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95
996화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던 임형근이 웃으며 진세영의 손을 잡아 옆에 앉혔다.
“소파가 무척 편하네.”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이 소파를 손으로 쓸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푹신하면서 적당히 단단해서 허리도 안 아프고 좋네.”
“뒤에 등 대면 더 편해.”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등 기대 보세요. 소파는 등을 기대야 더 편하니까요.”
강진의 말에 두 사람이 슬며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가…… 정말 편하네.”
“브랜드 어디 거예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할머니가 예전부터 쓰시던 거라서요. 아마 브랜드보다는 사람 손에 길이 잘 들어서 편한 것 같아요.”
말을 하던 강진이 TV를 가리켰다.
“거기에 그렇게 앉아서 TV를 봤어요.”
“우리 정숙이가 드라마를 좋아했나? 쉴 때 계속 TV를 보는 것 같은데?”
임형근의 말은 진세영에게 향한 것이었다. 그 말에 진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 좋아하는 드라마는 좋아했지. 로코 같은 거.”
“그래?”
말을 하던 임형근이 꺼져 있는 TV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나는 정숙이하고 드라마를 같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네.”
“애 클 때 당신 한창 바빠서 퇴근하고 오면 한밤중이고 그랬으니까.”
진세영의 말에 임정숙이 급히 말했다.
“무슨. 옛날에 나하고 시크릿도 보고 했잖아. 그리고 집에서 영화도 보고 했잖아.”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정숙이가 아빠하고 시크릿이라는 드라마 봤었다는 이야기 해 줬었는데요.”
“시크릿?”
“그 부잣집 아들하고 힘들게 산 여자 나오는 로코요. 두 사람 몸 바뀌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소파 팔걸이를 손으로 쳤다.
탓!
“그러네. 나 딸하고 드라마를 같이 본 게 있었구나. 그래. 드라마를 같이 본 게 있었어.”
기분 좋게 웃는 임형근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주방도 보시겠어요?”
“용수 그 친구 아직 있는 거 아니야?”
“지금이면 밖에 나갔을 겁니다.”
“밖에? 퇴근이 아니라?”
“저녁에 예약 손님이 있어서요. 잠시 밖에서 두 분 구경할 시간 주려고 나가 있을 겁니다.”
“이거 우리가 괜히 미안하네.”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정숙이가 저하고 친했던 것처럼, 용수하고도 친했어요.”
강진이 밑으로 내려가자 두 사람이 뒤를 따르다가 문득 거실의 소파를 보았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봤었다고 하니…… 그곳에 딸이 앉아 있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편하게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드라마를 보고 있는 딸의 모습을 떠올려 보던 임형근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장소는 같은데…… 정숙이는 없네.”
그런 임형근의 손을 진세영이 잡았다.
“여보.”
진세영의 부름에 임형근이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냥…… 정숙이가 여기에 어떻게 있었을까 생각을 해 봤어.”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이 그를 보다가 소파를 보았다. 그러더니 웃으며 말했다.
“과자를 먹고 있어.”
“응?”
“새우 과자…… 새우 과자 먹으면서 드라마 보고 있어.”
지그시 소파를 보던 진세영이 임형근을 보았다.
“후! 칠칠치 못하게 과자 부스러기 소파에 흘리면서 말이야. 내가 소파에서는 먹을 것 먹지 말라고 했는데, 늘 그렇게 소파에서 과자를 먹어.”
진세영이 웃으며 하는 말에 임형근이 가만히 소파를 보았다. 임정숙이 소파에서 과자를 먹으며 웃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 임정숙을 가만히 보던 임형근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정말 잘 먹네.”
“정말 여기에서 잘 지냈나 봐.”
진세영의 말에 임정숙이 가만히 다가왔다.
“엄마, 아빠. 나 정말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그냥…… 나 안 보이는 것뿐이야. 여기서 행복하게 살다가 나중에, 정말 나중에 저승 오면 그때 내가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줄게.”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부모님은 자식이 시켜 주는 호강은 바라지도 않으시는데…….’
자식이 호강시켜 주기를 바라는 부모님은 없다. 그저 자식이 건강하게 자기 앞가림하면서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다가 자식이 여행 패키지나 용돈이라도 쥐여 주면 그걸로 행복해하고 주위 사람들한테 자랑을 한다.
액수나 여행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식이 자기 생각해서 줬다는 것.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여행 가라고 했다고, 우리 딸이 이번에 용돈을 줬다고…… 그냥 그 정도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고 또 행복해하는 것이다.
임정숙을 보던 강진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두 사람이 소파에서 쉬고 있는 임정숙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
가게를 구석구석 구경한 임정숙 부모님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주방이 되게 깔끔하네.”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저분한 주방에서 만든 음식이 얼마나 깨끗하겠냐고 용수가 매일 닦고 치우거든요.”
“젊은 사람이 요리사 마인드가 제대로네.”
“이런 곳에서 일을 할 녀석이 아니에요. 한국 제일인 운암정에서 요리를 배웠거든요.”
“운암정? 나 거기 TV에서 본 적 있는데 한식집이지?”
“네.”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주방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 대단한 곳에서 음식 배운 친구가 왜 여기서 일을 하는 거야?”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 일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래?”
“저하고 동업자라고 할 수 있죠. 저는 홀을 담당하고 용수가 주방을 담당하고요.”
“젊은 친구들끼리 합심해서 하는 거군.”
“그런 것도 있고 전에 있던 사장님한테 용수가 은혜를 많이 입었어요. 그래서 여기에 남아서 저 도와주는 거죠. 그거 아니었으면…… 이런 작은 가게에서 일을 할 그릇이 아니죠.”
강진이 미소를 지으며 주방을 볼 때, 주방에서 임정숙이 웃으며 나왔다.
“사장님, 음식 다 됐어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일어났다.
“식사하시죠.”
“어? 아직 우리 주문도 안 했는데?”
“전에 정숙이가 두 분 좋아하시는 음식들 이야기해 준 적 있어요. 전에 제가 해 드린 음식도 입에 잘 맞으셨죠?”
“그래. 참 맛있었어.”
“그것도 정숙이가 전에 두 분 식성 이야기해 준 것이 생각이 나서 그대로 한 거라서 그래요. 오늘도 그때처럼 준비했으니 맛있게 드세요.”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려 할 때, 문이 열렸다.
띠링! 띠링!
그에 고개를 돌린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오셨어요?”
가게 안으로 들어온 것은 황민성과 강상식이었다. 강진에게 눈인사를 건넨 그들은 임형근과 진세영 부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들어와 인사를 하는 두 남자의 모습에 임형근이 의아한 듯 볼 때,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전에 정숙이하고 친하게 지냈다는 손님들이세요. 이쪽은 황민성 형님, 이쪽은 강상식 형님.”
강진의 소개에 임형근과 진세영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두 사람이 인사를 하자, 황민성이 자세를 바로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도 고개를 숙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두 사람의 예에 임형근이 옷을 정리하고는 마주 고개를 숙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도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인사에 황민성이 말했다.
“두 분 오신다는 이야기 듣고 오늘 일정을 비워 놨는데 일이 좀 생겨서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일이 우선이죠.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임형근이 진세영에게 말했다.
“여보, 이쪽으로 와요.”
진세영이 옆으로 오자, 임형근이 앞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앉으시죠.”
황민성과 강상식이 그 앞에 가서 앉았다.
“상식 형도 무슨 일 있었어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없던 일이 좀 생겨서 나도 늦었네.”
“그런데 두 분이 어떻게 같이 들어오시네요?”
“말 그대로 우연히 앞에서 같이 만났어.”
“식사는요?”
“나는 안 했는데…… 형은요?”
“나도 아직.”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요. 그럼 식사 같이 하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몸을 돌리려다가 “아차.” 하더니 임형근에게 말했다.
“여기 형이 아까 보신 책 제작하신 분이세요.”
“아…….”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황민성을 보았다.
“꽃 피어나다 잘 봤습니다.”
“보셨어요?”
“강진이가 보라고 줘서요. 책이 아주 좋더군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강진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었으니 자신이 없더라도 편히 대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말이다.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임형근이 슬며시 말했다.
“저희 딸이 일할 때 친하게 지내셨다고?”
임형근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힐끗 아버지의 뒤에 서 있는 임정숙을 보았다. 황민성의 시선에 임정숙이 고개를 숙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정숙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정숙 씨를 참 좋아했습니다. 아! 여자로서 좋아했다는 건 아닙니다.”
황민성은 왼손에 낀 결혼반지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동생처럼 참 귀엽고 착하다는 생각에 좋아했습니다. 특히 친절한 미소가 매력적이었죠.”
황민성의 말에 임정숙이 부끄러운지 자신의 머리를 살짝 긁었다. 이런 칭찬은 당사자가 없을 때 해야 하는데 황민성이 대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쑥스러워하는 임정숙을 보며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정숙 씨가 말이 좀 없지만, 속이 깊고 따스한 사람이었습니다.”
“맞아요. 정숙 씨는 그런 여자죠.”
강상식이 웃으며 말을 거들자, 진세영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애가 그런 애예요. 애가 말이 없고 내성적이긴 하지만…….”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입니다.”
황민성의 말에 임정숙이 급히 말했다.
“그만하세요. 저 부끄러워요.”
임정숙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었다. 부끄러워하는 임정숙이 귀여운 것이다.
그런 황민성의 모습에 임형근이 그를 보았다.
“혹시 저희 정숙이 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르셨습니까?”
임정숙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웃으니 자신이 모르는 좋은 추억이라도 있나 싶은 것이다.
임형근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정숙 씨가 부끄러움을 좀 많이 타셨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농을 하면 많이 민망해하고 부끄러워하셨죠.”
황민성의 말에 임형근이 미소를 지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어요.”
“맞아. 예전에 주택 살 때 옆집에 같은 중학교 남자애가 살아서 집 밖에 나갈 때도 그렇게 앞을 살피고 갔잖아.”
“맞아. 집 밖에서 마주치면 그게 뭐 어떻다고 말이야.”
“그게 사실은…….”
진세영이 웃으며 말했다.
“그 남자애가 정숙이한테 고백을 했었대.”
“고백?”
“좋아한다고.”
진세영의 말에 임정숙이 급히 말했다.
“엄마! 그건 나하고 비밀인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해!”
임정숙이 당황해하는 사이 임형근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
“그렇다니까.”
“당신은 어떻게 알았어?”
“옆집 애가 화이트데이에 사탕 들고 우리 집에 와서 알았지. 그때…….”
엄마 입에서 자신에게 고백하러 온 남자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임정숙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