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37)
출 기세로 제갈승계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아부했다. “거참.” “보는 사람이 다 부끄럽군.” 질풍십객, 초련을 필두로 금의검문의 무사 무리가 기룡과 상왕을 보고 피식 웃었다. 무림의 거인이라 칭해지는 두 사람이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은 보는 이가 다 부끄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 다들 기뻐해 주며 축하해 줬다. 어릴 적부터 세가에서 외면을 받고, 핍박까지 받던 제갈승계가 아니던가. 외부의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없이 공부했고, 활약했음에도 기관괴협이라며 괴인 취급을 받아 빛을 보지 못했다. 가까이서 그가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그리고 능력 또한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기에 안타까워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긴 노력과 고생 끝에 빛을 받고 무림에서 인정받았다. “안아 주면 딱일 때인데, 안 그래도 괜찮겠어?” 초련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무선화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무선화는 머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렇게 웃고 계셔도, 사실은 울기 직전이라 참고 계시는 중일지도 모르는 걸요. 안아드리면 참지 못하고 터지실 수도 있으니까……” 무선화의 말에 주변인들이 감격했다. ‘선녀가 여기 있다.’ ‘제갈 공자가 부럽구나.’ 따스한 눈길로 무선화를 바라봐 주었다. * * * 귀주, 옹안. 햇빛을 반사해 빛나는 머리, 세월의 흔적을 대변하는 자글자글한 주름, 희고 긴 눈썹은 초승달 같다. 붉은 법복이 아닌 황색 법복 차림인 것이 첫 만남과 조금 다르지만, 전에 본 라마승이 확실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시주.” 종객파가 합장(合掌)하며 하얗게 웃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주서천도 포권으로 인사에 답했다. “이 노승이야 별 탈 없었습니다. 저보단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자(死者)셨던 시주께서야말로 별 탈 없으셨는지요.” 별 탈 많았다. “그럭저럭 살 만합니다. 그것보다 이번엔 정말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종객파에게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만약 포달랍궁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결과가 좋지는 못했을 것이다. “홀홀홀, 시주께선 감사하실 필요없습니다.” 종객파가 눈웃음을 지으며 염불을 외웠다. “사 년 전, 대설산에서 중원이 위험에 빠진다면 포달랍궁 내에서 불협화음이 나올지라도 시주를 위해서 한걸음에 달려 나가겠다고 라마 앞에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시주께 진 빚을 갚으러 왔을 뿐입니다.” ‘설마하니 그때의 인연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확실히 사 년 전, 종객파의 목숨을 구해 주고 후에 중원이 위험하면 도움이나 돼 달라고 말하기는 했다. 하나 그땐 포달랍궁과 연관되고 싶지 않아, 종객파를 떼어 내려고 대충 말했던 것에 불과했다. 얼마 전에 그 일이 생각나 혹시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노승, 도대체 정체가 뭐지?’ 포달랍궁의 무승, 천여 명이나 동원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수준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이 정도 되는 전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건, 포달랍궁 내에서도 보통 지위의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전국에 포진된 유령곡이나 하오문이라 할지라도, 영향력은 어디까지나 중원에 한해서지 서장에까진 미치지 못한다. 알아보려고 해도 쉬이 알 수가 없었다. 노승을 향한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 전생의 기억까지 살펴보았지만, 떠오를 리 없었다. 솔직하게 ‘뭐하는 양반이오?’ 라고 물어볼까 하는 욕구가 치밀어 오를 때쯤 한 라마승이 말을 걸었다. “저 역시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검신이여.” 이십 대 중후반 정도의 젊은 승려였다. “사 년 전, 스승님인 라마께서 통렌을 위해 대설산을 찾았다가 삼독에 빠진 갈거파(喝擧派)와 살가파(薩迪派)의 습격을 받았다는 걸 들었을 때는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검신께선 소승, 근돈주파(根敦珠巴)의 은인이시기도 합니다. 라마의 목숨을 구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중원의 호흡법, 단전 호흡은 좋은 기운을 빨아들이고 나쁜 기운을 내뱉는다. 포달랍궁은 그와 반대이다. 나쁜 기운, 타인의 고통을 빨아들이고 좋은 기운, 기쁨을 내보낸다. ‘남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하는 것이리라’ 라고 전해지는 자비명상법, 그것이 바로 포달랍궁의 통렌이다. ‘갈거파와 살가파……’ 과거에 종객파에게 주입 당한 지식이 떠올랐다. ‘라마교의 삼대종파 중 두 곳. 그때 그 라마승들이 소속된 종파……어라?’ 주서천은 종객파의 복장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이 노승은 홍교(紅敎)라 불리던 영마파(寧璃派)가 아니었던가?’ 붉은 법복 차림에 같은 색깔의 모자. 그 탓에 홍교라 불린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복장은 황색이었다. 주서천이 묻기도 전에 근돈주파가 답해 줬다. “또한, 사 년 전의 악행이 교 내부에 대대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전부터 교에 회의감을 지닌 분들을 결집시킬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구(舊) 파를 개혁하고 저희 황교(黃敎), 격노파(格魯派)가 무사히 사대종파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황교? 스님께선 홍교시지 않았습니까?” 주서천이 종객파에게 물었다. “호오, 시주께서 라마교에 대해서 물으시니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종객파의 눈이 번쩍이자, 주서천은 아뿔싸! 하고 후회 했다. “실언했습니다.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소승은 일찍이 열여섯 때, 서장의 중심을 찾아 현교(顯敎)에 관해 연구했고, 다시 밀교(密敎)의 오의(奧義)를 구명하기 위하여 산에 들어가 수행에 전념하였지요. 아, 현교란 서가모니불께서 설법하신 대승경전(大乘經典), 소승경전(小乘經典)을 통틀어 말하는 것입니다. 밀교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건 여전하시군요, 스님.” “그 후 서장의 사찰을 순회하며 영마파에서 잠시나마 불학을 공부하기도 했으니, 홍교였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사실 그때에는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었지요. 소승은 갈거파와 살가파의 미움을 받았는지라, 격노파 황모 차림으로는 운신이 자유롭지 않아서 신분을 숨기기 위해 부득이하게도 붉은 법복을 입었지요.” “저기, 제자 분. 혹시 스승 되시는 분께서 평소에 남의 말을 무시하는 걸 알고 계십니까?” 주서천이 고개를 돌려 근돈주파를 바라봤다. “저 역시 당시 불안하여 호위로 무승들을 보냈으나,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따돌렸다고 하더군요. 소승의 부족함에 통탄할 따름입니다.” 근돈주파가 주서천과 눈이 마주치자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 같아선 보내 드리고 싶지 않았으나, 해답을 찾기 위해 대설산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그만……” “미치겠군.”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검신이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격노파는 개조(開祖)를 허망하게 잃었을 것입니다.” “개조?” 주서천이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근돈주파도 주서천의 반응에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혹시나 했지만, 라마 스승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참고로 라마란, 부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해 주며 자신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말하기도한다. 승려 중에서 전생을 기억할 정도의 뛰어난 수행력을 가진 대덕고승(大德高僧)에 대한 존칭 중 하나이기도 해서 종객파는 라마라 칭해지기도 한다.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란다. 도움을 받은 뒤에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시주께서 뒷간이 급해 놔주지 않는다면 지려 버린다고 해서 그만 놓아 드렸지 뭐냐.” “흠…… ” 근돈주파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위대한 스승, 종객파께선 교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중이 방탕함에 빠지자 개탄하여, 황모를 쓰고 엄격한 규율을 부르짖으며 현교와 밀교를 융합한 신교의 종교 개혁 운동을 일으킨 분이십니다. 그 중심에서 개파된 것이 바로 황모파라 불리는 격노파이지요.” “허어!” 주서천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범상치 않은 노승이라 생각은 했지만……’ 근돈주파가 말한 대로라면 삼대종파, 아니 사대종파의 개조가 되는 위인 중의 위인이었다. 천여 명이나 되는 라마승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갔지만,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다. ‘삼대종파, 아니 사대종파의 개조나 되는 사람이 호위도 없이 혼자서 대설산을 올라?’ 심지어 호위라고 붙여 준 이들을 따돌리기까지 했다. 최초에 봤을 적에 미친 중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맞았다. 동시에 새로운 약에 넘어가 남만까지 간 신의의 얼굴이 생각나서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시주께선 라마뿐만 아니라 격노파, 나아가 교의 미래를 구하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근돈주파가 합장하여 인사했다. “또한, 마음 같아선 중원에 남아 시주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것을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종객파의 목소리에서 미안한 기색이 느껴졌다. “애석하게도 서장과 중원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은지라, 명의 눈치가 보여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암천회가 서장 무림에 마수를 뻗지 못한 건, 이러한 복잡한 외교적 관계 탓이었다. 사실, 주서천의 도움 요청에 내부에서도 너무 위험하다면서 반대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종객파가 목숨을 빚졌으며, 라마 앞에 맹세했다 하면서 강행하니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장소가 서장과 비교적 가까운 귀주가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리라. 그만큼 중원에 있는 것이 껄끄러운상황이었다. “와 주신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천 명의 라마승, 포달랍궁이 도와 피해를 최소화하고, 최초의 격전에서 거의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수많은 고승들이 찾는 대설산. 부처께서 이어 준 연이거늘 중 된 몸으로서 어찌 쉬이 여길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지요. 더 이상 돕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스님, 혹시 제가 도사라는 거 알고 계십니까? 혹시 도(道)에 대해서 들어 보시지 않으련지요.” “나무아미타불……” “어이.” * * * “후우……” 천기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다시 한번 말해 봐.” “귀주 전선이 완패……” “썅!” 쾅! 천기는 참지 못하고 눈앞의 탁자를 걷어찼다. 천선성 소속 칠성사병이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복면 위의 피부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조용히 하고 있자.’ 암천의 두뇌, 천기는 사적인 일로 수하를 죽이진 않으니 입만 다물고 있다면 문제없다. 보고를 끝낸 뒤 호기심을 접은 채 대기했다. “포달랍궁? 포달랍궁이 정사 연합을 왜 도와!” 황당무계한 소식이었다. 한때, 서장 무림이 중원 무림을 넘본 적은 있어도 도운 적은 없었다. 또한 원 이후 국가 간 관계가 껄끄러워지지 않았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그것이, 주서천이……” “개새끼!” 천기가 뒷목을 붙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그 새낀 서장에 또 언제 간 거야?” “아, 아무래도 수선행 시절인 듯 싶습니다.” 화산파의 제자는 나이가 차면 강호에 출두해 오 년 동안 도를 닦는 수행을 한다. 이를 수선행이라 한다. 그러나 주서천의 수선행, 그것도 초기 행적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었다. 괜히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한 것도 있는 데다가, 매화정검 시절 이전까진 그리 주목할 만한 인재로 알려지지 않아서이다. 수선행 도중 이름을 알린 거야 사천당가에서 당혜와의 내기 사건 정도다. 대설산을 방문하기 전 독혈곡이라 일컬어지는 애뇌산을 방문해 점창칠공자를 도와 칠각사를 사냥했으나, 비밀에 부쳐 달라는 요청에 알려지지 않았다. 주서천이 재주 좋게도 잘 숨어 다닌 탓에 칠검전쟁 이전의 행적이 명확하지가 않아 확인이 불가능했다. “주서천, 주서천!” 천기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름만 들어도 혈압이 솟구치고 치가 떨렸다. “무림이 암천의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