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이력서도 써 본 사람이 잘 쓴다고, 수출 경험이 없는 회사에서 보낸 기획서가 이렇게 잘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보통 수출 대행을 원하는 회사에서 기획서가 오면 한 번, 많으면 세 번도 부족한 부분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에 비해 우민실업의 서류는 깔끔했다. 수출에 경험이 없는 작은 회사에서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임호진이 다시 서류를 보다가 말했다.
“상섭이, 어떻게 할 거야?”
임호진의 말에 이상섭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강진을 보았다.
“이강진 씨.”
“네.”
“그때 심리학적으로 그쪽에서 보내는 시그널이 이상하다고 했었죠?”
“네.”
“흠…….”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말없이 서류를 보았다. 그런 이상섭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날 온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민실업 사장.”
“이야기를 한 사람이 사장이에요? 아니면 옆에 말이 없던 사람이 사장이에요?”
“이야기를 한 사람이 사…….”
사장이라는 말을 하려던 이상섭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장이 옆에 있던 사람 지시를 받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에 강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기에도 사장이라는 사람은 옆에 있던 사람의 지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임호진을 보았다.
“어제 이상섭 씨가 몇 가지 확인을 하고 연락을 한다고 했을 때, 사장은 옆에 함께 온 사람의 의향을 묻는 듯 했습니다. 그건 사장이 그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온 사람이 주도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장하고 온 사람이 사장보다 더 높다?”
작게 중얼거린 임호진이 이상섭을 보았다.
“같이 온 사람 누구래?”
“직원이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직원 눈치 보는 사장이 어딨어.”
잠시 생각을 하던 임호진이 이상섭을 보았다.
“캔슬해.”
“알겠습니다.”
이상섭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흥미가 떨어진 일이었다.
분기 목표치도 중요하지만…… 시작부터 찝찝한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이상섭이 서류를 덮자 다른 직원들도 서류들을 덮었다.
그리고 다른 사업들에 대한 회의가 진행이 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강진과 최동해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회의 서류들은 모두 파쇄해야 합니다.”
청소 지시를 내린 이상섭이 밖으로 나가자 강진과 최동해가 서류들과 회의 시간 동안 먹은 간식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간식들을 치우며 강진이 옆에 있는 박충만을 보았다.
박충만은 서류들을 보고 있었다. 물론 넘기지는 못하고, 펼쳐져 있는 것들만을 보고 있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작게 말했다.
“식칼 회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수출 대행하는 곳이 여기만 있는 곳도 아니고 다른 곳에 주문 넣겠죠. 그리고…… 여기 말고도 이미 주문 들어간 곳 더 있을 겁니다.”
“그럴까요?”
“물건 살 때도 여러 곳 둘러보고 사잖습니까.”
그러고는 박충만이 강진을 보았다.
“신경 쓰이는 모양인데, 신경 쓰지 마세요. 일 다 해 놓고 배에 싣기 직전에 뒤집어지는 것이 이 바닥입니다. 일 시작하기 전에 뒤집어진 것이 오히려 다행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서류들을 힐끗 보았다.
“그런데 뭘 그렇게 보세요?”
“요즘은 어떤 물건들이 잘 나가나 한 번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뭐 좀 보이세요?”
“재밌는 것들이 몇 개 있네요.”
박충만이 서류를 가리킬 때, 최동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상섭 씨가 찾습니다.”
“갈게요.”
말과 함께 강진이 서류를 챙기자 박충만이 아쉽다는 듯 그를 보다가 다가왔다.
회의실을 나와 사무실로 가는데도 따라오는 박충만의 모습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안 가세요?”
“오랜만에 서류를 보니 취직한 것 같고 좋네요. 괜찮으면 이 사장 출근할 때 같이 출근해도 됩니까?”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사람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박충만이니 출퇴근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박충만이 출퇴근을 같이 하면 배울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서류 파쇄했어요?”
“지금 하겠습니다.”
파쇄를 하고 들어오자 이상섭이 강진과 최동해에게 말했다.
“영어 좀 됩니까?”
“조금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최동해를 보았다.
“토익 900점입니다.”
최동해의 말에 이상섭이 고개를 저었다.
“듣고 말하기가…….”
말을 하던 이상섭이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음식 뭐 좋아해요?”
이상섭이 영어로 말을 하는 것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음식은 가리는 것 없습니다.”
최동해도 영어로 말을 하자 이상섭이 영어로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그렇게 대화를 나눈 이상섭이 강진을 보았다.
“이강진 씨는 영어가 좀 거치네요?”
“이태원 술집 아르바이트하면서 배운 영어라 조금 그런 것 같습니다.”
일종의 술집 영어라고나 할까.
이태원에서 술집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술 취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늘은 영어라 조금 거친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을 보던 이상섭이 말했다.
“앞으로 사무실에 전화가 오면 두 사람이 받으세요. 찾는 사람 있으면 바꿔주고, 그 사람이 없으면 내용 메모해 놓고요. 절대 먼저 약속을 잡거나 확답을 하거나 하는 말은 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전화 업무 하나를 맡기면서도 주의 사항을 여럿 준 이상섭이 문득 최동해를 보았다.
“동해 씨, 아프리카 자동차 수출에 대해 알아요?”
“한국에서 연식이 오래된 중고차를 수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 없어요?”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최동해의 말에 이상섭이 강진을 보았다.
“강진 씨는?”
이상섭의 말에 강진의 귀에 박충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프리카라! 내가 젊었을 적에 자주 갔던 나라 중 하나지.”
박충만의 말에 강진이 그를 힐끗 보았다. 그 시선에 박충만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을 강진이 받아 이상섭에게 이야기했다.
“아프리카는 나라마다 부가세 및 관세가 다 다릅니다. 일단 가나의 경우는 10년 이하의 차량에 대해서만 수입 허가가 되고, 남아공의 경우 절차가 무척 까다롭습니다. 가나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국가라 중고차 수출을 하기에 좋습니다.”
강진의 설명에 이상섭이 색다른 눈으로 그를 보다가 물었다.
“잘 아네요.”
“그런데 갑자기 왜 아프리카에 대해 물으십니까?”
“우리 아이템 하나 날아갔으니 새로운 아이템 찾아봐야죠. 그리고 새로 들어온 것도 있고.”
이상섭이 서류철 하나를 꺼내 강진에게 내밀었다.
“한 부 더 복사해서 최동해 씨와 같이 읽고 사업성 확인해 봐요.”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서류철을 받아서는 최동해와 함께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 안에 복사기가 있으니 말이다.
탕비실에서 서류를 복사를 한 강진은 최동해와 한 부씩 나눠 가졌다.
***
다섯 시가 되자 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하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보았다.
“오늘도…… 바로 퇴근하는 겁니까?”
“퇴근 시간이니까요.”
당연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강진이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
아니 눈치도 빠르고 심리학도 배운 강진이, 직원들의 몸에서 보이는 불편한 시그널을 못 읽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야근 수당 주는 것도 아니고…… 가야지.’
그리고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에 강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최동해는 첫날과 달리 직원들의 눈치가 보이는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럼 내일 봐요.”
강진이 다시 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서자 임호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최동해 씨도 퇴근해요.”
“네? 아니 저는…….”
“괜찮아요. 어차피 남아 있어도 할 일이라고는 복사 정도일 텐데, 퇴근해요.”
임호진의 말에 최동해가 이상섭의 눈치를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내일 뵙겠습니다.”
최동해도 사무실을 나가자 이상섭이 입맛을 다셨다.
“우리 밥집 인턴은 확실히 다른 인턴하고는 다르네요. 어떻게 나보다 퇴근이 빠르지?”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남은 일 적당히 마무리하고 우리도 퇴근하지.”
“알겠습니다.”
임호진의 말에 이상섭과 직원들이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진은 식당에서 자기 얼굴에 침을 놓고 있었다. 물론 침을 놓는 것은 강진이지만, 혈자리를 잡고 침을 든 손을 조종하는 것은 허연욱이었다.
강진의 손을 잡은 채 허연욱은 눈 바로 옆에 침을 놓았다.
“어때요?”
“안 아프네요.”
“안 아프게 놓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허연욱이 강진의 손을 잡아 침을 잡게 하고는 살며시 돌렸다.
침을 돌리자 바로 아파오는 것에 강진이 신음을 토했다.
“아아아!”
“오늘 서류 같은 것 많이 봤나 보네요. 눈 주위 근육이 많이 뭉쳤어요.”
“그래서 그런지 많이 아프네요.”
“그래도 효과는 좋죠.”
허연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다.
“어? 머리에도 침 놓으시게요?”
“맞고 나면 머리도 맑아질 겁니다.”
“이것도 아픈 겁니까?”
“아프다 생각하지 말고 시원하다 생각하면 시원할 겁니다.”
허연욱의 말과 함께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머리 앞부분이 따끔하더니 아픈 것이다.
“아픈데요.”
“지금 맞는 침은 TV 예능에서도 몇 번 나왔던 침입니다. 연예인들이 이 침 맞으면서 아파하면 시청률이 많이 오른다고 하더군요.”
“TV에도 나오셨어요?”
“그럼요. 내가 또…….”
자기 이야기로 빠지는 허연욱의 말을 들으며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웃으면서 한 말이긴 하지만, 허연욱도 아프다고 말을 할 정도로 꽤 아팠다. 하지만 그 반대로 아픈 만큼 뒷골이 시원해지는 느낌도 들어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손만 내주면 알아서 침을 놔 주니…… 언제 이런 호강을 누려 보겠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문이 열렸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만 살짝 돌린 강진의 눈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임호진이었다.
“어?”
“어?”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의아함이 담긴 소리가 나왔다.
강진은 임호진이 올 줄 몰랐기에 의아해한 것이고, 임호진은 강진이 얼굴과 머리에 침을 꽂고 있어서 놀란 것이다.
잠시 그렇게 서로를 보던 두 사람 중, 강진이 일단 몸을 일으켰다.
“과장님!”
강진의 부름에 임호진이 다가왔다.
“그…… 침을 놓고 있었습니까?”
“아? 그게…… 오늘 좀 피곤한 것 같아서요.”
그러고는 강진이 허연욱을 보자 그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오 분은 맞아야 하는데…….”
하지만 말과는 달리 허연욱이 침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물론 강진의 손을 움직여서 말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임호진은 신기한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머리 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텐데…… 잘 빼네.’
하지만 강진의 눈에는 안 보여도 허연욱의 눈에는 침이 보이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강진은 손만 빌려주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어쨌든 허연욱이 강진의 손을 움직여 침을 하나씩 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 밑에 꽂힌 침까지 빼낸 강진이 침통에 넣었다.
그런 강진을 보며 임호진이 말했다.
“침도 놓고, 대단하시네요.”
“피곤할 때 제 몸에나 조금 놓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퇴근하신 건가요?”
“인턴들도 퇴근하는데 저희도 퇴근해야죠.”
임호진이 식당을 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간단하게 먹고 가려고 하는데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뭐 드시겠어요?”
강진의 물음에 임호진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혹시…… 매운 고추 된장범벅 하실 수 있으십니까?”
“매운 고추 된장범벅요?”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다. 하지만…….
‘요리 연습장에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고추 된장범벅에…….”
그 외에 더 뭘 먹겠냐는 강진의 시선에 임호진이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밥에 물 말아서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밥값은 제대로 낼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임호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요리 연습장을 펼쳐서는 살피기 시작했다.
‘어라? 어라?’
요리 연습장을 펼치던 강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요리 연습장에 고추 된장범벅이 없었다.
“어라?”
한중일, 거기에 서양 요리까지 수많은 요리가 적힌 요리 연습장에 없는 요리가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