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54
53화
붉은 손에 의해 끌려간 강신은 기분 나쁜 촉감의 살덩이들에 의해 온몸을 압박당했다.
그리고 입과 콧속으로 계속 흘러들어오는 비릿한 액체 때문에, 정신차리기 힘든 상태였다.
그렇게 축구공이 된 것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액체들과 함께 쓸려내려가다가 어디론가 배출되었다.
철퍽!
“쿨럭, 쿨럭…. 으으.. 여기는…….”
강신은 기침하며 호흡을 몰아쉬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자, 조금 전에 걷고 있었던 통로와는 다른 거대한 공동이었다.
강신의 입과 코를 막고 있었던 액체가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으며, 모든 벽면은 통로와 같이 살덩어리로 되어있었다.
강신은 자신이 아직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공동의 벽면에는 이곳으로 자신을 끌고 온 붉은 손이 수 없이 뻗어 나와 꿈틀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자신이 지옥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건….”
공동의 중앙을 보니, 뼈 무더기로 이루어진 작은 언덕이 있었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검은 머리의 여자가 재밌다는 듯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오…. 보통 이곳까지 도달한 인간들은 대부분 겁에 질려있던데, 너는 차분하게 관찰하는 것을 보니 나름 정신력이 강한 인간이구나.”
여자가 무엇이라 말을 했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강신의 귀를 간지럽혔다.
하얀 도자기 같은 피부에는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갔으며, 말을 하는 붉은 입술은 앵두 같았다.
TV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연예인들과 비교하는 일조차 실례가 될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뭐지.’
이상했다.
자기도 모르게 욕정이 들끓는 느낌.
머릿속에 안개가 끼어 제대로 사고가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강신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후후…. 거기서 그렇게 있지 말고 이리 오렴.”
여자가 가볍게 웃으며 강신을 유혹했다.
그녀의 모습을 본 강신의 마음은 설레고 들떴으며,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철퍽 철퍽.
강신이 뼈 무더기 앞으로 다가오자, 그 걸음에 맞추어 여자도 뼈로 된 언덕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자기에게 다가오는 강신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흐음.”
여자의 짧은 코웃음이 강신의 애간장을 태웠다.
마치 사막을 횡단하는 모험가가 물을 찾는 것처럼 끊임없는 갈증이 강신을 괴롭혔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가 힘들었다. 누군가 앞에 있는 여자에게 모든 걸 맡기라고 하는 것 같았다.
가늘고 긴 아름다운 손이 강신의 뺨을 어루만지자, 그 부위가 마치 감전된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거부할 수 없는 손길이라는 것이 이러할까.
여자가 천천히 강신에게 몸을 밀착시키고 강신의 볼에 입을 맞추기 위해 천천히 다가왔다.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볼에 입맞춤을 받는다면 왠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안돼..’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과 어서 입맞춤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자신의 의지로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장 달려들고 싶은 마음에 몸은 나아가지도 뒤로 도망가지도 못했다.
여자는 자리에서 부들부들 떨며 내면과 싸우고 있는 강신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보통 이 정도 했으면 항상 인간 쪽에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신기하네…. 지금까지의 인간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도 모든 걸 포기하고 스스로 쾌락에 몸을 맡기던데.”
여자는 강신의 볼에서 손을 떼고, 턱을 천천히 쓸어서 검지로 얼굴을 치켜올렸다.
“으…….”
강신은 여자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놓을 뻔했다.
“그럼, 여기까지 버틴 정신력을 생각해서 상을 줘야겠네~”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강신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여자가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볼이 아닌 강신의 입술에 포개려고 했다.
강신이 자신의 왼손으로 허벅지를 꼬집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안돼!”
그러자, 어디선가 둘 사이에 작은 녹색의 나뭇잎이 나타났다.
여자는 얇은 나뭇잎을 무시하고 그대로 강신에게 입을 맞추려고 했지만, 벽에 막힌 것처럼 앞으로 다가가지 못 했다.
자신을 방해하는 정체 모를 나뭇잎을 보고 여자가 당황하는데, 갑자기 나뭇잎이 끝단부터 천천히 타올랐다.
화르륵.
미약한 불길.
평범한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정도의 불길이었지만, 그녀는 과민하게 반응했다.
“꺄아아악!!!!!”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움직이지 않았던 몸이 비로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거리를 벌려 안전하다고 판단한 강신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방금까지 자신 앞에 있었던 미녀가 살이 반쯤 녹아내린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너! 감히!!!”
아름다웠던 목소리도 음성변조를 한 것처럼 기괴하기 짝이 없게 변했다.
끔찍한 손으로 녹아내린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강신을 적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적반하장은…. 방금까지 날 죽이려고 했던 게 누군데.”
만약 저 작은 나뭇잎이 없었다면 강신은 정말 위험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아까운 것은 어쩔수가 없네.’
강신은 저 나뭇잎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이렇게 사용하기에는 정말 아까운 물건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바로 신단수의 영역에서 서낭과 당산이가 강신과 헤어질 때, 주었던 나뭇잎이었다.
RPG 게임을 할 때도 가장 좋은 포션은 보스를 잡을 때까지 쓰지 않았던 강신이었다.
이런 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줄 수 있는 물건을 소모했다는 것이 정말 뼈아프게 다가왔다.
제정신을 차린 강신은 여자를 경계했고, 그동안 멈춰있던 사고를 빠르게 돌려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앞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이곳은 정확히 어디인지.
그리고 여자가 어째서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지까지.
조금 전의 기괴한 목소리는 악마에게 빙의당한 소년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그렇다면 저 여자의 정체는 ‘릴리스’가 확실했다.
그리고 이곳은 강신이 생각하기에…….
“여긴 ‘너’의 꿈이구나. 이렇게 빈틈이 많았는데, 이제야 깨달았다니……. 나도 아직 멀었네.”
강신의 푸념 아닌 푸념을 들었는지, 릴리스는 깜짝 놀랐다.
‘오감이 느껴지고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보통 사람들이 꿈을 꾸었을 때,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라고 한다.
고통의 유무를 통해 파악하는 방법인데 사실 그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였다.
깊은 꿈속에서는 오감이 있고, 고통까지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고통이 일정 이상에 도달했을 때, 마치 튕겨나가듯이 꿈에서 깨어날 뿐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이 있는 상황을 예로 들자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다가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몸이 발작하듯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는 것이다.
강신이 악마의 꿈속으로 들어왔을 때, 릴리스는 자신이 있는 공동으로 바로 데리고 오지 않았다.
통로를 헤매는 동안 이곳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였다.
오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곳을 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 없을 테니.
그래서 강신도 처음에 설야와 초코를 찾았던 것이었다.
릴리스의 함정은 이러했다.
현실과 같은 오감이 느껴지는 낯선 곳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숨을 조여오는 좁은 공간에서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다음, 보상으로 쾌락을 준비하는 것이다.
믿음이 강한 종교인 혹은 퇴마사가 아니고선 열이면 열, 이곳이 꿈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몽마에게 당했을 것이었다.
“크으…. 어떻게 알았지?”
상대를 유혹하던 악마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바라보듯 적대감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왔다.
강신은 악마에게 당한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악마를 도발했다.
“힌트는 여러 군데 있었지. 내가 굳이 그걸 너에게 알려줄 이유가 없는데?”
“…….”
강신이 귀찮은 듯이 이야기하자, 악마가 인상을 쓴다.
그러자, 강신이 피식 웃으며 악마를 농락하듯 바로 말을 바꾸었다.
“그래, 이야기 못 해줄 건 아니지. 대신 나를 이곳에서 내보내주고, 내가 궁금한 것을 알려주면 알려줄 수도 있어.”
“좋다. 그렇게 하지. 그러니 이야기해봐라.”
남들이 보면 릴리스에게는 전혀 득이 될 것 같지 않은 이야기였다.하지만 강신이 어떤 실마리를 통해 꿈속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것은 자신의 사냥터에 하자가 있다는 소리였다.
악마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강신의 제안을 수락했음에도 강신은 입을 열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누가 악마가 아니랄까 봐. 정말 교활하네. 제대로 ‘계약’을 해야지?”
강신이 계약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 끔찍한 모습의 악마가 몸을 움찔 떨더니 조심스러워졌다.
“……너 이쪽 사람이었구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
악마는 입에 쉽게 거짓을 담고 사람을 유혹한다.
하지만 그런 악마라도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계약이었다.
구두로 한 계약이던, 문서로 남긴 계약이던 악마가 계약을 했다면, 자신의 존재가 소멸하더라도 지켜야 했다.
“좋아, 그렇게 할 테니. 말해봐.”
“교활한 수작 부리지 말고 정확히 계약한다고 직접 말해라. 한 번 더 그렇게 간 보면 없던 일로 할 거야.”
강신이 강하게 나갔다.
애초에 급한 것은 악마 쪽이었지 자신이 아니었다.
꿈은 어디까지나 릴리스가 가지고 있는 몽마의 힘이었다.
그리고 몽마와 관련된 정보는 이미 강신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이 꿈이라고 인지한 순간,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었다.
강신이 이곳에서 내보내 달라고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혐오스러운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나가고 싶었고, 악마가 알고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계약을 교묘하게 피하려는 릴리스에게 강신이 경고하자, 릴리스가 흉측하게 일그러진 몸을 다시 천천히 수복했다.
“우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구나.”
강신이 꿈에서 보거나, 영감을 얻어서 썼던 글에 나오는 악마들은 하나같이 교활했다.
계약은 분명히 악마를 구속하는 방법이었지만, 악마들은 일부러 애매한 단어를 사용하거나 돌려서 말했다.
계약의 허점을 이용해 인간을 괴롭히기 위함이었다.
직관적인 단어를 써서 계약하지 못한다면 아예 계약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신은 잊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래?”
“좋아, 네가 꿈속이라는 걸 어떻게 깨달았는지 알려준다면, 이곳에서 내보내주고 내가 아는 것들 중 네가 궁금해하는 정보를 한 가지 알려주겠어.”
“한 가지라…. 뭐 좋아.”
교활한 악마는 끝까지 공평하지 않은 계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신은 악마가 불공정 계약을 제시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과연, 누구에게 유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