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4
94화
왕강신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는 왕강준을 쳐다보던 강진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왕강신을 보았다. 말없이 가만히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건…….”
뭐라 위로의 말을 하려던 강진이 입을 다물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안 죽었다 하기에는 형이 동생을 버린 것이 되고, 죽었다 하기에는……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어떠한 것도 위로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옆에는 왕강준이 귀신이 되어 서 있다. 답까지 아는 상황에서야 더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다 멈추는 강진을 잠시 보던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원망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형이 나를 버리고 간 거면 좋겠다 생각을 하네.”
“버리고 간 거면 좋겠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형은 죽었을 것 아닌가? 집에 돌아오지 못한 그날 말이네.”
잠시 강진을 보던 왕강신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형을 원망하는 동생을 두고 말이네.”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미인지 아는 것이다.
죽었기보다는 어디 다른 하늘에서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강진을 보던 왕강신이 국수를 보다가 한 젓가락 크게 들어 먹었다.
후루룩! 후루룩!
국수를 먹은 왕강신이 술을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겠어.”
강진은 말을 하지 않고 왕강신을 보았다. 대답을 원하는 말이 아니었다.
왕강신이 국수를 보며 말했다.
“계란을 사들고 오는 형은 늘 행복했어. 계란을 사 가지고 들어오는 날에는 형은 환하게 웃으며 나한테 계란을 들어 보였지. 이것 보라고 말이야.”
잠시 말을 멈춘 왕강신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늘 나에게 마지막 한 젓가락을 양보했어. 그럼 난 너무 좋았지. 그때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때라 마지막 한 젓가락이 더 맛이 있었거든.”
“그랬군요.”
“형은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어. 나한테 더 많이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면서 말이야.”
잠시 말을 멈춘 왕강신이 입을 열었다.
“그런 형이 나를 두고…….”
다시 입을 멈춘 왕강신이 한숨을 쉬었다.
“가지는 않았겠지.”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힐끗 왕강준을 보았다. 왕강준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자신을 원망하는 동생을 계속 지켜봤을 테니…….’
왕강준은 수호령이니 왕강신의 곁을 늘 지켰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원망하는 동생을 계속 봤을 것이다.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네 옆에 늘 있었다고…… 하지만 전할 수 없는 말이었다.
‘형도 힘들었겠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입을 열었다.
“형님은 어르신을 두고 가지 않으셨을 겁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이야. 올 수가 없는…….”
왕강신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올 수 없는 이유…… 죽음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찾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형이 죽었다면 자신은 죽은 형을 원망하며 이때까지 살아온 것이다.
“아버님.”
아들의 부름에 왕강신이 한숨을 쉬고는 잔을 두 손으로 공손히 들고는 국수를 향해 내밀었다.
술잔을 두 손으로 공손히 왕강신이 입을 열었다.
“따거. 이제는 형님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님이 만들어 주던 이 국수를 먹으니 형님의 웃음소리가 떠오릅니다. 나에게 많이 먹으라고, 더 먹으라고 웃던 형님의 웃음소리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말과 함께 왕강신이 술을 마시자, 아들이 공손히 술을 따라주었다.
다시 잔을 공손하게 들어 올린 왕강신이 입을 열려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런 왕강신의 모습에 왕강준이 잔을 들어 마주했다.
“훌륭하게 잘 커 줘서 고맙다.”
왕강준의 말을 듣지 못하는 왕강신은 잔을 든 채 국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보고 싶습니다.”
말과 함께 왕강신이 단숨에 술을 마셨다.
꿀꺽!
왕강신의 모습에 왕강준 역시 술을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왕강준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네가 커서 같이 호탕하게 술을 먹는 것이 꿈이었는데…… 죽어서 이렇게 이루는구나. 하하하!”
큰 소리로 웃은 왕강준의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그의 앞에 놓인 잔을 들어서는 그대로 입에 털었다.
꿀꺽!
“크윽!”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강진이 아들을 보았다.
“제가 따라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아들이 술병을 건네자 강진이 왕강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고는 왕강준의 앞에 놓았다.
“제가 어르신의 형님을 알지는 못하지만…… 형님께는 아마 꿈이 있었을 겁니다.”
“꿈?”
“중국분들은 호탕하게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시죠.”
“그렇네.”
“아마 형님께서는 어르신이 자라 자신과 함께 술을 호탕하게 마시는 것을 원했을 겁니다.”
강진은 왕강준이 방금 전에 말을 한 꿈…… 동생과 호탕하게 술을 마시는 것을 이뤄 주고 싶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은 내가 크면 날이 새도록 술을 먹자고 했었지.”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국수 그릇을 가운데에 놓았다.
“그럼 호탕하게 드시죠.”
말과 함께 강진이 빈 잔 다섯 개를 왕강준의 앞에 놓고는 잔에 술을 채웠다.
“이건 형님 몫입니다.”
그러고는 왕강신의 앞에도 다섯 개의 잔을 놓고는 술을 따랐다.
“비록 그분은 안 계시지만, 어르신이 기억하는 형님의 음식이 있습니다. 형님의 몸은 없더라고 이 정도면 형님의 혼이라도 와서 한 잔 드시고 가실 것입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미소를 지으며 첫 잔을 들었다.
스윽!
왕강신이 잔을 드는 것에 왕강준 역시 잔을 들었다. 그리고 귀신과 사람이 서로 잔을 마주하다가 동시에 술을 마셨다.
딱히 신호를 준 것도 아닌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술잔을 비운 것이다.
꿀꺽!
꿀꺽!
한 모금에 술을 목 안으로 넘긴 사람과 귀신은 멈추지 않았다. 서로를 보며 두 번째, 세 번째…… 잔을 연거푸 비워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잔이 되자 왕강신이 잠시 국수를 보다가 잔을 들었다.
잔을 든 채 왕강신이 정면의 허공을 보았다. 그리고 그 허공에는 보이지 않는 왕강준이 있었다.
“따거…… 훗날 다시 만나는 날, 이번에는 제가 황제면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왕강신의 말에 왕강준이 입을 열었다.
“소보야…… 천천히 조금 더 나중에 와. 형이 천천히 더 기다릴 테니까.”
말을 하며 왕강준이 잔을 들어서는 그대로 술을 마셨다.
그리고…….
화아악!
빛과 함께 왕강준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술 한 잔이 그리 소중하셨던 것입니까? 아니면 동생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소중하셨던 것입니까?’
사라진 왕강준의 빈자리를 보던 강진의 눈에 허공에서 떨어지는 종이가 보였다.
‘이걸 바란 것은 아닌데…….’
하지만 생각과는 반대로 강진의 눈은 이미 웃고 있었다. 그러고는 슬쩍 종이를 잡아서는 밑으로 숨겼다.
슬며시 시선을 내려 종이를 보았다. 그리고 강진의 얼굴에는 곧 의아함이 어렸다.
종이는 수표가 아니었다.
떨어진 종이에는 한문으로 글이 적혀 있었다. 즉 강진이 생각을 한 JS 금융의 수표가 아니었다.
게다가 한문으로 글이 적혀 있어 무슨 내용인지도 읽기도 어려웠다.
다만 읽을 수 있는 한자로 추리해 보니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그에 조금 실망을 한 강진이 종이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돈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안쓰러운 사람이 승천한 것으로 만족해.’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이 다시 종이를 보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그쪽하고 이쪽하고는 시간의 흐름이 다른가?’
방금 왕강준이 사라지고 바로 종이가 떨어졌다. 그런데 종이에는 꽤 긴 내용이 쓰여 있었다.
저승에 가서 바로 편지를 썼다고 해도, 이렇게 바로 편지가 올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종이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강진이 왕강신을 보았다. 왕강신은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왕강신이 슬쩍 눈을 깜박이다가 말했다.
“방금…… 혹시 나한테 뭐라고 했나?”
“네?”
의아한 듯 보는 강진을 보며 왕강신이 말했다.
“방금 나보고 소보라고…… 천천히 오라고 그랬는데?”
‘소보? 방금 왕강준이 사라지면서 한 말인데?’
왕강준이 가면서 왕강신에게 소보라고 했었다. 하지만 아는 척을 할 수 없기에 강진이 말했다.
“소보요?”
“내가 어렸을 때 아명(兒名)이 소보였어.”
말을 하던 왕강신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분명…… 소보야…… 천천히 와라. 형의 목소리였는데…….”
자신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중얼거리는 왕강신의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화장지를 뽑아 아들에게 주고는 주방에서 나왔다.
주방에서 나온 강진은 자신에게 손짓하는 윤수홍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글쎄요.”
말을 하며 강진이 왕강신 쪽을 보았다. 왕강신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방금…… 형님이 왔다 가셨나 보다.”
“큰아버지께서요?”
“그래…… 방금 분명 나한테 말을 하고 갔어.”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지셨나 보네요.”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형이 한 이야기를 들은 건가?’
어떻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왕강신은 왕강준이 마지막에 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적이라는 건가?’
귀신이 마지막으로 승천하면서 남긴 이야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도 있는 세상이고, 귀신을 보는 자신도 있다. 그럼 귀신이 된 형이 승천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간절한 마음이 동생에게 전해졌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믿지 못할 ‘귀신’ 같은 일들도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이걸 꼭 숨겨야 하나?’
자신이 귀신들을 상대로 하는 저승식당 주인이라는 것은 좀 파격적인 이야기이니 숨긴다 쳐도…… 귀신을 보고 대화를 한다는 것을 굳이 숨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드라마에서도 처녀귀신과 대화를 하는 잘생긴 부잣집 사장님이나 요리사 이야기도 많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신수호 변호사한테 물어봐야겠다.’
귀신을 본다는 것을 굳이 숨겨야 하는지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왕강신이 화장실로 갔다가 나왔다. 세수를 했는지 물기를 머금은 얼굴로 왕강신이 웃으며 말했다.
“못난 모습을 보였네.”
“아닙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윤수홍을 보았다.
“오늘 윤 형제가 좋은 가게에 데려와 줬네. 고맙네.”
“마음에 드셨다니 제 마음이 오히려 좋습니다.”
윤수홍의 말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진을 보았다.
“자네 덕에…… 형님에 대한 추억도 찾고 좋은 음식도 먹었네. 정말 고맙네.”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왕강신을 보며 강진도 웃으며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고맙게 생각해 주시니 저야말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가?”
강진의 말에 잠시 그를 보던 왕강신이 가게를 둘러보았다.
“좋은 가게야.”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왕강신이 미소를 짓다가 생각이 났다는 듯 지갑을 꺼냈다.
“아…… 용돈은 더 안 주셔도 됩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웃었다.
“돈을 줄 생각은 없네.”
그러고는 왕강신이 지갑에서 꺼낸 것은 명함이었다.
“언제 중국에 올 일이 있으면 전화하게.”
“감사합니다.”
강진이 명함을 받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