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94
995화
임정숙 부모님이 자리에 앉자, 강진이 시원한 매실차를 가지고 나왔다.
“날씨가 무척 덥죠?”
강진이 매실차를 따르자, 임형근이 웃으며 매실차를 단숨에 마셨다.
“그러게. 날씨가 많이 더워. 그래도 가게 안에 들어오니 시원하고 좋네.”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진세영을 보았다.
“서울 구경은 좀 하셨어요?”
“남산 구경하고 왔어.”
“남산은 저녁에 가야 좋다던데.”
“그래?”
“야경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말하는 거 들으니 안 가 본 것 같네?”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서울 살면서 남산은 한 번도 못 가 봤네요.”
“왜, 서울 사는데 한 번 가 보지. 가니 볼 만하던데.”
“다음에 같이 갈 사람 생기면 가야죠, 뭐. 배고프실 텐데 식사부터 하시죠.”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가게 내부를 슬쩍 보다가 말했다.
“음식 나오기 전에 가게를 좀 둘러봐도 되나?”
“지금은 이렇게 눈으로 보시고, 손님들 가고 난 후에 보시는 것이 어떠세요?”
“왜?”
“손님들 있는데 구경한다고 가게 돌아다니면 방해되잖아.”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말씀대로예요. 다른 손님들이 편하게 식사하셔야 하니까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며시 말했다.
“우리 정숙이가 여기서는 뭘 했어?”
“평소에는 서빙을 하고, 주방 바쁠 때는 설거지도 하고 그랬습니다.”
임형근이 가게를 둘러보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식사 어떻게 챙겨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말했다.
“전에 점심은 바쁜데 저녁은 안 바쁘다고 한 것 같은데?”
“직장인 손님들 위주라서요. 점심에는 정말 바쁘고, 저녁에는 비교적 한산해요. 한 여섯 시 반쯤 되면 그날 저녁 장사는 끝이라고 보시면 돼요.”
“밥집이면 그 시간이 한창 바쁠 시간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사람들이 논현에 밥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서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우리 나중에 손님들 빠지면 그때 먹을게.”
“배 안 고프세요?”
“남산에서 이것저것 먹어서 괜찮아. 좀 있어도 괜찮지?”
“그럼요. 편하게 계세요.”
강진은 식탁에 놓인 꽃 피어나다 책을 들어 내밀었다.
“심심하시면 이거라도 좀 보고 계세요.”
“이건 뭔데?”
“제가 아는 형이 출판한 책이에요. 아! 그리고 이걸로 드라마도 제작 중이에요.”
“그래?”
진세영이 책을 받아 펼치는 것을 보던 강진이 책 한 권을 더 가져와서는 임형근에게 내밀었다.
“재밌으니 한 번 봐 보세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책을 받으며 물었다.
“꽃 피어나다. 제목이 감성적이네.”
“제목은 감성적인데, 임진왜란 때 의병을 하셨던 양반가 김소희 아가씨의 일대기예요.”
“양반가 아가씨? 아가씨가 의병이야?”
“실존 인물이신 분이니 한 번 봐 보세요.”
그 말을 끝으로 강진은 몸을 돌려 평소에 서 있던 곳에 가서 섰다. 그 모습에 임형근이 책을 보다가 책장을 펼쳤다.
가게 구경도, 식사도 잠시 미뤄둔 터라 지금은 할 것 없으니 책을 보려는 것이다.
임정숙 부모님은 앞에 다과를 놓고 매실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평소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할 일도 없고 강진이 추천해 주는 책이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이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을 보던 강진이 홀을 정리하고는 시계를 보았다.
7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저녁 손님들이 조금 더 와서 시간이 늦어진 것이다.
‘배고프시겠네.’
간단한 다과를 내오기는 했지만, 다과는 다과고 밥은 밥이니 말이다.
강진은 서둘러 그릇들을 주방으로 옮기고는 다시 홀로 나와 임형근에게 다가갔다.
“오래 기다리셨죠.”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보던 책에서 눈을 떼고는 말했다.
“책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그러고는 임형근이 진세영을 보았다.
“당신은 어땠어?”
“재밌네요. 그리고…… 실존 인물이라고?”
“네.”
“그렇구나.”
잠시 책을 보던 그녀는 책장 한쪽에 있는 꽃 그림을 보았다.
“꽃이 피면 아름답지만 곧 시들어야 할 때가 오는데…… 그걸 표현한 것 같네.”
그림을 보며 진세영이 한숨을 쉬었다.
“꽃이 많이 피었어. 그래서 아쉽고 슬프네.”
“저도 그 책을 보면서 꽃이 피는 것이 참 슬프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선시대 의병 중에 이런 분이 있을 줄은 생각을 못 했어. 이런 분이 이렇게 무명이라니…….”
진세영의 말에 임형근이 말했다.
“조선시대는 남자의 시대니까. 여자가 앞에 나서서 싸웠다는 것이 알려지면 창피하고 부끄러웠겠지.”
두 사람의 대화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결론은 책이 마음에 드셨다는 거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말을 이었다.
“책은 제가 두 분에게 선물로 드릴게요.”
“그래도 돼?”
“보시는 대로 저희 가게에 책이 많아요.”
식탁마다 놓여 있는 책을 가리킨 강진이 말했다.
“어떻게,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아니면 가게 구경부터 하시겠어요?”
“가게 구경부터 좀 하고 싶어. 우리 딸이 여기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알고 싶어.”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정숙이는 손님이 없으면 늘 이 자리에 앉아서 쉬고는 했어요.”
강진이 한쪽에 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살짝 구석진 곳의 벽 옆자리였다.
“정숙이는 여기에 이렇게 앉아서 TV를 봤어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딸이 좋아했다던 자리를 보며 말했다.
“정숙이가 성격이 좀 내성적이라 구석진 자리를 좋아했어. 사람들 시선 덜 받는 곳으로.”
임형근의 말에 임정숙이 아빠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저 자리가 좋아. 등을 기댈 수도 있고…… 얼마나 좋은데.”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의자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댔다.
“이렇게 등을 기대고 TV를 보고, 간식을 먹으면서 다른 직원들하고 드라마 이야기를 했어요.”
“드라마?”
“전에 이야기를 했었죠. 혜미 씨, 선영 씨하고 친하게 지냈다고요.”
“응.”
“그분들도 드라마를 좋아해서 같이 보고 그랬어요. 아! 주방장 하던 용수라는 친구도 같이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슬며시 주방을 보았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왜 안 나오셔? 주방에 일이 많나?”
진세영이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에 강진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분들은 이제 다른 일 하고 계세요.”
“다른 일?”
“그분들도 각자 자기 일들이 있어서 정숙이처럼 아르바이트를 하셨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안 계세요.”
“아…….”
진세영이 아쉽다는 듯 주방을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주방에 한 분은 있는 것 같은데?”
강진이 홀에서 서빙을 하는 동안 주방에서는 음식을 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으니 말이다.
“그게…….”
강진이 주방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용수는 아직도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요. 저희 가게 주방장이에요.”
“그래? 그럼 인사라도…….”
진세영이 일어나려 하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용수는 사람을 잘 안 만납니다.”
임형근이 의아한 듯 보았다.
“사람을 안 만나?”
“그게 좀 사정이 있습니다.”
전에는 농담조로 숫기가 없어서라고 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을 할 수 없기에 강진은 그저 사정이라고만 말을 했다.
실제로 귀신이라는 사정이 있는 것도 맞고 말이다.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뭔가 말을 할 듯 입을 열자, 진세영이 살며시 그의 손을 잡았다.
“응?”
임형근이 보자, 진세영이 강진을 보았다.
“사정이 많이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네.”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뿐입니다.”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못 할 사정이라는 것이 뭔지 알 나이는 됐으니 말이다.
말 못 할 사정이라는데 그걸 계속 물어보는 게 실례라는 것 또한 말이다.
진세영은 주방 쪽을 보았다.
“용수 씨, 저 정숙이 엄마예요.”
“…….”
답이 없는 주방을 보던 진세영이 의아한 듯 자신을 보자, 강진이 말했다.
“듣고는 있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 주방을 보았다.
‘몸이 불편하신가 보구나.’
사람이 말을 하면 답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답을 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정숙이하고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좀 괜찮아지면 우리 얼굴 한 번 봐요. 정숙이하고 친하게 지낸 분하고 인사는 하고 싶네요.”
진세영의 말에 순간 주방에서 작은 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깡! 깡!
그 소리에 진세영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떠올랐다.
‘몸이 불편하신가 보구나.’
옆에 있던 임형근도 비슷한 것을 느꼈는지 주방을 보다가 말했다.
“다음에 같이 한잔합시다.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깡!
다시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임형근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 임형근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음식 정말 잘하고 열심히 사는 친구예요.”
“그런 것 같아. 전에 해 온 음식도 저 친구가 한 건가?”
“저하고 같이 한 거죠.”
웃으며 강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층 보여 드릴게요.”
“이 층?”
“주방은 이따가 용수 가면 보여 드리고요. 일단 이 층부터 보여드릴게요.”
강진이 2층으로 가는 계단을 가리키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강진은 그 둘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이 층은 제가 살고 있습니다.”
“자네가?”
“일 층은 식당이고 이 층은 가정집이거든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눈을 찡그렸다.
“설마 우리 딸을 자네 사는 곳에?”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가끔은 눕거나 편하게 있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설마 우리 정숙이를?”
딸을 위에 눕혔냐고 묻는 임형근을 보며 강진이 급히 손을 저었다.
“생각하시는 그런 거 전혀 아닙니다.”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눈을 찡그리며 임형근을 툭 쳤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정숙이가 왜 올라가느냐는 거지.”
의심스럽다는 듯 보는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설명했다.
“식당에서는 앉아서밖에 못 쉬니 편하게 쉬고 싶을 때는 여자 직원들끼리 이 층에 올라가서 쉬고 내려왔어요.”
“여자 직원들끼리? 확실한 건가?”
“그럼요. 정숙이하고 단둘이 이 층에 있었던 적 없어요.”
강진이 웃으며 2층으로 두 사람을 데리고 올라왔다. 계단을 다 올라가자 거실이 보였다.
“가구들이 좀 낡았습니다.”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거실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 층은 시골 분위기가 나네.”
“원래 이 가게를 운영하시던 할머니가 사시던 곳이에요. 저는 그거 물려받아서 살고 있는 거구요.”
“그래?”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이라 버리기는 뭐 해서 그냥 쓰고 있습니다. 낡기는 했지만 아직도 멀쩡해요.”
웃으며 강진이 소파를 가리켰다.
“정숙이는 여기서 쉬었어요.”
식당에서 TV를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끔 눕고 싶거나 할 때는 2층 소파에 눕거나 바닥에 누워서 TV를 보았다.
귀신이라 앉거나 누워도 딱히 몸이 편하다는 감각은 없지만, 살아있을 때의 버릇 때문에 가끔은 눕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소파를 보다가 슬며시 거기에 앉았다.
그는 가만히 소파의 안락함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내 딸이 여기에서 쉬었구나.’
딸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쉬는 것을 떠올려 본 임형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그래도 이렇게 편하게 쉴 공간이 있어서.’
임정숙이 일하다가 이 소파에서 잠시 지친 몸을 뉘었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