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23)
델카세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고, 조국 프랑스에 대한 믿음이 점점 풍화되어가고 있었다.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회담장.
“협상은 없다.”
델카세는 프랑스협상단의 대표로 앉아있었지만, 그는 프랑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포퓰리즘.
신념이란 화살이 가족의 피습에 부러진 델카세에게 남은 건 악이었고, 분노였다.
그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
예상대로 회담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될 것이라는걸. 프랑스의 개돼지들은 몰랐겠지만, 델카세 자신만큼은 알고 있었다.
이 충격은 상식 밖의 무언가를 본 인간의 모습이다.
“…..그. 델카세 장관님.”
모건 장관이 제일 먼저 정신을 되찾았다.
그는 혼미한 정신줄을 붙잡고 눈을 부릅떠 델카세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의 동공에 미친 델카세의 모습은 광인에 가까웠다.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일단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격식체를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
모건장관은 해괴한 생물을 보는 눈빛으로 델카세를 바라보았다. 마치 ‘광기에 빠진 인간이 왜 대답도 잘하고 태도까지 고치는 거지. 더 무서운데’ 따위의 생각을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델카세는 상식인이었다.
자기주장은 확실해도 격식 있는 현대인으로서 에티켓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모건 장관은 전 신경을 델카세에게 쏟아부으며 절차를 이어 나갔다. 이후로 자질구레한 절차들이 빛의 속도로 지나가고, 마침내 본회의 시간이 빠르게 다가왔다.
각국 협상단이 서로 묶어놓은 대화를 주섬주섬 풀어내려는 그때, 델카세가 손을 들어 등판했다.
“프랑스, 발언하겠습니다.”
“발언하십시오.”
“저희 프랑스 재무부는 러시아제국의 재정 상태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바이며, 프랑스 정부의 차관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으시다면 러시아제국 재정지출명세를 프랑스 정부로 제출해주시길 희망합니다.”
델카세는 강하게 나갔다.
이미 무서울 게 없다. 조국이 깨지고 부서지든 찢어지고 박살 나건 이미 뵈는 게 없었다.
자신이 지킬 건 한가지다.
프랑스의 자존심.
그 알량한 자존심만큼은 지킨다.
그것이 프랑스 시민들의 의지였고.
그들의 의지를 실현해주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의 덕목이었다.
델카세는 점점 뒤틀려갔다.
“…..델카세장관, 그건 무슨 의미요?”
서늘하게 식은 목소리.
결국 비테장관의 입장에서 그따위 산파는 프랑스의 사정이었다. 그는 굴욕에 안면의 모든 근육을 구겨버린 채, 살기등등한 얼굴로 델카세를 노려보고 있었다.
허나 델카세는 그 눈빛을 납득했다.
‘분노하는군.’
분노할만하다.
델카세가 프랑스 정부에 재정지출명세를 제출하란 의미는 프랑스 정부가 러시아제국의 재정정책에 간섭하겠다는 명백한 내정간섭이었다.
분노하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었다.
‘……더 분노해라.’
물론 전부 의도했다.
제국의 세출 명세는 국가기밀 중 국가기밀이었다.
아직 러시아제국은 전제군주정이었고, 러시아제국 정부의 지출 중에는 황실 관련 지출명세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궁중 귀족들의 지출명세까지 있는데 그걸 건든다?
장부를 들춰본다는 얘기다.
이건 러시아제국 귀족들의 부패한 정도를 생각해보면 역린 중에서도 역린이었다.
그들의 횡령 및 배임들에 대한 정보가 프랑스로 그대로 넘어간다는 의미였으니까.
‘더이상 정치에 미련은 없다.’
가족이 습격받은 뒤부터 델카세는 해탈한 스님처럼 조국과 삶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남은 건 혼돈이었다.
‘이젠 굳이 앞뒤 잴 필요는 없겠지.’
무척 자극적이다.
이건 러시아제국이 참을 수 없는 발언이다.
그 증거로 비테장관의 곁에 있던 귀족 보좌관들의 얼굴이 볼만하게 변했다. 그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비테장관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더불어 프랑스 측으로 죽일듯한 눈빛을 쏘았다.
“델카세 장관. 귀측의 절박한 입장은 이해하나 세출 명세를 공개하라는 요구는 과도한 내정간섭입니다. 발언을 철회해주시오.”
비테장관은 점잖게 말했다.
그는 프랑스와 드잡이할 생각으로 이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다. 비테장관이 원하는 건 건설적인 협상과 구제금융이었다.
결코 다 같이 죽자는 러시아제국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걸 피력했다.
“아무리 우리 러시아제국이 프랑스와 멀리 떨어져 있어 전쟁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선 넘은 발언이지 않습니까?”
약간의 도발.
‘막상 전쟁하면 쫄아서 튈 놈들이 지리만 믿고 설친다’는 비테장관의 공격에 델카세는 조금 어지러웠다.
엘랑비탈은 프랑스의 목숨과도 같은 구호였고.
프랑스의 얼을 상징하는 가치관이었다.
델카세 장관은 머릿속으로 원숭이처럼 길길이 날뛸 시위대의 폭동을 떠올랐다.
오히려 좋다.
시원하게 은퇴하고 가족들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이나 올까.
“델카세 장관. 잘 생각하시오.”
비테장관은 다시 한번 경고했다.
“천연자원의 수출 여부는 러시아제국이 꽉 잡고 있고, 그대들 빈민들의 생살여탈권 역시 러시아제국이 쥐고 있소.”
델카세 장관은 죽은 동태눈깔을 굴렸다.
이쯤에서 프랑스인들이 좋아할 만한 멘트나 하나 박아줘야겠다.
“……위대한 프랑스인들은 그런 재산 따위에 자존심을 팔아먹지 않습니다. 그것이 엘랑비탈의 정신이고, 그것이 프랑스인의 목숨입니다.”
“아이가 없군. 석유와 곡물 없이 3년 내내 굶주릴 수 있겠소? 러시아제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3년 정도는 수출금지 기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한번 경험해보고 싶소?”
비테장관은 상체를 당겼다.
그는 막강한 천연자원의 힘을 맛본 뒤로 눈깔이 이상해져 있었다. 비테장관은 이번 기회에 러시아제국의 힘을 정확하기 인지한 것이다.
지금까지 유럽대륙은 천연자원의 많은 부분을 러시아제국에 의존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프랑스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열어드리겠소.”
프랑스가 언제까지 식민지를 뜯어먹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식민지민들이 프랑스의 수탈을 이겨낼 수 있을까. 혁명은 안 일어날까?
결국 식민지에 의존한 프랑스의 식량정책도 바닥을 보일 것이다.
3년?
못 버틴다.
‘그야 못 버티겠지.’
이것은 델카세도 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더 좋았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바로 그거였으니.’
“그럼 러시아제국 또한 프랑스의 구제금융을 받을 수 없겠지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또 박았다.
그야 문제는 애국자일 때나 생기는 거고.
프랑스의 평화 따위는 진작 저 우주 밖으로 던져버렸다. 평화? 뒤틀린 델카세에겐 이미 다른 세상 얘기가 되어버렸다.
델카세는 낮게 읊조렸다.
“협상은 없다고 했을 텐데.”
혼돈.
델카세는 그것을 원한다.
그러자 회의실에는 다시 소름 끼치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러시아제국 측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아, 그렇소?”
툭.
비테장관의 정신 줄은 간당간당하게 붙어있었다.
그는 더 이상 델카세를 사람 보는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낮게 가라앉은 마그마 같은 분노를 서서히 뿜어냈다.
흡사 철천지원수라도 보는 듯했다.
“그 말. 후회하지 마시오.”
비테장관은 검지를 치켜세워 델카세를 지목했다.
눈빛은 형형하게 찔러 죽일 듯이 델카세를 노려보고 있었다.
델카세는 픽 비웃음을 머금고는 응수했다.
“구걸하러 온 주제에 잘도 말하는군.”
우당탕-!
이성의 끈이 끊어진 비테장관이 의자를 박차고 델카세에게 달려들었다. 화들짝 놀란 미국과 영국 측 협상단이 급하게 사이로 끼어들었다.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리자, 각국 경호팀이 급하게 회의실로 박차고 들어왔다.
꽈악-
비테장관은 이미 델카세의 멱살을 쥐고 주먹을 치켜들고 있었다.
“막아!”
새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흠.”
회담장이 혼돈에 휩싸여 난투극이 벌어진 가운데, 오직 나만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 제임스도 내 곁에 돌처럼 굳건히 머물고 있었다.
“안 말려도 돼?”
“도련님을 보좌하는 것이 제 업무입니다.”
“정론이군.”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이 재무장관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이기 전에, 미국의 국익을 생각해야 하는 한 명의 공직자였고, 재무장관이었다.
이 시점에서도 나는 국익을 생각해서 움직여야 한다.
말리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괜히 휘말렸다가 중간에 샌드위치처럼 낑겨봤자 본인만 피곤하다. 나는 러시아제국의 편도, 프랑스의 편도 아니다.
미국과 달러의 편이지.
나는 조용히 상체를 당겨 난장판이 된 회담장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비테장관은 그 덩치로 델카세를 바닥에 쓰러뜨린 채, 멱살을 쥐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사방에선 경호팀과 협상 사절들이 나서서 비테장관의 주먹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적극적인 이유가 있었다.
비테장관이 프랑스 장관을 때려 러불관계가 악화되어봤자, 영국 입장에선 좋을 게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미국 측 협상단은 그래도 주최국이라 예의상 나선 것이고.
반대로 프랑스와 러시아제국의 보좌관들은 목숨을 걸고 두 장관의 난투극을 막고 있었다.
원인은 너무도 명확했다.
“프랑스 대표가 맛이 가버렸군.”
그냥 정신병이다.
델카세의 정신상태는 흡사 아나키스트나 극단주의자들과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정신병동에 있어야 할 양반이 협상단에서 프랑스를 대표하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 즉 엘리제궁이나 프랑스 중앙은행은 델카세의 상태를 알고 있었을 터.
그런 상태에서 델카세를 보내다니, 애초에 프랑스는 러시아제국과 협상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제국에 천연자원의 패권을 빼앗겼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민들.”
정치인들은 표를 파는 장사꾼이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좀 다르겠지만, 그들은 토사구팽할 생각으로 미운 역할을 다 떠넘길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고, 프랑스 정부는 시민들의 여론을 의식했을 것이다.
델카세가 좀 말 좀 잘 듣게 개조되었으니 보냈겠지.
문제가 있었다면, 이건 개조가 아니라 근본부터 썩어들어간 상태였다는 사실이고.
프랑스 대표로 온 델카세의 발언 때문에 유럽은 더더욱 시궁창으로 빠져들 것이란 사실이었다.
‘너무 좋다.’
아마 이 자리에서 오직 나와 델카세만이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나키스트로 전직한 델카세는 멸망하는 프랑스에 희열을 느낄 것이고, 나는 점점 전쟁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유럽대륙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낀다.
‘더 싸워라.’
더욱 서로를 증오해라.
전쟁으로 유럽대륙을 패권에서 탈락시켜라.
미국의 무기를 매입해라.
돈을 소비해라.
팍스 아메리카나.
그 꿈을 위해 희생되어라….
“크흠.”
나는 헛기침했다.
속내를 들킨 순 없었다. 몸싸움을 방치하는 것도 의장으로서 도리가 아니었다.
중역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두 팔을 들고 양측을 떼어놓았다.
“다들 진정하세요.”
내 발언에 미친 듯이 싸우던 이들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싸움을 멈출 따스한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더 소란 피우면 퇴장시키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정색했다.
델카세와 비테는 나를 한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프랑스 대표의 델카세는 아직 깽판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마저 다 뽑아내지 못했다. 퇴장당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러시아제국의 비테장관은 구제금융이 다급했다. 러시아제국 대표인 자신이 퇴장당하면 구제금융은 물 건너간다.
차가운 이성이 돌아왔다.
그들은 옷을 털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깝치면 뒈지는 거야.’
이 회담장의 왕은 나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다들 진정하신 것 같으니 회의를 속행하겠습니다.”
땅땅땅.
나는 의사봉을 세 번 두들겼다.
***
러시아제국의 황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람스도르프 외무부 장관. 그대는 러시아제국이 받아올 구제금융을 긍정적으로 보시오?”
니콜라니 2세.
러시아제국의 차르는 제복을 갖춰 입고 긴 책상의 상석에 앉아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람스도르프 외무부 장관은 미간을 찌푸렸다.
“받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저는 중립국 미국의 구제금융은 성공적으로 받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구제금융이 실패한다면 영불협상으로 영국까지 파투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랑스의 편을 들겠다는 건가.”
“물론, 영국 정부는 영악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영불협상을 파기시켰다간 프랑스 정부와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버리게 되겠지요.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을 겁니다.”
영국 정부 입장에선 러시아제국보다 프랑스가 먼저다. 당연한 이치였다.
애초에 러시아제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1등 공신은 영국 정부였다.
그들의 도움은 준다고 해도 침을 뱉고 내쫓을 것이었다.
“결국 미국의 구제금융만을 바라고 있어야겠군.”
“예, 하지만 그렇게 되면 러시아제국은 취약해지게 됩니다. 흑해 방면으로는 영국 왕립해군에 영향권을 일체 양보해야 하며, 영국 정부와 손잡은 오스만제국의 영향권이 더 넓어지겠지요.”
“극동 방면으로는 영국에게 막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시베리아횡단철도까지 진심으로 압류당한다면, 러시아제국의 인프라 체계가 무너져버립니다.”
“안보까지 무너져내린다…”
차르는 똥 씹은 표정으로 손에 쥔 종잇장을 구겨버렸다.
프랑스 정부에 차관을 받았을 땐 좋았지만, 계산서가 눈앞에 들이밀어지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었다.
“폐하.”
람스도르프 외무장관은 당신의 차르를 불렀다.
“최근 독일제국의 카이저와 함께 요트를 즐겨타신다는 정보를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
“짐작은 갑니다. 독일제국과 후일을 도모해 유럽대륙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싶으셨겠지요. 하지만 이는 독일제국에 너무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독일제국의 지리적 고질병인 양면전선을 해소시켜주는 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침묵.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솔직히 러불동맹이 굳건하던 시절엔 독일제국과의 협상은 결사반대했을 것입니다만….”
람스도르프 외무장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우방으로 둘 열강이 독일제국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독일제국만이 유일하게 러시아제국에 원조자금을 보낸 유럽국이었다.
다른 영국 정부가 러시아를 공황에 빠뜨리고, 프랑스가 뒤통수를 쳐 가죽 껍질을 베끼려 하던 때, 독일제국만이 러시아제국을 원조해주었다.
야욕이 넘치는 카이저의 시커먼 속내가 보였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차르의 손은 어느새 멈춰있었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차분히 자신의 떨리는 손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노로 차오른 차르의 격정이 터져 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람스도르프 외무부 장관은 조용히 아뢰었다.
“허가만 내려주신다면, 독일제국의 베를린궁으로 비밀특사를 파견하겠습니다. 괜찮으실지요.”
재촉은 없었다.
람스도르프 외무부 장관은 당신의 차르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허가해도 허가하지 않아도. 지고한 차르의 높은 뜻이 있겠지.
그저 쳐다보았다.
장관은 차르를 돕는 손이나 다름없었으니.
“···..후.”
러시아제국의 차르는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제국을 어깨에 짊어진 차르는 자신을 압박하는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불타오르는 짙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어찌해야할까.
평소라면 우유부단할 그의 판단력을 분노가 등떠밀었다.
그는 잔잔히 촛불처럼 타오르는 눈빛으로 자신의 외무부 장관을 바라보았다.
무거운 입술을 열었다.
“······허가하겠다.”
그것은 분기점이었다.
끝