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54
855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칼을 들었다. 새파랗게 날이 선 식칼을 지그시 보던 배용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야…… 무서워.”
날이 선 식칼을 보며 웃는 배용수의 모습은 마치 피를 갈구하는 전설의 고향 귀신 같았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식칼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날은 그만 세워도 되는데…… 재밌어.”
“재밌어? 안 귀찮아?”
식칼을 계속 가는 것도 귀찮을 텐데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식칼을 지그시 보다가 웃었다.
“날을 세우면서 내 마음도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야. 마치 도를 닦는 느낌이랄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그리며 식칼을 보다가 숫돌을 집었다.
“압수.”
그러고는 강진이 식칼들도 싱크대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배용수가 급히 말했다.
“왜? 아직 다 못 했어.”
“다 못 하기는. 이 날들 봐라. 시퍼렇게 날이 선 것이 철근도 깍둑썰기하겠다.”
강진이 보라는 듯 칼날을 빛에 이리저리 비추어 보이고는 식칼들을 치웠다.
“도는 무슨 도를 닦는다고. 칼 가는 거 하루에 한 시간만 해.”
그러고는 숫돌을 싱크대 밑에 넣으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식칼 갈다가 승천해 버리려고…….’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말에 속이 덜컥한 것이다.
‘새끼…… 나 두고 갈 생각만 해. 좀…… 천천히 가.’
속으로 투덜거리며 숫돌을 치우는 강진의 모습에 배용수가 피식 웃었다. 강진이 왜 이러나 싶었다가 뒤늦게 눈치를 챈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 더는 못 줄여. 재밌단 말이야.”
웃으며 말을 한 배용수가 싱크대에 올린 식칼들을 들고는 행주로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주방 한쪽에 있던 종이를 집었다.
“봐라.”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두툼한 중식도를 집어 들었다. 운암정 숙수들이 사용하는 칼 세트에는 중식도, 회칼 그리고 일반 식칼까지 여러 종류가 있었다.
배용수는 손목 스냅을 이용해 칼을 돌렸다.
휘리릭! 휘리릭!
드러머가 드럼 스틱을 돌리는 것처럼 칼을 돌리는 묘기를 보인 배용수가 중식도로 종이를 그었다.
치이익!
종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종이가 그대로 갈라져 떨어졌다.
“와…… 엄청 날카롭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중식도의 날을 보았다.
“칼은 관리를 하면 배신을 하지 않는 법이지. 아주 정직해.”
싱긋 웃으며 중식도를 보는 배용수의 모습에 피식 웃은 강진이 급히 식칼들의 물기를 닦았다.
“야! 빨리 정리해. 곧 손님 올 시간이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식칼 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강진아, 고맙다. 나 간다.’ 할 것 같은 불안함을 떨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새끼…… 관리 좀 해야겠는데.’
강진이 속으로 투덜거릴 때 가게 문이 흔들렸다.
띠링! 띠링!
가게 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홀에서 핸드폰을 하던 직원들이 주방으로 들어오자, 강진이 홀로 나와서는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강진이 반기며 맞이하자, 손님들이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들에게 음식을 서빙하던 강진은 문득 문을 보았다.
‘아저씨 안 오시네. 인섭이 오늘 여기 오는 거 알아서 안 오시나?’
이 시간 때면 와서 밥 먹고 일하러 갔었는데 오늘은 오지 않았다. 그에 잠시 있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오늘 아들한테 진지한 이야기를 했으니…….’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손님들 음식을 살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며 최동해와 친구들이 들어왔다.
“저희 왔습니다.”
“잘 왔어. 체력 시험 통과한 거 축하해.”
강진의 말에 친구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걸요. 시험 몇 개 남았어요.”
“잘 될 거야.”
강진의 말에 최창수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원래는 이런 거 정말 합격 다 하고 축하를 받고 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게 1차 축하받고 2차 축하받고…… 이러다가 떨어지면 정말 창피해서 혀 깨물어야 할 것 같아요.”
“혀 깨물지 않게 더 파이팅 해. 자, 앉아.”
강진의 말에 최창수와 친구들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애들은 아직인가요?“
“아직이네.”
“이것들이 빠져서 어딜 형들을 기다리게 해. 전화해 볼까?“
최창수의 말에 최동해가 웃었다.
“그냥 둬. 생일인데 애들하고 같이 있나 보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주문이나 하자.”
최동해가 강진을 보았다.
“형 오늘 뭐가 맛있어요?“
“형 가게야 다 맛있긴 하지만…… 뭐 먹고 싶어?“
강진의 말에 최창수가 웃으며 말했다.
“기름지고 얼큰하고 달달한 거요.”
“오! 오늘은 자극적인 걸로 먹으려나 보네?”
“체력 시험 볼 때 몸 무거울까 봐 식단 조절했거든요. 그래서 엄청 먹고 싶어요.”
“그럼 오늘 메뉴는 얼큰하고 달달한 오징어볶음, 그리고 기름진 거로는…… 역시 삼겹살인가?”
“좋네요. 삼겹살에 매운 오징어볶음 같이 싸 먹으면 맛있겠어요.”
“그럼 그걸로 준비해 줄게. 먹다가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한숨을 쉬었다.
“매운 오징어볶음에 삼겹살이라…… 소주 안주로는 최고인데.”
최동해가 입맛을 쩍쩍 다시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빨리 네 목표 몸무게가 됐으면 좋겠다. 그럼 형이 맛있는 거 해 줄 텐데.”
“제가 목표 달성하면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뭔 줄 아세요?”
“뭔데?”
강진의 물음에 최동해가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말했다.
“라면요.”
“라면?”
“매운 라면 두 개 딱 끓여서 파 송송 썰어 넣고 후루룩! 정말 하고 싶네요.”
침까지 꼴깍 삼키는 최동해를 보며 강진이 물었다.
“계란은 안 넣고?”
“계란은 다음에…… 기본적인 라면에 파만 넣어서 먹고 싶어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목표 달성하면 형이 정말 맛있게 끓여 줄게.”
“알겠습니다.”
강진은 주방으로 가서 배용수에게 말했다.
“매운 오징어볶음 좀 달달하게 해서 하나하고, 삼겹살.”
“삼겹살은 2인분 정도만 굽는다?”
“응.”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을 나가려던 강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 야식용 김밥도 몇 줄 싸.”
“싸 먹게?”
“애들 서울 애들이라 김밥 쌈은 안 먹어 봤을 거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김을 몇 장 꺼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홀로 나와서는 손님들의 반찬을 살폈다.
***
술을 마시는 최창수 일행과 자리를 함께하고 있던 강진은 시계를 보았다.
강진이 시계를 보자 최동해도 시계를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애들이 늦네.”
“그러게.”
“전화를 해 볼까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일이 있나 보지. 놔둬.”
“맞아. 놔둬.”
최창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뒀다가 나중에 혼을 한 번 내자.”
“혼?”
“형들하고 한 약속에 이렇게 늦다니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그러고는 최창수가 최동해를 보았다.
“동생들은 잘 해 준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야. 잘 해 줄 때는 잘 해 주고 실수하고 잘못했으면 꽉! 잡아 줘야지. 잘 해 주기만 하면 이것들이 우습게 여긴다니까.”
“그래?”
“그럼. 잘 해주기만 하면 안 돼.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무서운 형이 될망정 호구 형은 사양한다.”
최창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근과 채찍은 모든 관계에 다 적용이 되는 말이지. 잘 해 주기만 하면 안 돼. 잘 해주면서 내 몫을 챙겨야지.”
그러고는 강진이 소주잔을 들었다.
“한 잔씩 해.”
강진이 잔을 들자 사람들이 잔을 들었다. 물론 최동해는 물을 따른 소주잔을 들었지만 말이다.
가볍게 잔을 맞부딪힌 사람들이 소주와 물을 마셨다.
강진은 소주를 살짝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강진은 지금도 배용수의 감시하에 술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가게 문이 열렸다.
띠링! 띠링!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강진은 정인섭과 최강찬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왔어?”
강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인섭과 최강찬이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최강찬이 작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자, 최창수가 말했다.
“왜 이리 늦었어?”
“일이 좀 있어서요.”
최강찬의 말에 최창수가 그를 보다가 정인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심란한 얼굴인 정인섭의 모습에 최창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가리켰다.
“앉아.”
두 사람이 의자를 가져다가 앉자, 최창수가 잔에 소주를 따랐다.
“일이 있었다니까 그런가 하겠는데, 그래도 다음에는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은 해.”
“죄송합니다.”
정인섭이 고개를 숙이자, 최창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어.”
한 시간 반이나 늦게 온 것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혼은 짧게 한 번만 내는 것이 좋다.
한 번은 혼이고 두 번 세 번은 잔소리니 말이다. 그리고 한 번 해서 알아듣는 놈은 두 번 세 번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두 번 세 번 말을 해야 할 놈은 열 번을 해도 못 알아듣는 법이었다.
“자! 그럼 이제 인섭이 생일을 축하하자. 인섭아, 생일 축하한다.”
그러고는 최창수가 잔을 들었다.
“생일 축하하고 진짜 성인 된 거 축하한다.”
최창수의 말에 정인섭이 그와 사람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정인섭이 소주를 마시자,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고 있어.”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최동해가 애들에게 소주를 따라주었다.
“생일 축하한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최고진과 함께 있는 홍진주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들어온 홍진주를 최고진이 주방으로 데리고 들어온 것이다.
“심란하겠네. 그래도 자네가 엄마인 걸 알았지 않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인 듯 최고진이 홍진주를 위로하고 있었다.
최고진의 말에 홍진주가 한숨을 쉬며 홀을 보았다.
“인섭이가…… 많이 당황스러워해요.”
“그렇겠죠. 이때까지 알던 것이 변했으니까요.”
강진의 말에 홍진주가 그를 보았다.
“후우!”
한숨을 쉬는 홍진주의 모습에 강진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마음이 좀 어떠세요?”
“제 마음요?”
“인섭이도 마음이 복잡하겠지만, 인섭 어머니도 마음이 복잡하실 것 같은데.”
강진의 말에 홍진주가 잠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으면서도 미안하고, 미안하면서도…… 하아! 그냥 복잡해요.”
“많이 복잡하시겠지만 일단 식사라도 하셔요.”
말을 하며 강진이 한쪽에 있는 국그릇을 열었다. 그 안에는 뽀얀 국물의 미역국이 담겨 있었다.
“미역국?”
“아침에 미역국 먹었겠지만, 저도 한 그릇 주려고 끓였어요. 그리고…….”
강진이 홍진주를 보았다.
“생일 당사자도 먹어야 하지만 인섭 어머니도 드셔야죠. 사실 당사자보다는 어머니가 더 드셔야죠. 자식 낳느라 고생한 건 어머니니까요.”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홍진주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생각을 해 주니 고맙네요.”
생일은 그날 태어난 아이를 축하해 주는 날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 생일날 아이를 낳기 위해 생살이 찢기는 고통을 이겨낸 어머니를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태어난 날이니 축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식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애를 낳을 때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는 것이다.
“엄마가 이렇게 나를 힘들게 낳았구나.”
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