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114
5권 20화
三
“왕야, 어서 피하십시오.”
“이게 무슨 소란이냐?”
“적들이 침입해서 닥치는 대로 금군을 죽이고 있습니다.”
“적들이라니?”
“신원을 알 수 없지만, 가공할 무공을 지닌 자들입니다.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가신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삼왕야에게 몰려와 피할 것을 청했다.
삼왕야는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 지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가 왕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또 하남 철가장인가?’
삼왕야도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자신을 죽여야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허나, 이건 무모해도 너무 무모했다. 자신을 죽여도 은밀하게 죽일 줄 알았지, 이렇게 대놓고 죽이려 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서 황실에 증원을 요청하게.”
“왕야,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황실에 증원을 요청해도 일단은 피하셔야 합니다.”
“난 어디에도 가지 않네. 왕부와 생사를 함께할 테니 그대들이라도 몸을 피하게.”
삼왕야는 아직 몸이 완쾌된 것이 아니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허나, 몸이 멀쩡했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었다. 죽음이 두려워서 왕부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바마마! 피하셔야 해요!”
주아영이 헐레벌떡 뛰어들며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는 두 눈으로 직접 세 명의 중년인을 본 것이다.
여장부 같던 그녀도 세 명의 중년인의 모습에 기가 질리고 겁이 덜컥 들었다. 그자들은 도저히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창칼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고, 무자비한 손속으로 금군 병사들을 죽이는 모습은 악귀가 따로 없었다.
“왕부의 병사들은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왕야를 밖으로 모시지 않고?”
가신들이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순간 십여 명의 병사들이 무례를 무릅쓰고 삼왕야를 끌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삼왕야는 힘없이 끌려 나가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왕부를 버리고 피신을 가는 심정은 절망스럽다 못해 자괴감마저 들었다. 황실과 왕부마저 우습게 여기는 이 세상이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북리자령과 화설란을 떠올렸다.
“두 분 소저는 어찌 되었느냐?”
그가 가신들과 주아영을 향해 소리쳤지만, 누구 하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그녀들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주아영은 발을 동동 구르며 별채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이 난리 통에 북리자령과 화설란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저 그녀들이 안전하게 대피하기만을 하늘에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제발…… 신이시여!’
한편, 화설란은 왕부가 피에 잠기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이러다 모두 죽을 것 같아요.”
그녀는 당장이라도 싸움판에 뛰어들려고 했다. 흑오파파도 지팡이를 잡고 소리쳤다.
“노신도 거들지요.”
그때, 북리자령이 그녀들을 붙잡았다.
“저자들은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강시라는 뜻이에요. 그것도 온몸이 현철이나 금강석처럼 단단한 철강시 같아요.”
“처, 철강시!”
화설란과 흑오파파는 경악했다.
당금 무림에서 강시를 제련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철강시는 강시 제련 중에서도 중급에 속하는 것이었다. 고수들도 상대하기 힘든 괴물인 것이다.
철강시는 금강동인과 생강시의 장점만 뽑아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때문에 강시들에게 주문을 주입하면 시전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임무도 수행할 수 있었다. 물론 말을 할 수도 있고,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강시를 제련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헌데, 왜 강시들이 왕야를 죽이려는 것일까요?”
“왕야가 아니라 아마도 나일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북리 군사를 죽인다는 거죠?”
“오래전부터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자들이 있지요. 이번 일은 그들의 소행이 분명해요.”
정확히 분류를 하자면 군수 업체와 백안문 내 강경파, 그리고 단목예설. 이렇게 세 곳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곳을 꼽자면 군수 업체일 것이었다.
하지만, 하남 철가장이 무너진 마당에 그들이 왕부를 공격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둘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빨리 돌아가야겠어요. 아무래도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걱정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기만을 바라며 별채 뒤쪽으로 빠져나갔다.
오래지 않아 세 명의 중년인이 별채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이미 시전자에게 북리자령의 얼굴과 냄새 등의 정보를 주입받은 뒤였다.
별채에는 북리자령으로 보이는 여인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냄새가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쪽으로 갔다.”
그들은 북리자령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四
이경이 되어 갈 무렵이었다.
하늘에 구름이 짙게 깔려 있고, 달이 구름에 가려 주위는 어두웠다.
그래도 백이건의 눈은 대낮처럼 밝았다.
저 멀리 왕부가 보인다.
백이건은 우여곡절 끝에 북경을 떠난 지 보름 만에 다시 되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잠시 왕부를 보며 어찌할지 고민에 빠졌다.
삼왕야를 만나면 혹시 적들이 알고 꼭꼭 숨어들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군. 하남 철가장과 내통한 놈들이 누군지 모르니 우선은 바깥에서 동정을 살피는 수밖에.’
백이건이 그렇게 결심을 하고 발걸음을 되돌리려고 할 때였다. 문득 바람을 타고 비릿한 피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왕부다!”
백이건은 직감적으로 왕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몸을 날렸다. 왕부에는 금군 병사들의 시신들로 가득했다.
“내가 한발 늦었단 말인가?”
백이건은 잠시 망연자실했다. 하남 철가장의 생존자가 삼왕야의 목을 노릴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대범하게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흉수가 누구인지 몰라도 잔인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었다. 왕부에는 생존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금군 병사를 비롯해서 하인과 시녀들까지도 무참하게 죽어 있었다.
허나,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어디에도 삼왕야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몸을 피했다는 소리인데…….’
백이건은 문득 사이한 기운이 별채 뒤쪽으로 이어져 있는 걸 감지했다. 백이건은 본능적으로 흉수의 기운임을 감지하고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분명 왕야를 쫓아간 것이리라.’
백리장청과 흑룡대가 왕부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있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밤이 늦었지만 북리자령을 구하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만나려고 했었다.
허나, 그들은 정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왕부에 변고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문위사들이 문 앞에 피를 흘린 채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백리장청은 황급히 왕부 안으로 들어섰다가 온몸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이, 이럴 수가…….”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왕부는 아귀지옥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사마관이 신신당부하던 말들이 떠올렸다.
“설마 이게 조패양의 짓이라는……?”
아니라고 믿고 싶어도 왕부에 북리자령이 있는 걸 알고 있는 자는 조패양밖에 없었다. 이건 미친 짓이었다. 아무리 북리자령을 제거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어도 왕부를 건드리는 건 구족을 멸해도 부족할 만큼 대역죄였다.
“군사! 북리 군사!”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북리자령을 찾아 나섰다.
허나, 북리자령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황실에서 증원 요청을 받은 금군 수천 명이 왕부에 도착했다. 그들은 백리장청과 흑룡대를 범인으로 오해하고 잡으려고 했다.
“이런 멍청한 것들 같으니.”
한가하게 현장에 남아 금군이 올 때까지 기다릴 범인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백리장청은 그들에게 몇 번이고 설명해 보았지만, 금군은 좀처럼 그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설명할 시간이 없다. 일단 북리 군사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백리장청은 간신히 금군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혈전이 벌어졌고, 십여 명의 흑룡대원들이 죽거나 다쳤다. 또한 백여 명의 금군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황실은 이번 일을 무림의 세력이 황실과 왕부를 향해 선전포고한 것으로 규정을 지었다. 황실은 범인을 색출한다는 명분을 세우고 대대적인 무림 통제에 나섰다. 이어 무림은 크게 반발했고, 황실과 무림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갔다.
오랫동안 불문율처럼 이어져온 관과 무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혈풍!
그렇게 또 다른 풍운이 황실과 무림에 불어닥치고 있었다.
五
왕부가 공격을 당했다는 소문은 선후인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로 인해 황실이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무림에 개입을 시작했고, 무림과 마찰이 벌어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것이었다.
황실과 무림이 전쟁을 벌이면 당분간 무기는 많이 팔리겠지만, 오래 놓고 보면 어느 한쪽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이건 결코 군수업자에겐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런 멍청한! 기껏 한다는 것이 왕부를 공격하는 것이야?”
그는 바로 조패양을 범인으로 떠올렸다. 북리자령이야 그들 입장에서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긴 하지만, 왕부를 공격할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그는 즉시 조패양을 소환했다. 그에게 단단히 따져 물을 참이었고, 그래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시에는 아예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조패양은 선후인을 보기 무섭게 따지고 들었다.
“장주! 도대체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한단 말입니까? 북리자령은 내 손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거늘, 내 능력을 불신해서 왕부까지 공격하다니요!”
“이게 무슨 소리요? 왕부는 그대가 공격한 것이 아니었소? 내가 그대를 부른 것도 이를 따져 묻기 위함이었소.”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왕부를 공격할 리 없지 않소?”
선후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패양의 자존심에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거짓말일 리 없었다. 그렇다고 군수 업체에서 한 것도 아니었다.
“흐음…… 그렇다면 우리 말고 제삼자가 끼어들었단 소리로군.”
그제야 그는 천하에는 백안문과 천마성 말고도 사혈방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
“단목예설!”
“단목예설!”
선후인과 조패양은 약속이나 한 듯 단목예설의 이름을 소리쳤다.
‘이 계집이 정말?’
선후인의 눈빛이 무섭게 가라앉았다.
단목예설은 세상의 파멸을 원하고 있었다. 황실과 무림이 싸우면 세상은 유례가 없는 전란에 휩싸일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의도대로 세상이 파멸될지도 몰랐다.
‘최소한 무림의 세력 중 남아 있을 만한 곳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계집이었다.
“장주,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혹시 영풍상단을 공격한 사람이 장주였습니까?”
“난 그런 적이 없소. 그럼, 설마 조 대협이 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북리자령을 제거하기 전에는 전쟁이 벌어져도 내 손으로 직접 명령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굳이 지금 전쟁을 일으켜서 좋을 게 없다는 뜻입니다.”
끙!
선후인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진작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영풍상단과 단엽표국 사건 뒤에도 단목예설이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그 계집의 짓이다.’
생각할수록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졌다.
백안문과 천마성의 전쟁.
그리고 황실과 무림의 전쟁.
세상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종국에는 모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선후인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천하를 손에 넣고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그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단목예설이 무서운 계집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백안문과 천마성, 그리고 무림과 황실이 졸지에 그녀의 손에 놀아날 줄은 몰랐었다.
‘단목예설! 네년이 끝내 명을 재촉하는구나! 네년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