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77
4권 6화
콧수염 사내도 구덩이 근처에 있었다. 그 역시 암기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땅속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는 즉시 몸을 날려 피했지만, 그때는 이미 어느 정도 발바닥을 파고들어 간 뒤였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발바닥에 꽂혀 있던 암기를 뽑아 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며 발바닥이 끊어질 듯 아파 왔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바닥에는 수하들이 흘린 피가 철철 넘쳐흘렀고, 여기저기 비명 소리가 그의 귀를 후벼 파고 있었다.
“으으, 이건 마차 바퀴살이잖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를 비롯해서 수하들을 공격했던 암기는 다른 것도 아니고 마차 바퀴살이었다. 세상에 이런 황당한 일이 또 있을까? 겨우 마차 바퀴살로 이런 엄청난 기관 장치를 만들어 낼 줄이야. 그는 기가 막히다 못해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퍼뜩!
바로 그때, 그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까 발견했던 마차에 바퀴살이 군데군데 부러져 있지 않았던가?
‘설마 그때 단순히 마차가 부서진 것처럼 꾸미려고 했던 것이 아니란 말인가?’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그 옛날 제갈공명이 살아 돌아와도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계략을 펼쳐 내진 못할 것 같았다.
그랬다.
그의 생각대로, 백이건이 마차 바퀴살을 뽑아서 품속에 챙긴 건 처음부터 이 같은 계획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차가 부서진 것처럼 꾸며서 적들을 유인하려는 목적도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기관장치는 생각보다 너무 간단해서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마차에서 떼어 낸 몇 가지 부품을 조합해서 도르래를 만들었고, 채성룡이 누워 있던 들것의 밑 부분을 뜯어내 암기를 고정시키는 받침대로 사용했다.
이것이 일종의 뇌관 역할을 담당했다. 천 조각이 당겨지면 이 부분이 들려지면서 암기를 밀어내는데 여기에도 몇 가지 장치를 만들어서 속도를 높여 주었다.
기관장치를 이루는 것들은 하나같이 엉성하고 조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위력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결코 웃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뭐냐? 이런 게 무기 설계도에 나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였다.
하지만 번번이 두 눈 멀거니 뜨고도 당하고 말았다.
그는 참혹하다 못해 비참할 지경이었다. 처음 추격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삼십여 명이던 수하들이 이제 십여 명 정도로 팍 줄어 있었다. 이래서는 누가 쫓고 누가 쫓기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 어쩌면 놈의 손에 우리가 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제야 백이건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마차의 부품 몇 가지로 기관장치를 만들 수 있는 실력자는 고금을 통틀어 백이건이 유일할 것이었다. 자신들이 쫓고 있는 무기 설계도에 이런 것이 나와 있을 리 없었다.
사람인 이상 두려움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그는 지금 악에 받쳐 있었다. 백이건을 죽일 수 없으면 채수연과 진소희, 그리고 채성룡이라도 죽일 생각이었다.
그는 즉시 품속에서 전서구를 꺼냈다. 그러고는 대략적인 상황을 적고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수하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추격을 하면 할수록 피해를 보는 쪽은 그들이었다. 더구나 다음에는 또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공격을 해 올지 몰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 멍청한 놈들 같으니. 놈들은 얼마 가지 못했다. 어서 추격하지 않고 무엇들을 하는 것이냐?”
그의 호통에 수하들이 쭈뼛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놈의 능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계집들 발에 물집이 잡혔다가 살갗이 찢어졌다는 걸 모를 줄 아느냐?”
그는 피가 묻은 천 조각을 보고 여인들의 상태를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여인들이 부상을 당해 움직이기 힘든 것을 충분히 이용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들은 간격을 유지한 채 달렸다.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지금 극도로 혼란한 상태였다. 헌데도 그들은 훈련받은 대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고도의 수련을 받은 자들인지 알 수 있었다.
콧수염 사내는 진영의 선두에 있었다. 그동안은 계속 첨병이 앞장서서 행적을 찾아내고 길을 안내했지만, 지금은 마지막이라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첨병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백이건과 채성룡 등을 발견하는 즉시 그가 가장 먼저 공격을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콧수염 사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저 멀리 누군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앉아 있었다. 콧수염 사내는 그를 보고 두 눈에 뇌전이 일었다.
“우드득! 백이건!”
그랬다.
길을 막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백이건이었다.
三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백이건이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적들의 수가 십여 명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두 번째 계책도 성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겐 반가운 일이었다.
세 번째 계책은 바로 정면 승부였다.
그는 반 시진 동안 길목을 지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한 놈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허나, 마지막은 무조건 자신의 손으로 적들을 죽이는 것으로 정해 두었다.
그는 반 시진 동안 계속 천마자전공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어떻게 싸우고 어떤 식으로 초식을 전개해야 할지 그리고 있었다.
사실 백이건은 지난 세월 동안 혈맥을 뚫는다고 천마자전공의 수련을 소홀히 했었다. 강호의 경험도 적은 그가 천마자전공의 수련까지 소홀히 했으니, 실전에서 버벅거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원래 천마자전공은 반드시 천마진기를 대주천해야 극의까지 펼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허나, 백이건은 혈맥이 막혀 있어서 정상적으로 천마진기를 운기할 수 없었다. 당연히 천마진기를 대주천하는 건 불가능한 상태.
그래서였다.
백이건은 혈맥이 막혀 있다는 이유로 천마자전공의 수련을 소홀히 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지금까지는 학문이 먼저였고, 혈맥을 뚫는 것이 먼저였다. 천마자전공의 수련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그 상태로도 그는 초인적인 힘을 얻을 수 있었고, 어지간한 자들은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굳이 천마자전공까지 익힐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았다. 그리고 자신의 힘이 강해지지 않으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놈부터 죽여 줄까?”
백이건이 무서운 시선으로 적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백이건과 시선이 마주친 자들은 맹수의 눈빛을 보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했다.
“모두 기대해도 좋다. 죽여도 곱게 죽이진 않을 테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이건의 시선이 콧수염 사내에게 멈추었다.
“첫 번째 제물은 네놈으로 결정했다.”
쇄애액!
백이건이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으으, 빠르다.’
콧수염 사내는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려 피했다. 그가 피한 곳은 수하들이 있는 곳이었다. 몸을 피하면서도 백이건을 유인하려는 의도였다.
백이건은 한 손으로 자전을 펼쳐 콧수염 사내를 끌어당겼다. 자전은 밀어낼 수도 있지만, 끌어당길 수도 있었다. 콧수염 사내의 몸이 뒤로 날아가다 말고 갑자기 백이건에게 끌려갔다.
“억?”
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천하에 접인신공이나 격공섭물 등의 무공이 있어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끌어당겨 잡을 수 있다지만, 이렇게까지 멀리 있는 것을, 더구나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는 무공은 없었다.
그야말로 불가항력이었다. 콧수염 사내는 발버둥을 치며 자전의 힘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그대로 빨려들어 가듯 백이건의 품으로 날아갔다.
‘이, 이건 정말 천마자전공이다.’
그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잘못되어도 뭔가 한참 잘못된 기분이었다. 고금십대무공의 명성은 실로 대단했다. 콧수염 사내는 호랑이 앞에 선 토끼마냥 거대한 벽을 느껴야 했다.
퍽!
“크아악!”
백이건의 주먹이 콧수염 사내의 얼굴에 작렬했다. 뼈가 으스러지고 피가 튀었다. 콧수염 사내는 비명과 동시에 쿵 하고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널브러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십여 명의 수하들이 도와주려고 했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였다.
그들은 멍청한 표정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콧수염 사내를 쳐다보았다. 자신들의 당주가 겨우 일초지적도 되지 못할 줄이야. 두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으으.”
십여 명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치를 떨었다. 제아무리 극고의 수련을 받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서 주눅이 들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백이건의 무공이 결코 심상치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 자리의 누구도 백이건의 무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백이건이 가장 먼저 콧수염 사내를 공격한 것은 그의 무공이 가장 높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대상이 사라진 지금 그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살아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이곳이 네놈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으으, 네놈의 무공이 강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너무 무시하지 마라. 최소한 네놈과 함께 지옥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휙! 휘휙!
이번에는 그들이 먼저 백이건을 공격했다. 그들의 얼굴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필살의 기세가 담겨 있었다.
‘아직은 한꺼번에 많은 자들에게 자전을 쓸 수 없다.’
백이건은 이미 무리하게 공력을 사용했다가 내상을 입은 경험이 있지 않던가?
대신 그는 십여 명의 공격을 하나하나 흘려보냈다.
그러고는 공력을 일으켜 적들의 몸속으로 전기를 주입했다.
“방전!”
천마자전공의 세 번째 무공이었다.
방전은 전기를 발출시키는 것으로 물기가 있으면 그 위력이 배가된다. 인체는 칠 할이 수분으로 되어 있고, 살며시 스치는 것으로도 전기가 통했다.
“켁!”
“으악!”
“크아악!”
십여 명이 피를 뿌리며 뒤로 튕겨진 것은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의 겉모습은 보기에는 멀쩡했다. 허나, 백이건이 작심을 하고 전기를 주입한 탓에 오장육부가 모조리 녹아 버리고 말았다.
“콜록! 콜록!”
백이건이 격렬한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다.
가까운 접근전에서는 뇌전보다 방전이 더 효과적이었다. 뇌전이 반드시 음과 양의 기운을 충돌시켜야 하는 반면 방전은 두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방전을 펼치기에는 아직 공력이 뒤따라 주지 못했다. 백이건은 입가를 쓱 한 번 훔치고 뚜벅뚜벅 콧수염 사내에게 다가갔다.
콧수염 사내는 얼굴이 크게 함몰되어 알아보기 어렵게 변했지만, 아직 죽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백이건이 일부러 살려 주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는 아직 적들의 배경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두 번 묻지 않겠다. 네놈들은 누구이며, 우리가 하남 철가장으로 가는 것을 어찌 알았느냐?”
“크크, 이제 보니 천마자전공이 완전하지 못하구나!”
콧수염 사내는 한눈에 백이건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백이건이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 순간 콧수염 사내의 뼈가 으스러지며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으아악!”
“다음에는 네놈의 두 다리다.”
“퉤! 죽일 테면 죽여라. 하지만 네놈도 곧 내 뒤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크하하핫!
그가 악마처럼 웃어 댔다.
“크크,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 곧 네놈을 죽이러 찾아가실 것이다.”
“충고 고맙군.”
백이건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미련 없이 그의 가슴을 짓밟아 심장을 으스러뜨렸다. 콧수염 사내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