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81
682화
생각을 정리한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다.
“음식은 좀 하세요?”
“못하지는 않아요.”
“음식 좀 하시나 보네요.”
자신감 있게 말하는 이강혜를 보고 강진이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웃었다.
“제가 지금이야 회사 사장이지만 전에는 시골에 사는 학생이었고, 자취하던 여대생이었고, 자취하던 취업 준비생이었으니까요.”
즉 밥은 자신이 해 먹었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떠세요?”
“뭐가요?”
“오늘 저녁에 아버님 모시고 식사하시는 거요.”
“하지만…… 회장님 바쁘신데…….”
조금 꺼려지는 듯 입맛을 다시는 이강혜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바쁘시기는요. 며느리 다니는 밥집에 와서 식사할 정도면 시간은 있으신 것 같던데…….”
“그건…….”
이강혜가 말을 잇지 못하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연락드려 보세요. 좋아하실 수도 있잖아요. 바쁘다고 하면 다음에 대접할 기회 한번 달라고 여지를 둘 수도 있고요.”
자신의 말에 이강혜가 생각을 하는 듯하자, 강진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사장님은 남편이 아프지만, 어르신은 아들이 아프죠. 사장님하고 어르신이 친하게 지내시면 오혁 씨도 좋아하지 않겠어요?”
“오혁 씨가요?”
“오혁 씨가 어르신에게는 딸 같은 아들이었다면서요?”
“그건…… 그랬어요.”
다른 형제들은 회장님과 거리를 두는데 그만이 유일하게 회장님 옆에서 어깨도 주무르고 농담도 했으니 말이다.
“그럼 사장님이 오혁 씨 닮은 진짜 딸이 되어 보세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이강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저희 가게에서 식사하시겠어요?”
“강진 씨 가게에서요?”
이강혜가 의아한 듯 보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도 저희 가게 마음에 드시는 것도 같고…… 음식 하려면 저희 가게가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할머님하고 오혁 씨도 저희 가게에서 같이 식사하면 좋잖아요.’
설명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보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이따가 연락드릴게요.”
“시간은 어제처럼 저녁 장사 시간 끝나고 난 후에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강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고마워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는 말은 이따 저녁에 분위기 보고…… 해 주세요.”
“알겠어요.”
이강혜가 수레를 잡고 걸음을 옮기려 하자, 강진이 급히 수레를 대신 잡고는 끌고 나갔다.
***
오택문은 자신의 저택에 있는 작은 화원에서 난을 다듬고 있었다.
스윽! 스윽!
난의 잎에 내려앉은 먼지들을 흰 천으로 닦고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있을 때, 직원이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직원은 전에 강진에게 봉투를 내밀었던 그 남자였다.
“L전자 사장 전화입니다.”
핸드폰을 두 손으로 공손히 잡은 채 내미는 직원의 모습에 오택문이 그를 보았다.
“이 사장이?”
평소 전화를 하는 편이 아닌 이강혜가 전화를 했다는 사실에 의아한 듯 핸드폰을 보던 오택문이 눈을 찡그렸다.
“어제 내가 식당에 간 것 때문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남자의 말에 오택문이 손을 내밀었다. 그에 남자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댄 오택문이 입을 열었다.
“나다.”
[회장님…… 잘 지내고 계신지요.]“나는 잘 지내고 있다.”
잠시 말이 없던 이강혜가 뒤늦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저녁에 혹시 시간 괜찮으신지요.]“무슨 일이냐?”
[저……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식사?”
뜻밖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오택문이 입을 열었다.
“저녁에 우리 집으로 오거라.”
그러고 끊으려던 오택문의 귀에 살짝 다급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해 드리고 싶어서요.]오택문은 핸드폰을 다시 귀에 가져다 댔다.
“네가 밥을 하겠다고?”
[생각해 보니 제가 아버님께 음식을 한 번도 해 드린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괜찮으시면…… 아버님 식사 제가 해 드리고 싶습니다.]이강혜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에 잠시 말이 없던 오택문이 말했다.
“그렇게 하마.”
[그럼 저녁 7시 반에 강남에 있는 한끼식당이란 곳에서 뵙겠습니다. 주소는 비서님에게 남기겠습니다.]오택문이 한끼식당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강혜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택문 또한 며느리에게 그곳을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택문이 말을 하지 않은 이상, 이강혜는 모르는 척을 해야 했고 오택문은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오택문의 삶이었다.
직원들에게도 가족에게도 설명보다는 지시를 내리는 그런 삶 말이다.
통화를 마친 오택문은 잠시 핸드폰을 쳐다보다가 남자를 보았다.
“오늘 저녁 약속이 있나?”
“저녁 6시에 총리와 식사가 있습니다.”
“미루게.”
“알겠습니다.”
남자는 더는 묻지 않았다. 총리와의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꽤 중대한 사안이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오택문이었다.
총리는 임기가 있고 남이 임명하는 것이지만, L그룹의 회장은 임기가 없고 누가 임명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를 보던 오택문은 다시 난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피식 웃었다.
“아버님이라…….”
오택문의 중얼거림에 남자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뭔가 지시를 내린 줄 안 것이다. 남자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힐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 사장이 나에게 아버님이라고 하는군.”
오택문의 말에 남자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아버님이시니까요.”
“후!”
작게 웃은 오택문은 잠시 난을 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혁이 녀석을 빼고 나에게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가족은 그 아이가 처음이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더군. 목소리가 이 난처럼 떨렸으니.”
자신의 숨결에 흔들리는 난의 잎을 보던 오택문이 남자를 보았다.
“내가 무서운가?”
“…….”
답을 하지 않는 남자를 보며 오택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습게 보이는 것보다는…… 무서운 것이 낫겠지.”
이 바닥의 생리상 우습게 보이면 바로 잡아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오택문은 평생을 강자로 살았고, 냉철하고 자비 없는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했다.
그리고 그런 삶은 집안에서도 이어졌다.
지금도 그의 아들과 딸들도 오택문을 아버지보다는 회장님으로 여겼고 어려워했다.
그런 자신의 가면 속을 들여다본 아이가 막내 오혁이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왔고, 사람들이 없을 때는 영감님이라 부르며 어깨를 주물러 주던…….
“후우!”
오혁을 생각하니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뱉은 오택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원 한쪽 가장 햇살이 잘 비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작은 풀이 자라고 있었다.
어렸을 때 오혁이 어디선가 뽑아 온 풀이었다. 흔히 잡초라고 하는, 이름 모를 야생풀이었다.
-아빠, 난! 난 뽑아 왔어!
어린 나이에 난과 잡초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잎이 길게 자라 있으니 난이라 생각을 하고 뽑아온 것이었다. 그때 집으로 왔던 잡초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었다.
주는 거라고는 그저 물과 햇살뿐인데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정원 관리사의 손을 타는 난과 꽃보다도 더 무성하게 자라났다.
“이 녀석은 이리 잘 자라는데…….”
오혁을 떠올리며 재차 한숨을 쉰 오택문이 잡초의 잎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스르륵! 스르륵!
자신의 손길에 잡초의 잎이 흔들릴 때마다 오택문의 마음도 흔들렸다.
한편, 잡초를 쓰다듬는 오택문을 보던 할머니 귀신이 미소를 지으며 옆을 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오혁이 있었다. 이강혜가 출근을 하자 어머니에게 온 것이다.
“강혜가 큰 결심을 했구나.”
“그러게요. 우리 강혜 심란하겠다. 아버지하고 둘이 식사하려면 덜덜 떨릴 텐데.”
“너는 회장님 생각은 안 하고 강혜 생각만 하는 거니?”
“아버지가 왜요?”
“회장님도 며느리하고 처음 밥 먹는 건데 얼마나 떨리겠니. 게다가 며느리가 처음으로 밥을 해 준다잖아.”
“아버지 생각이야 어머니가 하시잖아요.”
싱긋 웃은 오혁이 오택문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 식사 잘 했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좋겠구나. 회장님도…… 마음 의지할 곳이 있어야지.”
할머니의 말에 오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면 가장 좋죠. 이런 잡초보다는 사람이 나으니까요.”
오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할머니가 문득 그를 보았다.
“그런데 강혜가 음식은 좀 하니?”
할머니의 말에 오혁이 눈을 찡그렸다.
“아…….”
“왜? 못 해?”
“그게…… 강혜 음식은 좀 과해요.”
“과해?”
“양념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맛이 없어?”
“맛이 없지는 않아요. 아니, 맛있는 편이에요. 근데…… 양념이 좀 과해요. 우리 집 음식하고는 좀 안 맞을 텐데, 아버지가 잘 드실지 모르겠네요.”
“이야기를 좀 해 주지 그랬어. 양념을 좀 줄이라고.”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하는 말에 오혁이 웃었다.
“제 입에는 너무 맛이 있어서요. 하하하! 제 입에는 아주 쩌억 달라붙더라고요.”
오혁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푼수…….”
“하하하!”
그저 기분 좋게 웃는 오혁의 모습에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
조금은 한산한 저녁 장사 시간, 주방에서는 이강혜가 손을 걷어붙이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음식들을 보며 배용수가 작게 혀를 찼다.
“아이쿠! 간장을 조금 적게 넣으셔야 하는데…… 으악! 설탕을 무슨…….”
배용수의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강진아!”
배용수의 급박한 고함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사장님 손이 왜 이리 크냐. 와서 좀 말려.”
‘무슨 소리야?’
강진은 의아한 듯 주방 쪽을 보다가, 홀의 손님들을 한 번 살피고는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왜?’
강진이 입모양으로 묻자, 배용수가 말했다.
“양념이 너무 과하시다.”
“과해?”
“너무 많이 넣으셔. 저렇게 하면 너무 자극적이야.”
마치 무서운 것을 보듯 손을 떨어대는 배용수를 보던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다. 그녀는 잡채를 버무리고 있었는데, 강진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는 작은 접시에 잡채를 올려서는 내밀었다.
“맛 한 번 보세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접시를 받았다.
참기름으로 코팅이 돼 윤기가 좔좔 흐르는 잡채를 보고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들 때, 배용수가 말했다.
“야, 그거 먹지 마.”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슬쩍 몸을 돌려 이강혜의 시선을 피하고는 작게 속삭였다.
“어떻게 안 먹냐?”
“우리 같은 요리사한테는 독이다.”
배용수는 간절한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마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하는 듯이 말이다. 그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잡채 냄새를 한 번 맡고는 입에 넣었다.
스르륵!
입안에 미끄러지듯이 넘어오는 잡채의 면발과 고기, 야채를 천천히 씹었다.
‘응? 맛있는데?’
양념이 조금 강한 것은 맞지만,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강진의 입에는 더 맛있게 느껴졌다.
“맛있는데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결국 그 강을 건너 버렸구나. 그 양념의 강을…….”
‘뭐래?’
강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강혜를 보았다.
“간이 좀 세기는 한데 맛있어요.”
확실히 좀 강하기는 하지만 맛이 있었다. 가정식 느낌보다는 자취생 음식 느낌이랄까?
갖은양념 다 때려 부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저렴한 강진의 입맛에는 딱 알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