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84)
“대단한 일을 했더구나.”
“네, 뭐.”
“폐하께서 치하하셨다. 카발라 제국 황제께서 내 칭찬을 굉장히 많이 하셨다더구나. 혹, 다친 곳은 없느냐?”
“없습니다.”
“그럼 됐다.”
백작은 평소와 같이 담담한 말투였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걱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본관에 들어오기 전에 노면 마차 공사장에 들렀습니다.”
“들었다.”
“계획보다 훨씬 빨리 완공하겠더군요.”
“그렇지. 다 베어독들 덕분이다. 녀석들이 어찌나 힘이 센지 한 마리 한 마리가 인부 열 명 몫은 너끈히 해내더구나.”
백작의 말투에 베어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저 얼음 백작을 녹이다니, 베어독 녀석들, 대단한데?
괜히 내 어깨가 쭉 펴지는 거 같았다.
“저도 놀랐어요. 카우덴 광산에서 그 녀석들이 잔해를 치우는데, 장정 10명 이상 몫을 충분히 해내던데요?”
“그렇지. 여기서도 다들 깜짝 놀랐었지. 아, 걱정하지는 말아라. 네가 적어 주고 갔던 지시사항을 잘 따랐으니까.”
내가 당부한 건 딱 두 가지였다.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일을 시키지 마라. 그리고 양질의 먹이를 마음껏 먹게 해라.
이미 베어독에게 상황을 들어 잘 알고 있던 나는 빙그레 웃었다.
“걱정하지 않아요. 아버지의 지시를 어길 사람들이 누가 있다고.”
백작은 명령을 불복한 자를 용서할 만큼 허술한 사람이 아니다. 그걸 인부들을 알고 있을 거고.
그걸 알면서도 베어독에게 확인한 건, 혹시나 해서였다.
“크흐흠.”
아들이 전적으로 아버지를 믿는다는 내 말에 기분이 좋아졌을까? 백작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깃들었다.
“폐하께서 하사해 주신 네 영지, 내가 둘러보긴 했다만, 너도 한번 가 봐야 하지 않겠느냐?”
“이번에 가 보려고요.”
“잘했다. 국영지로 묶여 있어서 온통 벌판과 숲이 대부분이지만, 개발만 하면 괜찮을 거다.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았던 땅이라 비옥할 테지.”
“그래서 말인데요.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 땅이니 이참에 계획도시를 만들어 볼까 해요.”
“계획도시?”
“예, 아버지께서도 이번 노면전차를 깔 때 아쉬워하셨잖아요. 이 건물이 여기에 없었다면, 저 과수원이 한 구역만 옆에 있었다면, 하시면서요.”
이미 도시가 만들어진 다음에 노면전차를 도입하려니 애로사항이 꽤 많았다.
“그랬지.”
“그래서 아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후, 도시를 만들어 볼까 해요.”
“그런데 그 먼 곳으로 영지민들이 가겠느냐?”
도시 개발에 가장 중요한 건 인구, 사람들이다. 도시만 덜렁 세워진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곳에서 생활하고 상업활동이 이뤄져야 도시가 돌아간다.
“그래서 율리시즈 영지 생활권으로 묶어야죠.”
“생활권? 혹시 노면마차를 연결할 생각이냐?”
“예, 제일 번화가인 바트롱가 광장에서 한 번에 갈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에요.”
“흠, 괜찮은 생각이군.”
백작이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분명 머릿속으로 셈을 굴리고 있을 터.
“연구소나 공방 등을 옮기면 좋을 거 같아요. 콘스턴왕국의 마밸리처럼요.”
“호오!”
“개발과 생산을 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잘 구축해 놓으면 알아서 찾아올 거예요. 물론 초반에 들어가는 비용은 엄청나겠지만요.”
“…….”
“지금 당장 세울 생각은 없어요. 도시를 하나 세우는데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제가 아는 분야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
“다만, 거대한 사업을 추진하려면 동력, 그러니까 일꾼이 많아야 하잖아요.”
“그렇지. 이번에도 베어독을 쓸 거냐?”
“예, 저야 그러고 싶죠. 그러려면 걔들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아예 새 영지에는 걔들을 위한 구역을 지정하려고 해요.”
“베어독을 위한 구역?”
“예,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걔들이 워낙 소심하잖아요. 겁도 많고. 그래서 아예 걔들만의 보호구역을 만들고 시작할 거예요.”
“흠,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공사장 근처에도 그런 구역을 만들어야겠군.”
“아주 좋아할 거예요. 그건 그렇고. 아버지, 농작물 전문가를 좀 붙여 주세요.”
“그걸 뭣 하게?”
“영지 답사가서 어떤 곡물이 잘 자랄지 알아보려고요.”
“알았다.”
백작은 다음 날 당장, 관계자를 붙여 줬다.
“토마스입니다. 율리시즈 상단 종자연구소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토마스와 그의 부하직원 두 명과 함께 불모지로 갔다.
“토양이 아주 좋습니다. 연구를 해봐야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뭘 심어도 잘 자랄 것 같습니다.”
“그런가?”
“예, 아, 잠시만요.”
토마스는 천혜의 땅이라며 불모지를 칭찬하며 여기저기 흙을 미리 준비해 간 통에 담았다.
“오오, 이보게 자네들 이걸 좀 보게.”
흙은 담던 토마스가 흙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감자? 고구마? 아니야. 그런 것보다 훨씬 커.
“토마스 수석 연구원님, 이거 투베로가 아닌가요?”
“그래 보이는군.”
“후우, 이렇게 큰 투베로가 있다니.”
토마스와 직원들이 감탄했다. 투베로라면 나도 아는 이름. 감자와 고구마를 섞어 놓은 듯한 맛이 나는 작물이다.
“그게 투베로라고요?”
“예, 대단하군요. 여기에 맛도 좋으면…….”
토마스가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공자님, 이걸 연구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
토마스의 흥분은 계속 이어졌다.
“허어, 제메아도 이렇게 크다니.”
옥수수처럼 생긴 작물을 말했다. 토마스 말마따나 한 알이 내가 알고 있는 옥수수의 세 배 이상 컸다.
“허허, 세상에 우리 영지만들도 잘하면 바무사를 먹을 수 있겠군.”
바무사는 바나나와 똑같이 생겼는데, 베어독들이 아주 좋아하는 과일이다.
호오, 바나나까지. 그냥 베어독을을 풀어만 놔도 먹고 사는 데는 걱정 없을 거 같군.
그렇다면 여긴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토마스.”
정신없이 흙과 채소, 과일들을 채집하는 토마스를 불렀다.
“예, 말씀하시지요.”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작물은 없어?”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러니까, 그냥 씨만 뿌려 놓으면 알아서 잘 자라서 열매를 맺는 그런 곡식 말이야.”
“이것들이죠. 투베로와 제메아는 계절과 상관없습니다. 그냥 토양만 좋으면 어디든 자랍니다. 이 두 작물 덕분에 겨울에도 굶지 않고 살 수 있습죠.”
토마스는 투베로를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흠, 그러고 보니, 앨버부르크나 아투벡에서 많이 본 거 같긴 해.”
내가 고구마,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투벡에 가면 거리에 이걸 구워서 파는 곳이 제법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 때, 아투벡 시민들이 분유, 전해질, 그리고 이것들을 먹고 지냈다고 했던가?
“토마스, 이 종자를 좀 구해 줘.”
“종자요?”
“다른 것도 좋다. 경작하지 않고 뿌려만 놔도 잘 자라는 곡식 종자를 구해 줘.”
“알겠습니다.”
토마스가 종자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나는 백작이 소개해 준 도시 개발자와 주벨로와 신도시의 아우트라인을 잡았다.
“그래, 도시 이름을 로나인-1로 부를 거라고?”
“예, 이 나라 저 나라에 있는 제 소유의 영지를 하나로 묶고 싶어서요. 마커스나 율리시즈로 하고 싶긴 한데,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서요.”
나중에 내 영향력이 더 커지면 모를까 굳이 내 땅이 이리저리 많아지는 걸 올보그 황제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 왕들에게 드러낼 필요는 없지.
알고 있는 것과 지도로 보는 건 아주 큰 차이일 거니까.
“좋은 생각이다. 영지명이야 나중에 개명해도 상관없으니까.”
백작도 같은 생각인 거 같았다.
그렇게 며칠 계획을 세우며 영지를 둘러보던 나는 토마스가 마련해 준 종자를 들고 카스카 왕국의 홀덴 영지로 날아갔다. 홀덴 영지는 이제 로나인-2.
로나인-2 영지에 가니, 베어독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은인! 반갑다.] [은인! 오랜만이다.]나는 거기서 며칠 머물면서 다치거나 아픈 베어독들을 살폈고, 함께 간 호크와 스피카, 로이칸이 땅을 파고 베어독들이 씨를 뿌렸다. 그리고 팅거와 벨라가 녀석들을 감독했다.
[이번엔 흙을 덮는다! 2조 빨랑빨랑 안 오냐? 앙?] [간다!]1조 베어독들이 씨를 뿌리면 언제 나타났는지, 2조 베어독들이 와서 흙을 덮었다. 내가 뭐라고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
그동안 경험치는 쌓여 갔다. 그러나, 경험치가 올라가는 것에 비하면 마나는 지지부진한 상태.
“하아, 이거 마나 쌓는 게 쉬울 줄 알았는데.”
그냥 별 쓸모없다고 생각할 때는 잘만 쌓이는 거 같더니, 이걸로 뭘 좀 해 볼 생각을 하니, 느려 터졌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여유롭게 쌓아 놔야 필요할 때 드워프들에게 주문을 넣지.
이게 다 머릿속에 각인된 ‘빨리빨리’ 때문이야.
“어디 데빌몬스터 더 없나?”
나는 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쉬며 다음 목적지인 롤린스 제국으로 날아갔다.
“이번 학기 끝나기 전에 치료탑으로 가야 할 텐데.”
이미 다른 강의는 이수한 상황. 볼프 탑주와의 1:1 집중 수업만 남았다.
아무리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치료사 활동이 가능해져도 앨버부르크 졸업은 하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논문을 내든, 새로운 치료법을 발표하든,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그전에, 듣고 싶은 강의가 몇 개 더 남아 있기도 하고.
카스카에서 롤린스 제국으로 날아가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동물을 치료해 줬다. 해가 지면 팅거와 벨라가 주변에 동물들을 모아왔기 때문이다.
하여 지금은.
체력도, 마나도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된 것.
“후, 마나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긴 하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베랑토에 도착했다. 도착한 내가 제일 먼저 한 건 바로 데빌테일 놈들 중에 부하고 삼은 테일 놈을 불러들이는 거였다.
-이게 다냐?
테일은 내 명령을 잘 지켜 쿰티라 열매를 제법 많이 모아 놨다. 그렇다고 칭찬해 줄 생각은 없었다.
[쳇!]녀석은 나를 삐뚜름하게 쳐다보며 혀를 찼다. 베어독, 판테라들과 사뭇 다른 모습.
저 모습을 보면, 몬스터 중에서 못된 놈들이 데빌몬스터가 되나 싶다.
-복종 안 하냐?
[한다. 쿰티라 모았다!]-이게 눈 안 깔아?
부하면 자고로 상사에게 무조건 복종이다.
퍽!
나는 가볍게 한 대 치고 시작했다.
[아아악악악!]테일 놈이 제 머리를 감싸며 아프다며 방방 뛰었다.
나는 그런 테일 녀석을 가볍게 한 대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잘하란 말이다. 알겠어?
[체…… 보, 복종!]테일 놈이 꼬리를 싹 말고 고개를 숙였다.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마, 말하라.]-어딜 가야 데빌몬스터를 찾을 수 있냐?
* * *
“판테라들에게 이걸 뿌리라고 시킨 후, 테일 놈이 말해 준 지역으로 가 봐야겠군.”
테일이 말해 준 지역은 판테라가 모여 있는 곳에서 산을 하나 넘어가면 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놈들을 잡고 마나를 획득해야지.
판테라들은 우리를 반가워했다. 나는 녀석들이 내가 지시한 것을 무사히 수행한 것을 지켜본 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후, 이제 한번 사냥을 해 볼까?”
나는 뒤에서 두리번거리는 세이건에게 말했다.
“세이건!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소리 질러. 아니다. 넌 그냥 로이칸 등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마라.”
“에에, 그런 안 되죠. 제가 누굽니까? 공자님을 지켜 드려야죠.”
“퍽이나. 아무튼, 조심해. 놈들은 아주 강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세이건은 이글나이트 이상으로 강하다. 자신 한 몸 정도는 충분히 건사할 수 있는 자였다.
그리고 호크, 스파카, 로이칸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길까?
거기에 신조들이라는 팅거와 벨라까지 우리를 호위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무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거로 생각했다.
세이건의 비명이 들리기 전까지는.
“으아아아악! 고, 공자님!”
바로 내 옆에 있던 세이건이 하늘 위로 날아가면서 소리를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