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155
7권 16화
三
호남성의 신녕현은 광서성과 인접한 조그만 마을이었다. 정오 무렵이면 신녕현을 가로지르는 관도는 장사치들과 인파들로 인해 한창 북적거릴 때였다.
바로 그때였다.
두두두!
수십 필의 말이 빠른 속도로 관도를 내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피했다. 순간, 말들이 지나간 자리는 흙먼지가 날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온통 뒤집어썼다.
“퉤! 미친 자식들! 저러다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쉿! 조용히 하게.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그러는 자네야말로 제정신인가? 관도에서 말을 저렇게 달리는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쯧쯧, 그거야 일반 사람들의 경우고, 저들은 태왕전의 고수들일세.”
“태, 태왕전? 백안문의 그 태왕전 말인가?”
“그렇다니까. 그들의 옷자락 가슴팍에 태양이 그려져 있는 걸 보지 못했나?”
“그, 그럼 그게 태왕전의 표식이었단 말인가?”
“단순히 태왕전이 아닐세. 일반 태왕전 무사들은 그냥 태양만 그려져 있지만, 백마를 탄 여인은 봉황까지 그려져 있었네.”
“봉황이라면?”
“바로 태왕전의 공주인 율지향이 아니고 누구겠나?”
“율지향의 소문은 나도 들었네. 안하무인 성격에 사내를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아서 마녀라고 불리는 여인이 아닌가?”
“이제라도 알면 됐네. 괜히 율지향에게 봉변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입 닫고 있는 게 좋을 게야.”
“고, 고맙네.”
뒤늦게 두려움이 일었다.
백성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태왕전은 백성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의와 협보다는 모든 일을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동이 과격하고 거칠었다.
곳곳에서 원성과 원한이 생겨나는 건 당연했다. 태왕전의 행동에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크게 다치거나 화를 입었다.
한편, 백성들 속에서 율지향 일행이 사라진 곳을 유심히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저 계집이 율지향이란 말이지?”
백이건은 인상착의가 그려진 그림과 비교를 하며 확인했다. 개방에서 그려 준 그림이었다. 그는 이틀 전에 개방의 지부를 찾아가 율지향의 행적을 부탁했다. 개방은 백이건에게 부탁을 받은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그녀의 행방을 찾아냈던 것이다.
백이건은 즉시 하룻길을 쉬지도 않고 달려 신녕현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개방의 지부를 찾아 율지향의 행적을 끊임없이 보고받았다.
그는 인파를 헤쳐 가며 율지향이 사라진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율지향 일행은 얼마 가지 않아 객잔 앞에 멈춰 섰다. 점소이가 그녀들 일행을 맞이하려고 달려 나왔다가 율지향에게 봉변을 당했다.
짝!
“네놈 따위의 안내는 필요 없으니 가서 말이나 돌보거라.”
점소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입술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내렸다.
허나, 그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곧장 마구간으로 향했다.
원래 천방지축에 안하무인의 율지향이지만, 지금은 특히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태왕전 최초로 여자 가주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녀에게는 세 명의 오빠들이 있었고, 현재 차기 가주의 후보로 오르내리는 사람들 역시 세 명의 오빠들뿐이었다.
율지향은 분하고 억울해서 단단히 따졌지만, 가주의 자리는 남자들에게만 전해진다는 것이 세가의 오랜 율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결혼하면 적통을 이어 줄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율지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오빠들과 경쟁해서 당당히 차기 가주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옥패였다. 옥패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태왕전의 가주는 물론이고, 백안문의 문주가 되어 무림에 군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율지향은 즉시 북리후와 가까웠던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집을 비운 적이 있거나 행적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자들은 협박과 고문도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지금도 그녀는 전 수석호법이 최근에 행적이 이상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천 리도 넘는 길을 찾아가 그를 조사하고 오는 길이었다.
전 수석호법은 이미 백 살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는 백안문에 있었을 때는 북리후와 상당히 가깝게 지낸 전력이 있었다.
그는 십여 년 전부터 기력이 많이 약해져서 평범한 노인으로 변해 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무림을 떠나 낙향해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율지향은 옥패만 찾을 수 있다면 전 수석호법에 대한 예우나 원로에 대한 공경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전 수석호법의 가족들을 차례로 고문을 하고 죽인다며 협박도 했지만, 전 수석호법은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결국 처음부터 아무런 증거나 물증 없이 단지 행적이 이상하다는 것만 믿고 덤벼든 그녀의 실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 수석호법의 한쪽 팔을 자르는 것으로 자신의 뜻을 대신 전했다.
그녀의 의중은 분명했다. 오늘 일을 어디 가서 나불거리면 다음엔 팔이 아니라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이고, 다른 일가족들 역시 살려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전 수석호법은 치욕과 모멸감에 치를 떨었지만, 이 천방지축의 여인은 정말 무슨 짓이든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쳇, 이번에는 분명 확실해 보였는데…….”
율지향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술부터 찾았다. 그녀의 수하들은 전전긍긍했다. 율지향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지금은 최대한 그녀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오래 살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십여 명의 수하들이 율지향과 한참 거리를 두고 다닥다닥 앉아 있었다.
객잔의 분위기는 딱딱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음식을 먹고 있던 손님들은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객잔을 빠져나갔다. 다른 손님들이 안으로 들어서다 말고 뒤돌아 나갔다.
객잔의 주인은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가 속으로 오늘 하루 장사는 다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백이건이 객잔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토행신주를 이용해 객잔의 주변에 결계를 쳤다.
모든 기운이 차단되어 누구도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허나, 정작 안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결계의 흔적을 느낀 사람이 없었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율지향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객잔의 주인은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엔 같은 일행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꺼져라.”
율지향이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좀 곤란하군. 소생은 소저를 이용하기 위해 힘들게 찾아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있겠소?”
“나, 나를 이용해?”
율지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놈이 정말 죽지 못해 환장을 했구나!”
“후훗! 지금은 암고양이처럼 미쳐 날뛰어도 잠시 뒤엔 순한 양처럼 소생의 말에 따를 것이오. 소생이 소저를 어떻게 이용할지 궁금하지 않소?”
“미친놈! 그보다 네놈을 어떻게 죽여야 더 통쾌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율지향은 분노가 극에 이르다 못해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이제부터 소생은 소저의 약혼자 행세를 하고 백안문으로 들어갈 것이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리 되도록 두고 볼 것 같으냐?”
“훗훗! 내가 하지 못할 것 같소?”
“네놈은 영원히 하지 못해. 왜냐하면 지금 네놈의 목을 베어 버릴 생각이거든.”
율지향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이미 서슬 퍼런 칼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백이건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앗!”
율지향의 눈동자가 힘없이 풀리고, 아득한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四
일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땅의 기운이 율지향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백이건은 그녀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지?”
“공자님은 저의 약혼자입니다.”
율지향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소. 내가 바로 소저의 약혼자요. 우린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운명을 느끼고 뜨겁게 사랑을 했소.”
“예, 그랬어요. 저는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어요. 그래서 부모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공자님과 미래를 약속했죠.”
“그럼, 소생을 백안문에 데려가는 것도 어렵지 않겠구려.”
“공자님을 어서 빨리 부모님께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부모님 몰래 약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어쩌면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공자님과 헤어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요.”
“훗훗! 그런 결심이라면 됐소.”
백이건은 처음 걸어 보는 대법에 만족했다.
생각보다 대법의 위력이 상당했다. 이렇게까지 쉽고 빠르게 기억을 왜곡시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것 보시오. 소저가 조만간 순한 양처럼 소생의 말에 따른다고 하지 않았소?”
“죄송해요, 공자님! 제가 약혼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공자님을 무시했으니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어요.”
율지향은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는 정말 백이건을 약혼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백이건을 무시했다고 여기고 자책하고 있었다.
“핫핫!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이제부터 소저는 씻지 마시오. 몸에 살짝 물이 닿는 것만으로도 경기가 잃어나고 괴로워해야 하오.”
“호호! 공자님의 명이라면 반드시 따르겠어요.”
율지향이 멍청하게 웃었다.
누구도 생각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구석에 모여서 느긋하게 음식을 먹던 자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그들은 말을 잃고 한동안 멍청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지, 지금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거야?’
‘아가씨가 미치지 않고서야 저놈의 말에 고분고분 따를 리 없잖아?’
그들은 처음엔 백이건의 말을 허황되게 생각하고 키득키득 웃기까지 했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리라. 아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 분명했다.
율지향이 누구라고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있겠는가? 일검에 죽지 않는 것이 다행일 것이었다.
사실 남자들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백이건의 수작이 너무도 뻔했다. 율지향의 얼굴이 아름답고 혼자 앉아 있으니 작업을 걸려는 수작이 틀림없었다.
허나,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율지향은 사람을 찔러 죽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독한 여인이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오죽했으면 백이건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을까.
헌데, 이게 웬걸?
백이건을 당장 죽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율지향이 황당한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아가씨가 이상하다.”
“사술이다. 놈이 아가씨에게 사술을 걸었다!”
그들은 미혼술 정도라고 생각했다. 미혼술은 수법이 악독하지만, 시전자를 죽이면 저절로 대법이 풀리고 정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으으, 이제 보니 평범한 자가 아니었구나!”
“네놈은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
“태왕전을 건드린 이상, 네놈은 죽어도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백이건을 죽이기 위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백이건이 토행신주를 이용해 땅의 기운을 일으켰다.
“억?”
“이, 이게 뭐야?”
적들은 달려드는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그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마치 온몸이 석고상처럼 굳어져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제 본 공자의 눈을 봐라.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며, 아직도 사술을 쓰는 것 같으냐?”
쿵!
적들은 백이건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동자가 풀리고 멍청한 얼굴로 변했다. 그들은 멍하니 백이건을 바라보았다. 한없이 심연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공자님께서는 아가씨의 약혼자이십니다.”
“저희들은 공자님께서 어떤 사술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백이건은 한 번에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미혼술을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왜곡된 기억을 심어 넣었다는 것이었다.
‘휴!’
백이건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왜곡시키려면 그만큼 공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그래도 일단 백안문에 들어갈 수 있는 구실을 만든 것에 만족했다.
그랬다.
백이건은 태왕전을 이용해 지하 뇌옥에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