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29
530화
‘십 년이 지나도 유 선생님은 지은 씨의 맛을 기억하시네요.’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가게 입구로 가서 아크릴판에 글을 적었다.
강진은 아크릴 판을 입구에 다시 세워두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황민성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가게 문 닫았습니다. 저도 술 한 잔 주세요.”
강진의 말에 유훈이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벌써 문을 닫아도 되시는 겁니까?”
“저도 좀 놀아야죠. 그리고 저희 가게는 저녁에는 손님이 없어요.”
“이렇게 맛있는데 왜 손님이 없어요?”
유훈이 의아한 듯 쳐다보자 강진이 웃었다.
“여기가 아무래도 강남이다 보니 저녁에는 젊은 사람들이 술 마시러 많이들 옵니다. 우리 가게가 맛은 있지만 밤새 술 마실 만한 가게는 아니죠.”
강진의 말에 유훈이 가게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이 오징어채는 어떻게 만드는 것입니까? 제가 만들면 이런 맛이 안 나던데.”
“요리 좀 하세요?”
“제가 지금도 혼자 자취하고 있어서 음식은 좀 합니다.”
“그래요? 이거 만드는 건 간단해요. 답은 마요네즈예요.”
“마요네즈?”
“오징어채에 마요네즈 조금 넣고 비비세요. 그럼 이런 맛이 납니다.”
“아…….”
‘그런 간단한 방법이?’라는 표정으로 오징어채를 보던 유훈이 웃으며 한 젓가락 집어서는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답을 듣고 먹으니 정말 마요네즈 맛이 나는군요. 아마 지은이도 마요네즈를 넣어서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여자친구분께서 음식을 잘 하시는 모양이네요.”
강진의 말에 유훈이 웃었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말투에 웃음이 섞인 것에 강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맛은 없으셨어요?”
“후! 음식에 평균이 없다고 할까요?”
강진이 보자 유훈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저런 음식을 섞어서 새롭게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음식은 정말 맛이 있고, 어떤 음식은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음식을 섞어요?”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특이한 음식들을 많이 만들었죠.”
그러다가 유훈이 웃으며 말했다.
“그중에 몇 개는 성공적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뭔데요?”
“꽁치 통조림하고 고등어 통조림을 밀가루 묻혀서 튀긴 걸 맛소금하고 후추 툭툭 뿌려서 먹으면 아주 맛있습니다.”
“통조림을 튀겨서도 먹는군요.”
꽁치와 고등어 통조림은 보통 찌개에 넣어서 먹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주 간편합니다. 통조림 자체가 그냥 먹어도 되는 거라 살짝 튀기기만 해도 잘 익거든요. 게다가 생선 손질할 필요도 없고 가시도 익어서 바를 필요 없고.”
“맛있겠네요.”
강진이 입맛을 다시자, 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선살 크게 발라서 튀기면 쫄깃한 것이 참 맛있더군요.”
“혹시 다른 것은 없으세요?”
“옛날 소시지 토치 이용해서 직화로 구워도 맛있습니다. 살짝 타기는 해도 불 맛도 나고. 아, 이것도 맛소금 살짝 뿌려야 합니다.”
유훈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여자친구분이 맛소금을 참 잘 쓰시네요.”
“지은이는 맛있는 소금이라서 맛소금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싱긋 웃는 유훈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시도를 참 많이 하셨네요.”
“제가 자취를 해서 제 집에서 여럿 했는데…… 후! 제가 실험 대상이었죠.”
“그래도 남자 친구 음식도 해 주고 좋은 분이네요.”
강진의 말에 유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여자였고 강한 여자였죠.”
유훈의 목소리에 어린 씁쓸함을 눈치챈 황민성이 소주를 들어 그의 잔에 따라주었다.
“그런데 왜 결혼 안 하셨습니까?”
강진이 음식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직 혼자라는 것을 들은 것이다.
유훈은 쓰게 웃으며 소주를 마셨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요.”
그리고는 작게 고개를 젓는 유훈의 모습에 황민성은 더는 묻지 않았다.
유훈의 사정을 대충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여자 수호령이 붙어 있는 것 또한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자! 한 잔 더 드시죠.”
황민성이 소주를 따라주자, 유훈이 웃었다.
“하하하! 안주 먹을 시간도 안 주시는군요.”
유훈은 유부초밥을 하나 집어 먹고는 잔을 부딪친 뒤 입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6시에 시작된 술자리는 10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이어졌다.
유훈은 오늘 처음 본 사람들과 술자리를 함께하게 되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고 편했다.
황민성이 술자리를 즐겁게 만들었고, 원승환과 강진이 자신이 편안하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준 덕이었다.
그러다 보니 유훈으로서는 그저 즐겁고 재밌을 뿐이었다.
게다가 술이라는 것은 처음 본 사람들도 친구로 만들어 주는 마법의 음료기도 했고 말이다.
술을 마시던 유훈이 웃으며 말했다.
“라면 하나 끓여 먹을까요?”
“라면 좋아하세요?”
“술에는 역시 얼큰한 라면이 좋지요.”
“그럼 제가 끓여 오겠습니다.”
강진이 일어나려 하자 유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제가 끓이겠습니다. 혹시 버너 있습니까?”
“식당이니 당연히 있지요.”
“그럼 버너로 끓여 먹지요. 버너로 끓이는 라면이 참 맛있습니다. 저기 햄하고 파, 그리고 식용유하고 청양 고추도 좀 챙겨 주십시오.”
유훈의 말에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 재료를 챙겼다.
“라면 끓여 먹으려나 봐요?”
“네. 홀에서 끓여서 바로 드시고 싶은가 봐요.”
임지은은 재료를 챙기는 강진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라면 끓이는 것 구경해야겠다.”
“라면 하나 끓여 드릴까요?”
배용수의 말에 임지은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때까지 기다렸는데 더 기다릴래요.”
“라면 끓이는 것 보면 먹고 싶을 텐데.”
먹고 싶지 않다가도 남이 먹는 것을 보면 입맛이 생기는 것이 본능이니 말이다.
“이따 저승식당 영업하면 그때 먹을래요.”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와 함께 홀로 나갔다.
한편 강진은 버너와 라면, 그리고 냄비와 재료들을 옆 테이블 위에 놓았다.
강진이 재료를 가져다주자 유훈이 파와 햄을 썰어서는 기름을 두른 냄비에 넣고는 불을 켰다.
달칵!
불이 켜지고 냄비가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유훈이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파하고 햄 기름 내시는 건가요?”
“네.”
“짬뽕라면처럼 만드시나 보네요.”
“짬뽕라면요?”
“요즘 유행하는 짬뽕라면도 이렇게 파 볶아서 만들잖아요. 여기에 오징어하고 햄도 넣고. 아! 오징어 있는데 드릴까요?”
“오징어는 안 넣습니다.”
그러고는 유훈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도 여자친구가 해 주던 음식입니다.”
“추억의 음식이네요.”
강진은 말을 하며 임지은을 보았다. 자신이 해 주던 라면이라는 말에 임지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눈을 찡그렸다.
“그 라면 싫다고 했으면서.”
임지은이 작게 투덜거리는 사이, 라면을 보던 황민성이 웃었다.
강진과 친해진 이유 중 하나가 라면이기 때문이었다.
분식집을 하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 라면을 많이 먹었다. 그래서 질리고 싫었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것이 라면이기도 했다.
그래서 술 마시고 어머니가 생각이 나면 라면을 주문해서 먹었던 것이다.
옛 기억을 떠올리던 황민성이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저에게도 라면은 추억의 음식입니다.”
황민성의 말에 유훈이 그를 한 번 보고는 젓가락으로 햄과 파를 기름에 볶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볶고 난 뒤 뜨거운 물을 붓고는 라면과 스프를 넣었다.
국물이 끓으며 면발이 맛있게 익어가자 유훈이 웃으며 사람들을 보았다.
“이렇게 먹어도 맛있지만, 여기에 충격적인 재료가 하나 더 들어갑니다. 그럼 조금 이상하지만 맛있는 라면이 됩니다.”
“충격적인 재료?”
황민성이 의아한 듯 보자, 유훈이 강진을 보았다.
“마요네즈 좀 주시겠습니까?”
“마요네즈요? 설마 라면에 마요네즈를 넣으시게요?”
“네.”
강진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다가 힐끗 배용수를 보았다.
‘라면에 마요네즈를 넣는데?’
시선을 마주하던 배용수는 라면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라면에 마요네즈 넣어서 먹는다고 하더라.”
‘진짜?’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 사람들은 그렇게 먹는대. 그리고 어서 가져다줘라. 면 불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마요네즈를 챙길 때, 유훈이 소리쳤다.
“라면 덜 국그릇도 부탁드려요!”
그에 강진이 국그릇과 국자를 챙겨 나왔다. 국그릇을 건네받은 유훈이 라면을 그릇에 덜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옆에 놓인 마요네즈를 보았다.
‘라면에 마요네즈라니…….’
마요네즈를 음식에 넣어서 먹은 적은 있다. 김치전을 찍어 먹기도 했고, 계란말이를 할 때 마요네즈를 넣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다 고체 음식에 쓴 것이지, 이런 국물 요리에 쓴 적은 없다.
‘감이 안 오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라면을 덜어 네 그릇을 만든 유훈이 웃으며 한 그릇에 마요네즈를 짰다.
쭈우욱! 쭈우욱!
‘이렇게 많이 넣는다고?’
라면 위로 마요네즈로 이뤄진 원이 다섯 줄 정도 만들어졌다.
그냥 조금 섞어서 먹는 정도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마요네즈 비빔면 수준이었다.
강진이 놀란 눈을 할 때 유훈이 사람들을 보았다. 원승환과 황민성도 라면에 들어간 마요네즈 양에 놀란 얼굴이었다.
“이건 마요네즈를 많이 넣어야 맛있습니다. 드셔 보실 분?”
사람들은 마요네즈가 들어간 라면을 보며 입맛을 다실 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강진이 여전히 놀란 눈으로 라면을 볼 때, 임지은이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이거 맛있어요.”
임지은의 말에도 강진이 머뭇거리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요리사는 음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 좋은 공부한다 생각하고 먹어 봐.”
강진은 한숨을 쉬고는 마요네즈가 얹어진 라면 그릇을 들고는 자리에 앉았다.
“맛……있어 보이네요.”
강진이 젓가락을 들자 황민성이 대단하다는 듯 그를 보다가 웃었다.
“그래. 맛있어 보인다. 저도 먹겠습니다.”
유훈은 웃으며 마요네즈를 라면에 짜서는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드는 황민성을 보며 원승환이 한숨을 쉬고는 유훈을 보았다. 그에 유훈이 웃으며 마요네즈 라면을 원승환에게 건네고는 자신의 그릇에도 마요네즈를 짠 뒤 자리에 앉았다.
“마요네즈를 막 풀어서 드시지 말고 살짝 풀어서, 거기에 면을 찍어 먹는 느낌으로 드세요. 맛이 좋습니다.”
유훈의 설명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젓가락으로 슬쩍 마요네즈를 풀었다.
적당히 마요네즈를 풀은 강진은 붉은 국물 군데군데 퍼진 마요네즈를 보았다.
‘딱…… 먹기 싫은 모습이네.’
붉은 국물에 퍼진 하얀 점액질을 보며 입맛을 다신 강진이 힐끗 앞을 보았다.
황민성과 원승환이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내가 실험 대상인가?’
자신이 먹는 것을 보고 먹으려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면발을 들어 마요네즈를 묻혔다.
주루룩!
마요네즈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던 강진은 눈을 질끈 감고 면을 입에 넣었다.
후루룩!
입안에 들어오는 면발을 씹던 강진은 눈을 번쩍 떴다.
‘맛있다!’
강진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유훈이 라면을 한 젓가락 먹고는 말했다.
“안 느끼하죠?”
“네. 안 느끼하고 고소하고 맛있네요.”
강진의 말에 뒤따라 라면을 맛본 황민성이 살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다.”
왜 맛있는 건지 의아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 원승환도 같은 반응을 보이자 임지은이 웃었다.
자신이 개발한 라면을 다들 맛있게 먹자 기분이 좋은 것이다.
“맛있다니까요.”
그 순간, 임지은의 웃는 얼굴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더 맛있게 라면을 먹자 그녀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더 진해졌다.
“이따가 내가 만든 레시피 음식 몇 개 해 드릴게요.”
임지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