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55
856화
홍진주는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리고 어떤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았는지 알아주는 강진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였다. 자신이 아이를 낳은 고통보다, 아이가 태어난 것이 더 기쁘고 행복한 엄마였다.
홍진주는 슬며시 싱크대에 걸려 있는 고무장갑을 보았다.
“용수 씨 저거 끼고 음식을 하던데.”
“전에 드신 저승 음식처럼 저승에서 가지고 온 물건이거든요. 그래서 귀신이 만질 수 있어요.”
강진이 고무장갑을 들어 내밀자, 홍진주가 그것을 받아 쥐었다. 그러고는 슬며시 말했다.
“저 미역국…… 고마운데…… 제가 다시 끓여도 될까요?”
홍진주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섭이 끓여 주려고요?”
“제 손으로 인섭이 미역국 한 번 끓여 준 적이 없어요.”
“알겠습니다.”
강진이 미역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스타일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스타일요?”
“소고기? 조개? 뭐 넣고 하시고 싶으세요?”
강진의 말에 홍진주가 물었다.
“혹시 닭고기 있나요?”
“닭고기 미역국 하시려고요?”
“저희 어머니가 닭 미역국 고소한 맛을 좋아해서요. 저희 집은 닭 미역국으로 먹어요.”
홍진주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냉장고에서 닭을 한 마리 꺼냈다.
그 사이 홍진주는 고무장갑을 끼고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해 보며 웃었다.
“그럼…….”
“필요한 재료는 용수가 알려 줄 거예요.”
강진의 말에 홍진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닭을 물로 씻으며 한쪽에 있는 식칼들을 보았다. 그 모습에 배용수가 자신이 길을 들인 식칼 중 하나를 내밀었다.
“이걸로 하세요.”
“감사합니다.”
“칼날 날카로우니…… 아닙니다.”
말을 하던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칼날이 날카로우니 조심하라고 말하려 했는데…… 생각을 해 보니 다칠 일이 없는 것이다.
검수림 식칼을 쓰다가 베이면 귀신도 아프고 다칠 수 있지만, 이건 그냥 식칼이니 말이다.
홍진주가 닭 엉덩이와 기름을 제거하는 것을 보던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음식을 잘 배우셨네요.”
“그래요?”
“닭을 미역국 할 때는 냄새나는 부위들 기름을 잘 제거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잡냄새가 날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돼지 지방도 질 안 좋은 건 냄새가 나죠.”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작은 정성이 좋은 음식을 만들어 내는 거죠.”
배용수가 홍진주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던 강진이 작게 말했다.
“필요한 재료들 챙겨 드려.”
“알았어.”
배용수에게 말을 하고 홀로 나온 강진은 놀란 눈을 한 채 탁자에 다가갔다.
“나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뭘 이리 달렸어?”
강진이 들어가기 전에 비해 소주병이 두 병 더 늘어난 것이다.
“달리기는요. 다섯이 한 잔만 받아도 한 병이잖아요.”
최창수가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하자, 최동해가 당근을 씹으며 말했다.
“거기에 내가 왜 들어가. 나는 안 마셨는데.”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당근만 씹고 있는 것이 불만인 듯 작게 투덜거리는 최동해의 모습에 최창수가 웃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러고는 최창수가 강진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가 눈짓으로 정인섭을 가리키는 것에 강진이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창수가 눈치는 있네.’
정인섭은 살짝 멍한 얼굴로 안주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들 했어?”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했어요.”
말을 하며 최동해가 슬쩍 정인섭을 보았다. 그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다들 느끼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잠시 있다가 소주병을 들었다.
“인섭이 술 자주 먹어?”
“대학 와서 좀 먹었습니다.”
“몇 번이나 먹었는데?”
“한…….”
정인섭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한 스무 번 정도요.”
정인섭의 말에 최동해가 그를 보았다.
“그걸 세고 있어?”
“대학 와서 처음 마셨고, 모임 할 때나 마시니 세기 어렵지 않죠.”
정인섭의 말에 강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너는 몇 번이나 먹었어?”
“그걸 어떻게 세요.”
최동해의 대답을 들은 강진이 최창수와 친구를 보자 그 둘도 고개를 저었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 있던 소주병을 정인섭에게 내밀었다.
정인섭이 소주잔을 들자 강진이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형이 심리학과 나왔거든.”
“심리학과요? 요리 배우신 것이 아니고요?”
“형 요리는 여기 시작하면서 배웠어. 그전에는 라면하고 간단한 안줏거리나 만들었어.”
“안줏거리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바쁘면 육포나 반조리된 식품 정도 다뤘거든.”
웃으며 강진이 잔을 들자 정인섭이 가볍게 잔을 맞부딪히고는 술을 마셨다.
정인섭이 잔을 비우자 재차 소주를 따라 준 강진이 말했다.
“형이 심리학과를 나오지 않았어도 지금 인섭이 얼굴에 ‘나 지금 심란해요.’라고 쓰여 있는 건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인상 쓰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강진이 정인섭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일이 다 생겨. 그럴 때 우리는 심란하다고 하지.”
강진은 자신의 손에 들린 소주잔을 보며 말을 이었다.
“술을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기는 한데, 머리 아프고 복잡할 때는 술만 한 것도 없더라. 이런저런 일들이 생각이 나지 않거든.”
“머리 복잡할 때요?”
“지금 너처럼 말이야.”
강진은 다시 정인섭을 보며 말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일이 있다는 건 나나 여기 형들도 알 것 같아. 네 표정이 말을 하니까. 이럴 때는 술만 한 것이 없어. 말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냥 많이 마셔. 많이 취했다 싶으면 2층에서 자고 가도 돼.”
그러고는 강진이 사람들을 보았다.
“너희도 오늘 술 마시다가 피곤하면 2층 가서 자.”
“그래도 돼요?”
“아! 대신 10시 반쯤 되면 2층으로 올라가서 마저 마셔. 형 오늘도 11시에 단체 예약 있거든.”
“알겠습니다.”
강진은 다시 정인섭을 보았다.
“자고 가.”
“고……맙습니다.”
“형이 너 본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동생 같아서 그래.”
그러고는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인섭이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아침에 생일상 거하게 받았을 테지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지금은…… 형 말대로 술이요.”
정인섭이 잔을 들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던 강진이 손뼉을 쳤다.
“오케이! 그럼 형이 오늘 정말 좋은 거 만들어 주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진은 냉장고에서 맥주와 소주를 몇 병 꺼내 가지고 왔다.
“형이 이건 단골 분들한테만 해 주는 거야.”
웃으며 맥주를 딴 강진이 술을 잔에 조금 따르고는 그 위에 소주병을 꽂았다.
꿀렁! 꿀렁!
그러자 소주가 쏟아지며 맥주와 섞이기 시작했다. 그에 최동해와 친구들이 대단하다는 듯 그것을 보았다.
그 사이, 강진은 정인섭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살짝 멍한 얼굴이었다.
그런 정인섭을 말없이 보던 강진이 폭탄주를 잔에 가져다 댔다.
촤아악! 촤아악!
폭탄주가 잔에 화려하게 쏟아지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그것을 보았다.
“자, 한 잔씩들 해.”
강진이 폭탄주를 주자,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 마시고는 웃었다.
“정말 맛이 좋네요.”
사람들의 말에 미소로 답한 강진은 폭탄주를 더 제조해서 나눠주었다.
폭탄주로 빠르게 달리는 친구들 옆에서 최동해는 당근을 씹고 있었다.
아드득! 아드득!
단단한 당근을 씹던 최동해는 폭탄주를 들이켜는 최강찬을 보며 물었다.
“시원해?”
“뭐가요?”
“폭탄주.”
“아! 엄청 시원해요. 그리고 위에 맥주 거품이 풍부해서 무척 부드럽고.”
아드득! 아드득!
자신의 말을 들으며 당근을 씹는 최동해의 모습에 최강찬이 물었다.
“형 맛있어요?”
최강찬의 말에 최동해가 멍하니 있다가 그에게 당근을 내밀었다.
“자.”
그에 최강찬이 당근을 받아서 입에 넣고 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아삭아삭하고 식감 좋네요.”
“그래?”
“네.”
최강찬의 말에 최동해가 입맛을 다시며 씹던 당근을 삼키고는 말했다.
“당근이 맛있으면 다이어트하기는 쉽겠다.”
“다이어트요? 저 안 뚱뚱한데?”
“나중에 살찌면 당근으로 다이어트해.”
작게 중얼거린 최동해가 당근을 들었다.
“당근이…… 씹을 때는 맛있는데 삼킬 때는 안 좋아.”
“왜요?”
“단맛이 빠지고 입에 건더기만 남거든. 그 야채 주스 만들 때 남은 찌꺼기들 삼키는 그런 느낌이야.”
입안에 퍽퍽하게 남아 있는 당근을 꿀꺽 삼킨 최동해가 한숨을 쉬고는 야채가 담겨 있는 그릇을 보다가 오이를 집었다.
그것을 천천히 씹는 최동해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그래.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살기에는 세상에 재밌고 좋은 일이 너무 많지. 파이팅.’
살이 쪘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이 찐 것 때문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었다.
취업을 할 때 면접에서 감점이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 자신감 있게 서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최동해는 더 많은 일을 해 보려고 살을 뺀 것이다. 맛있는 것만 먹고 살기에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인생은 기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최동해를 보던 강진이 몸을 일으켰다.
‘다 된 건가?’
주방에서 미역국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미역국을 보고 있는 홍진주와 배용수를 볼 수 있었다.
강진이 들어오자 홍진주가 잘 됐다는 듯 말했다.
“잘 들어왔어요. 이거 간 좀 봐 주세요.”
“간이야 잘 맞겠죠.”
“그래도요. 제가 간을 보려고 했는데…… 용수 씨가 간을 못 보게 하네요.”
홍진주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귀신 입에는 소주도 밍밍하게 느껴져요. 그런 입맛으로 간을 보면 사람 못 먹어요.”
배용수의 말에 홍진주가 아쉽다는 듯 미역국을 보았다.
“정말 맛있게 하고 싶은데.”
홍진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아들 먹으라고 한 음식이에요. 맛이 없을 수 없죠.”
“그럼 강진 씨가 간을 좀 보고 양념 좀 더 해 주세요.”
홍진주의 부탁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아들에게 해 주는 미역국인데 제가 감히 손댈 수 있나요. 맛있게 됐을 겁니다.”
강진의 말에 홍진주가 끓어오르는 닭 미역국을 보았다. 닭고기 특유의 뽀얀 국물과 살짝 노란빛이 도는 기름기를 보며 홍진주가 숨을 골랐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작게 중얼거린 홍진주가 국그릇에 미역국을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역국을 뜬 홍진주는 밥그릇에 밥을 담았다.
“밥도 새로 하셨어.”
배용수의 속삭임에 강진이 쟁반을 보았다. 쟁반에는 미역국과 갓 지은 밥, 그리고 계란 프라이와 여러 반찬이 놓여 있었다.
‘우리 반찬이 아니네?’
계란 프라이와 콩나물무침, 각종 나물 반찬, 그리고 돼지고기볶음과 멸치볶음 등 메뉴는 익숙했지만 만든 스타일이 강진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계란 프라이만 해도 강진이 만드는 것과 달리 겉이 살짝 바삭바삭했다.
“반찬도 새로 하셨어?”
“맞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홍진주가 말했다.
“다 됐어요.”
홍진주의 말에 강진이 쟁반을 들고는 홀로 나왔다.
“그건 뭐예요?”
최동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인섭아.”
강진의 부름에 정인섭이 그를 보았다.
“이쪽으로 와.”
“네?”
“이리 와. 생일인데 미역국 먹자.”
강진의 말에 정인섭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미역국을 멍하니 보았다.
‘아…… 나 생일이지.’
아침에도 미역국을 먹었고, 이 자리에서도 생일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어쩐지…… 지금 생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