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8
38화
할머니 귀신에게 한 번 시선을 준 강진은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할머니 귀신이 보이기는 하지만, 강진은 그녀를 아는 척할 생각은 없었다.
귀신은 자신을 보거나 아는 척을 하면 귀찮게 하니 말이다.
‘가게에 오는 귀신들만으로도 넘치지.’
굳이 새로운 귀신들과 안면을 틀 이유는 없었다.
“여기 선지해장국이 괜찮아요.”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메뉴를 보았다. 하지만 메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단 두 개의 메뉴만 있을 뿐이니 말이다.
“나는 선지해장국.”
“그럼 저는 해장국요.”
직원들이 하나둘씩 주문을 하자 강진도 정했다.
“선지해장국 먹겠습니다.”
강진도 메뉴를 정하자 이상섭이 주문을 했다. 주문을 넣고 강진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팅을 했다.
“확실히 이강진 씨가 눈치가 있어요.”
“감사합니다.”
임호진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잔에 물도 따르던 강진이 살며시 물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그…… 보통 말을 놓지 않으시나요?”
“말?”
“인턴들한테요.”
강진이 궁금한 건 이거였다. 직원들 모두 강진과 최동해한테 존대를 했다.
가끔씩 실수인 듯 아닌 듯한 하대가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요’, ‘다’, ‘까’로 끝나는 존대를 해 주었다.
인턴이라는 존재는 회사에서 가장 말단이다. 평대, 혹은 반말이나 하대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첫날은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했지만, 둘째 날도 오늘도 계속 존대를 하니 이상한 것이다.
강진의 질문에 최동해도 의문 어린 눈으로 직원들을 보았다. 최동해도 그에 대해 이상하다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 둘의 시선에 임호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강진 씨 아르바이트 많이 했다고 했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때까지 쉬지 않고 했습니다.”
“그럼 아르바이트할 때 처음 본 사람이 반말을 하면 기분이 어땠습니까?”
“아무리 손님이라고 해도 기분이 좋지는 않죠.”
“맞습니다. 나이가 있든 적든 처음 본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는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어리다고 직원이라고 처음부터 하대를 하는 건 남이 봐도 좋지 않죠.”
그러고는 임호진이 강진과 최동해를 보았다.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아직은 저희가 ‘처음 본 사람’인 거군요.”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편히 하는 것이야 말 그대로 편해지면 놓게 되겠죠.”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편해지면 귀찮아질 일이 많을 텐데도 말입니까?”
편해지는 것은 강진이나 최동해가 아니라 직원들이 될 것이다. 직원들이 편하다고 강진이나 최동해가 반말이나 하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편해진 만큼 일이 늘어날 것이다.
“몸은 귀찮아도 마음은 편해야죠.”
“그것도 그렇군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자, 먹자고.”
임호진이 웃으며 수저로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크윽! 좋…….”
반사적으로 좋다는 말을 하려던 임호진이 문득 선지해장국을 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재차 국물을 떠서 먹었다.
“그…….”
뭔가 다시 말을 하려던 임호진이 직원들을 보았다.
“어때?”
“평소와 같은데요.”
“그래?”
직원들의 말에 임호진이 이상한 듯 다시 수저로 국물을 떠먹어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 먹던 것과 별다를 바가 없는 듯했지만…… 뭔가 조금 달랐다.
잠시 입맛을 다신 임호진이 강진을 보았다. 강진은 밥을 이미 말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이강진 씨, 맛있어요?”
“맛있는데요.”
“그래요?”
“네.”
음식을 잘하는 강진까지 맛있다고 먹는 것에 임호진이 잠시 있다가 밥을 말아 먹기 시작했다.
뭔가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딱히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아니 맛은 있는 편이었다.
강진은 꽤 맛있게 선지해장국을 먹었다. 원래 입이 조금 싸구려인 것도 있거니와, 해장국 자체도 강진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후루룩! 후루룩!
국물을 입에 넣으며 미소를 짓던 강진의 눈에 할머니 귀신이 홀을 오가는 것이 보였다.
‘뭐 하는 거지?’
맛있게 식사를 하는 손님들을 보며 할머니 귀신이 탁자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강진은 그것을 곁눈질로 보았다.
스윽! 스윽!
할머니 귀신은 손님들이 먹고 남은 그릇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음식들이 남아 있는 그릇을 볼 때마다 얼굴이 살짝살짝 굳어졌다.
“이걸 어째…… 이걸 어째…….”
할머니 귀신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던 강진이 문득 벽을 보았다.
벽에 걸린 사진에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할머니가 양손을 곱게 모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액자 속 할머니 사진 밑에 적힌 글을 본 강진이 힐끗 할머니 귀신을 보았다.
할머니 귀신과 사진 속 할머니는 같은 사람이었다.
‘여기 사장님 귀신인가 보네.’
할머니 귀신과 사진 속 할머니를 번갈아 보던 강진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 귀신의 고개가 그쪽으로 향한 것이다.
그에 강진이 다시 밥을 먹을 때, 임호진이 작게 말했다.
“상섭아.”
“네.”
이상섭이 답을 하자, 임호진이 작게 말했다.
“맛이 조금 변한 것 같지 않냐?”
“글쎄요. 저는 딱히…….”
“내가 너무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입맛을 다시며 임호진이 강진을 보았다.
“이강진 씨, 해장국도 할 줄 압니까?”
임호진의 물음에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 연습장에 있기는 한데…….’
해장국에 대한 레시피도 요리 연습장에 있기는 했다. 하지만…….
“할 줄은 아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요?”
“일단 사골 육수를 내야 하니 소뼈를 12시간 정도는 푹 끓여야 합니다. 거기에 기름 뜨면 그것도 걸러야 하고…… 한 15시간 걸려요.”
“해장국 하나 끓이는데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제가 배운 해장국은 그렇네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임호진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임호진이 밥을 다 먹은 것에 다른 직원들도 서둘러 먹던 것을 입에 넣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천천히 먹어.”
“아닙니다. 저희도 다 먹었습니다.”
직원들의 말에 임호진이 지갑에서 칠천 원을 꺼내 이상섭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도 돈을 꺼내 밥값을 내었다.
“어째…… 다 남겼네. 어떻게 해.”
직원들이 돈을 모으는 사이 어느새 옆에 온 할머니 귀신의 모습에 강진이 그릇들을 보았다.
강진과 최동해는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먹었다.
강진이야 원래 입이 싸서 먹을 수 있는 것이면 어지간해서는 다 먹는다. 최동해는 몸이 있으니 식탐이 있고 말이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의 뚝배기에는 먹던 해장국이 남아 있었다.
배가 불러서 그만 먹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할머니 귀신은 뚝배기에 음식들이 남아 있는 것이 서글픈 모양이었다.
손님들이 나갈 때마다 한숨을 쉬며 그릇들을 살피는 할머니 귀신의 모습을 보던 강진이 몸을 일으켰다.
“이걸 어째…… 어떻게 하면 좋아.”
뒤에서 할머니 귀신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직원들과 함께 가게 밖으로 나왔다.
가게 입구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직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맛이 좀 변한 것 같아.”
“저도 먹다 보니 그런 생각이 좀 들더군요. 좀…… 깊이가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임호진은 여전히 선지해장국이 마음에 안 드는 듯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임호진이 그러니 다른 직원들도 맞장구를 쳐줬다.
장 과장처럼 윗사람에게 아부를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적당히 맞장구는 쳐 주는 정도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몰랐는데 먹다 보니 확실히 맛이 조금 변한 것도 같았고 말이다.
“좋아하는 가게였는데…… 아쉽네.”
“그런데 할머니가 안 보이시네요.”
“그러게 말이야. 할머니가 밥 먹고 나갈 때마다 맛있게 먹었냐고 물으셨는데…… 안 보이시네.”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한 사람이 다가와 임호진의 어깨를 툭 쳤다.
“임호진.”
어깨를 친 남성을 본 임호진이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오랜만이네.”
임호진의 인사에 남성이 해장국집을 보고는 작게 말했다.
“맛 변했지?”
“선배님도 와 보셨습니까?”
“와 봤지. 맛이 변했더라고…… 그래서 안 가.”
“확실히 맛이 변했죠?”
“여기 사장님 돌아가시고 나서 맛이 변했더라고.”
남성의 말에 임호진이 놀란 눈으로 가게를 보았다.
“어? 사장님이 돌아가셨어요?”
“한창 더울 때 돌아가셨는데 몰랐어?”
“몰랐습니다.”
임호진이 가게를 돌아보는 것에 남성이 같이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전에는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선지해장국집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평범한 맛집이 되어 버렸어.”
“아쉽네요.”
“그러게 말이야. 야근하고 여기서 소주 한 잔에 해장국 먹으면 그렇게 좋았는데.”
남성이 아쉽다는 듯 가게를 보다가 문득 임호진을 보았다.
“혹시 우민실업이라고 알아?”
남성의 말에 임호진이 그를 보았다.
“우민실업? 혹시 선배님한테도 주문 들어갔습니까?”
“그 말은 너희한테 주문 들어갔다는 거네?”
“저번 주에 오퍼 들어왔더군요.”
“저번 주라…… 그럼 이미 아이템 회의에서 킬 됐겠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오늘 아침에 미팅했거든. 십억짜리라고 해서 신나서 갔다 왔지.”
웃으며 말을 한 남자가 임호진을 보았다.
“그런데 왜 킬한 거야? 십억이면 분기 목표치 달성에 도움 될 텐데?”
남자의 말에 임호진이 웃었다.
“여기서 만난 게 우연이 아니었나 보네요?”
“너 보러 온 것은 맞지만, 여기서 본 건 우연이지. 그래서 왜 킬한 거야?”
남자의 말에 강진이 그를 슬쩍 보았다.
‘과장님 보러 왔다가 여기서 우연히 본 거군. 그나저나 두 사람 친한 모양이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향해 몸을 활짝 젖히고 있었다.
몸을 활짝 젖힌다고 해서 모두 친근함의 표시인 것은 아니다. 몸을 활짝 젖혀 내 몸이 너보다 더 크다는 위압감을 줄 수도 있지만, 지금 이건 친근함의 표시였다.
강진이 두 사람의 반응을 살필 때, 임호진이 말했다.
“좀 찝찝했습니다.”
“찝찝하다라…….”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어쩐지 그쪽 사장이라는 사람 믿음이 안 가더군요.”
임호진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가끔은 서류상 수치보다 감을 따라야 할 때가 있지.”
“선배님도 이상해서 오신 것 아닙니까?”
“맞아. 십억이면 보따리 장사인 나에게 크기는 한데…… 자네 말대로 찝찝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대기업에서 킬한 아이템 나 같은 보따리가 무슨 배짱으로 맡아. 킬해야지.”
남자의 말에 임호진이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킬하기로 결정한 이상 더는 그들의 아이템이 아니었다.
킬하기 전이 문제지, 하고 난 후에는 더는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남자가 이상섭 뒤에 있는 강진과 최동해를 보았다.
“인턴?”
“그렇습니다.”
“인력 구하는 것도 쉽고 부럽네…… 나 같은 보따리 장사꾼은 인턴은커녕 정직원 구하기도 어려운데.”
“그러게 왜 회사를 나가셨어요.”
“뱀 대가리 하려고.”
웃으며 임호진의 어깨를 툭 친 남자가 말했다.
“기러기 아빠들끼리 언제 소주 한잔하자.”
“제가 좋은 가게 하나 알아 뒀습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그러고는 남자가 강진과 최동해를 보았다.
“정직원 되면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요?”
강진이 의아해하자 남자가 웃으며 임호진에게 손을 들었다.
“간다.”
“연락드리겠습니다.”
남자가 가자 임호진이 직원들과 함께 다시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직원들의 뒤를 따르던 강진이 해장국집을 보았다.
창문을 통해 할머니 귀신이 탁자를 오가는 것이 보였다.
‘가게 걱정이 돼서 승천을 못하는 건가?’
할머니 귀신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죽어서까지 가게를 걱정을 해…… 그냥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