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25
2권 2화
二
“동일범의 소행이다.”
소달호는 이제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들 패거리들을 상대로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소달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디서 원한을 맺은 자인지는 모르지만, 빚쟁이들 중 한 명과 연관이 있는 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소달호는 그들과 거래를 하고 지낸 지 오래였다. 때문에 누가 범인인지는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번엔 분명 나를 찾아올 거야.”
소달호는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 침상에 숨어서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원래 그는 의심이 많아서 어디를 갈 때는 항상 호위무사들을 대동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그들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그는 관아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수시로 범법을 자행하던 그가 관아에 도움을 구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그는 관아에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달호는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수십 명의 용병을 샀다. 이중 삼중으로 장치를 하고 나서야 겨우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피 말리는 며칠이 지나갔지만, 그에겐 아무런 일도 찾아오지 않았다. 계속 이어질 것만 같던 복수극도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조금씩 기운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곁에 관병이 있어서 찾아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면 용병의 힘일지도 몰랐다. 허나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소달호는 아직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한편, 소달호에게 접근하기가 영 쉽지가 않자 백이건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백이건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달호만큼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모든 사건의 시초가 그였던 만큼 그를 죽이지 않으면 언제든 사건이 재발하고도 남을 터였다.
소달호는 인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성격에 남을 위해 평생 단 한 푼도 쓴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
더구나 그는 빌려 준 돈을 받아 낼 수만 있다면 자기 부모도 팔아먹을 자였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지 않았다면 삼처사첩을 거느릴 수도, 으리으리한 집에 토끼 같은 자식들을 십여 명씩이나 두며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어 이루어 낸 부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건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운혜와 소혜의 일만 해도 그랬다.
사실 그는 운혜를 사창가에 팔아 버리겠다고 했지만 그녀를 팔아 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소혜 역시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조금만 더 크면 언니만큼이나 미녀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소달호는 아예 운혜와 소혜가 돈을 갚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이자를 좀 더 올려 받은 후 빚을 갚지 못하면 그녀들을 꿀꺽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계약서만 고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물론 이는 엄연한 불법이고,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허나 운혜와 소혜는 철부지 어린 소녀들이다. 그녀들이 계약서가 고쳐진 걸 안다 해도 어쩔 것인가? 그녀들이 항변을 해도 눈에 힘 한번 주고 협박을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설령 법정으로 가도 그가 이기는 싸움이었다.
소달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방법이 아무리 추악해도 그는 가리는 법이 없었다.
그는 관아에도 아는 사람이 많아서 법정 싸움으로 가 봐야 결과는 항상 뻔했다. 때문에 소달호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그도 자기 자식들에게는 둘도 없는 착하고 자상한 아버지로, 그의 자식들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 아버지를 꼽을 것이었다.
소달호는 십여 명의 자식들 중 특히 셋째 딸을 귀여워했다.
“그렇단 말이지?”
백이건이 지난 며칠 동안 소달호의 주변을 조사해서 간신히 알아낸 정보였다.
백이건은 먹이를 앞둔 사냥꾼처럼 눈빛을 반짝였다. 드디어 소달호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셋째 딸 이름은 소미였고, 나이는 열네 살이었다.
소미는 버릇이 없고 고집이 세서 누구도 쉽게 그녀의 비위를 맞춰 주지 못했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는 성격.
이런 여자일수록 대개 자신감 넘치는 성격의 남자를 좋아한다. 물론 돈과 가문, 배경이 완벽해야 자신감이 넘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바로 백이건이 그랬다.
그는 유생의 전법으로 소미에게 접근했다. 그녀와 지금 백이건의 나이 차이는 두 배였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약관을 넘은 성인이었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일곱 살 백이건에겐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열네 살 소미가 어린 백이건의 수작에 넘어갈 리 없었다.
허나 그건 평범한 제비들이나 하는 말이지, 백이건에게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한때 산동성 최고의 제비였고, 지금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자신이 있었다. 머릿속에 학문이 그만큼 더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한 번이다. 이번을 끝으로 다시는 제비라는 세계엔 발도 들여놓지 않겠다.’
백이건은 자신의 다짐을 딱 한 번 깨야 했다. 그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새로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소미는 자주 찻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보석 가게에서 보석을 보며 시간을 즐기곤 했다. 보석 가게는 그녀가 자주 가는 단골이 있었는데, 소달호와 가끔 오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녀가 진주를 들고 한창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쯧쯧, 소저에게는 그 보석보다 저기 자수정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백이건이 우연을 가장해서 소미와 만난 건 보석 가게였다. 소미는 처음엔 백이건의 말에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백이건의 나이 이제 겨우 일곱 살 정도. 꼬맹이가 보석을 알면 얼마나 알겠냐 싶었던 것이다.
“소저는 탄생석의 의미를 모르는 모양이군요.”
소미는 가볍게 아미를 찌푸렸다. 탄생석이란 말도 처음이지만, 아까부터 꼬맹이가 계속 아는 척하는 게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네까짓 게 뭔데 탄생석이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헛헛! 소생이 사람을 잘못 보았군요. 소저처럼 아름다우신 분이 탄생석도 모르는 바보였을 줄이야…….”
백이건은 가볍게 혀를 차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세엣…….’
그가 셋을 셀 때였다.
소미가 씩씩거리며 백이건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나보고 바보라고?”
“소생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소저께서 잘못 들은 것이겠지요.”
“내가 다 들었는데, 쪼그만 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소미는 기가 막혔다. 이제 겨우 일곱 살 꼬맹이가 아까부터 계속 다 큰 어른처럼 분위기를 잡으며 소생이니, 소저니 하는 말투부터가 황당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이건의 표정은 태연했다. 이미 소미가 발끈한 이상 자신의 낚싯줄에 걸려든 셈이었다.
“그럼 좋습니다. 어디 한 번 여쭈어 보죠. 소저는 진주가 시기적으로 언제를 상징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쯧쯧, 진주는 유월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건강과 장수, 부귀 등 숨은 매력을 끌어내 주는 의미가 숨어 있지요.”
“…….”
소미는 말문이 막혔다. 진주가 유월을 상징한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하지만 건강과 장수 등의 매력을 끌어내 준다는 의미는 알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백이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자수정은 이월을 상징합니다. 또 이성과 만나고 싶다면 자수정을 가지란 말도 있지요. 그게 다 자수정이 연애관에 올바른 길을 안내해 준다는 속설 때문입니다.”
백이건은 청산유수였다. 좀처럼 일곱 살 어린아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월 달에 태어났어. 그럼 설마 나보고 자수정이 더 어울린다고 했던 것이……?”
“사람의 얼굴에는 저마다 관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양의 이치를 알고 주역의 64괘에 비추어 보면 태어난 계절을 대충 유추할 수 있지요.”
“서, 설마, 말도 안 돼.”
소미는 좀처럼 백이건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백이건은 짐짓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소생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입니까?”
“그야 당연하지. 너 같은 꼬맹이가 주역이 뭔지 알기나 해?”
“좋습니다. 그럼 소생과 내기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신이 없으면 그만 두어도 상관없습니다만…….”
“내기? 좋아. 무슨 내기든 네가 지는 쪽에 걸겠어.”
‘쯧쯧, 하여간 여자들이 단순하기는.’
백이건은 속으로 씩 웃었다.
소미가 이월 달에 태어난 건 사전에 조사해서 알아낸 것이다.
원래 제비들은 대충 사전 조사를 하고 정보를 얻으면 그것을 이용해 여자들과 대화할 건덕지를 만들어 낸다. 지금 백이건이 소미와 대화하기 위해 구실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말이다.
소미가 대화를 하겠다고 한 이상 이미 그녀는 구 할 이상 백이건의 손에 넘어온 셈이었다.
소미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백이건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의 학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겨우 일곱 살의 나이에 모르는 학문이 없었다.
사서오경은 줄줄 꿰고 있었고, 그 어려운 주역 역시도 앉은 자리에서 그녀에게 강론을 펼쳐 나갔다.
“어떻습니까? 내기는 소생이 이긴 것 같군요.”
“너…… 너 정말 일곱 살 맞아?”
소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왠지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로 변장한 것 같았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일곱 살의 나이에 그 많은 학문을 두루 섭렵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소생이 두 살에 천자문을 떼었다고 하더군요.”
“두, 두 살에?”
“세 살에 논어를 읽었다고 하는데, 이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신 네 살에 주역을 읽은 건 기억이 납니다.”
“네, 네 살에 주역을 읽어?”
소미는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천재가 있어서 네 살에 주역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소저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내 이름? 그건 왜?”
“우린 서로 내기하지 않았나요?”
“서, 설마 내 이름을 아는 게 내기였다고?”
무슨 대단한 부탁도 아니고, 이름 하나 가르쳐 주는 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허나 대개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알고 싶다고 할 때는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소미는 멍하니 백이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평소였다면 코웃음부터 나왔을 일이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백이건이 일곱 살 어린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까닭 없이 붉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게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