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14
315화
밤 11시, 식당 안 귀신들은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평소라면 시끌시끌해야 할 곳이었지만 귀신들은 모두 술잔만 조용히 들었다 내릴 뿐, 말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귀신들이 보는 곳에는 현신한 이목한이 벽을 배경으로 카메라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
“……나 이목한은 사후 4년 후에 내가 남긴 재산의 모든 처분을 김윤자에게 위임한다.”
신수호가 적어 준 원고를 이목한이 모두 읽자 강진이 슬며시 버튼을 눌러 녹화를 껐다.
“자, 됐습니다.”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서류를 하나 꺼내 이목한에게 내밀었다. 이목한이 서류를 보았다.
“이건 뭡니까?”
“이목한 씨의 분풀이를 도울 서류입니다.”
“분풀이?”
“이목한 씨가 저에게 3억을 빌렸다는 차용 증서입니다.”
“3억? 제가요?”
“물론 이건 자제분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에 제시될 겁니다.”
“애들한테 받아 내려고요? 하지만 제가 죽었는데?”
“유산을 상속받으면, 빚도 상속을 받는 겁니다.”
“그럼 혹시 제 아내에게 빚이 상속이 되는 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제분들이 유산 상속을 포기한다면 차용 증서를 그들 앞에서 찢을 겁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빚을 받고 말고는 제 마음이니까요.”
신수호가 종이를 가리켰다.
“서명하십시오.”
신수호의 말에 이목한이 잠시 서류를 보다가 서명을 했다. 이목한의 서명이 담긴 차용증을 가방에 넣은 신수호가 몸을 일으켰다.
“자제분들에게는 내일 저희 직원들이 찾아가서 연락을 할 겁니다.”
“그 아내를 지켜 준다는 도우미 분은요?”
“도우미도 내일 아침에 할머니 댁으로 출근합니다.”
신수호가 문을 열고 나서다가 이목한을 보았다.
“따라오세요.”
“네?”
“오늘부터 일 시작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이목한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기려 할 때, 강진이 급히 말했다.
“일을 할 때 하더라도 식사라도 하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이목한을 보았다.
“계약은 계약입니다. 제가 이목한 고객님의 일을 시작한 시점에서 고객님의 시간은 저의 것입니다.”
“하지만 한 시간, 아니 삼십 분 정도는…….”
강진의 부탁에 신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부터 2년이라는 시간의 1분, 1초까지 모두 제 것입니다.”
신수호가 이목한을 보았다.
“가시죠.”
신수호의 말에 머뭇거리던 이목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목한이 강진을 보고는 고맙다는 듯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는 신수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목한과 신수호가 가게를 나서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식사라도 하고 가시게 해 주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귀신 한 명이 다가왔다.
“지금 사람 변호사한테 법적 일을 부탁한 겁니까?”
“네.”
“그거 혹시 나도 가능할까요?”
강진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에게 말을 건 자를 보았다.
“돈 있으세요?”
“돈…… 없죠.”
“돈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 하세요.”
“몸으로?”
“방금 나가신 분 식사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가신 거 보셨죠?”
강진이 문을 보자 귀신도 그를 따라 문을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2년 동안…….”
귀신도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작게 중얼거린 귀신이 자리로 돌아간 뒤 소주잔을 들자, 강진은 주방에 들어가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음 날, 강진은 아침 일찍 최동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최동해는 전화를 바로 받았다.
[허억! 허억! 형.]“숨소리가 왜 이래?”
[지금 산 올라가고 있거든요.]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시학원의 명물, 아침 등산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한 건가?”
[아니에요. 어차피 산 오르는 중인걸요.]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너 혹시 오늘이나 내일, 서울 한 번 올 수 있냐?”
[서울에요?]“형이 어디 갈 곳이 있는데 와서 짐 좀 나를 수 있나 해서. 형이 아르바이트 비는 줄게.”
[돈은 괜찮은데…… 저 죄송한데 설날까지는 운동만 하려고 해요.]“아…….”
[죄송해요, 형. 지금 페이스로 빠지면 구정까지 구십 초반 될 것 같아요. 그……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 최대한 빼려고요.]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두 달 만에 살이 쪼옥 빠진 최동해를 보면 부모님이 좋아하기는 할 것이다.
“그래, 알았다. 대신 몸이 이상하거나 힘들면 바로 연락해.”
[알겠습니다.]“그럼 설날 후에 시간 한번 내라.”
[네.]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핸드폰을 보았다.
‘종석이 빨리 떼어내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그러고는 강진이 핸드폰 달력으로 구정을 확인했다. 구정까지는 앞으로 열흘.
차종석이 문제기는 한데, 최동해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평생 뚱뚱한 모습으로 부모님에게 구박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친척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테고 말이다.
‘열흘이라…… 일단 지켜보자.’
이혜미가 잘 보기를 바라며 강진이 맞은편에 있는 임상옥을 보았다.
임상옥은 서류를 펼쳐 놓고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건대 쪽에서 뻑치기 살인사건하고 발발이 사건, 이렇게 두 건을 확인하려 합니다.”
임상옥의 말에 그 옆에서 사건 파일을 보던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 파일을 천천히 넘기며 건대에서 확인할 사건들을 이야기하던 임상옥이 강진을 보고는 물었다.
“통화했어?”
“네.”
강진의 말에 임상옥이 앞에 놓인 메모장을 보며 말했다.
“보면 알겠지만 차종석 군 부모님은 둘 다 생존해 계시고, 동생인 차은미 씨는 현재 신흥서에서 구급 대원으로 일하고 있어.”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상옥은 차종석의 현주소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근황도 알아다 주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최호철과 함께 귀신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하기로 해서 아침 일찍 온 것이다.
“가족 사정은 어때요?”
“부모님 둘 다 일하시는 것 보면 건강은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딸도 공무원이니 사정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구급 대원이라…… 오빠가 그렇게 된 것이 영향이 있나 보네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러고는 임상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최호철 씨, 갑시다.”
임상옥의 말에 최호철이 서류를 보다가 일어나자, 강진이 말했다.
“호철 형 장소에 내려 주시고 세 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태우세요. 그리고 점심때 식사하시는 동안 제가 호철 형이 알아 온 정보 전해 드릴게요.”
“알았다.”
임상옥이 가게를 나서자 강진이 최호철을 보았다.
“수고하세요.”
“나야 좋지. 살아서 못 잡은 놈들 죽어서라도 잡아야지.”
기분 좋은 얼굴로 가게를 나서는 최호철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점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서울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중년의 남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부장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부하직원이 수화기를 든 채 말했다.
“로비에 변호사님이 오셨다는데요.”
“변호사? 나한테?”
“서&백 신수호 변호사시랍니다.”
변호사라는 말에 부장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변호사?”
그는 변호사가 자신을 찾아올 만한 일이 있나 싶었지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에 부장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 내려간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몸을 일으킨 부장, 이현운이 외투를 챙겨서는 사무실을 나섰다.
‘변호사가 무슨 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현운이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회사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로 내려온 이현운이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하얀색 정장을 위아래로 맞춰 입은 중년인이 손을 들었다.
“여기입니다.”
손을 든 중년인의 모습에 이현운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무슨 옷을…….’
화이트 정장이라니. 아무나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저를 보러 오셨다고?”
“서&백 변호사, 신수호입니다.”
“네.”
신수호가 건네는 명함을 받아 든 이현운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그런데 변호사님이 왜 저를?”
이현운의 물음에 신수호가 입을 열었다.
“이목한 씨의 장남, 이현운 씨 맞으십니까?”
“제 아버지를 아십니까?”
“저는 이목한 씨의 변호사입니다.”
“신수호 변호사님이 아버지 변호사라고요?”
“그렇습니다.”
“아니…… 우리 집에 변호사를 쓸 일이 없는데?”
이현운의 말에 신수호가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이건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유언 영상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동영상을 본 이현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게 무슨? 이걸 아버님이 남겼다고요?”
“보시는 대로입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지가 4년이 넘었는데?”
“이목한 씨께서 자신이 죽고 4년 후 유언을 이행해 달라는 것이 계약 내용입니다.”
“하지만…… 4년입니다.”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신수호의 물음에 이현운이 멍하니 그를 보다가 급히 말했다.
“그럼 이게 사실이라는 겁니까?”
“아버님 얼굴이 아니십니까?”
“그건 맞는데…….”
정지된 동영상 속의 아버지 얼굴을 보던 이현운이 물었다.
“어머니가 유산을 안 준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유산은 이목한 씨의 아내이신 김윤자 씨에게 상속이 됩니다.”
“하지만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이미 형제들하고 재산 다 나눴는데?”
“다시 회수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버럭 고함을 지르는 이현운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됩니다.”
“아니…….”
말을 하던 이현운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에 핸드폰을 본 이현운이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이게 무슨 소리야?]동생 이현태의 목소리에 이현운이 힐끗 신수호를 보았다.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여기 변호사가 찾아와서 아버지 유산 이야기하는데 이거 다시 토해 내야 할 수도 있대.]“변호사? 누구?”
[서&백 강인 변호사.]“일단 끊어 봐.”
[이거 어떻게 해!]“일단 끊어 봐. 나도 지금 변호사하고 있어.”
[형한테도 변호사가 갔어?]동생의 목소리를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은 이현운이 신수호를 보았다.
“제 동생들한테도 변호사가 간 겁니까?”
“저 혼자 움직이기는 불편해서 직원들 보냈습니다.”
“직원?”
“저희 로펌 이름 들어본 적이 없으신가 보군요.”
신수호의 말에 이현운이 급히 핸드폰 검색창에 서&백을 검색했다.
그러자 서&백 로펌에 관한 정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하던 이현운은 놀란 눈으로 신수호를 보았다.
“로펌 대표 변호사시네요.”
“네.”
“아니…… 로펌 대표 변호사나 되시는 분이 왜 저희 아버지 변호를 직접?”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이 변호사를 쓸 일이 뭐가 있겠는가? 게다가 이건 일반 변호사도 아니고 변호사들이 모인 로펌의 대표 변호사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이목한 씨와는 인연이 있습니다. 해서 제가 직접 관리하는 고객이십니다.”
그러고는 신수호가 손을 내밀어 핸드폰을 가리키자, 이현운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지금 이현태 씨와 이현미 씨에게도 저희 로펌 변호사가 직접 가서 유언 내용을 전했을 겁니다.”
띠링!
그 사이 이현운의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이현운 씨 핸드폰으로 동영상 보냈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이현운이 자신의 핸드폰에 동영상 메일이 온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보았다.
“그럼…… 구정에 어머님이 유산 상속을 안 하겠다고 하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유산은 모두 김윤자 씨에게 상속이 됩니다.”
“하지만 그 돈 이미 다 없는데.”
“재산은 있으시겠죠.”
“재산?”
“돈이야 써서 없겠지만, 그 돈으로 산 물건 혹은 인생…… 뭐든 남아 있습니다.”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굳은 얼굴의 이현운을 보며 신수호가 말했다.
“그런데 왜 어머니께서 유산을 안 줄 거라 생각을 하십니까.”
“그건…….”
아버지가 죽고 한 번도 찾아가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어 우물쭈물하는 이현운을 보며 신수호가 말했다.
“유언에 불만이 있으시면 법대로 하시면 됩니다.”
“법?”
“유산 역시 법적인 영역에 있습니다.”
“아, 그럼 법대로 해결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신수호 씨가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해결해 줄 수도 있지만 저는 이미 이목한 씨의 법정 대리인입니다. 그래서 이현운 씨의 대리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저는 유산 상속을 법대로 처리할 것이니, 저를 이길 수 있는 대리인을 찾으셔서 법정에서 만나시면 됩니다.”
“그쪽을 이길 수 있는 변호사?”
이현운의 물음에 신수호가 그의 손에 들린 명함을 가리켰다.
“변호사 찾으실 때 상대가 저라는 이야기 꼭 하십시오. 그래야 귀찮은 일 안 생깁니다.”
“귀찮은 일?”
“같은 이야기 여러 번 하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니까요.”
그리고는 신수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구정 아침에 유언 집행을 합니다. 그날 뵙겠습니다.”
신수호가 로비를 나서는 것에 이현운이 굳은 얼굴로 그 뒷모습을 볼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막내 여동생 이현미의 전화였다.
[오빠, 이게 무슨 말이야! 새엄마가 유산 안 준다고 하면 다 토해 내야……]잔뜩 흥분한 여동생의 고함에 이현운이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