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73
46화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칭찬해 주는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지금은 다른 뉴스를 방송하는 TV를 보았다.
“만 단위가 넘었더군.”
“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가만히 허공을 보다가 말했다.
“만이라…….”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숫자로 평하기에는 너무 많은 생명일세.”
“그렇죠. 너무 많은 생명입니다.”
“그래…… 너무 많은 생명이네. 거기에 그 숫자에는 그들의 가족과 연인, 친구는 포함이 되지 않지. 단순히 숫자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네.”
김소희가 소주를 따라 한 잔을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과학이라는 것이 발전한다 해도, 사람은 자연의 힘 앞에는 그저…….”
마지막 말을 잇지 않고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하란이 우리나라에게 베푼 마음이 있으니 잘 도와주게나.”
“그리하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리다가 말했다.
“그리고 황민성의 집에 종종 들르게나.”
“무슨 일 있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잠시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
“들르게나.”
딸랑!
풍경 소리가 나며 가게를 나서는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달에 한 번은 가서 가족끼리 식사도 하고 아이들도 보고는 했다.
그런데도 뜬금없이 종종 들르라는 말을…….
생각을 하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설마?’
뭔가에 생각이 미친 강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강진과 한끼식당 식구들은 오늘도 하란에서 음식 봉사를 하고 있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강진과 함께 음식을 만드는 분들이 아주머니 한 분 외에도 몇 분 더 있다는 것이었다.
자원봉사자가 가지고 오는 건 긴급 구호 물자라 인스턴트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하란 사람들이 밥처럼 먹는 빵인 에크멕과 시미트가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물과 잼, 그리고 양고기 햄과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간단하지만 강진이 그 자리에서 음식을 하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가 아주머니가 일을 돕는 것이 보이자 하나둘씩 와서 거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강진이 요리하는 곳은 작은 포차처럼 되어 있었다.
불을 피우는 화구도 세 개가 더 늘어났고, 음식의 가짓수도 늘어났다.
같이 음식을 하겠다고 온 아주머니들이나 아저씨 중에 음식 솜씨가 있는 분들이 강진이 가져온 재료들로 음식을 했다.
그래서 요즘 강진은 음식을 하기보다는 메흐메트의 가게에서 식재를 가져오는 것이 더 주된 일이 되었다.
물론 사람뿐만 아니라 귀신도 먹어야 해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강진이 조금씩이라도 참여하곤 했다.
일단 저승식당 사장의 손맛이 담겨야 귀신의 입에 맞으니 말이다.
촤아악! 촤아악!
강진은 양고기를 굽고 있었다. 사실 양고기는 강진에게 익숙한 분야의 식재는 아니었다.
아니, 하란에 오기 전에는 먹어 본 적도, 직접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조리법도 굽는 방법도 잘 몰랐다.
하지만 하란에서 양고기를 많이 다루다 보니 이제는 소나 돼지처럼 익숙하게 조리를 할 수 있었다.
양고기를 뒤집어 익은 고기를 앞에 놓으면 사람들이 음식을 받아 갔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옆을 보았다.
옆에는 아주머니를 비롯한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도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인데 이런 상황에서 서로 돕겠다고 이렇게 봉사를 자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곳에서 이런 말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사람이 사람을 돕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보는 건 정말 기분이 좋은 일이야.”
강진의 말에 어린 귀신들과 놀아주고 있던 이혜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 보면 정말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잠시 사람들을 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여기 있는 분들 도울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좋지.”
재난이 없었다면 이렇게 도울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냐.”
남을 돕고, 남을 돕기 위해 후원을 하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직은 남을 돕는 살만한 세상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이런 일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었다.
“그래도 이제 꽤 정리가 된 것 같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왔을 때는 전쟁터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다.
도로와 길은 정리가 되어 있어 차가 다니고, 그나마 멀쩡한 가게들은 주인들이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배회하던 귀신들의 수도 이제 많이 줄어 있었다.
시신이 수습되고 장례가 치러지면서 하나둘씩 JS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저승으로 간 것이다.
물론 아직 가지 않은 귀신들도 있었다. 옆에서 음식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아들, 저쪽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잔해를 치우고 있는 아저씨의 딸도 아직은 승천하지 않고 머물고 있었다.
아저씨의 바짓가랑이를 손에 꼭 쥔 채 웃고 있는 소녀를 보던 강진이 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소녀 역시 강진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서로 손을 흔들어 준 강진이 잠시 아저씨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를 보았다.
여기 와서 가족을 잃고 힘든 분들을 많이 봤지만, 가장 시선이 가던 건 이 두 분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이 두 분만 혼자 죽은 자식을 곁에 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던 두 분이 지금은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도 안심이 되었다.
슬픔이야 지워지지도 줄어들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움직인다는 건 살아 나가겠다는 의미였다.
‘힘드시겠지만…… 최선을 다해 사세요. 사시다가 좋은 날에 아이를 만나서 이때까지 사셨던 이야기도 해 주시고요.’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다시 양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
강진은 메흐메트와 함께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있었다.
촤아악! 촤아악!
우물에서 길은 물을 그릇들에 쏟으며 한끼식당 식구들은 자리를 잡고 설거지를 했다.
“음식 하는 것보다 설거지하는 게 더 일인 것 같아.”
그릇을 씻으며 중얼거리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커다란 통에 담겨 있는 그릇들을 보았다.
플라스틱 접시들은 그 양이 정말 아주 많았다.
“그렇다고 일회용품 쓸 수도 없잖아.”
“그건 맞지. 식사 때마다 이만한 양만큼 일회용품을 썼으면 쓰레기도 어마어마했을 거야.”
설거지 그릇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일회용품을 아꼈다는 말이었다.
일회용품 가격이야 얼마 안 하겠지만 이만한 일회용품을 매 끼니마다 사용하면 양이 엄청났다.
그래서 귀찮기는 하지만 플라스틱 그릇으로 일회용품을 대신한 것이다.
마음 같아서야 플라스틱 그릇 말고 도기 그릇을 쓰고 싶지만, 그건 깨질 수도 있어 위험해서 쓸 수 없었다.
뚝딱! 뚝딱!
설거지를 마친 강진과 한끼식당 식구들이 그릇들을 닦고 정리를 할 때 메흐메트가 쟁반에 음료를 가지고 왔다.
“한잔씩들 하게.”
메흐메트의 말에 강진이 음료를 보았다. 하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 양젖 요구르트를 물에 섞어 마시는 아이란이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강진이 먼저 들자 메흐메트가 식구들에게도 한 잔씩 돌리고는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릇들을 보다가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고, 고맙네.”
메흐메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시간 여유가 되면 또 오겠습니다.”
강진은 오늘까지만 하란에 오고 내일부터는 본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저승식당 영업은 꾸준히 했지만, 낮 장사를 하지 않은 지 이십 일이 넘었다.
그렇다 보니 한끼식당 단톡방에 가게 언제 오픈하냐는 손님들의 문의가 많았고, 걱정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리고…….
“아쉽습니다.”
강진의 말에 메흐메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네.”
메흐메트의 말에 강진이 작게 입맛을 다시다가 말했다.
“귀신들에게 부탁하면 생존자들을 더 찾을 수 있을 텐데요.”
귀신들이라면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나 공간을 통해 실종자와 구조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귀신이라고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귀신은 무게가 없고 다칠 일이 없으니 사람보다는 수색하기 더 좋을 것이다.
문제는 JS 직원들이 그것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죽은 자가 산 사람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하란 JS 직원이 강진에게 직접 이 일에 대해 주의를 주었다.
절대 귀신에게 들은 실종자 이야기를 구조대에게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예전 저승식당 출장 영업을 할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JS 직원들이 단체 손님으로 온 적이 있었다.
이유는 근처에 대규모 사고가 일어나서 사람들이 많이 죽을 일이 있어 직원들이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출장 영업장에 와서 밥을 먹고 간 것이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강진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잠시 말이 없던 메흐메트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저승과 이승 양쪽에 발을 대고 있지만…… 우리는 산 사람이네. 저승에 대해 안다 해서 그걸 사람들에게 말을 해서는 안 되네.”
메흐메트가 강진을 보았다.
“사람들이 저승에 대해 알아서 좋을 것이 없네.”
메흐메트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메흐메트가 아이란을 쭈욱 마시고는 말했다.
“종종 놀러 오게나.”
“알겠습니다.”
하란과 한국이 국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저승식당을 운영하니 그저 문 몇 개만 열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강진이 앞을 보았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을 가만히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여기 풍경은 정말 좋았다. 멀리 끝없이 펼쳐진 듯한 초원과 드넓은 숲을 보고 있자니 정말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잠시 풍경을 보던 강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잘 가고. 그동안 고생했네.”
메흐메트의 말에 강진과 한끼식당 식구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
“사장님! 이게 얼마 만이에요.”
“아침에 단톡방에 메뉴 올라오는 거 보고 얼마나 반갑던지. 별일 없으셨죠?”
오랜만에 오픈한 점심시간에 손님들이 들어오며 강진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답했다.
“음식 봉사를 하러 갈 일이 있어서요.”
“음식 봉사를 그렇게 오래 하세요?”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있어서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자, 이리들 앉으세요.”
강진이 자리를 안내하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착석을 하며 음식을 주문했다.
“김치제육볶음 두 개! 갈치조림 하나!”
“김치제육볶음 두 개! 갈치조림 하나! 오케이!”
오랜만에 하는 낮 장사라 그런지 강진과 배용수 둘 다 신이 나서 주문을 받았다.
그렇게 주문을 하고, 요리가 나오고, 서빙을 하고, 물레방아 도는 것처럼 흥겹게 한끼식당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만석이 된 손님들의 상을 보며 부족한 반찬을 리필해 주던 강진이 멈췄다.
손님 중 한 명이 밥을 먹으며 유트브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트브는 하란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유트브에는 자신이 아는 곳이 비치고 있었다.
“저 잠시 좀 봐도 될까요?”
“그러세요.”
손님이 핸드폰을 주자 강진이 화면을 자세히 보았다. 그리고는 곧 미소가 지어졌다.
화면에는 아주머니가 땀을 닦으며 요리를 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아저씨가 냉장고를 사람들과 함께 옮기고 있었다.
아주 짧게 지나가는 영상 속이었지만 강진은 미소가 지어졌다.
핸드폰 속이기는 하지만 두 분의 옆에 있던 소년과 소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승천했구나.’
아이들이 승천했다는 것을 안 강진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말이 좋아 수호령이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것이 수호령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신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데도 그 옆에 계속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두 아이가 승천을 한 것이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