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05)
* * *
-용사님, 이렇게 테페론 님의 훈장만 잡고 있을 게 아니라 저 카든이라는 놈을 당장 없애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앞에서 걸어가는 카든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허, 이놈 보소. 상황을 그리도 모르겠냐?]-저놈을 죽여야 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네 녀석 눈에는 이 사람들이 안 보이느냐?]심장을 옥죄는 서슬 퍼런 목소리.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시장은 그야말로 도떼기시장.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렸다.
[강한 놈이다. 네가 저놈을 한 번에 없애지 못한다면 이 사람들은 다 죽은 목숨이다. 놈은 오히려 그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제가 안일했습니다. 이 한적한 장소로 이동할 때를 노려야겠군요.
[쉽진 않을 거다.]용사님의 말대로 카든은 번잡한 장소만 돌아다녔다. 심지어 카든 놈이 들어가 앉은 식당도 광장처럼 넓고 사람이 꽉 찬 곳이었다.
“하, 이거 내가 농락당하는 것 같은데?”
마물 카든은 미행당하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콜린스가 새로운 계획을 구상했다면, 일이 터지기 전에 막아야 할 텐데.”
나는 카든을 지켜보면서 콜린스와 카든이 나눈 대화를 복기했다.
그래, 저 마물 놈만 지켜보고 있을 순 없지. 나는 식당에서 나가려고 입구로 걸어갔다. 그때.
“저, 카든 님.”
나는 카든이라는 소리에 뒤를 돌았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중년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마물 카든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아, 왔네요. 앉으세요.”
부드러운 카든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콜린스와 대화할 때도 목소리만큼은 부드러웠지만, 지금 놈의 목소리는 부드러움에 상냥함까지 얹었다.
끼이익, 중년인은 카든의 맞은편 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춥죠? 따뜻한 차라도 한잔해요.”
“아, 괜찮습니다.”
“나를 찾아온 사람에게 어떻게 그래요?”
카든은 손을 들어 차를 주문했다. 어느새 중년인의 얼굴이 풀어졌다. 긴장이 풀린 것처럼 보였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는 건 결정을 했다는 뜻이겠죠?”
“……예, 카든 님. 결정했습니다.”
“잘했네요.”
카든 놈이 나직한 목소리로 웃었다. 그리곤 남자에게 작은 병을 하나 건넸다.
손에 병을 든 중년인의 손이 떨렸다.
뭐지? 수상했다.
[수상하다.]지금까지 조용하던 카이의 음성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카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때, 중년인이 그걸 입에 대고 마셨다.
-헉!
[마신다.]“달콤하죠?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카든의 표정과 목소리는 더없이 부드러웠다. 그 순간, 중년인의 머리에서 회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마기가 미약하게 감지됐다.
마기?
카이도 느꼈는지, 크게 외쳤다.
[회색 마기다.]어떻게 할 새도 없이 회색 연기는 순식간에 카든의 가슴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기가 빨려 들어갔다는 건 죽었다는 뜻. 내 시선은 곧바로 중년인을 향했다.
그러나 중년인은 죽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
중년인의 모습이 갑자기 노쇠해 보였다. 갈색 머리에 희끗희끗 흰머리가 섞였고, 얼굴에 주름도 생겼다.
한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은 느낌?
-혹시 저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마기를 빼간다는 그겁니까?
[그래. 수명을 계약한 만큼 거둬간 거지.]용사님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테이블 위에 주머니 하나가 올려졌다.
“자, 약속한 골드예요. 이 정도면 아들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하하하. 어때요? 아무렇지 않죠?”
“가, 감사합니다.”
“혹시 주변에도 돈이 필요한 사람 있으면 말해 줘요. 소개비 두둑하게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카든 님.”
늙은 중년인은 올 때와는 달리 눈에 힘이 들어갔다.
-마물 놈에게 마기가 빨려 들어가는 걸 눈앞에서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용사님에게 따지듯 물었다.
[네 뜻이 그러하드냐?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하거라. 저놈도 그걸 바라고 있을 거다.]-그럼 어떡해야 합니까?
[적어도 용사의 체력을 1단계는 올려놔야 저놈을 꺾을 수 있다.]-아오. 지금 당장 그걸 어떻게 마스터해요?
그게 당장 해낼 수 있는 거라면 용사님이 날 가만 두진 않았을 터.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끓어오르는 화를 참았다. 그러는 사이,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됐다. 다만, 카든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바뀌었을 뿐.
나는 회색 마기가 카든 가슴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바라보면서 탄식했다.
만약, 내가 저놈을 한 손으로 때려잡을 힘이 있었다면, 이러고 있진 않아도 될 텐데. 내가, 내가 더 빨리 강해졌어야 했는데.
그때, 용사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지금 상황에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만…….]-뭔데요?
[드래곤의 방패를 네 몸에 새기는 방법이다.]-그건 어떻게 생기는 겁니까? 그냥 몸뚱어리에 마법진처럼 새기는 거예요?
결국은 드래곤의 방패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건데.
-애틀리스 영웅께선 그걸 어떻게 얻으신 거래요?
용사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카이 혹시 넌 아냐?]드래곤의 방패니까, 어쩌면 드래곤과 관계가 있을 수 있지.
[그게 뭔데? 이 위대한 카이님이 그려진 방패인가?]괜히 물어봤다.
“어디서 찾을 수 있지? 후, 이거 애틀리스에 가 봐야 하는 건가? 아니면 혹시 이번 경매에 나올 건가?”
경매장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 *
나는 일행을 율리시즈, 알트 호텔로 불렀다.
“전 대장님이 다른 곳에 묵을 줄 알았습니다.”
콜린스가 이곳 호텔에 투숙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던 에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놈은 이미 우리가 왔다는 걸 알고 있어.”
에른은 잠시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 관리 중에 첩자가 있나 보군요.”
“그런 가봐. 아무튼, 놈은 우리가 중앙에서 불러서 왔다고 생각할 거니까, 여기에 묵는 게 차라리 나아. 별장 같은 곳이 아니라면 말이야.”
“만약 다른 호텔로 간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볼 수도 있겠군요.”
“그렇겠지.”
하여 우리 일행은 이곳, 율리시즈, 알트 호텔에 짐을 푼 후, 내가 봤던 것들을 이야기했다.
“마, 마물이라고요?”
“마물이라고 하셨습니까?”
“허, 마물이라는 게 있긴 있었군요.”
세이건과 에른은 굉장히 놀랐지만, 헤인켈은 놀라면서도 인정하는 표정이었다.
“헤인켈, 마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지?”
“예, 피닉스 기사단에서 마신에 관해 배울 때, 들었습니다. 굉장히 강한 존재고, 마신을 수호하는 놈들이라고요.”
“전 역사학 수업시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에른이 말했다.
“역사책에 인간형 마물이라든지, 그놈들이 살아 있는 사람의 수명을 깎아 먹는다든지, 그런 것도 나와?”
“인간을 현혹해 수명이나 마나, 때로는 영혼을 가져간다고 했습니다. 단, 반드시 거래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마물이 바로 내 옆에 있어도 아무것도 빼앗아 갈 수는 없단 말이지? 마물과 거래만 하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이나 영혼이 필요할 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죽일 대상일 경우엔 바로 죽이겠죠.”
“마물에 대해 알아봐. 특히 인간형 마물에 대해.”
“예.”
“에른은 이번 경매에 방패가 나오는지 알아보고.”
“알겠습니다.”
셋은 각자 흩어졌다. 각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해 올 거다.
교단에서 마신과 마물을 가르친다니, 나는 레온 주교에게 연락을 넣어 이곳 상황을 이야기했다. 주교도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하니까.
=마물이 알트 시에 나타났다고요?
“예.”
=허, 이것 참. 지난 100년 간 나타나지 않아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숨어 있었던 건가?
레오 주교는 혼잣말로 한탄했다.
“주교님, 용사들이 마물을 퇴치한 거 아니었습니까?”
=기록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그게 사실이었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데빌몬스터가 판을 차고 마기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이 일어나진 않았겠죠.
레온 주교도 용사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숨어 있었겠죠. 마물은 마신과 공동체 운명일 겁니다. 마신이 영원히 사라지는 그날, 마물도 사라지겠죠.
“100년 전 마물의 기록이 있나요?”
=있습니다. 바로 보내 드리죠.
레온 주교는 내 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감사합니다. 주교님.”
=감사는 무슨, 내가 늘 대장에게 감사하죠. 우리 교단이 엄두도 못 내는 일을 해 주고 있잖습니까?
나는 레온 주교와 통신을 끊은 후, 곧바로 올보그 황제에게 연락했다. 레온 주교가 알고 있는 거로 봐서 올보그 황제 역시 마물의 존재를 알고 있을 거니까.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다.
=인간형 마물이 등장했단 말입니까?
“예, 폐하.”
=그렇다면 작금의 알트 시의 상황은 그놈이 만든 거로군요.
“예.”
=흠, 심각하군요.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올보그 황제의 목소리가 통신구에서 들렸다.
=율리시즈 대장, 지금 당장 황궁으로 와 줄 수 있겠습니까?
여기 상황을 모르지도 않는 올보그 황제가 저런 말을 한다는 건 혹시?
“예. 가겠습니다.”
알트 시에서 애틀리스까지 나흘, 로이칸을 타고 날아가도 하루는 잡아야 한다. 한시가 급한 나는 워프를 이용하기로 했다.
[애틀리스 황궁 앞에 도착했습니다. 5천 마나가 차감되었습니다.]나는 애틀리스 궁을 바라보며 낭랑한 목소리를 들었다.
[우와, 진짜 빠르다, 끝내줘.] [이힛, 마커스 우리 또 타자.] [에헤헤, 지난번 때보다 훨씬 좋아.]팅거와 벨라는 벌써 황궁 안으로 날아갔다. 아마 로이홀이 있는 황녀 궁으로 갔겠지.
원래는 카이만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팅거와 벨라는 지금까지 했던 대로 콜린스를 감시하고.
그러나 이미 워프를 경험했던 녀석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다며 내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녀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잘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을 지켜만 보고 있는 게 능사는 아니니까.”
황제는 알현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법 스크롤이라는 거 참으로 편리한 거로군요. 통신실에서 나오자마자 대장을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자, 갑시다.”
내가 마법스크롤로 빨리 도착한 줄 아는 올보그 황제는 마법 스크롤을 칭찬했다.
올보그 황제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드래곤 정원. 엘라로투스 제국의 상징인 드래곤을 모시는 곳으로 황족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이었다.
입구에 들어가니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와, 저 큰 조각, 네 아빠, 엄마 아니야?] [그런 거 같아, 카이와 엄청 닮았어. 우와, 여기 카이 너 닮은 조각 되게 많아. 귀여워. 헤헤헤.]팅거와 벨라가 감탄사를 내뱉는 것과는 달리, 카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마 자신과 닮은 드래곤 조각상이 많아서 그럴 거다.
“와! 진짜 크네요.”
정원 중앙에 하늘을 찌를 듯한 드래곤 상이 서 있었다. 골드 드래곤과 실버 드래곤. 팅거가 말한 대로 아주 거대했다.
“세이네르 카셀 님과 주벤엘게 레이 님이십니다.”
올보그 황제는 그 앞에 가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나 역시 옆에서 황제와 같이 예를 표했다.
[쳇, 고개를 숙이긴 왜 숙여?]투명화해서 이곳 어딘가에 있을 카이의 볼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드래곤들은 이기적이고 자신만 안다고 하더니, 다른 드래곤에게 고개를 숙여서 화가 났나?
헤츨링도 드래곤이란 말이지? 카이가 짧은 앞다리를 허리에 대고 조각상을 노려보고 있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때였다.
으응? 저 두 용, 카이 부모야? 그러고 보니, 카셀과 레이. 카이. 맞는 것도 같은데.
-카이, 너도 가족 계보가 있어?
[당연하지. 나는 위대한 세이네르 카셀 님과 주벤엘게 레이 님의 유일한 아들, 슈리말라 카이 님이시다.]“헉!”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드래곤을 올려다봤다. 세이네르 카셀이라 불리는 골드 드래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눈동자가 카이와 똑같은 보라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