건 어쩔 수 없겠군.
“야. 빨리 비키라니까?”
“죄송하지만.”
나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이반을 응시하며 말했다.
“셀리나 선생님은 저와 선약이 먼저 있습니다.”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셀리나 선생님.”
“아.”
그 행동에 무언가를 읽은 건지,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맞아요.”
이반 루크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야. 지금 장난쳐?”
“제가 장난치는 거로 보입니까?”
“뭐? 하. 이거 재미있는 놈이네. 야. 네가 세오른의 교사니 뭐니 하면, 내가 뭐 알겠다고 물러날 줄 알았어?”
이반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올려 내 어깨를 툭 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그의 손목을 붙잡는 것이 더 빨랐으니까.
“너……. 무, 무슨 짓이야. 이거 안 놔?”
“그쪽에서 그렇게 말하니, 이쪽도 똑같이 돌려주지.”
나는 오히려 이반의 손목을 쥔 힘을 더 강하게 주며 말했다.
“루크 사의 이사니 뭐니 하면, 내가 물러날 줄 알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